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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한민국, 우리는 모두 '박정희'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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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13 대한민국, 우리는 모두 '박정희'의 유산이다! [3인1책 전격수다] 권보드래·천정환의 <1960년을 묻다>
"오늘날의 기원은 사실 4·19 자체가 아니라 5·16이 돼버린 4·19다."

<1960년을 묻다>의 저자 권보드래와 천정환은 "좋은 전설"인 동시에 "어두운 망령"으로 남아있는 한국 1960년대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560쪽에 달하는 분량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팩트와 인용문을 차분하게 읽는 것만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던 50여 년 전의 풍경, 2010년대의 '오래된 미래'인 시대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단언컨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 중에 가장 흥미진진한 여정이자 '총망라'의 야심이 느껴지는 묵직한 저작이다.

이 책의 부제는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이다. 우리는 곧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직계 자손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맞이하게 됐다. <1960년을 묻다>를 읽는 내내 2010년대와 1960년대가 다르지 않다는 기시감에 시달렸던 것과 또 다른 현실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2010년대는 1960년대와 어떤 식으로 달라지게 될 것인가, 달라져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이중으로 겹쳐든다.

도서평론가 이권우(한양대 특임교수), 서평가 이현우(필명 '로쟈'), <프레시안> 기자 김용언 세 명이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토론하는 자리, '3인 1책 수다'는 인터넷 매체 ()에 동시 게재된다. <편집자>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권우, 이현우, 김용언.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1960년을 묻다>(권보드래·천정환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의 저자들은 '386세대'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바로 그 386세대를 주조한 4·19세대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고 있는데요. 제목이 상당히 이중적이지요. 1960년대라는 시대의 가치를 물어보는 책이기도 한 동시에 자신들을 키운 4·19세대를 묻어버리기도 하는 책입니다.(웃음)

호사가들은 한국인의 제대로 된 문화사나 지성사가 없다고들 투덜거리는데, 이 책은 비록 1960년대라는 제한된 10년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 시기의 문화사와 지성사를 아주 잘 다루고 있어요. 동시에 4·19세대가 '묻어버린' 가치를 되찾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현우 : 196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독특한 시기였죠. 유럽에는 68혁명이 벌어졌고, 일본에선 1969년 전공투 투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그런 세계적인 혁명의 분위기가 꺾이고 좌절됐습니다. <1960년을 묻다>는 첫머리부터 한국의 1960년 4·19혁명이 1961년 5·16쿠데타에서 어떻게 좌절됐는지 묻습니다.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한국의 60년대를 다루면서, 여러 가지로 가능성의 시대면서 좌절의 시대였던 그 시기에 대한 복합적인 정서를 다시금 환기시켜주는 책이지요.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의외로 무척 새로운 사실과 경험들이 적시되어 있기 때문에, 학술논문을 바탕으로 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김용언 : 저는 1960년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을 뿐더러 제가 기억하는 첫 번째 대통령은 전두환이에요.(웃음)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감수성 자체가 부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상태로 <1960년을 묻다>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건 이런 부분이었어요.

보통 지적 유행이나 감수성의 유행 측면에서 10년 주기, 20년 주기라는 얘기를 많이들 하잖아요. 1960년대는 50년 전인데, 유행의 10년 주기가 그 50년 동안 원형 경기장 안에서 뺑뺑이 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예를 들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생성된 특유의 불안한 멘털리티, 그것이 냉전 이데올로기와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가 하는 측면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초반 100페이지까지 읽는데 이건 그냥 2010년대 얘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을 정도였거든요. 우리는 여전히 1960년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4·19혁명의 두 얼굴

이권우 :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라고 볼 수 있지요. 386 세대가 학문 영역에서나 문화 영역에서 자신들을 가르쳤고 늘 압도적이었던 4·19세대를 넘어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데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4·19혁명에 대한 해석입니다. 4·19혁명이 기존에 알고 있던 '대학생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하지요. 말하자면 대학생 세력들이 4·19의 성과를 전유한 면이 있다고요.

39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4·19는 식민 말기에 태어나 해방기 및 한국전쟁기에 소년시절을 보낸 '침묵하는 세대'가 자기증명에 성공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 다음 문장이 재미있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침묵으로 가라앉지 않았다"!(웃음) 이 부분에 대한 저자들의 강한 도전의식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4·19가 너무 잘 알려진 역사라고 생각하고, 깊은 고민 없이 과거의 학문성과를 그대로 수용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4·19 재평가 부분에서 대학생 중심이 아니었다는 주장부터 매우 중요한 대목이고, 그 다음 4·19세대에 의해서 어떤 가치가 '회수'되고 말았다는 대목이 문제적입니다.


▲ <1960년을 묻다>(권보드래·천정환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천년의상상
이현우 :
4·19 당시 참가자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주축이었다고 나오죠.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정치적 사건에 대한 역사적인 주도권이랄까, 나름대로 명예로운 자리일 텐데 그걸 대학생들이 전유해간 사건으로 재조명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책 전반적으로 저자들이 문화사적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 사건을 당대의 전체적 맥락에 배치했을 때 얻어질 수 있는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데요. 4·19의 경우도 대학생들이 획득했던 사회문화적 주도권에 대해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거죠.

김용언 : 저는 4·19가 5·16으로 어떻게 넘어갔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처음엔 '자유'를 요구하다가 특유의 조급증 때문에 금세 '빵'을 달라는 쪽으로 선회했던 상황을 기술하는 부분이요. 전후 시대 한국이 서구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선점하고 있던 경제적 부라든가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에 대한 동경 때문에 '우리도 빠른 시일 안에 문명화되고 근대화되어 저들과 동일한 선상에 서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게 되지요.

하지만 일본이 또 몰려온다, 혹은 빨갱이가 또 몰려온다, 또다시 옛날처럼 가난하게 수탈당하고 전쟁의 포화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민주주의의 시도들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좌절되는 과정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오지 않았던 가능성을 자꾸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까진 어찌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냉전의 하나의 실험장으로서 한국전쟁이 안 일어났더라면 현대사의 흐름이 많이 바뀌었을까, 바뀌었다면 어떤 식으로 바뀌었을까, 군인들이 등장하지 않은 60년대는 어땠을까, 하고요.

이권우 : 우리 현대사는 배반의 역사다 싶어요.(웃음)

이현우 : 책 43쪽을 보면 4·19 1주년 기념 <한국일보> 기사에 "그때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린 몸을 이끌고 '직장을 달라 빵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자유'가 구호로서의 매력을 급속도로 잃어버리게 됐고, 심리적으로 5·16을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어있었던 거죠. 책에 따르면 당시 대학생들도 군부 쿠데타를 적극 지지하진 않더라도 관망 내지는 소극적 지지의 태도를 보였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나 민주주의에 대해 불만이 누적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겁니다. 1987년 이후의 상황이라든가, 지난번 대선 결과도 이런 과정을 또 한번 재생해서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용언 기자 말처럼, 반세기 전 사건에서 계속 익숙한 기시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권우: 4·19세대가 5·16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가 매우 중요한 논점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실상 동의했다고 보고 있잖아요.

김용언 : 이 부분이 현대사 전공자들 사이에선 반응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꽤 논쟁적일 것 같습니다.

이권우 : 45쪽을 보면 "5·16은 4·19의 배반"이라는 인식이 공론화된 건 1966년 이후였다고 나옵니다. 약 5년 정도 분명 5·16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는 거죠. 5·16쿠데타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한 사례는 함석헌 선생 정도밖에 없었다는 언급도 있고요.

이현우 : 5·16쿠데타 세력도 4·19혁명 정신을 계승한다는 태도를 취했고, 1년이 지나면 민정이양하겠다는 약속을 했었죠. 전 이 부분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4·19혁명의 주체 세력이 완수했어야 됐었던 혁명이 좀 더 확실한 물적 권력 토대를 갖고 있던 군부 세력에 의해 진행되었고, 과감하게 말하자면 5·16이 4·19를 배신한 게 아니라 5·16은 4·19를 계승했는데 박정희가 박정희를 배신한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1966년 이후 혹은 유신 이후의 상황을 그런 구도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권우 : 전 의견이 달라요. 그 당시 가난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너무 강력했잖아요. 그래서 속전속결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던 대중의 욕망이 결국 4·19를 5·16에 헌납하게 됐다는 말이 책에 나오지요.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이겁니다. "과연 4·19가 그 자체로서 지속될 가능성"이 있었는가 하는 도발적인 질문 말입니다.

이현우 : 박정희 정권이 가지는 두 얼굴이 있었죠. 내막은 달랐지만 여하튼 그들이 표방했던 외적인 태도 자체는 4·19 혁명정신을 계승했다는 거구요. 전 러시아의 경우를 연상하게 됩니다. 20세기 초, 1910~20년대에 걸쳐 예술가들이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걸 시도합니다. 이를테면 절대주의 회화라고 불렸던 말레비치 등이요. 이걸 아방가르드라고 통칭하는데, 스탈린은 정치 영역에서 그걸 전유합니다. 예술에서의 혁명을 사회 혁명으로 대치하고, 사회를 전반적으로 다 개조하지요. 스탈린 혁명은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까지 진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배반해요. 그 혁명을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했고, 역량의 한계에 도달하면서 공포정치, 대숙청으로 넘어갔지요. 동일한 양상이 4·19 이후에 반복됐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권우 : 박정희가 말했던 4·19 정신의 계승이 수사학이었지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고 보진 않아요. <1960년을 묻다>도 계속 강조하는 게 4·19세대가 갖고 있는 자기불안이잖아요. 과연 자신들이 드러낸 걸 지속적으로 성취할 수 있겠느냐 하는 불안이요. 박정희의 배신이라기보다, 4·19세대의 자기 확신의 부족을 더 강조하지요. 이현우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5·16 쿠데타가 4·19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건데, 곧 '자유' 대 '빵'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박정희 세력이 극복하려는 적극성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그들은 그럴만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현우 : 전 5·16 이후 도입됐던 정권이 도입했던 몇몇 개혁적 조치와 시도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자유교양운동 같은 예 말이죠. 마오의 문화혁명이라든가 레닌과 스탈린 시대에 시도했던 시도들과 박정희식 혁명이라는 게 그렇게 차이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과는 물론 양면적이죠.

이권우 : 이현우 선생은 당시 세계사적 보편성에서 구조적인 동일성을 말씀하시고, 저는 우리 역사의 특수성 속에서 4·19와 5·16의 변별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의견이 갈리는 듯싶습니다.(웃음)

김용언 : <1960년을 묻다>의 저자들 자체는 4·19가 그 자체로 지속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고 보는 쪽에 가까운 듯합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4·19 이후 왜 '젊은 가부장'에 대한 열망이 커졌는지 분석하는 글이 나오죠. 젊고 매력적이고 야심차고 리더십 강한, '이승만 할아버지'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15년밖에 안됐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10년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그런 지도자를 이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시기의 비현실적 조급증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 조급한 틈새를 파고든 게 5·16을 성공시킨 군인 세력이었던 것이고요.

이권우 : 저자들은 '빵'과 '자유'가 대립적인 가치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몫이었는데, 그게 분열되면서 '자유'보다는 '빵'을 선택한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죠.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벌어졌던 소위 다양한 혼란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분석합니다. '고귀한 무질서'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이런 혼란을 자력으로 헤쳐 갔을 때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문제의식은 그래서 상당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저자들은 4·19정신에 대한 대표적인 문학적 형상화로 박태순이라는 작가를 조명하지요. "십수 년이나 수십 년간의 혼란과 무질서와 저성장을 통과한 후에라도 '그날의 흥분을 얼마든지 과대평가해보는 것처럼 유쾌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 손으로 시작한 일을 제 손으로 끝맺는 경험이었을 거"라는 대목을 특별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69쪽)

이현우 : 47쪽에 천상병 시인이 5·16 직후 쓴 글이 인용되지요. 장면 정부가 말한 자유는 "굶어도 좋다는 자유"라고요. 사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자유나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 자체가 부족하고 결여된 상태에서 민주주의라는 다소 고급한 정치 체제를 바로 이식하기 어려웠죠. 4·19세력은 그 도전적인 과제를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그 혼란 상태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강압적인 조치가 필요하잖아요. 소련이나 중국조차 그러했는데, 한국의 민간정부가 그런 혁명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이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안타깝습니다.

60년대 작가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 이권우.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쿠데타 이후 우리 사회의 지적 화두가 근대/성장/발전이라고 정해졌지요. 그에 대해 4·19세대가 문화적 대응을 해나가는 부분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1960년을 묻다>는 그 대표적인 작가로 김승옥, 이청준, 방영웅을 꼽았어요. 김승옥과 이청준이야 문학사에서 흔히 얘기되는 대표적 작가지만, 거기에 방영웅을 포함시켰다는 것 자체가 독특한 발견 내지는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젊은 독자들은 방영웅의 <분례기>(창비 펴냄)를 잘 모를 거예요. 절판되어서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도 대학 들어간 다음 궁금해서 헌책방을 뒤져서 구해 읽었는데, 저 스스로가 세련된 도시 감수성이 아닌데도 받아들이기 어렵더라고요. 아주 그로테스크한 작품이었어요.

이현우 : 박정희식 근대화에 대한 각기 다른 문학적 반응을 유형화하는 그 부분을 저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승옥의 회오, 이청준의 정신주의, 방영웅의 원시주의.

김용언 : 1992년에 SBS에서 <분례기>를 드라마로 방영했었어요. 전 책은 못 봤지만 그 드라마를 잠깐 봤었어요.(웃음)

이현우 : 아, 그랬군요. 놀라운 건 <분례기>가 <창작과비평>에서 1967년 처음 소개됐을 당시 문단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던 중요한 작품인데 어느 샌가 역사 저편으로 지워졌다는 겁니다. 문학사 책도 뒤져봤는데 거의 언급이 안 돼요. <1960년을 묻다>의 저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 작품을 해석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청준 문학과 <분례기>를 나란히 놓는 것 자체가 평가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거죠.

이권우 :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권력으로 꼽을 수 있는 문예지는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이지요. 상당히 대립적인 구도로 알려졌지만, <1960년을 묻다>의 저자들이 보기엔 두 잡지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거지요. 저자들은 <문학과지성> 창간 이전, <창작과비평>이 1967년에 방영웅의 <분례기>를 실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1970년대의 <창작과비평>은 "1960년대의 '소시민 문학'에 대한 '창비적' 부정"을 선언하지만, 1960년대의 <창작과비평>에선 "'1960년대적인' 혹은 '4·19세대적인' 요소들이 공존"했다는 걸 발견한 거잖아요.(94쪽) 즉 <창작과비평>은 <문학과지성>과 달리 지속적으로 60년대 문학을 과소평가했다고 알려졌지만, 그 <창작과비평>조차 4·19 이후 조국 근대화로 대표되는 박정희 문화정책에 저항하는 60년대적 문학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겁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재해석의 빛나는 부분 같아요. 방영웅의 <분례기>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재조명하는 평가 역시 높이 사야 하고요. 문화권력의 뿌리에 대한 아주 정밀하고 좋은 분석입니다.

이현우 : <분례기>가 보여주는 농촌의 '후진성'과 '불결성'이 "근대-발전-성장이라는 욕망에 가려진 여성-고향-과거의 물질적 현존 자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103쪽) "비체의 이물성과 불결성을 통해 개발-근대화의 논리에 저항했다"는 새로운 해석의 여지도 주고요.(105쪽) 하지만 황석영의 <객지>(창비 펴냄) 등이 등장한 1970년대에는 개발 근대화의 논리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 노동 소설을 통해 직접적으로 가능해졌어요. <분례기> 같은 우회적인 방식은 필요 없어진 겁니다. 1960년대 후반에 잠깐 등장했던,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후 폐기되어버린 작품 <분례기>를 통해 1960년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제공됩니다.

김용언 : 제가 학교에서 배울 때에는 1960년대 문학의 대표자로서 김승옥과 김수영만 주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청준은 영화 <서편제>(열림원 펴냄)의 원작자 정도로 기억하는 게 전부였고요. 그런데 <1960년을 묻다>에서 이청준 부분을 읽고 나니 이제야말로 그의 초기작들을 다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특히 2010년대에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대들이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광경을 지켜본 입장에서, 그들이야말로 이청준의 60년대 문학에 굉장히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식민 말기를, 해방을, 전쟁을, 아직 성년에 이르지 않은 나이로 늘 선택'당해'왔다고 생각하는 4·19세대"에 대한 이야기, "애초에 주어지지도 않은 선택을 가지고 고심"을 하다가 "마지막 선택은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에 이르는 냉소, "그에게 남아있는 자유는 배반할 자유뿐이다"(90~91쪽)라는 식의, 4·19 이후 젊은 이청준이 느꼈던 불만은 지금 시점에서 읽더라도 굉장한 동시대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사상의 선택은 곧 체제의 선택

이권우 : <1960년을 묻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사상 전향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이현우 : 여기서 두 인물을 대비시킵니다. 먼저 동백림 사건의 발단이 된 임석진 교수를 거론하는데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오도르 아도르노 밑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던 국내 헤겔 연구의 거두지요. 두 번째 인물은 잡지 <청맥>의 주간이었던 엘리트 김질락입니다. 전자는 박정희와 일대일 독대를 통해 자기 과오를 해명하고 사법적으로 용서받은 뒤 대학 교수로서 정년을 마쳤지만, 후자는 자기 과오를 공개적으로 고백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희생되었지요.

흔히 전향이라고 하면 과거 문제로만 생각했습니다. 1930~40년대 일본 공산주의자들의 전향 문제, 혹은 한국 계급문학 작가들과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전향 문제만을 떠올렸지요. 하지만 1960년대 임석진과 김질락 사건을 통해 전향이 현재진행형의 문제라는 게 만천하에 밝혀졌지요. 이에 대해 연구자들이 더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지적에도 공감했어요.

이권우 : 두 저자가 분명 김윤식 교수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김윤식 교수는 식민지 시기 일본의 진보주의자와 우리 문인들의 전향 연구를 했잖아요. 그 연구 성과를 60년대에 도입하여 분석한 시도는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김용언 : 극단의 변화를 겪은 사람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강철' 김영환이라든가 김문수 경기도 도지사처럼 사상적인 극단을 겪은 사람들이요. 안 그래도 얼마 전 쓰루미 슌스케의 <전향>(최영호 옮김, 논형 펴냄)을 구입했었는데, <1960년을 묻다>의 저자들도 <전향>을 언급하면서 한국에서의 전향이 일본의 경우에 그대로 대입될 수 없다, 전혀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고 써서 흥미로웠습니다.

이현우 : 한국식 전향의 가장 큰 특수성은 사상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체제 선택까지 아우른다는 데 있지요. 자기 내면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이냐 북이냐를 선택한다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 말입니다. 거꾸로 얘기하면 전향이란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일본보다 더 깊이, 더 멀리 나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분석하는 간첩 부분도 굉장히 흥미로워요. 1967년 귀순한 북한 지식인 이수근 사건은 대단하죠.

전 <1960년을 묻다>를 보던 중 이수근 부분에서 완전히 몰두해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램도 찾아보고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인물과사상사 펴냄)도 뒤적거리고 그랬습니다.(웃음) 최인훈의 <광장>(문학과지성사 펴냄) 주인공 이명준이 그대로 현실화한 것 같은 인물이죠.

북한에선 조선 통신사 부사장까지 지냈던 고위 임원이었고, 남한에서도 중앙정보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적당히 맞췄더라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중간첩이라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당합니다. 당시 남북 대립 상황 속에서 자유를 찾고 싶어했던 지식인이, 적당히 타협하면 잘 살 수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놓아버릴 수 없었던 양심을 지키고자 했을 때 불가피하게 어디에서도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렸지요. 이수근의 사형 직후부터 박정희의 유신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권우 : 사상 전향에 대한 집요한 강제가 자기 검열에 이르면서 생긴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였지요. 이는 통일과 중립의 가능성이 좌절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4·19 직후 한때 냉전을 넘어선 중립화 통일론이 지식인층에서 주류 담론으로 부상했다가 1960년대 후반 들어 남북이 각각 유신과 주체사상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 꿈은 바로 사라집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최인훈 역시 저자들의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됩니다.

저자들은 질문합니다. "미국은 변함없는 실체였으며, 한국은 언제나 친미에 의존해서만 생존할 수 있었던가?"(232쪽) 중립의 꿈은 일본 식민지 시절 이전부터, 한국이 열강의 구도 속에서 다각도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부터,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전쟁이 다가온다는 파국 의식 속에서 중요한 대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냉전 체제에 접어들며 이 선택은 불가능해졌고, <광장>의 이명준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됩니다. 최인훈 작가가 1970년대 침묵을 지키며 절필했다가 냉전 종식 후인 1994년 <화두>를 다시 발표했다는 것을 분석하는 부분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한 작가에 대한 애정, 그 작가가 놓여있던 시대에 대한 예민한 촉수가 드러난 부분이라 의미 있게 읽혔습니다.

이현우 : 1950년대는 미국 없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수 없는 시기였지요. 하필이면 그 당시 미국은 매카시즘 광풍으로 이한 반공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입니다. 한국 역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요. 그 상황에서 중립화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치명적인 위험이기 때문에, 최인훈 작가의 절필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고요. 말 그대로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그런 작가가 우리에게 있었다는 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교양은 국력이다!

이권우 : 자유교양운동은 말하자면 권력과 문화의 이중주이자, 그 협음과 불협화음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춘천에 살았는데, 자유교양운동의 끝물을 맛본 케이스입니다.(웃음) 3학년 때 학교에서 책 읽고 독후감 쓰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무척 신나게 참여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권력층의 야망은 국가적 차원에서 교양을 보급하는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력을 키울 수 있다는 데 있었다지만, 거기서 파생된 혜택으로 제가 좀 더 나은 인문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권력이반의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웃음)

▲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이현우 :
1968년에 제1회 '대통령기쟁탈전국자유교양대회'가 시작됐지요. 1975년이 마지막 대회였는데 전 그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체험하진 못했어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부작용이 속출하여 결국 폐지됐다고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132종 800만 부의 '고전'이 보급됐고 총 7회에 걸친 대회에 연인원 1900만 명이 참가했다는 건 굉장한 '문화혁명'이라고 보입니다.(웃음) 최근 한국 대학들에서 인문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잖아요. 오래된 미래인 겁니다. 공통점은 미국식 자유교양교육, 즉 리버럴 아츠 교육을 수입했다는 점이고요.

이권우 : 맞습니다. 지금의 교양 교육도 그때의 시카고 대학 모델을 여전히 따르고 있죠.

김용언 : 거칠게 정리하자면 짧은 기간에 효율적으로 책을 읽히는 제도인데요.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강제적인 방법으로나마 중고등학교 때 이런 책들을 읽힌다는 게, 부작용이 이만큼이었다면 장점도 분명 조금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현우 : 아, 저는 거꾸로입니다. 부작용이 조금이고 장점이 더 많을 수 있다고 봐요.(웃음) 한 학생 사례를 보면 학업 시간 외에 독서를 하루에 4시간씩 했다고 나오잖아요. 지금 한국에서도 그런 교육은 못하고 있지요.

김용언 : 그 학생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이라는 대목도 나오지요.

이현우 : 네. 그 학생은 실업계 학교를 다녔는데 자유교양대회를 준비하면서 소크라테스를 읽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획기적입니다.

김용언 : 저는 수능과 본고사, 논술 시험을 다 치른 세대인데요. 대학 입시를 위해 고등학교 때 '초치기'로 그런 인문 교양 공부를 해야 했어요. <독서평설>이라는 교재를 정기 구독했는데 일종의 세계명작 다이제스트였습니다. 한국 단편소설 등은 전문을 싣되 장편은 축약해서 소개하며 수능과 본고사에 나올 '예상치 못한' 지문들을 예습시키는 격이었죠.

또 저희 집에 일본 작가가 쓴 희한한 단행본도 있었어요. 일종의 '세계명작 100권 읽기' 개념인데, 모든 명작 소설들을 죄다 2페이지 내에 축약해서 소개해요. 전 그 책을 읽으면서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줄거리를 다 외웠어요. 그런데 정작 원작 소설을 읽진 않았단 말이죠. 책 제목과 작가 이름, 줄거리를 외우되, 그게 책 자체에 대한 교양의 차원이 아니라 수능과 본고사에 유용한 부분만 획득하는 식으로 학습하는 게 몸에 뱄던 거예요.

아주 한참 후에서야 그 원작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소위 인문 교양이라는 부분을, 대학 입학 후에야 혼자서 더듬거리며 찾아가야 했어요. 때늦은 복습인 거죠. 그래서 항상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유교양운동 부분을 읽을 때 심지어 그 학생들이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웃음)

이권우 : 문제는 교양이 교양 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동원 체제 속에서 공유되었다는 점이죠. 현재 한국 대학들이 왜 다시 고전과 교양의 가치를 중요시하느냐고 물었을 때, 돈이 되는 걸 찾기 위한 부분이 분명 크거든요. 이 책에서도 1960년대 자유교양운동의 목적에 대해 교양과 국력을 일치시켰다는 정도의 언급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왜곡된 자유주의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싶어요. 미국적인 것, 서구적인 것, 무조건 새로운 것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려던 지식인들의 무비판적 문제의식이 과도하게 현실 교육과 접목되면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교양이라는 건 사회적 맥락 내에서 당장 뚜렷한 효과를 보여주진 못하죠. 그냥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건데, 현재의 인문학 붐은 아주 천박하게 얘기하자면 스티브 잡스 때문인 겁니다.(웃음) 교양 교육의 본래 가치를 공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1960년대 자유교양운동이 사라졌듯 현재의 고전 교육도 쉽게 무너지지 않겠냐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교양은 지배의 기제이면서 동시에 지배와 대립하는 것을 생산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461쪽) 이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말하자면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교양 세대가 출현했고, 1970년대에 그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체제 저항 세력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에 교양 교육을 접었을 수도 있는 겁니다. 현재 대학의 고전 교육이 결과적으로 저항적 세대를 탄생시킨다면 우리는 과연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고전을 통해 저항의 의미와 방식을 알게 된 세대가 현 체제에 대한 도전 세력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점에 대한 이해가 배제된 교양 교육이 한시적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드는 거죠.

이현우 : 전 좀 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소위 국민 독서 시대, 동원된 독서의 시대지만 그게 1970년대 조세희, 이문구, 황석영 같은 본격문학을 즐기는 독자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1950년대만 해도 문맹률이 70퍼센트였는데 1960년대 들어와서 10퍼센트 대로 줄어들었다고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대대적인 국민 독서 운동을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1970년대의 두터운 독자층을 만들어냈으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까지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정희식 국가 체제에 동원하기 위해 국민의 문화적 역량을 높이고 했지만, 양가적인 결과를 낳은 거죠. 동시에 비판적 문제의식도 고양되었으니까요.

1968년부터 1975년까지라는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수백만 권의 고전이 보급되고 전국적인 독서 붐이 가능했다는 건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1970년대 시민의식의 성장이 지금까지는 경제성장과 맞물려서 중산층의 형성 차원에서만 주로 이해되었지요. 문학전집 유를 사들이는 것도 중산층의 과시적인 속물적인 교양 취미가 발현된 걸로 이야기됐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보단 좀 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0년대 이후의 질문들

이권우 : 이야기를 나눌수록 1960년대가 오늘의 우리를 빚어낸 원형이라는 생각이 강해지는데요.(웃음) 이 책은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지금 우리가 미처 얘기하지 못한 부분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정리 차원에서 한 명씩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덧붙인다면요?

이현우: 이 자리에서 미처 얘기하지 못한 주제 중 하나가 잡지 <사상계>입니다. <창작과비평>과 <문학과지성> 이전의 한국에는 <사상계>가 있었지요. 1953년 장준하 선생이 창간한 종합교양지이자 지적 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이 잡지의 흥미로운 배경은 '문화자유회의'라는 조직입니다. 1950년 창립되어 세계 35개국에 지부를 건설했던, '자유세계' 진영 지식인들의 대대적 연대인데요. CI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던 전력도 있지요. 또 문화자유회의의 가장 대표적인 잡지라고 할 수 있었던 영국의 잡지 <엔카운터>를 열렬하게 수용했던 잡지가 <사상계>고요. 결국 박정희 정권의 탄압 때문에 흐지부지 종간되었지만, 그런 외부적인 이유 말고도 <사상계>의 자체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은 흥미롭습니다.

지식인들의 친미 성향의 시발점이 1960년대에 있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기도 합니다. 일본 식민주의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압도적으로 미국 학문의 영향권 하에 놓이게 되었잖아요. 1만 명 이상의 유학생들이 미국으로 갔고, 그들이 지금도 여전히 대한민국 엘리트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권보드래 선생과 천정환 선생은 국문학계의 '문학' 연구에서 '문화'연구로 방향을 전환한 첫 세대인데요. <1960년을 묻다>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성과의 최대치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잘 예시한 책입니다. 기존의 문학사와 다른 차원에서 맥락을 새롭게 보여주지요. 맥락 속에 놓고 보니까 전혀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인지되는 부분들이 이 책의 큰 미덕입니다.

김용언 : 저는 두 가지 부분을 꼽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아프레 걸(après girl)' 이후를 다룬 챕터입니다. 전후 1950년대, 개인의 자유를 매우 활발하게 모색하던 시기에 실존주의의 맥락 속에서 자유분방한 아프레 걸이 남성들을 두렵게 만드는 존재로 급부상하지요. 1930년대 '모던 걸'보다 훨씬 예외적인 존재로 부각되었지만 그녀들은 4·19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젊은 사자들'이라 불렸던 '남성' 대학생으로 순식간에 사회적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여성은 가정으로"라는 건전한 목소리가 사회에 울려퍼졌다는 것, 저로서는 어떻게 갑자기 여성에 대해서만 급속하게 보수화될 수 있었는지가 이해가 잘 가지 않을 만큼 놀라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의 정치 세력화의 가능성이 돌이킬 수 없이 수그러들었지요. 우리가 68혁명 얘기할 때 항상 60년대가 끝나고 보수반동의 70년대가 시작됐다는 레토릭을 많이 쓰잖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그 '혁명'의 60년대에 여성이 끼어들 자리가 차단이 되어있었고 그 자리를 '젊은 가부장'이 채웠다는 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현우 : 이 주제에 대한 단행본도 나와 있죠?

김용언 : 네, 저자 권보드래 선생님이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동국대학교출판부 펴냄)를 쓰셨더라고요.

이현우 : 해방 이후 50년대까지 여성 권익에 대한 의식이 급격하게 신장하다가 60년대 중반 들어와서 갑자기 보수화되는 과정을 겪는 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를테면 아프레걸 챕터 말미에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신사임당의 표상이 선동되었다는 구절이 나오지요. 저도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여학생들의 장래 꿈이 죄다 현모양처였던 게 기억납니다.(웃음) 책에서는 당시 최고의 여성잡지였던 <여원>이 1965년 신사임당 특집기사를 냈다는 것도 조명하잖아요. '현모양처=신사임당'이라는 공식이 이 시기에 만들어져서 80년대 초반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60년대가 또 다른 기원이 된 거죠.

▲ 김용언. ⓒ프레시안(최형락)
김용언 :
두 번째로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은 교양의 구성입니다. 특히 전혜린을 설명하는 부분이요. 책에서는 전혜린을 두고 지성과 표현양식을 갖춘 "새로운 유형의 인간-여성"이라는 표현을 쓰지요. 그녀를 양육한 건 "식민지근대성과 그 시대의 교양주의"였고 "식민지 최상층 엘리트가 가진 돈과 문화자본에 의해 (길러진) 예외성과 천재성의 사회적·가정적 토대"였음을 지적하고요.(408~409쪽)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혜린이 일종의 '가당치 않은 문학소녀'의 느낌으로 놀림 받기도 합니다.(웃음) 전 중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 지음, 민서출판사 펴냄)의 삼중당 문고판을 읽으면서 컬처 쇼크를 받았거든요. 이 사람은 60년대 초반에, 90년대의 내가 여전히 가닿지 못하는 세계를 이미 성취했고 불과 내 나이 또래부터 비범한 교양을 쌓았다는 것에서 엄청난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저한테는 전혜린이 롤모델이었단 말이죠!(웃음)

그런데 <1960년을 묻다>를 통해 교양의 구성에 필요한 계급적 토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 60년대 근대화를 열망하는 제3세계 국민의 '자기계발'로서의 교양에 대해서도 좀 더 파고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당시 지식인에 대해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현우 : 하다못해 <이방인>이나 <데미안> 등의 작품이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는 고전이며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라고 강조되지요. 이게 한국에서만 유독 권장되는 도서 목록의 일부분입니다. 그 분위기의 뿌리가 60년대에 있다는 거지요. 그 주입된 교양의 뿌리가 불과 50여 전에 연원하고 있다는 점, 교양에 대한 혹은 독서나 고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의 많은 부분이 이 시기에 형성되어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깨워주었어요.

이권우 : 한국 현대사에서 특정한 세대로 명명된 것은 4·19세대와 386세대밖에 없어요. 그리고 '세대'라는 이름 앞에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혁명에 준하는 사건이 있지요. 즉 4월 혁명과 광주민주화항쟁을 말하는 겁니다.

전 이번 대선 결과가 386세대의 역사적 역할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젊은 세대가 386세대의 꿈과 좌절, 이상을 분석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열어갈 때가 된 듯합니다. 소위 '88만원 세대'라는 치욕적인 이름을 부여받은 젊은 분들이 이 책을 보면서 조금 더 정치적 각성, 문화적으로 새로운 도전이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386세대가 4·19세대에게 도전하듯, 이제 젊은 세대가 386세대에게 답을 요구할 시점인 겁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386세대 역시 <1960년을 묻다>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386세대는 <해방전후사의 인식>(백기완, 송건호, 임헌영 외 지음, 한길사 펴냄)을 읽고 자랐지요.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남북한의 역사를 읽으면 콤플렉스를 느낀 세대지요. 그런데 <1960년을 묻다>를 보면, 남북한 두 체제가 동일한 파국으로 향하고 있지 않았나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됩니다. 1960년대에 대한 이 386들의 문화사적인 접근을 읽는다면,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으면서 느낀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 바람은 <1940년대를 묻다>라는 책이 나오는 겁니다.(웃음) 이전 성과를 바탕으로 일제 말기와 해방,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문화사를 정리해준다면 더 중요한 대목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현우 : 저로서는 <1970년대를 묻다>를 기다리는 쪽입니다.(웃음) 저자들이 60년대를 정리한 다음 할 얘기가 더 많이 있을 것 같은데, 그 후행 연구가 70년대로 이어지길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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