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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박정희는 버리고 전태일을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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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는 버리고 전태일을 품어라!"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박근혜를 보는 열두 가지 시선
읽음과 행함은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게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고민을 깊게 만들어 주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유명인들의 '서재'에 대한 기사와 책이 쏟아지는 것처럼, 한 사람이 읽은 책의 목록은 분명 그 사람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가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설가 장정일도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김영사 펴냄)에 대한 독서 일기에서, 그 중요성 때문에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었는가를 유심히 봤다고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덮을 때까지 개운한 답을 얻지 못했는데, 이 대통령이 "틈나면 어디서나 책을 읽었고 사색에 잠겼다"고 쓰면서도 감질나게 도서명은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세 명의 전·현직 대통령의 독서 스타일을 분석한 지난 8월 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책 한 권을 잡고 음미하기보다는 속독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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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프레시안(최형락)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될 박근혜 당선인에게서는 '목록'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여름 트위터에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한성례 옮김, 부엔리브로 펴냄)와 함께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 <열국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최근 2년간은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를 읽은 책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세 책 모두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박 당선인의 독서 취향을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독서에 대한 정보는 과거로 시선을 돌려야 나온다.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 펴냄)에서 그는 육영재단 운영을 그만둔 뒤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 왕성하게 독서했다고 밝히면서 "법구경, 금강경 등 불교 경전과 성경", "동양 철학 관련 책들과 <정관정요>, <명심보감>" 그리고 오쇼 라즈니쉬 등을 언급했다.

2007년 한 수필 문예지에 실린 글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중국 근·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학자 펑유란의 <중국 철학사>를 들었다. 20대 초반 부모를 잃은 시기에 "일기를 쓰고 나를 돌아보며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던" 중 만난 책이라고 한다.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맥락이 조금은 읽힌다. 열쇳말은 제국의 정치와 동양 철학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다소 딱딱한 독서 취향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크고 깊은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볼 수도 있다. 독서와 함께 명상과 단전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린다는 언급과 관련하여, 동양 철학에 대한 관점이 학문적이고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명상이나 '힐링'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하는 데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앞으로 5년, 목록에는 무엇이 추가될까. 사재기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누구나 표식처럼 들고 다니는 필독서가 아니길 바랄뿐이다. '프레시안 books'는 열두 명의 독서가들에게 박근혜 당선인이 반드시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을 물었다. 이달 초 한 출판지가 출판인 180여 명에게 '차기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물은 결과, 한병철의 <피로 사회>(문학과지성사 펴냄)가 1위를 차지하여 우리 사회의 '피로 증후군'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후보들을 고려한 결과로, '박근혜 당선인'만을 위한 추천과는 다른 효과를 지닌다.


설문 과정에서 당선인이 확정되자 "책을 안 읽을 것 같다", "할 말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반응의 핵심은 박 당선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반영된다는 것이다. 또 당선인에 대한 향후의 기대 정도도 나타난다. 어떤 이는 "대통령 한 명의 성격이 우리 운명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응답에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목하라는 당부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성장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 및 대안적 가치에 대한 주문 등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다음의 결과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내는 추천서이자, '지금 우리에게 '박근혜 당선'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시각의 스캔본인 셈이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박근혜 당선인이 실제 이 목록을 눈여겨보기를, 나아가 독서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현실적 적용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2012년 송년호 머리기사로 싣는다.

편집부가 추천하는 책은 당선인에게 정치적 기회를 열어 준 중요한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다른' 이해들을 돕는 책, 이를테면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이학사 펴냄)이다. <편집부>


최소한의 원칙만이라도 지키자
- 존 로크의 <통치론>


박권일 / 계간 <자음과모음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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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치론>(존 로크 지음, 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 펴냄). ⓒ까치

최근에 나온 책보다는 고전이 좋겠다. <통치론>(강정인·문지영 옮김, 까치 펴냄)은 까치에서 나온 것이 번역이 잘 되어 있다. 만약 어렵다면 어린이용 만화도 있으니 그거라도 좋다. 이 책은 저자가 17세기 왕권신수설을 반박하기 위해 쓴 책으로, '자유주의'로 알려진 근대 정치사상의 교과서 격이다. 종교적, 시민적 자유라는 대의, 사회계약론 등 근대의 틀을 제창했고 현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책이기도 하다.

나는 최소주의적 관점에서 이 책을 골랐다. 통치자가 다스릴 때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그 법에 근거한 지배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신자유주의, 노동 문제 등 알아야 하고 신경 써야 할 문제들이 많긴 하지만, 그 전에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원칙들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란 제도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책의 215쪽에 중요한 한 문장이 나온다. "정부의 목적은 인류의 복지다." 박 당선인이 정부의 목적을 잘못 생각하지 않도록, 이 문장을 늘 상기해 주기를 바란다.

보수의 품격을 지켜라
- 필리프 라트의 <드골 평전>


김연철 / 인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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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골 평전>(필리프 라트 지음, 윤미연 옮김, 바움 펴냄). ⓒ바움
'보수의 품격'에 관한 책을 한 번 보길 바란다. 한국에서 보수란 '꼴통'이란 말과 연결될 정도로, 갖춰야 할 양식이나 상식,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국가를 위해 포용하고 통합할 줄 알았던,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한 인물도 많다. 프랑스 전 대통령 샤를 드골(1890~1970년)이 대표적일 것 같다. 그의 자서전이나 평전(필리프 라트 지음, 윤미연 옮김, 바움 펴냄)을 권한다.

그가 재임 중 자신을 맹비난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를 구속하라는 참모진의 건의를 받고, "볼테르를 구속하는 법은 없소"라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식인, 사상가의 입에 어떻게 재갈을 물리냐는 말이다. 그게 바로 보수의 올바른 자세다.

역사, 정치, 경제 '다시 보기'
-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이택광 / 문화평론가·경희대학교 교수

고전적인 대답이겠지만 일단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 까치글방 펴냄)다. 이미 읽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더라도 다시 보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역사의 문제나 빚에 대해 어떤 식으로 연루되어 있다면, 그냥 사과하고 지나갈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한 태도가 곧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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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또 하나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이다. 당선인을 포함해 정치권에서 이른바 '정치 쇄신'을 하겠다는 목소리가 매번 나오지만, 그 내용은 새로운 정치가 전혀 아니다. 쇄신은 선언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정치학자인 동시에 직접 생활 정치 운동을 실천하는 시민 운동가인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새 정치의 기초가 될 수 있는 힌트를 알려준다.

책에는 정치적인 지형이 바뀐 상황에서의 새로운 정치의 어휘들이 나온다. 이른바 '생활 정치'의 어휘들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와 결부된 정치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책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 위에 새 정치의 방법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홍기빈이 쓴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책세상 펴냄)를 권한다. 스웨덴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순 없겠지만 참조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어렵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한다면 그걸 비켜나갈 수 있는 변수가 많은 나라다. 특히 남북관계가 큰 변수인데, 만약 그 변수가 작용한다 해도 반드시 국내의 복지 문제와 결합되어야 한다. 한국이란 특수성 속에 남북 관계와 복지 문제를 동시에 잘 풀기 위해, 이 책 속에 있는 비전들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절대 반지를 운반하는 사람
-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정혜윤 /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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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의 제왕>(J. R. R. 톨킨 지음, 김번·이미애·김보원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 ⓒ씨앗을뿌리는사람
난 정말 당신이 궁금하다.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는 가족도 없고 정치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했을 때, 정말 여러 가지 심정이 들었다. 나는 당선인이 많은 책을 보길 바란다. 정치도 사람을 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디테일로 가득한 텍스트를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또 많이 웃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자기가 '기쁜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국정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머집을 추천할까 하다가, 절대 반지가 나오는 <반지의 제왕>(J. R. R. 톨킨 지음, 김번·이미애·김보원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으로 마음을 돌렸다. 절대 반지를 운반하는 프로도는, 끊임없이 그걸 소유하고 싶다는 유혹에 흔들린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프로도에게 샘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이렇게 힘든 길을 떠나는 이유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충분히 지키고 싸울 만한 가치라고 말한다.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만, 단지 권력을 '나르고'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란 손에 쥐면 누구나 영원히 갖고 싶겠지만, 국민의 권력을 표로 이양시킨 대통령은 운반자일 뿐이다. 거기서 던져지는 질문이, '대체 우리는 이걸 왜 계속 운반하고 있느냐, 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하느냐'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굳이 알려드리지 않아도 잘 아실 터이지만…
-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알라스테어 스미스의 <독재자의 핸드북>


노정태 / 자유기고가

친이계와의 오랜 투쟁을 통해 새누리당의 패권을 장악하시고, 민주통합당과의 대선마저도 성공적으로 치루고, 기어이 대통령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이제는 손에 넣은 권력을 주어진 5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가장 잘 유지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실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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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자의 핸드북>(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알라스테어 스미스 지음, 이미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독재자의 핸드북>(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알라스테어 스미스 지음, 이미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전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의 사례를 긁어모아 그들이 어떻게 권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권력을 잃었을 때 어떤 말로를 겪었는가를 실증적으로 연구 수집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 왜 어떤 독재자는 술을 마시다 부하의 총에 맞아서 목숨을 잃지만, 다른 독재자는 침대 위에서 잘 자다가 고통 없이 평온하게 죽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학적 고찰인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국민이지만, 박근혜를 국민들이 뽑아주도록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핵심적인 측근에게 이권을 잘 분배하되, 잊을 만하면 '인적 쇄신'을 해서 그들 또한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측근들이 받아먹을 만큼만 받아먹고 그 위를 넘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먹이를 주되 적절히 배고픈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 그것이 꼭 독재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권력자가 살아남는 생존의 비법인 것이다. 물론 이미 선거는 끝났으니 국민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일개 서생이 주제넘게 조언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박근혜 당선인은 이러한 게임에 도가 튼 달인이다. 이것은 마치 천체 물리학자가 마이크 타이슨에게 <복싱의 기초>를 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면 이런 드립을 치면서 시시덕거리지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앞서, 박근혜 당선인께 굳이 <독재자의 핸드북>을 권해드리는 바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반대편에 있었던 한 인물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강응천 / 문사철 주간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펴냄)을 꼼꼼하게 읽었으면 좋겠다. 아마 대한민국의 역사를 100년 이상 지나 돌아볼 때, 박정희라는 이름 석 자는 분명 어디엔가 굵직하게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크게 기억될 이름이 바로 전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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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전태일기념사업회 펴냄). ⓒ전태일기념사업회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노선을 잇는 정책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 속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라이벌들이 수없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상대편에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더 크게 기억할 거라고 생각한다.

전태일이 불꽃같은 삶을 마감한 1970년에는 그와 같은 노동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전태일은 박근혜 당선인을 뽑아준 국민 속에도 있고, 그와 호각의 승부를 펼쳤던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 중에도 있다. 통합의 정치를 말하는 박근혜 당선인이 이들을 라이벌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 가지고 전태일과의 역사적 라이벌 관계에서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로서 박근혜 당선인이 반드시 전태일의 일생을 이해하려 노력하기 바란다. 아주 짧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 청년이 무엇을 간절히 바랐고 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초개 같이 내던져야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프레시안
북한·중국 무시하다간…
-<정세현의 정세토크>

김기협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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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의 정세토크>(정세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이명박 정부 내내 몹시 불안한 일 하나가 북한이나 중국을 잘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북한을 미워하고 중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한국의 장래에 북한, 중국과의 관계가 가지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잃은 기회와 입은 손해가 4대강보다도 더 크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박근혜 정권이 중국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고 북한과 대결 자세를 지키고 싶어 하더라도 상대방을 알기는 알아야 한다. 박근혜라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미있는 (그리고 안 두꺼운) 책이면서 북한, 중국과의 관계를 많이 설명해주는 이 책 <정세현의 정세토크>(정세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를 꼭 권하고 싶다.

보릿고개 2.0 대책!
-강양구·강이현의 <밥상 혁명>

조효제 / 성공회대학교 교수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으니 민생 중에서 어떤 민생을 챙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먹을거리부터 살피시라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먹을거리는 적어도 양적으로는 더 이상 큰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말하기 십상이다. 과거에 비해 절대 기근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당선인의 아버지가 권력을 잡았을 때만 해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버젓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먹을거리의 질과 먹을거리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보릿고개 2.0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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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 혁명>(강양구·강이현 지음, 살림터 펴냄). ⓒ살림터
식량 안보라는 말에 현혹되어 먹을거리를 수요와 공급의 시장 사이클에 종속시킨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식량 수급 불안정의 위협이 우리 머리 위에서 시한폭탄처럼 재깍거리고 있다. 왜 그럴까? 근본적으로 보아 먹을거리를 일반 공산품처럼 취급한 탓이다. 그 결과 규모의 경제, 고 투입 생산, 수출형 농업 산업이 상식처럼 자리를 잡았다. 21세기 들어 이런 식의 먹을거리 비전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명되었다. 우리가 먹는 것을 공산품처럼 취급하면 인간은 스스로 공리적이고 기계론적인 존재 양식을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먹을거리와 먹는 행위를, 단순히 몸을 중간에 놓고 음식물을 투입하여 에너지와 노폐물이 산출되는 등식으로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적 의례이자 문화이고 인간관계의 핵심을 이루는 예술에 가까운 일이다. <밥상 혁명>(강양구·강이현 지음, 살림터 펴냄)은 그런 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 풍부한 사례와 쉬운 설명으로 차근차근 알려준다. 대통령 당선인이 이 책을 읽고 이 책의 관점에서 먹을거리와 농업과 농민과 소비자의 관계를 보기 시작한다면 진정 민생 대통령이 될 기본적인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자살자 가족 마음 헤아려 주길
-칼라 파인의 <너무 이른 작별>

하지현 /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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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이른 작별>(칼라 파인 지음, 김운하 옮김, 궁리 펴냄). ⓒ궁리
한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인 나라다. 자살은 굉장히 중요한 보건적, 정신적,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자살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자살자나 자살 시도자 자체의 양적 증가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자살자 가족들이 겪는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가족의 자살은 평생을 잊지 못하게 하는 멍에가 되는 일이다.

앞으로 5년간 자살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금부터 그것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총체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먼저 자살자 가족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이 책 <너무 이른 작별>(칼라 파인 지음, 김운하 옮김, 궁리 펴냄)부터 읽고, 한국에선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끌어안기를 바라고 싶다.

아버지가 지은 핵발전소, 당신 손으로 닫을 수 있다면…
-히로세 다카시의 <체르노빌의 아이들>

한재각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책임자인 안드레이 세로프 가족이 핵사고로 인해서 겪게 되는 고난과 죽음을 그리는 이 책 <체르노빌의 아이들>(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을 박근혜 당선인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온갖 험담이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함께 하는 이들에게 가해질 수 있는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걱정할 수 있는 감성은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 감성을 이 책이 일깨워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핵 발전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을 가진 이들과 그녀가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감성적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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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노빌의 아이들>(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 ⓒ프로메테우스 펴냄
어쩌면 그것은 원전 주변에서 살고 있는 목숨을 구하는 첫 발걸음일 수도 있다. 원전 주위반경 20킬로미터 내에 거주하는 주민 60만 명, 혹은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에 대한 핵사고 시뮬레이션이 예측한 72만 명의 사망자들을 구하는 독서가 될지도 모른다.

아버지 박정희가 자랑스럽게 시작한 핵발전소가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고난을 야기했는지,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위험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그녀가 자세히 알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 권의 독서가 혹시 그녀에게 핵 발전의 위험과 참상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할 수만 있다면….

박근혜 후보의 당선 소식을 들으면서 독일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떠올린다. 독일 사회민주당-녹색당의 적록연정이 이뤄 놓은 핵발전소 폐기 합의를 뒤집었다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큰 정치적 패배를 겪고 다시 스스로 핵발전소 폐기 시한을 되돌린 보수 여성 정치인.

박근혜 당선인은 후쿠시마 핵 사고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핵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 정책을 뒤엎는 것이 한국 어디선가의 핵 사고가 아니어야 한다면, 박근혜 당선인과 그녀에게 투표한 수많은 지지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 한 권의 책에 희망을 걸어보려 한다. 부질없는 짓일까?

당선인님, '노동'이 낯서시죠?
-은수미의 <날아라 노동>

양호경 /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열심히 일해서 뭐 하겠노, 돈 벌어서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지" 라는 한 개그 프로그램의 자조적인 유행어가 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2년이나 지났고, 서울 거리에서는 지방 사투리보다 영어가 더 익숙할 만큼 국제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호구지책을 위해서 일을 한다.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에 웃으면서 씁쓸한 기분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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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라 노동>(은수미 지음, 부키 펴냄). ⓒ부키
노동 전문 연구자에서 노동 전문 정치인으로 나선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의 <날아라 노동>(부키 펴냄)은 '일자리'가 아니라 '노동'이 왜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하지만 노동은 또한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는 누구나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청년들에게 노동은 낯선 단어이다. 노동이나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머리에 빨간색 띠 두른 아저씨들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청년들은 생계와 학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부분은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대기업에 가기 위해서 취업 준비를 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가지 못한 청년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정규직이 되는 것이 꿈이 되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소고기를 사 먹는 것이 꿈이 된 것이다. 모든 시민들은 일터가 아니라 돈을 들고 시장에서 소비자로 나서야만 존중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노동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차기 대통령은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로 취업하고, 도전하라는 정책을 주요하게 제시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이 이 책을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기 전에 꿈을 꿀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을 꾼다는 것은 일자리에서 소외되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일을 통해 찾아가는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호구지책의 일이 아니라 '노동'이다. 차기 대통령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노동'이 탄압할 대상이거나 사회 불순 세력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위해서 더욱 보장하고 장려해야할 것임을 알아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당선인이 아니라 우리에게 권하는 책

유운성 / 영화평론가·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시력보다, 공간보다 그리고 자유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 내뱉는 숨을 초라하게 만들고, 말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랑, 그 모든 사랑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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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어 왕>(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태원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펭귄클래식코리아
리어 왕의 맏딸 고네릴이 그녀의 아비를 현혹케 한 감언이설이다.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왜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떠올렸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노년의 어리석음에 대한 증오였을까? 분명 그것만은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당신'의 자리에서 '국민'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기꺼이 감동하는 바보들에 대한 동정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 슬픈 시간의 무게에 우리는 복종해야 한다"(the weight of this sad time we must obey). 적어도 지금은.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는 배신당한 슬픔에 미쳐 광야를 헤매는 무리들을 보게 되리라.

그러니 <리어 왕>은 새 대통령과 그녀를 대통령의 자리에 올린 당신들보다는 정작 그의 시대를 견뎌야 하는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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