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의 뇌물 수수를 비난하면서 뒤로는 뇌물을 받다가 들켰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일반인들은 그가 실제로는 부도덕한 사람임에도 정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인 커즈번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그러한 위선적인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의) 행동을 유발하는 모듈과 (타인들에게) 도덕적인 규칙에 동의하라고 촉구하는 모듈은 서로 다르다. 비난과 양심이 제각기 다른 모듈에 의해 야기되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종종 상충된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이런 것을 모두 규합해 보면 인간 마음의 모듈 설계가 위선을 보장한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다시 설명하자면, 사람의 뇌에는 '다른 정치인의 뇌물 수수를 비난하는 모듈' 그리고 '자기가 뇌물을 받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모듈'이 각각 존재하므로 사람들은 타인의 뇌물 수수를 비난하면서도 자기는 뇌물을 받는 도덕적인 비일관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주장이 사실일까?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떠받치는 핵심 개념인 '모듈'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음에 관한 진화 심리학적 모델
▲ <왜 모든 사람은 '나만 빼고' 위선자인가>(로버트 커즈번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을유문화사 |
"이 기능적 접근 방법에서는 매우 유연한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수많은 서브 루틴으로 구성되었듯이 인간의 마음이 특정 목적을 위해 설계된 수많은 서브 루틴(모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를 인정한다."
커즈번은 모듈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마음도 프로그램과 서브 루틴을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 꾸러미다'라고 선언한다. 이런 견해에 따르자면 결국 마음이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잔뜩 깔려있는 컴퓨터와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워드와 엑셀이라는 모듈이 서로 소통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워드가 타인의 뇌물 수수를 비난하는 일을 맡고 있고 엑셀은 자기가 뇌물을 받는 행동을 관장한다면, 워드와 엑셀의 소통 부재는 사람으로 하여금 타인의 뇌물 수수를 비난하는 동시에 자기는 뇌물을 받는 행동을 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위선자가 되는 주요한 이유가 마음이 다양한 모듈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들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아서라는 진화 심리학의 주장은 사실일까?
진화 심리학의 대전제, 과연 옳은가?
이 책의 문제점은 무척이나 많지만 지면 관계상 그것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으므로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다. 우선 진화 심리학자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진화 심리학의 대전제가 오류임을 지적하고 싶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진화의 법칙이 단지 자연계만이 아니라 인류의 사회 역사까지 지배한다고 믿으며, 그런 맥락에서 현대인의 마음이 진화의 결과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커즈번 역시 사람의 마음(뇌)이 '자연 선택이라는 냉혹한 과정에 의해 설계'되었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특정 종의 일원들은 선조들이 직면했던 적응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인간이나 다른 종 모두에 해당된다. (…) 진화가 뇌를 구성했다는 개념은 특별히 논쟁적이지 않다."
그러나 진화론적 고찰 방법은 생물학적 운동보다 높은 형태의 운동을 하는 사회적 현상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에 대한 연구에는 적용될 수 없다. 물론 사람은 생명유기체로서는 진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사람이 어떻게 가장 발전된 유기체를 가질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경우에는 진화론적 고찰 방법을 적용하여 진화 발전의 견지에서 생명 물질 일반과 대비해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연구에서 진화론적 고찰 방법의 의의는 여기에 국한된다. 왜냐하면 사회 역사는 진화의 법칙이 아닌 사회 역사적 법칙들에 따라 발생, 발전하며 인간 심리는 기본적으로 그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꿀벌이 더 많은 꿀을 얻으려고 스스로 꽃을 키우지는 못하듯이 진화의 법칙을 따르는 존재는 단지 세계(혹은 환경)에 자연 발생적인 적응만 할 뿐 세계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 변혁하지 못한다. 반면에 군사 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싫으면 민주화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식으로, 진화의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세계를 개조, 변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진화의 법칙으로 자연계는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 역사 나아가 사회 역사적 산물인 사람의 마음 역시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진화 심리학의 주장처럼 사람의 마음이 단지 세계에 적응만 하도록 설계되었다면 인류는 세상을 바꿀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며 바꾸지도 못할 것이다. 이렇게 인간 심리가 진화의 결과라는 진화 심리학의 대전제 자체가 오류이므로 그것에 기초한 논의들 역시 오류이다.
모듈 환원주의
이 책에서 커즈번이 언급하고 있는 모듈들만 해도 그 종류가 너무나도 많고 다양하다. 그 중에는 '미트볼-찾기 모듈', '지하철 파업에 관한 정보를 처리하는 모듈'처럼 아주 구체적인 기능만을 수행하는 모듈도 있고 '정보 찾기 모듈', '언어와 행동을 야기하는 모듈', '도덕성 모듈'처럼 매우 광범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모듈도 있다. 이 외에도 '언론 담당 모듈'(타인들에게 자기를 홍보하는 일을 담당하는 모듈), '편견이 있는 정보를 습득하도록 계획된 모듈', '긍정적인 착각을 생성하는 모듈', '고통을 피하도록 설계된 모듈', '참을성 없는 모듈' 등도 있다.
이런 식으로 모듈을 마구잡이로 만들어낼 경우, 앞에다 그럴싸한 설명만 붙이면 무엇이든 모듈로 둔갑시킬 수 있고 따라서 모듈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란 없게 된다. 'A라는 행동은 A 모듈의 결과이고 B라는 행동은 B 모듈의 결과' 혹은 '학생들이 입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공부 모듈의 결과이고 한국인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좌파 모듈의 결과'라는 식의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국인들의 안철수 신드롬까지 '안철수 모듈' 때문이라고 우기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곰을 피하는 것과 같은 단순 행동은 한 두 개의 모듈이 담당하지만 복잡한 행동은 다양한 모듈이 함께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허탈하게도 그런 복잡한 행동에 관여하는 다양한 모듈이 무엇 무엇이며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듈이 역동적으로 활성화 혹은 비활성화되는 것은 나이와 현재 상태 및 처지 등에 따라 달라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보인다. 모듈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이 교향곡은 과연 어떻게 조정되는 것일까? 간단히 대답하자면,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알지 못한다."
이런 고백은 결국 그 개념 정의에 걸맞지 않게 과도하게 남용되고 있는 모듈 개념으로는 인간의 고차적이고 복잡한 행동을 올바로 설명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 고전적 행동주의는 사람이 '자극(Stimulus)'과 '반응(Response)' 간의 연합을 학습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커즈번은 이러한 'S-R 연합'의 결과를 '모듈'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므로 마음의 모듈성 이론이란 고전적 행동주의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진화 심리학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진화의 산물이 아니며 컴퓨터와 같은 단순한 기계도 아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동물의 왕국에서 빠져나와 사람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오늘날 상당수의 사람들이 위선적인 것은 기본적으로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만 성공하고 출세할 수 있는 잘못된 사회와 관련된 문제이지 모듈 사이의 소통 부재가 낳은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커즈번은 마음속에 어떤 인격체가 존재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일부 심리학 이론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역시 모듈을 뇌 속에 있는 수많은 난장이들 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모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서로 간에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을 하고 판단을 내리며 사람의 행동까지 좌우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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