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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대신 그이가 북한의 지도자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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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대신 그이가 북한의 지도자였다면? [프레시안 books] 손석춘의 <박헌영 트라우마>
"지식인다운 외모와 다소 멋쩍어하는 듯한 미소, 침착하고 과묵해 왠지 무게가 있어 보이는 모습"

<박헌영 트라우마>(철수와영희 펴냄)의 저자 손석춘의 박헌영에 대한 묘사이다. 박헌영과 절친하던 소련의 역사학자 샤브시나 여사의 증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왠지 이 표현은 손석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다. 어느 한편에 편협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선을 가진 신문기자, 온건하면서도 용기 있는 글을 써온 작가 손석춘의 외모와 성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 <박헌영 트라우마>(손석춘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철수와영희
손석춘이 이번에 사고를 쳤다. 남한의 진보운동권에 하나의 금기어처럼 내려오던 북한에서의 박헌영 간첩 사건에 대해 정면으로 포문을 연 것이다. 일본강점기와 해방 직후 공산주의운동의 최고 지도자였던, 그러나 한국전쟁 말기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한 박헌영의 복권을 북한당국에 정면으로 요구한 것이다. 손석춘은 이 책의 후기에서 말한다.

"이 책 <박헌영 트라우마>가 북쪽의 조선로동당 지도부에 보내는 메시지는 깨끗하다. 남쪽에서 탄압을 받아 올라간 사회주의자들을 옹근 60년 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체포한 큰 과오를 바로잡기 바란다."

지금도 남한의 진보세력, 특히 북한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북한 정권은 지지하지 않더라도 남한의 주요 모순을 미국의 지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박헌영 사건 이야기가 나오면 확신에 차서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증거라곤 북한의 재판 기록뿐이며 간혹 새로 나온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도 박헌영과 직접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거의 발작적으로 반발한다. 트라우마다.

제국주의 간첩이라는 이유로 수십만 명을 죽인 소련의 사례만으로도 박헌영이 누명을 썼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박헌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작업을 통해 그가 간첩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 학자들까지도 여전히 진보운동의 주류인 민족해방론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의식해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문제를 피해간다. '박헌영은 과연 미제의 간첩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결론은 '그가 간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제 시대 열렬한 항일투사였던 것만은 확실하다'는 식이다. 역시 트라우마다.

손석춘은 남한 진보지식인들의 이러한 무지와 편견 혹은 기회주의적 측면을 정면으로 질타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체사상파에서 반북운동가로 변신한 이들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발간한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철수와영희 펴냄)에서 북한의 핵과 세습정치를 비판하면서도 북한이 스스로 사회주의다운 체제를 이룰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할 일은 비판보다 대화라고 주장했다.

<박헌영 트라우마>에서 손석춘은 박헌영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그의 아들 박병삼, 법명 원경 스님의 증언을 녹취하는 형식을 빌렸다.

피해당사자의 아들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학자들로부터 신뢰성을 의심받기에 딱 좋다. 그러나 원경은 단순히 박헌영의 아들이 아니라 박헌영 문제의 최고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정보와 자료를 수집한 사람이다. 빨갱이 아버지를 둔 죄로 동자승이 되어 산사를 떠돌며 살아야 했던, 한국전쟁 때는 3년 간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곁에서 빨치산 꼬마로 살았던 원경은 마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밝히려는 듯, 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데 72년 생애 거의 전부를 바친 사람이다. 역사문제연구소를 세운 주역이었고 많은 학자의 도움을 받아 전9권에 이르는 <이정 박헌영 전집>(이정 박헌영전집 편집위원회 엮음, 역사비평사 펴냄)을 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원경의 진술을 가감 없이 수록하되 필자의 상식적인 판단도 곁들여 증언자의 기억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나 의도치 않은 오류의 가능성도 제기한다.

예컨대 김일성의 대표적 항일투쟁 업적으로 뽑히는 보천보 전투에 대한 증언이다. 원경은 김일성의 다른 독립운동은 인정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김일성의 업적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압록강변의 인구 1천 300명 작은 마을에 보천보라는 둑이 있었는데, 주민의 생계가 걸린 이 물을 일본관헌이 자꾸 빼갔다. 그래서 동리 사람들이 김창희라는 인물이 이끄는 무장부대를 돈을 주고 사서 지서를 습격했다는 것이다. 김창희는 홍범도, 김좌진과 함께 무장투쟁을 했던 인물로, 당시 김일성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투 자체는 순경 셋이 죽은 작은 사건이었는데 당시 신문에 김일성부대의 활약으로 보도되면서 항일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떠올랐고, 나중에 북한의 김일성이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도용했다는 것이다.

원경은 이 주장의 근거로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김창희 부대를 불렀다가 체포된 박금철과 박달이 해방 후 북한의 김일성이 보천보의 김일성과 다르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했다는 것을 든다. 또한 자신이 <이정 박헌영 전집> 편찬을 위해 여러 학자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갔을 때 해방 후 북한을 이끌었던 소련군정 고위층과 북한 출신들을 만나서 들은 여러 이야기들도 제시한다. 이현상이 북한에 올라갔다가 이 문제로 북로당 간부들과 크게 다투고 강등되어 빨치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한 지리산중의 이현상이 죽기 얼마 전 소년 원경이 듣는 자리에서 자리에서 북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다는 것, 월북을 하여 김일성에게 죽느니 차라리 남한에서 싸우다 죽겠다고 말한 기억도 제시한다. 박정희가 유신 시대에 박헌영 일대기를 <중앙일보>에 게재하도록 허가한 것이 본인의 좌익성향을 보여준 것이라는 말도 한다.

손석춘은 이 보천보 사건, 이현상의 마지막 발언, <중앙일보> 연재 등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원경의 진술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경이 매우 정직한 증인의 한 사람이란 점은 여러 차례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그는 이전까지 수십 년간, 한산스님이라는 이가 청년기까지 자신을 돌보았다고 말하고, 한산으로부터 들었음을 전제로 박헌영 이야기를 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은근한 불신을 받아왔다. 이름도 없고 승적에도 없는, 게다가 1968년에 갑자기 실종되어 버렸다는 한산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했다는 이야기를 누가 쉽게 믿겠는가? 그러나 근래의 세밀한 자료조사를 통해 한산의 본명이 김제술임이 입증되었고, 그가 박헌영의 씨 다른 누이의 아들, 곧 원경의 사촌형이라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박헌영이 모스크바에서 호치민을 만난 적이 있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목민심서>를 선물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일부 학자들이 호치민의 모스크바 유학 시기가 다르다거나 호치민 박물관에서 <목민심서>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이유로 반박론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원경이 제시한 사진이 박헌영의 아내 주세죽의 유품에서 나온 것이며 그 뒷면에 호치민을 포함한 사람의 이름을 써놓은 것이 확인된다. 그밖에도 원경이 아련한 기억으로만 간직하던 남로당 지도자였던 김삼룡과 이주하의 체포과정 등 다른 여러 사건 역시, 이왕의 기록이나 증언들의 오류가 드러나는 한편 원경의 증언이 정확했다는 게 입증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원경이 사촌형과 소련군정 지도부, 초창기 북한의 지도층 출신들로부터 들은 보천보 사건의 진상도 사실일 가망성이 높다. 물론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일성이 해방되는 날까지 백두산 밀영에서 무장투쟁을 했다는 따위의 황당한 조작을 지금도 맹신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것이다.

저자 손석춘이 박헌영 아들과의 대담을 토대로 <박헌영 트라우마>라는 책을 냈다고 했을 때, '트라우마'가 아버지에게서 비롯한 원경스님의 상처를 의미하는 걸로 짐작했다. 그러나 손석춘은 치료받을 사람은 박헌영의 아들 박병삼이 아니라 박헌영을 죽인 사람들, 또 그 결정을 맹신해온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후기에서 밝힌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분석한 박헌영 트라우마는 새로운 임상심리 개념이다. 거짓말로 상대를 크게 해코지한 사람이나 집단에게 남는 깊은 상처를 이른다. 해코지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스스로 거짓임을 잘 알고 있기 있기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마침내 그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중증까지 나타난다."

김일성에 앞선 지도자 박헌영을 간첩으로 몰아 죽인 데서 비롯한 이 트라우마는 병명도 모른 채 60년 동안 남과 북에 만연했다는 것이다. 손석춘은 이 책이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트라우마 치료가 그렇듯 박헌영 트라우마의 치유책 또한 박헌영의 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앞서 필자가 언급한대로, 이 책은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이나 해방직후 북한이 가진 항일투쟁의 정당성을 전면부인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70여 년째 존재해온 북한정권을 인정하고, 간첩이란 누명을 씌워 죽인 남한 출신 혁명가들을 복권시키라고 요구한다.

독자들에게는 만일 김일성 대신 박헌영이 북한을 이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볼 것을 권한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인 호치민이 김일성이나 스탈린식 독재를 택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어떤 예단도 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이 제도상으로는 완벽한 사회보장을 이루었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민주주의 문화의 부재로 지도자 우상화와 공포정치, 그리고 이에 따른 생산력 퇴보 끝에 붕괴한 데서 교훈을 찾고 싶을 것이다. 저자 손석춘은 말한다.

"물론, 그 다음 단계를 어디로 갈 것인가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그 다음 단계가 박헌영이 살았던 시기의 소련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제 더는 없을 터다. (…)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어떤 사람도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지는 못한다. 1980년대에 이 땅의 순수한 영혼들을 사로잡았던 자주와 통일 또한 한 차원 높여 2010년대에 걸맞게 재구성해야 옳다. 바로 여기에 이 책 <박헌영 트라우마>가 남쪽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이 책이 주는 선물이 한 가지 더 있다면 마지막에 수록한 박헌영의 방송연설문 전문이다. 1945년 11월 30일, 오늘의 KBS인 서울중앙방송에서 박헌영이 조선공산당을 대표해 직접 작성, 연설한 것이다. 유일한 국영방송에 조선공산당 대표가 연설을 하던 시대도 놀랍지만, 연설 내용은 더욱 놀랍다. 아무리 앞뒤 꽉 막힌 극좌나 극우파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합리적이고도 감동적인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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