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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 남녀의 동상이몽? 그 다음 단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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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 남녀의 동상이몽? 그 다음 단계는…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⑥·마지막
사방에 떠도는 그녀의 시선

토마시와 테레자의 이야기에 너무 길게 머물렀다. 이제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커플인 프란츠와 사비나에게 눈을 돌려 보자. 쿤데라의 흥미로운 통찰을 빌리면, 사람들은 그가 의식하는 시선의 종류에 따라 네 범주로 나뉜다.

첫 번째 범주 : 익명의 무수한 시선, 대중의 시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두 번째 범주 : 다수의 친숙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파티나 만찬을 열어 댄다. 이들은 주변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산다.

세 번째 범주 :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쿤데라는 우리의 주인공 토마시와 테레자를 이 범주에 넣었다. 그리고 이 부류의 사람들이 첫 번째 부류만큼이나 위험천만하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기면 그들의 무대는 칠흑 속에 빠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범주 :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몽상가들이며, 매우 드물다. 쿤데라에 따르면, 프란츠가 이에 속한다. 프란츠는 결별 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비나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마침내 죽음까지 맞이한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프란츠는 캄보디아 국경에서 행진에 가담하라는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한다. 당시 옆에 있었던 연인, "안경 낀 여자 친구"를 걱정시키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후회한다. 그가 "천상 여인"으로 규정한 사비나가 그의 동참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비나의 조국 체코는 소련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점령당했고, 캄보디아가 체코와 닮은꼴이므로, 사비나가 캄보디아의 해방을 원할 것이라고, 프란츠는 믿었다.(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사비나는 조국의 현실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조국과 자신이 연결되는 것에 극구 저항했다.)

그래서 그는 캄보디아 국경으로 간다. "그녀의 시선이 오랫동안 그에게 고정되었다고 느"(440쪽)끼면서.

사비나의 시선은 심지어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대장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프란츠는 방콕으로 돌아온다. 그는 밤거리에서 불량배들을 만나 위험에 처한다.

그때 프란츠는 항상 그의 힘을 사랑했던 사비나를 떠올리고, 그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녀에게 강한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불량배들을 공격한다. 어리석은 공격의 결과, 프란츠는 목숨을 잃는다.

우리는 얼마나 나만의 고유한 취향을 내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가. 실로 허다하게, 타인의 취향은 내 결정의 동력이 된다. 타인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하고 결정한다.

특히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그녀의 시선은 도처에 편재한다. 일상의 하찮은 선택에도, 말 한 마디와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모든 결단의 심연에는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한 처연한 의지가 웅크리고 있다.

어떤 여인은 잠자리에 들면서도 화장을 지우지 못한다. 그가 그녀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상상의 시선 때문에. 그녀는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진짜 연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연인이 아닌 그, 헤어졌거나 연애해 본 적조차 없는 그, 혼자서 사모하는 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난감한 경우도 있다. 프란츠가 바로 그렇다.

부재하는 연인의 취향은 그의 가치관을 떠받드는 절대적인 지렛대가 된다. 그의 행위의 적부를 심사하는 최종 심급이다. 상상된 연인의 취향만이 성경, 현자의 지침서, 윤리의 원천이다. 그러나 그 취향은 짐작된 것으로, 종종 사실과 다르다. 오해에 기반을 둔 윤리로 그는 일평생 스스로를 구속한다.

동상이몽에서 동상동몽으로

'히치하이킹 놀이'(☞관련 기사 : 사랑에 빠진 그녀의 착각 "내 남자는 옛 애인을 못 잊어!")에서도 보았듯, 남녀관계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침대이다. 너의 마음은 내가 상상한 마음이며, 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열정이 넘칠수록 당연히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한 '내' 생각이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즉 넘쳐나는 것은 '그'가 발송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내' 상념이다. 그에 대한 나의 상(相)만 많아진다.

그의 본색은 투명하게 내게 다가올 수 없다. 내 장벽이 두껍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그 장벽은 그에 대한 넘쳐나는 사랑으로 축조된 것이다. 이것이 열정이 넘칠수록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 판타지에 빠지기 쉬운 이유다. 사랑한다고 믿는 남녀가 그렇게나 자주 서로의 마음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나는 영원히 네가 될 수 없기에 동상이몽은 필연적이다. 이 심연에 대해 쿤데라만큼 예민하게 인지하는 작가도 드물다.

프란츠와 사비나 간 "이해받지 못한 말들"의 긴 목록을 상기해 보라. 그것은 남녀관계에서 빈번하게 출현하는 동상이몽의 상세한 사례들이다. 흥미로운 이 목록들 중 한 가지 사례만 보겠다.

"행렬"은 프란츠에게 고립되고 비현실적인 연구실 속 삶에서 일탈을 상기시키는 단어이다. 즉 '타인들과 함께 있으며 현실에 참여한다'는 뿌듯한 자의식을 주는 말이다. 그러나 사비나는 "행렬"을 각자의 개별성을 말살하고 획일화하는 폭력으로 인지한다.

심지어 프란츠-사비나 커플의 마지막 만남도 동상이몽의 법칙을 따른다. 프란츠는 아내와 이혼하겠다고 자랑스럽게 사비나에게 선언한다. 프란츠는 이것으로 사비나가 만족할 것이며 둘의 관계는 공고해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사비나는 이 때문에 프란츠를 떠나겠다고 결단한다. 그녀는 구속을 싫어하고 배신을 즐기기 때문이다.

프란츠는 여러 모로 아이러니를 구현한다. 그는 태국에서 불량배들에게 습격당하고 다 죽게 되어서 병원에 입원한다. 아내 마리클로드가 곁을 지킨다. 그가 다 죽게 된 것은 사비나 때문이었고, 그가 원한 여자는 안경 낀 여학생이었다. 그는 마리클로드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증오에 찬 눈길로 마리클로드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아 버린다. 그녀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기에 외면의 유일한 방법으로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하지만 증오에 찬 눈길은 마리클로드에게 기나 긴 외도에 대한 반성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여 프란츠의 비문(碑文)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방황 끝의 귀환"이다. 프란츠의 진심과 정반대의 사실이 그의 일평생을 규정한다.

토마시와 테레자의 경우에도 동상이몽은 거의 관계의 핵처럼 출현한다. 떠난 테레자를 찾아 프라하로 돌아온 날 밤, 토마시는 고작 우연에 불과한 사랑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며 치명적인 절망에 빠져든다. 그때 테레자는 단지 행복할 뿐이었다.

사랑의 계기인 우연도 두 사람에게 각각 상반된 의미를 띤다. 앞에서 보았듯, 우연은 토마시에게 사랑의 보잘 것 없음을 의미하지만, 테레자에게는 운명으로 이끄는 신의 손길이다.

쿤데라는 아이러니의 대가이다. 그는 남녀 간 행복한 화합의 순간보다는 기묘하게 엇갈리는 미세한 균열 지점을 더욱 능숙하게 그린다. 그의 소설 자체가 동상이몽의 기나긴 사례집이다.

그러나 그는 동상동몽(同床同夢)의 기적이 존재함을 놓치지 않는다. 단 한 번, 토마시와 테레자는 다 늙어서 죽기 전에 같은 침대에서 같은 꿈을 꾼다. 말 그대로 '같은 꿈'이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함께 잠자리에 들어 있다. 토마시는 길고 긴 상념 끝에 테레자를 깊이 사랑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때 그녀는 얕게 잠들어 있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순간 눈을 뜨고 묻는다.

"뭘 봐?" 그는 그녀를 깨우지 말고 다시 재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의 생각 속에 새로운 꿈의 씨앗을 낳게 할 만한 단어로 대답하려고 애썼다.
"별을 보고 있어."
"거짓말하지 마. 당신은 별을 보고 있지 않아. 당신은 땅바닥을 보고 있어."
"비행기에 타고 있으니 별이 우리 아래에 있지."
"아, 그런가?" 테레자는 토마시의 손을 더욱 힘껏 쥐고는 다시 잠들었다. 토마시는 지금 테레자가 아주 높게 별 위로 나는 비행기의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385쪽)


무얼 보느냐는 테레자의 질문에 토마시는 별을 본다고 답했다. 깨어 있는 그는 그녀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알 리 없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그와 함께 비행기에 타고 별 위로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느낌만으로 토마시는 테레자의 꿈을 공유했다. 깨어 있으면서도 같은 꿈을 꾸며 꿈속의 대화를 나눈 셈이다.

사랑이 깊어지면 암호들이 누적된다. 오랜 연인은 시정의 언어 관습을 이탈한다. 무의식으로도 대화하고, 정말로 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 그가 '아' 라고 했을 뿐인데도 그녀는 그 뒷말을 알아챈다. 그녀가 뜬금없이 '거기서 그랬다고' 이렇게만 말해도 그는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구구절절, 매우 구체적으로 알아듣는다.

작가가 주인공들의 사랑을 부각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 있다. 그 중 쿤데라는 커플이 같은 침대에서 같은 꿈을 꾸는 일화를 선택했다. 동상이몽이라는 속담이 서양에도 있을까. 그래서 동상동몽을 궁극적인 이상향으로 상상했을까.

동상동몽. 좋은 경지다. 그러나 토마시와 테레자가 얼마나 험난한 고비를 넘고 넘어 이 경지에 이르렀는지 상기해 보라. 전투로 만신창이가 되고 상처에 눌러앉은 피딱지가 수미산처럼 쌓여야 동상동몽할 수 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동상동몽은 상처투성이의 영광, 사랑의 전투로 지치고 고단한 이들에게 위로 차 주어지는 월계관인지도 모른다.

그대, 잘 싸워 왔으니 이제는 편히 쉬시라. 같은 꿈을 꾸는 침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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