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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잠언' 아닌 '폭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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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잠언' 아닌 '폭탄'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월리스의 <이것은 물이다>
<이것은 물이다>(김재희 옮김, 나무생각 펴냄)를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제 졸업식이나 입학식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는 그것과 비슷하다.

어떤 경우에는 빨리 끝났고, 어떤 경우 없는 교장은 학생이 일사병에 쓰러지든지 말든지 자기 말을 계속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끝으로, 한마디로……계속해서 이어지는 엄청나게 무섭고 진지하며 교훈이 주렁주렁 매달린 말씀들 앞에, 우리는 그저 차렷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그분들의 말씀 중에, 지금 우리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문장이 단 하나라도 존재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중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이 훈화 중에 '에디슨'을 '에디손'이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풋, 웃음을 터뜨린 한 친구가 마침 옆에 있던 선생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장면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 나는 깊이 깨달았다. 어른이 안 웃기려고 하는 말(짓)에는 절대 웃지 말자. 그것은 농담이 아니다.

<이것은 물이다>는 실제 2005년 캐니언 대학 졸업식에서,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가 졸업생을 상대로 한 강연이다. 제목에서부터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라는 고금을 막론한 절대 진리가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하는 미국 청년들에게는 이 간단한 명제가 신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데이비드의 강연은 부분 부분은 농담이 섞여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농담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나는 함부로 웃으면 안 되는 거였다. 헐렁한 편집과 디폴트 세팅(default setting) 등의 낯선 개념어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자로서 진지함을 고수했다. 수능 시험 이후로 영어에 손을 놓은 내가 영미권 대학의 졸업생이 된 기분으로 책장을 넘겨 나가기도 했다. 차렷 자세를 한 채로 말이다.

강연은 물속에서 만난 어린 물고기의 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깐 동안 말없이 헤엄쳐 가다가 결국 물고기 한 마리가 옆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


▲ <이것은 물이다>(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나무생각 펴냄). ⓒ나무생각
하긴 평생을 물에서 살다가 물 밖으로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을 내놓고 회나 구이가 될 물고기에게 '물'은 생활이자 삶의 방법이지 지식의 한 종류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인문학 전공자일 대학 졸업생 앞에서, 강연자는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며 그저 생각하는 방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인문학 전공자에게 인문학은 물고기가 평생 몸에 두르고 살아가는 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친절한 교장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생각할 거리 몇 가지를 더 던져준다. 알래스카의 외딴 황무지에 있는 한 술집에서 두 사내가 벌이는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화가 그것이다.

강연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졸업생(또는 독자들)이 '사고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대학 졸업생(또는 독자들)은 디폴트 세팅이 완료되어 있다. 그가 말하는 디폴트 세팅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태생적인,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이러한 경향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성향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우리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깊은 속마음에 똑같이 갖고 있는 경향이기도 합니다.

강연자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강연자는 말한다. 우리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은 절박하고 실존하는 현실이라고. 그리고 남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해지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고 있었을 영미권 대학 졸업생 청년 동지들을 생각하니 풋, 웃음이 나오려고도 했다.

그들의 입장은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나의 실소는 나에게 절박하고 실존하는 현실이었다. 중학교에서처럼 누군가 나를 때릴 염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웃음을 참았다. 강연자의 말처럼 "자기 자신의 머릿속에서 계속되는 독배의 최면처럼 홀려 있는 대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 깊게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은 것이다.

꽤 자세하고 실용적인 예시로 책은 자기 자신의 독백의 최면을 마무리하고 있다. 퇴근 후에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면서 느끼는 피곤함과 지질함, 짜증, 지겨움 등이 그것이다. 실제 우리는 그런 삶에서 부자유스러움을 느낀다. 시스템에 압도되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것만 같다.

휴가를 떠나도 결국 돌아와야 하고, 지독한 숙취에 시달려도 회사에 나가야 한다. 마트 주차장에 자리는 없고, 다 큰 아이를 태운 카트를 제멋대로 몰아대는 버릇없는 이웃은 도처에 널렸다. 강연자가 내미는 슈퍼마켓의 일화는 도시에 사는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사안이다. 강연자는 부정적 감정의 공모자들에게 이런 해법을 제시한다.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소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인문학을 배운 모두가 '이것은 물'임을 자각하고 위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나아질까. 우리는 강연자의 말대로 '생존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사람 좋고 책 좀 읽은 중산층 남자가 되어 슈퍼마켓에서 미소를 짓고, 이웃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잔디를 반듯하게 깎고, 털이 잘 정리된 개를 키우며, 가끔 마을 사람들과 바비큐 파티를 벌여 손수 소시지를 굽는 사람 말이다. 그럼 사람의 '죽기 전의 삶, 현세에 관한 것'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하물며 슈퍼마켓에서 짜증 좀 부린다고 그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만약 그가 한국으로 이민을 온다면 도심 곳곳 가까이에 자리한 대형 할인점에 교통 정체 없이 입장해, 과도하게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주차를 마치고, 에어컨이 빵빵하고 조도가 높은 식품 코너에서 저녁거리를 산 다음에, 하루 종일 서서 바코드를 찍는 아주머니에게 물건을 맡기고 포인트 적립까지 마친 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자기 머리를 총으로 쏘아버리고 싶어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진실'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사물에게 진실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삶이란 아름답다. 그렇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CNN 뉴스에서 타인에 불과한 사람들이 이라크에 미사일을 퍼붓는 장면을 관용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관타나모에서 일어난 고문 행각의 옳고 그름을 정서적 안정 속에서 판단할 수 있다. 식용으로 쓰이는 소에게 먹이는 사료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어린이가 먹는 식사보다 값비싸다는 사실을 신문 사설을 통해 인지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일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현세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했든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거의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정녕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단지 자기중심적은 디폴트 세팅 때문인가? 혹시 우리가 사는 사회 전체가 디폴트 세팅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스승이 전해주는 삶의 지혜로 책의 내용은 유효하다. 짧은 연설문이나 선포문으로도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오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 이것은 물이다, 라고 말할 때, 누군가는 이것은 물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고, 혹은 제발 물을 주세요,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의 저자인 데이비트 포스터 월리스만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국인이 있다. 시오도르 카진스키.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버클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한 그는 대학과 항공사를 폭탄으로 공격한다는 뜻의 '유나바머'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현대 문명이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으며 그런 문명을 인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테러를 중단한다는 조건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의 논문을 게재해 줄 것을 요구했다. 논란 끝에 그의 논문은 결국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신문에 전문이 실렸다. 동생의 제보로 체포된 그는 현재 종신형으로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폭탄을 터뜨린 유나바머,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매끈한 강연을 한 데이비드. 삶을 사는 방법은 그 사이에서 각자가 선택할 것이다. 유나바머에게서 매력을 발견한 사람은 데이비드의 책은 다소 매력적이지 못할 것이다.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마음속 폭탄이 부글부글 탄 사람이라면, <이것의 물이다>를 피하라. 사실은 알고 있었던 인생의 진리와 아포리즘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물이다>를 만나라. 나의 입장은 아직 시끄러운 편에 속하는 것 같다. 디폴트 세팅은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또한 마찬가지니까.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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