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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알고보니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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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 알고보니 한국? [이권우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리사 나폴리의 <행복한 라디오>
어릴 적 들으면서 격하게 공감했던 노래가 있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겹고 어려운 운명을 이고 있다 생각해서였을까, 그 나이에 좋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노래였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라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잠시 삶의 그늘을 걷어내곤 했다. 물론 어느 순간 라디오에서 더는 이 노래가 나오지 않았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행복의 나라에 절대 갈 수 없으리라는 비관에 젖어 있었지만 말이다.

누구나 지금, 이곳의 삶을 지겨워하고 힘들어 하기 마련이다. 저쪽 어딘가로 가면 행복한 곳이 있으리라 믿고 그곳을 희구한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더라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뚜렷한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마련이다. 한쪽은 영 글러먹었고, 다른 쪽은 이상향이 되어버린다. 하긴, 그래야 숨통이 트이는지도 모른다. 비록 자빠져 있더라도 눈을 들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아야 다시 일어설 힘이 솟아오르는 법이니 말이다. 이쪽의 삶을 누추하고 비루하게 만들더라도 굳이 그곳을 황금빛 세상으로 만드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자하니, 이즈음에는 부탄이 그런 모양이다. 다들 그곳에 가고 싶어한다. 거기서 위로받고 치료받으려 한다.

비록 가보지 않았으나, 그럴만하다 싶다. 보석은 숨어 있어야 더 값져 보이게 마련이다. 부탄이라는 나라가 그렇다. 잘 보이지 않는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히말라야 산맥에 나라가 얹혀 있다. 사진으로 보는 풍광일지라도 장엄하고 신비하고 아름답고 이색적이다. 거기다 지극히 계몽군주의 면모를 띤 그 나라의 왕은 행복지수라는 말을 써가며 부탄을 다른 가치가 지배하는 나라로 치장한다. 이러니 안달 안 할 수가 없다. 당장 짐을 챙겨 떠나고 싶게 한다. <행복한 라디오>(김유미 옮김, 수이북스 펴냄)의 리사 나폴리도 그러했다.

"부탄의 국왕은 화폐가치의 복잡한 행렬로 이루어진 국민총생산을 대신하여 한 국가의 척도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냈다. 그는 여기에 국민 총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떤 의미로든 국민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경제발전은 진정할 발전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부탄의 전통과 환경을 위협하는 세력은 신중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도입할 가치가 없었다. 국왕은 상품과 현금을 생산해내는 것보다, 상승하는 그래프를 만들기 위해 무분별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보다, 국민의 행복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성공보다 삶의 질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함부로 짓밟고 올라서서 성공을 도모하는 삶보다는 다른 인간을 향한 연민과 협력을 근본적인 미덕으로 삼는 삶이 필요하며, 이것이 국민 총행복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 <행복한 라디오>(리사 나폴리 지음, 김유미 옮김, 수이북스 펴냄). ⓒ수이북스
이 정도에 유혹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을 사는지라 권태에 빠진 사람이라면, 돈의 가치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현실에 진력이 난 사람이라면, 그저 쉬면서 삶을 재충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고 싶을 터. 나폴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금 같지 않던 초창기 시절, 한 지국에 발령받아 죽어라 일하며 살았다. 젊은이들끼리 새로운 매체를 키워간다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 두루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불행이 엄습했다. 강간을 당하고 말았다. 겨우 이겨냈다 싶어 결혼했지만, 남편 직장이 상처받았던 곳으로 정해지면서 사달이 났다. 결국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했던 셈이다. 이혼하고 더 일에 매달렸지만 마음은 늘 공허했다. 일종의 긍정심리학이 진행하는 행복학교에 나가 위로받고 격려받았다. 아마, 현실에 익사하지 않을 동아줄을 간절히 원했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감사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적으며 행복해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만성피로에 심한 우울증을 앓는 여성을 떠올리면 안 된다. 비록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 삶의 고비마다 후회와 회한에 시달리면서 정신없이 쫓기듯 달려왔다.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뒷북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으며, 사랑하는 친구들과 친밀하고 풍성한 관계를 이어왔다. 나는 인생의 승리자였고 행운아였다" 자부할만했다.

그러다 우연한 일을 겪으며 부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라디오 리포터로 일하다 한 파티장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게 하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이가 부탄으로 여행을 간다 말했다. 알고 보니 차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한참 전에는 부탄에서 여행 가이드를 했던 듯싶다. 메일을 주고받다 부탄의 라디오 방송국에 와서 일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구동성으로 지구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라는 곳에 아니 갈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직장에서 6주간의 휴가도 주었다. 흥분과 설렘 속에서 삶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리라 잔뜩 기대하며 부탄으로 떠났다.

그이가 부탄에서 일한 곳은 '쿠주 FM'. 종카어로 '안녕하세요'를 의미하는 '쿠주 잠포'라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 방송국이 생긴 이력도 흥미롭다. 부탄의 5대 국왕이 황태자였을 때 일이다. 일군의 젊은이들이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기 위해 황태자한테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황태자는 선물로 받은 BMW 자동차를 경매해 얻은 돈을 기부했던 바, 이 돈으로 방송국을 세웠단다. 정말, 이 나라는 국왕을 빼놓고는 말이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부탄의 방송국에 왜 미국인이 필요했을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나라의 미래를 의심해볼만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주로 음악 방송을 하는데, 대체로 팝을 내보내고, 그러다 보니 DJ들의 영어 발음을 바로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방송 진행이나 프로그램 기획을 하는데도 '선진' 문명권에서 온 사람의 도움이 요구되었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이기보다는 어딘가 잔뜩 속물 냄새가 나지 않는가?

바깥 사람들은 독실한 불교 국가로 물질 문명과 거리를 둔 고고한 은둔의 나라로 부탄을 생각한다. 하지만 부탄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 기대는 한낱 망상이었음을 금세 확인하게 된다. 서구인이 덧씌운 동양이라는 이미지라는 뜻의 '오리엔탈리즘'이 딱 맞아 떨어진다. 부탄은 뭇 사람이 바라는 대로 고여 있지 않았다.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었다. 도시화하고 있었고 근대화하고 있었다. 본래적이고 전통적이고 정신적인 것보다 서구적이고 물질적이고 대중문화적인 것에 환호하고 있었다. 가서 위안을 받기보다는 그 변화의 결과를 염려해야 할 곳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여행기는 실망과 회한으로 점철되어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런 면이 있음에도 여전히 부탄만의 매력이 있고, 거기에서 큰 격려와 깨달음을 얻었다. 그이가 부탄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당히 균형 잡혀 있다.

"내가 부탄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은 부탄 사람들의 독특한 매력 때문이었다. 부탄 사람들에게는 순수하면서도 풍자적인 유머감각이 있었고, 자기 나라의 역사와 국왕에 대해 강한 자부심도 있었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불교가 깊이 배어 모든 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 부탄 사람들은 서로가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대학 캠퍼스에서 경험했던 순수한 동지애 같은 것이었다. 부탄에서 만났던 외국인들 역시 나에게 많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다. 그들 대부분은 틀에 박힌 안락한 삶을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추구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 가이드와 동행하는 여행이라면 부탄은 약속된 낙원으로 부를 만한 관광지일 것이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아름다운 풍광은 동화속의 비현실적인 나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의 부탄은 가난하고 거친 나라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신기한 것과 신비한 것이 모두 어우러져서 부탄을 매혹적인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

때가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부탄으로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미디어에 대한 멀미였다. 진정성은 사라지고, 기능성만 강조되는 미디어 현장에서 한발 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과도한 소비중심의 생활을 일시 중단하게 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미디어에 멀미하면서도 다시 일해야 했고, 일상에서 소비중심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디냐가 이토록 중요할지 몰랐다. 얼마나 떠나고 싶었던지 "아파트 창문 밖으로 펼쳐진 샌 가브리엘 산맥을 보며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보고 싶었다."

바람이 극진해서였을까, 기회가 왔다. 부탄 무역부 초청으로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나중에 한 번 더 가니, 이 부탄 기행문은 2007년 처음으로 부탄에 발 디딘 후 1년 반 사이에 무려 세 번이나 부탄을 다녀온 다음에 쓴 책이 된다. 주마간산 격의 기행문과는 깊이가 다른 이유다.

두 번째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쿠주 FM의 DJ였으며 리사 나폴리가 부탄에 있을 적에 안내자 역할을 한 나왕이 미국을 찾아왔다. 예상했으나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나왕의 아메리카 드림이 드러났다. 불법으로라도 미국에 남길 소망했다. 이쪽은 저쪽이 이상향인데, 저쪽은 이쪽이 무릉도원이라는 이 역설! 부탄의 젊은 여성이 미국에서 경리를 하며 풍족한 물질적 삶을 누리고 싶다고 안달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왕은 부탄으로 돌아갔고, 미국에서 만난 부탄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대모가 되었지만, 혹시 나중에 책임져 달라 할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솔직히 기록해놓았다. 그리고 부탄을 깊이 알게 되면서 잘 안 알려진 추악한 면모도 확인했다. 미혼모 아이들에 대한 차별, 그리고 네팔 계 부탄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졌던 학살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지금-이곳 아닌 곳에 행복한 나라는 있을까? 지겹게 들어온 대로 유토피아라는 말이 현실에 없는 곳이라는 뜻이라면,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지금 이곳에 행복한 나라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한대수 노래는 도피성이 강했다 싶다. 행복의 나라로 가서는 안 된다. 그곳은 한낱 신기루일 뿐이니.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행복한 나라를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 세워야 하는 법이다. 하긴, 가봐야 비로소 알기 마련인지라 가는 것 자체를 탓해서는 안 될 일인지도 모른다. 가보아라, 그리고 다시 돌아와 세워라!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곳에서 실현가능한 유토피아라는 뜻으로 월러스틴이 내세운 '유토피스틱스'라는 개념이 확 다가온다. 꿈을 꾸되, 그것을 이곳에 실재화하기! 나폴리도 내 생각에 동의할 듯싶다. 이 못 말리는 긍정심리학의 신도가 말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부탄이 행복의 진원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무릇 나를 구원하는 이는 바깥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는 법이다. 개인이 그렇듯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마음에 새겨두자. 행복의 나라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세우는 것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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