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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단죄한 아테네 민주주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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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단죄한 아테네 민주주의의 힘! [2012 '올해의 책'] 베터니 휴즈의 <아테네의 변명>
'프레시안 books' 송년호(121호)는 '2012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2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터니 휴즈의 <아테네의 변명>(강경이 옮김, 옥당 펴냄)은 인문 교양서의 전범이라 할 만한 책이다. 마치 잘 만든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으면서도 인문서로서의 깊이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온 영국 BBC 방송의 제작을 지휘했던 역사학자의 저술임을 실감케 한다.

원제는 "독미나리 잔(The Hemlock Cup)"-책에서는 '독당근'으로 옮겼다-이지만 번역판 제목에서 시사하듯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독배'를 마셔야 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룬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차용한 것이지만 그것만 다룬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전부터 아테네 역사를 살피면서 그의 사형 배경과 민주주의의 의미 등 묵직한 주제를 흥미롭게 다뤘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가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을 나와 감옥으로 걸어가던 시간은 분명히 해가 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늦봄 황혼으로 물든 하늘 아래, 파르테논 신전과 아레오파고스 바위가 보였을 것이고 분홍빛 핏줄이 그어져 마치 화석화된 신의 두뇌처럼 보이는 아크로폴리스 바위도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 <아테네의 변명>(베터니 휴즈 지음, 강경이 옮김, 옥당 펴냄). ⓒ옥당
시간을 건너 뛰어 마치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가상 현실을 보듯, 기원전 399년 5월 소크라테스의 눈에 비쳤을 아테네를 보여준다. 여기엔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박물관의 유품들을 자유롭게 오가며 당대의 아테네를 손에 잡히듯 그려내는 서술 방식은 시공간을 오가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여느 책에서 만나기 힘든 아테네 문화사를 꼼꼼히 보여주는 것이 어지간한 역사책은 '저리 가라'다.

연 4만 건의 재판이 벌어진 '재판 천국' 아테네에서 배심원을 선정하는 방법이 좋은 예다. 청동 원반을 이용한 제비뽑기 기계 '클레로테리온'으로 매년 배심원 후보 6000명을 뽑아 재판 당일 2차 제비뽑기를 해 배심원을 선정했다. 뽑힌 배심원들은 다시 항아리에서 공을 골라 참석할 법정을 정했으니 정실이 끼어들 여지를 봉쇄하기 위한 탁월한 제도였다.

농부에서 귀족까지 참여한, 그토록 공정하게 선택된 배심원단은 왜, 훗날 세계 4대 성인으로 꼽히게 될 일흔 살의 철학자에게 사형을 선고했을까.

소크라테스 재판은 신을 모독한 불경죄라는 중대 사안이어서 500명의 배심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중 유죄라 판정한 배심원이 280명이었으니 30명만 더 소크라테스 편을 들었으면 무죄가 되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아테네 민중이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당시 아테네는 국가적으로 무척이나 고단한 시기였다. 기원전 415년 시도했던 시켈리아(오늘날의 시칠리아 섬) 원정은 4만 명의 병사 중 7000명만 살아남는 참패로 끝났다. 스파르타의 공격으로 은화 공급원을 잃어 민주정의 경제적 토대가 흔들렸다. 영웅이 필요한 시기였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무엇이 참인지 등을 묻는 '등에'같은 인물이 아니라.

지은이는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팽창하던 시절의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의 끝없는 질문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확신했으나 20년의 전쟁과 역병, 5년간의 내전에 시달린 아테네는 독단적이고 자기탐닉적인 소크라테스의 질문들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듯하다"고 정리한다.

그의 애제자로 시켈리아 참패의 주역이었던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에 투항하는 등 주변 사정도 불리했지만 재판에서 '오만'한 태도를 보인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배심원들의 분노를 산 듯하다. 당시 재판에선 피고인이 형량을 제안할 수 있었는데 소크라테스는 "내가 행한 모든 선을 인정하여 국가의 비용으로 내게 공짜 저녁을 영원히 제공하라. 나는 당연히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사형을 구형받은 피고인의 그런 제안에 배심원들이 들끓은 것은 당연하다.

또한 온갖 신을 찬양하던 아테네에서 다이모니온이란 자신의 '내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소크라테스의 평소 행동이 사람들의 의혹을 샀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지은이는 "악법도 법이다" "너 자신을 알라"를 넘어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파네스 등 다양한 동시대인들의 글을 인용해 소크라테스의 행적과 사상의 편린을 보여주는 덕에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의 범주를 넘어선다.

"누군가 여러분이 바르게 살지 않는다고 비판할 때, 그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 비판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에서) 이런 구절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중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은 '깨어 있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에 특히 눈길을 끈다.

여기에 "아테네 군중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들이 고상한 말로 군중의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군중이, 법정이, 전능한 민주주의가 누군가를 제거하고 싶다면 진실이 그들 편이든 아니든, 그들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는 지은이의 평가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한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70여 쪽에 이르는 주석, 연표, 참고 문헌, 찾아보기를 덧붙인 편집자의 수고가 더해진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라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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