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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가해자' 만들기 싫은 아빠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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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가해자' 만들기 싫은 아빠라면! [프레시안 books] 손문상·최규석·김수박 외 <어깨동무>
나는 인권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크게 갖지 않으려고 했고 지금까지 딱히 각성하며 살고 있다고 보지도 않았다. 그것을 상기하며 사는 것은 개인적인 삶을 매우 귀찮게 하거나 번거롭게 하거나 스스로를 원치 않는 죄의식에 빠뜨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중 작가로서 적당히 사회 참여적이면서도 적당히 현실 순응적으로,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을 유지하고 사는 편이 유익하다 생각하는 편이었다. 상투적인 의미에서의 '자존심'이 그나마 인권이란 것에 가까이 닿아있는 내 생각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겨우 인권이란 말이 새삼스러워지기까지 말이다.

내 개인적인 삶에서 인권은 찾기 어려웠다. 몹시 자존감이 낮은 삶이었고, 때때로 못난 자존감의 방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을 편하게 느꼈다. 그곳에 들어가면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니 마음이 편했고, 내가 먼저 낮췄으니 남이 나를 낮출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다 적당히 한 숨 돌려지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그런 나에게 아이가 생긴 것이다.

아이는 살아있는 자체로 나에게 말을 건다. 웅변을 한다. '아빠가 좋아' '아빠가 제일 멋있어' '아빠 사랑해'… 지금도 기억한다. 갓난아기의 까만 눈동자와 내 눈이 마주치고 부끄러워 눈길을 돌렸던 날을. 내가 이런 눈빛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어릴 적 아버지가 집에 손님을 모시고 오셨다. 아버지보다 젊은 그 남자는 고용주였다. 어머니는 술상을 차려냈고 아버지는 우리 형제가 다 보는 곳에서, 말하자면 접대를 하셨다. 그 남자가 돌아가고서 우리 형제를 모으신 아버지는 당신처럼 젊은 사람에게 고개 숙이지 않으려면 성공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비굴하게 살지 않으려면 성공하라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반동했다. 공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하면 비굴하게 사는 게 당연한 건가. 가난한 사람은 고개 숙이는 게 당연하단 말인가. 아버지는 성공하지 못했으니 자식이 보는 앞에서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게 마땅하단 말인가.

처음엔 남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아이가 나에게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아빠 말을 안 듣는 아이, 아이 교육 하나 제대로 못시킨 아빠. 부끄러웠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아이에게 화가 났었다. 괜히 크게 혼을 냈다. 아이는 굴복한 척 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아이가 이야기 한다. 아까 자기가 왜 싫다고 했는지 설명을 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표현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유를 듣기 전에 판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밤 자리에 누웠는데 괜히 통쾌했다. 내 아이가 나와 다르다. 7살 밖에 안 된 녀석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설득을 한다.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당당했다. 아이와 나란히 누운 그 날 잠자리는 정말 행복했다.

▲ <어깨동무>(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정훈이·유승하·박철권·손문상·최규석·김수박·굽시니스트·윤필·조주희·김성희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만화가 10명(정훈이, 유승하, 박철권, 손문상, 최규석, 김수박, 굽시니스트, 윤필, 조주희, 김성희)이 참여한 <어깨동무>(창비 펴냄)에는 '나'를 포기하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많은 약자들의 처참한 삶이 묘사된다. 그들의 삶에서 '인'은 있을지 몰라도 '권'은 찾을 수 없다. '권'을 박탈당한 '인'이 어찌 인간일 수 있겠냐마는.

다양한 사례를 보며 누군가는 새삼 혀를 차며 세상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를 비난하기도 할 것이다. 물질만능 세태를 저주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세상을 묘사해서 보여주기 위한 창이 아니다. <어깨동무>는 거울이다. 화석화 되어버린 '인권'이 각각의 삶에 적용되면 어떻게 유린되는지 은유하는 거울이다.

이 작품들을 보며 피해자에 집중하면 안 된다. 작품 안에 담겨진 피해자의 옆에 서있는 가해자의 실루엣은 내가, 내 아이가 스스로의 고귀함을 포기하고 자라면 만나게 될 자화상이다. 순간순간의 존중과 배려를 받은 아이는 나의 고통만큼 남의 고통에 공명할 것이다. <어깨동무>를 보며 남의 고통에 당장 함께 할 자신이 아직 없다면, 지금 가정에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고 타인의 권리를 배려하는 작은 일부터 해 볼 것이다. 참여한 모든 작가들의 노고에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 손문상의 '은별이', <어깨동무>(정훈이 외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 펴냄). ⓒ창비
▲ 최규석의 '맞아도 되는 사람', <어깨동무>(정훈이 외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 펴냄). ⓒ창비

▲ 김성희의 '세대유감', <어깨동무>(정훈이 외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 펴냄).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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