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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조커가 나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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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조커가 나온다고? [마니아 서재·어둠의 기사 배트맨 연대기③] 모던 배트맨, 거듭난 조커
'프레시안 books-마니아 서재'의 두 번째 연재 '배트맨과 다크 히어로 특집'이 이제 딱 중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배트맨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한 1편(☞
바로 가기)과 로빈과의 관계를 의심 받으며 만들어진 '배트맨 패밀리' 등 한층 심화된 역사를 다룬 2편(☞바로 가기)에 이어 97호에 싣는 3편에서는 배트맨 시리즈 최고의 캐릭터로 꼽히는 '조커'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조커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요? 그의 기괴한 외모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요? 곧 개봉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조커가 등장한다'는 소문은 왜 나오게 된 걸까요? 이번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98호, 99호에서도 연재는 이어집니다. 2주 후 연재 마지막 글에서는, 다섯 번의 연재 글을 모두 읽으면 쉽게 풀 수 있는 일곱 개의 퀴즈가 나갑니다. 정답을 모두 맞힌 분 가운데 총 33분을 추첨해서 배트맨 시리즈 단행본을 증정합니다. <편집자>


프랭크 밀러의 손에 되살아난 배트맨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프랭크 밀러 외 지음, 김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1986년,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김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가 출간되었다.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 27호에 첫 등장하여 47년 후 작화가이자 스토리 작가인 프랭크 밀러의 손에 재탄생한 배트맨은 이전의 그 어떤 배트맨보다 더 '다크'한 배트맨으로 거듭났다. 이 작품은 단지 분위기 차원에서만 전작들의 관성을 깨뜨린 것은 아니다.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작품의 기본 설정 면에서 여러 파격을 선보인 작품으로, 모던 배트맨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배트맨 시리즈는 대체로 '현재 혹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아왔는데,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나이를 명확히 제시하여 작품의 배경이 근미래임을 못 박았다. 이전 작품에서는 브루스 웨인의 나이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작품에 따라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되지만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최상의 신체적 능력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2대 로빈 제이슨 토드의 죽음 이후 배트맨 활동을 그만두고 은퇴한 지 10년이 된 쉰다섯 살의 장년 남성이다.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 노릇을 그만두었음을 선언이나 하듯 콧수염까지 기르고 다니고, 10대 청소년들은 배트맨을 전설 속의 인물 정도로 생각한다.

▲ 수염을 기른 브루스 웨인.

70세가 된 제임스 고든 국장과 배트맨이 존재했던 고담시를 회상하던 브루스 웨인. 그는 다시 범죄가 만연하게 된 고담시의 풍경에서 어린 시절 범죄자에게 부모를 잃은 과거를 떠올리고, 배트맨 복장을 새롭게 갖춰 입는다.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배트맨의 재등장을 두고, 공권력 너머에서 범죄자를 응징하는 히어로에 대한 찬반의 목소리가 고담시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혹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까지 흘러넘친다.

이 작품에서 프랭크 밀러는 텔레비전 보도와 토론 장면의 대사와 연출에 특히 공들였는데, 이는 독자들에게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찬성의 목소리만 모아보면 배트맨의 행동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반대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법 바깥에서 정의를 실현하려 해서는 안 되며 법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의적인 정의 실현은 법 위에 세워진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있다.

배트맨의 재등장이 여론만 술렁이게 한 것은 아니다. 배트맨이 '돌연변이 갱(The Mutant)'이라 불리는 새 세대의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동안 투 페이스나 조커와 같은 배트맨의 전통적인 숙적들이 다시 준동한다. 프랭크 밀러의 묘사에 따르면, 이 숙적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배트맨에게서 찾는다,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조커가 뉴스를 통해 배트맨의 재등장 소식을 접하고 잃어버렸던 '살인 미소'를 되찾는 연출이 이를 대표한다. 돌아온 조커는 여론이 배트맨을 비난하는 또 다른 빌미가 된다. 결국 제임스 고든에 뒤이어 신임 경찰이 된 국장 엘렌 인들은 배트맨을 체포하고자 한다.

배트맨에 대한 압박은 고담시 바깥으로부터도 엄습한다.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미국에서 출간된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6년이다. 소련이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고 슈퍼맨은 이를 가까스로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 떨어뜨린다. 그러나 폭발로 인해 미국 전역이 정전과 핵겨울로 인한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고담시의 경우 배트맨과 전 돌연변이 갱 출신의 배트맨 추종 집단 '배트맨의 아들들(Sons of the Batman)'이 위기를 수습하자, 미국 정부는 제멋대로 공권력을 대체한 배트맨을 견제하기 위해 슈퍼맨을 파견한다. 결국 슈퍼맨과 배트맨의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다.

▲ 정전이 된 고담시를 말 타고 누비는 배트맨(<다크 나이트 리턴즈> 중)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뉴스 보도와 텔레비전 토론 등을 통해 배트맨의 존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고찰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시(市)를 넘어 국가 규모의 공권력을 거부하면서까지 자신만의 사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배트맨은, 어둡고 고독하긴 해도 어디까지나 정의의 사도에 머물렀던 과거 여러 작품의 배트맨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현실적인 이해관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때문에 거침없고 호쾌한 배트맨의 액션 활극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쉽게 즐길 만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어렸을 적 배트맨의 활약에 환호했다가 이제 성인이 된 독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범죄자뿐 아니라 경찰과 국가에까지 맞서는 배트맨의 고독한 싸움을 지켜보게 되었다. 가면 쓴 영웅에게도 세상은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절절히 보여준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세상의 복잡함을 경험한 성인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배트맨 시리즈는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를 통해 비로소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그저 판형으로서의 그래픽노블이 아니라 내용의 깊이 면에서까지 진정한 그래픽노블 시리즈로 거듭나게 되었다. 2005년 <타임>은 1923년부터 2005년까지 출간된 영어 소설 중 베스트 100을 선정하면서 아울러 그래픽노블 베스트 10도 선정하였다. 이 그래픽노블 베스트 10에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도 포함되어 있다. (☞) <타임>은 이 작품 덕에 배트맨 영화들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비디오 게임과 영화, 음악 등 미국의 대중문화를 주로 다루는 사이트 아이지엔(IGN, www.ign.com)은 2005년에 배트맨 그래픽노블 베스트 25를 선정한 바 있다.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2위를 차지했다. (☞) 참고로 국내 출간된 배트맨 그래픽노블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웃는 남자> 24위, <배트맨 : 허쉬> 17위, <배트맨 : 패밀리의 죽음> 15위, <배트맨 : 다크 빅토리> 10위, <배트맨 : 롱 할로윈> 5위,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 4위, <배트맨 : 킬링 조크> 3위,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2위, <배트맨 : 이어 원> 1위

영미권에서 과학 소설과 판타지, 공포 등을 주로 취급하는 서점 프랜차이즈 '금지된 행성(Forbidden Planet)'의 웹사이트에서는 최고의 그래픽노블 베스트 50을 선정했는데,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를 1위로 선정했다. (☞) 이 베스트 50 목록에는 배트맨 그래픽노블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국내 출간된 작품들을 꼽아본다면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 8위, <배트맨 : 이어 원> 14위, <배트맨 : 킬링 조크> 29위, <배트맨 : 롱 할로윈> 44위 등이다..

▲ <배트맨 : 이어 원>(프랭크 밀러·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곽경신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배트맨을 성인 취향의 히어로로 완전히 탈바꿈해놓았다. 아니, 배트맨뿐 아니라 DC의 모든 히어로들을 성인 취향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리고 <타임>의 평가대로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대중적 성공과 평단의 평가는 곧장 배트맨 영화 제작에 크게 기여했다. 배트맨 영화 시리즈의 도화선이 된 또 다른 계기를 꼽는다면, 1987년 출간된 <배트맨 : 이어 원>(프랭크 밀러·데이비드 마추켈리 지음,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곽경신 옮김, 세미콜론 펴냄)이다.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큰 성공을 거두자 DC 코믹스는 프랭크 밀러에게 배트맨 시리즈를 아예 새롭게 시작하는 작품을 요청한다. <배트맨 : 이어 원>은 '이어 원'이라는 제목답게 배트맨의 탄생을 다룬 작품이다. 해외에서 무술과 범인 추적, 과학 등을 수련하고 12년 만에 고담시로 돌아온 스물다섯 살의 브루스 웨인과 시카고에서 막 고담시로 재배치된 부서장 제임스 고든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젊은 브루스 웨인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배트맨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고담시의 경찰 국장이 되기 전의 제임스 고든의 이야기가 겹친다. 특유의 강직함 때문에 고담시의 부패한 경찰들에게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왕따를 당하던 고든은, 배트맨과 함께 고담시의 지도층 및 경찰 내부의 부패와 마피아가 주도하는 범죄를 일소하면서 그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스토리 작가 프랭크 밀러가 스토리를 맡았기에 두 작품의 연속성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가령 <배트맨 : 이어 원>에서 아직은 서툰 스물다섯 살의 배트맨과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히어로 활동을 그만두었다가 10년 만에 재개한 쉰다섯 살의 배트맨을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까. 프랭크 밀러가 작화까지 도맡았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는 달리 <배트맨: 이어 원>에서는 데이비드 마주켈 리가 작화를 담당했다. 프랭크 밀러의 개성 강하고 꽤 거친 작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데 비해, <배트맨 : 이어 원>은 잘 정돈되고 깔끔한 전형적인 미국 만화의 작화를 선보이고 있다. 작화 스타일은 많이 다르지만, 프랭크 밀러가 스토리를 쓴 만큼 특유의 액션 연출이나 대사 톤, 무엇보다 뉴스로 직간접적인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연출이 그대로 이어진다.

▲ <배트맨 : 이어 원> 중.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 이어 <배트맨 : 이어 원>도 성공을 거두면서 모던 배트맨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이후 배트맨은 여러 스토리 작가와 작화가의 손에 더욱 어둡고 복잡한 다크 히어로로 거듭난다. 이 모두가 프랭크 밀러의 덕분이었다.

1989년에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배트맨> 역시 프랭크 밀러의 두 작품으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비록 팀 버튼이 배트맨 만화의 팬은 아니었지만, 함께 작업한 배트맨 골수 팬 출신의 각본가 샘 햄과 함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킬링 조크>를 참고하여 각본을 준비했다.

<배트맨 : 이어 원>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영화는 18년 뒤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한 영화 <배트맨 비긴즈>(2005)다. 프랭크 밀러가 만화 속 배트맨을 <배트맨 : 이어 원>으로 리부트시켰듯, 크리스트퍼 놀란은 조엘 슈마허(<배트맨 포에버>, <배트맨과 로빈>)에 의해 밝고 유쾌한 분위기로 빠져버린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다시 어둡고 고독한 본연의 배트맨으로 재출발시켰다.

<이어 원>과 <배트맨 비긴즈>, <롱 할로윈>과 <다크 나이트>

영화 <배트맨 비긴즈>와 달리 <배트맨 : 이어 원>에는 해외에서의 12년간의 수련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이 고담시로 돌아와 배트맨의 복장을 결정하고 서툰 히어로 활동을 하는 내용이나 고담시의 부패한 경찰청장 질리언 로브와 결탁하여 고담시를 좌지우지하는 마피아 두목 카마인 '로마인' 팔코네가 등장한다는 점은, <배트맨 : 이어 원>이 <배트맨 비긴즈>에 기여한 요소들이다.

<배트맨 : 이어 원>이 배트맨과 제임스 고든이 협력하여 경찰청장 로브와 마피아 두목 팔코네를 일소하는 내용을 다루는데 비해, <배트맨 비긴즈>는 마피아 두목 팔코네와 허수아비 악당 스케어크로우, 라즈 알 굴이 결탁하여 고담시를 위기로 몰아넣는 위기에 집중한다는 차이는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배트맨 비긴즈>가 <배트맨 : 이어 원>으로부터 많은 설정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팔코네는 <배트맨 : 이어 원>에서 프랭크 밀러가 처음 선보인 악당이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두 작품 모두 이야기가 끝나고 조커라는 악당의 첫 등장을 암시한다.

▲ <배트맨 : 롱 할로윈>(제프 로브 지음, 팀 세일 그림, 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후속작 <다크 나이트>의 제목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배트맨의 별명 '어둠의 기사(dark knight)'를 차용했다고 알려졌다. 이 영화 역시 <배트맨 : 이어 원>과 후속작 <배트맨 : 롱 할로윈>(제프 로브 지음, 팀 세일 그림, 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의 여러 설정을 가져왔다.

10월의 할로윈 이후 팔코네가 이끄는 마피아 패밀리 및 관련자들이 살해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11월 추수감사절, 12월 크리스마스, 1월 새해 전야, 2월 밸런타인데이 등 명절만 골라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범인은 일명 '홀리데이'라 불린다. <배트맨 : 롱 할로윈>은 '홀리데이'를 추적하는 가운데, 배트맨과 힘을 합쳐 고담시의 범죄에 맞서던 검사 하비 덴트가 악당 투 페이스로 거듭나는 내용을 다룬다. 무엇보다 <배트맨 : 롱 할로윈>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직접 <다크 나이트> 스토리에 반영했다고 인정한 작품이다. 2권 권두에는 감독 자신이 <배트맨 : 롱 할로윈>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고백하는 짧은 인터뷰가 실려 있기도 하다.

▲ 영화 <다크 나이트> 중 카마인 '로마인' 팔코네.

▲ <배트맨 : 노 맨스 랜드> ⓒDC
비록 스토리 작가가 프랭크 밀러가 아니라 제프 로브이기는 하지만, 제프 로브 역시 <배트맨 : 이어 원>에서 프랭크 밀러가 마련한 여러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배트맨 : 롱 할로윈>을 구성했다. 가령 프랭크 밀러가 <배트맨 : 이어 원>에서 처음으로 등장시킨 카마인 '로마인' 팔코네는 캣우먼이 얼굴에 남겼던 상처의 흉터가 그대로 남은 채 <배트맨 : 롱 할로윈>에 등장하여 배트맨(탐정), 제임스 고든(경찰서장), 하비 덴트(검사장)라는 삼각 동맹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하비 덴트가 내부자의 배신으로 인해 투 페이스로 거듭난다는 설정은, 지엽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거의 동일하게 그려진다.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경우, 이야기의 큰 틀을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은 두 작품 <배트맨 : 나이트폴>(Batman : Knightfall, 1994), <배트맨 : 노 맨스 랜드>(Batman : No Man's Land, 1999)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다. 개봉을 앞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대해서는 악당 베인에 대한 언급과 함께 차후에 더 자세히 다뤄보기로 한다.

배트맨의 숙적 1. "범죄의 광대 왕자" 조커

아캄 어사일럼(Arkham Asylum)이라 불리는 정신병원에 수시로 수감되는 배트맨의 숙적들은, DC 코믹스에 등장하는 악당들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갖는다. 우선 배트맨처럼 이들 역시 초능력을 갖춘 초인이 아닌 보통의 인간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초능력보다 더 위험한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다. 가장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인 악당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개봉한 배트맨 영화들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배트맨 최대의 숙적 조커는 모던 배트맨 시대가 열리고 처음 등장한 영화 <배트맨>(1989)에도 모습을 드러냈으며, 지난 글(☞바로 가기 : 배트맨, 원래는 냉혹한 살인자였다!)에서도 언급했듯 1940년 출간된 <배트맨> 1호에 첫 등장하기도 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 영화 <웃는 남자>(1928)
배트맨이 무성영화 <박쥐>(The Bat, 1926)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조커 역시 무성영화 <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s, 1928)에서 모티프를 얻어 탄생했다. 영화 <웃는 남자>는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 <웃는 남자>(이형식 옮김, 열린책들 펴냄)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17세기 영국, 제임스 2세는 반란을 일으킨 귀족을 처형시키고 그 아들에게는 '어리석은 짓을 한 아버지를 영원히 비웃도록' 입을 찢어 지울 수 없는 미소를 안겨준다. 섬뜩한 미소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비운의 남자 그윈플레인의 모습은 배트맨의 악당 조커로 거듭나게 된다.

조커의 모티프가 된 그윈플레인은 아버지의 반란 때문에 입이 찢겨 웃는 남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커는 어떻게 그 살인 미소를 얻게 되었을까? 1940년에 훌쩍 나타난 조커가 녹색의 머리카락과 미소를 얻게 된 사연은 1951년 <디텍티브 코믹스> 168호에 드러난다. 빨간 복면을 둘러쓴 범죄자 레드 후드는 화학 공장에서 물건을 훔치던 중 배트맨에게 발각되고, 배트맨을 피해 도망치다가 화학 약품 속에 빠져 얼굴 근육이 웃는 모습으로 굳어버린 다음 오늘날 조커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레드 후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영화 <배트맨>(1989)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 역시 화학 약품 속에 빠지면서 생명력을 얻는다. 대신 영화에서는 조커가 되기 전의 조커에 대해 분명히 밝힌다.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살해했던 잭 네이피어가 이후 배트맨과 화학 공장에서 대치하다가 화학 약품에 빠져 조커로 거듭난다는 것. 이 설정은 오직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에만 해당되는 설정으로, 원조 만화 배트맨의 일부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배트맨 : 킬링 조크>(앨런 무어 지음, 브라이언 볼런드 그림, 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레드 후드 아래 진짜 조커의 모습을 제시한 작품은 1988년 작 <배트맨 : 킬링 조크>(앨런 무어 지음, 브라이언 볼런드 그림, 박중서 옮김, 세미콜론 펴냄)다. 걸작 그래픽노블 <왓치맨>과 <브이 포 벤데타>의 스토리 작가로 잘 알려진 앨런 무어가 스토리를 담당한 <배트맨 : 킬링 조크>에서, 조커는 제임스 고든의 딸이자 배트걸로 활약하던 바버라 고든을 총으로 쏘아 하반신 마비 상태로 만든다. 그는 코미디언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근무하던 화학 공장까지 그만두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무명 코미디언(작중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다)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돈을 주겠다는 절도단의 공갈 협박에 넘어가 레드 후드 복면을 쓰고 자신이 근무하던 공장 문을 열어주게 된다. 여기서 레드 후드의 정체가 절도단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애초에 레드 후드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절도단원들이 익명성을 보장받기 위해 돌아가면서 썼던 가면이었다.

▲ 조커의 탄생. (<배트맨 : 킬링 조크> 중).

그러나 (후에 조커가 되는) 무명 코미디언은 불운했다. 마침 그가 붉은 가면을 뒤집어썼을 때 배트맨이 등장한 것이다. 배트맨에게 잡히지 않으려 도망치던 코미디언은 결국 화학 폐기물이 흐르는 강물로 뛰어든다. 가면을 벗고 난 뒤 그는 머리카락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피부는 새하얗게 탈색되었으며 길게 찢어진 입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커다란 웃음을 터트린다. 앨런 무어에 의해 탄생 배경이 자세하게 제시된 조커는 그가 가장 잘 하는 일, 배트맨과 배트맨 주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영화 <배트맨>(1989)에서 조커는 배트맨에게 살해당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에서 조커의 최후는 배트맨에게 제압되어 아캄 수용소에 수감되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조커가 저지른 범죄들이 너무나 극악하여 살인을 꺼리는 배트맨조차 조커를 죽이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조커는 자기처럼 끔찍한 미소를 지은 채 사망에 이르게 되는 독을 예사로 사용하는 살인자이자, 바버라 고든을 총으로 쏴서 하반신 불수로 만들고(<배트맨 : 킬링 조크), 2대 로빈인 제이슨 토드를 살해하기도 했으니(<배트맨 : 패밀리의 죽음>) 배트맨이 살의를 느낀다 한들 이상하지 않다.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배트맨은 결국 조커를 살해한다. <배트맨 : 허쉬>에서는 조커를 거의 죽일 뻔 했으나 제임스 고든의 간곡한 만류로 인해 손을 거둔다.

배트맨과 단 둘이 주먹다짐을 하다가 결국 제압되는 것이 조커의 운명이지만, 스토리 작가의 기획과 개성에 따라 조커는 대등하게 싸우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도 한다. 배트맨 역시 작가에 따라 분노에 이성을 잃고 조커를 공격하거나 조커에게 농락당하기도 하며, 반대로 조커를 농락하기도 한다. 조커가 범죄를 저지르고 배트맨을 곤경에 빠트리지만 결국 배트맨이 승리하는 내용은 여러 그래픽노블뿐 아니라 영화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에서도 반복되지만, 각 작품에 따라 둘의 대결 구도는 미묘하게 달라져 결코 식상하지 않다.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에서 이죽거리는 조커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배트맨과, 앨런 무어의 <킬링 조크>에서 두들겨 맞고 자포자기한 조커에게 갱생을 권유하는 배트맨은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겹쳐진다. 물론 조커는 그 와중에도 배트맨에게 '죽이는 농담(killing joke)' 하나를 건네고, 좀처럼 웃지 않는 배트맨도 조커의 농담에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앨런 무어가 제시하는 <킬링 조크>의 엔딩은, 배트맨과 조커의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악연을 가장 잘 압축한 명장면이다.

▲ <배트맨 : 킬링 조크> 마지막 장면.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킬링 조크>에 묘사된 조커의 탄생담은 <킬링 조크>에 국한된 이야기이니, 이를 조커의 '공식 탄생담'으로 못 박으면 곤란하다. 또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조커의 탄생담이 제시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조커를 다룰 그 어떤 작가나 감독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사실은, 조커가 배트맨의 가장 큰 숙적이라는 점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을 향해 조커가 날린 대사들은 1940년부터 2008년까지 두 인물이 싸우며 쌓아온 관계를 압축한 듯하다. 조커는 왜 자신을 죽이려 드느냐고 묻는 배트맨의 질문을 강하게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난 너를 죽이기 싫어! 내가 너 없이 뭘 하겠어? 돌아가서 마약상이나 칼로 찌를까? 아냐. 너… 네가 나를 완성시켜(You… you… complet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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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커>(브라이언 아자렐로·리 베르메호 지음,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또한 조커는 추락하던 도중 배트맨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는 "너는 그 부적절한 너만의 정의감 때문에 나를 죽이지 않겠지. 나도 널 안 죽일 거야. 왜냐면 넌 죽이기에 너무 재미있거든. 내 생각에 우리 둘은 영원히 이 짓을 할 운명인 것 같은데(I think you and I are destined to do this forever)"라고 말한다. 배트맨을 향한 사랑 고백으로 들리는 대사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기존의 조커 상(像)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조커 상을 정립했다. 우선 외모 면에서 기존의 조커들이 화학 약품에 빠져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깔이 변했다는 설정을 버리고 '분장'으로 대체했다. 살인 미소 역시 화학 약품이 아니라 무성 영화 <웃는 남자>를 연상시키는 외과적 손상으로 인한 것이다. 기존 조커가 손에 감전 장치나 독침 장치를 설치하고 악수를 건네는 광대 같은 쇼맨십에 집착하는 화려한 악당이었다면, 고(故)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연필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선보이는 '갱스터' 같은 현실적인 악당이다. 2008년 출간된 <조커>(브라이언 아자렐로·리 베르메호 지음,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는 <다크 나이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과 히스 레저가 창조한 그 조커를 주인공으로 삼은 그래픽노블이다. 이 작품에서 배트맨은 겨우 대여섯 페이지 밖에 등장하지 않으며, 독자는 새로운 조커가 선보이는 오랜 광기를 만끽할 수 있다. 조커뿐 아니라 투 페이스, 펭귄, 리들러 등 다른 배트맨 캐릭터들도 현실에 있음직한 갱스터들로 조정된 것이 흥미롭다.

조커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TV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 조커의 목소리를 단골로 맡은 성우는 영화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를 연기했던 배우 마크 해밀이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TV 애니메이션의 조커는 모두 마크 해밀이 맡아왔다. 마크 해밀이 연기한 조커의 웃음소리는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다. (☞)

마크 해밀은 2010년 게임 <아캄 시티>(Batman:_Arkham_City)를 마지막으로 조커 목소리 연기에서 은퇴할 뜻을 내비쳤으나, <배트맨 : 킬링 조크>의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이 들려오자 다시 조커의 목소리를 맡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참고로 한국에서 방영한 배트맨 애니메이션에서 조커의 목소리는 영화 <도가니>에서 장애 학생들을 성추행한 쌍둥이 교장 형제를 연기한 성우 겸 배우 장광이 맡았다. (☞바로 가기 : )

▲ 조커 목소리를 연기한 마크 해밀.

조커 외의 다른 악당들과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로 넘기고, 해외 팬덤에서 회자중인 루머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조셉 고든 레빗 포스터.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조커가 등장하느냐가 전 세계의 배트맨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 거리다. 전편 <다크 나이트>에서 추락사할 뻔 했던 조커는, 배트맨에 의해 고층 건물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 경찰에게 발견된다. 이후의 행적은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 배트맨 시리즈의 관성대로 조커는 아캄 어사일럼에 갇혔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로부터 8년 뒤를 다루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이니, 혹시 조커가 탈출하여 출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정보로는 딱히 조커가 등장한다는 낌새가 없다.

다만 히스 레저를 꽤 닮은 조셉 고든 레빗이 존 블레이크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을 두고 일부 팬들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조커 등장과 관련한 농담 같은 루머를 퍼트리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존 블레이크는 고담시 경찰국장 고든의 명령에 따라 특수임무를 맡은 경찰 요원이라고 한다.

헌데 존(John)은 조니(Johnny)라는 애칭으로도 부를 수 있지 않은가. 조니 블레이크…. 연재 첫 번째 글 '배트맨, 원래는 냉혹한 살인자였다!'(☞바로 가기) 마지막을 보라. 조커에게 성적표를 빼앗겼던 소년의 이름이 조니 블레이크였다.


조니 블레이크(Johnny Blake)라는 이름에서 앞의 두 글자 'Jo'과 뒤의 두 글자 'ke'를 합치면 'Joke'가 된다. (JohnnyBlake) 이를 두고 해외의 배트맨 팬들 사이에서는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하는 조니 블레이크가 차기 조커가 된다는 추측이 떠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다크 나이트 라이즈> 관련 정보를 볼 때, 이 추측은 조커에 대한 그리움이 반영된 루머 혹은 그 그리움을 미끼로 사람들을 낚으려는 낚시로 보인다. 비록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에서는 더 이상 조커를 볼 수 없겠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다른 감독이 이어받을 배트맨 시리즈에서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하는 조커를 볼 수 있게 될지도.

▲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한 존 블레이크(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중).
▲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영화 <다크 나이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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