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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중독'된 야심가 박원순, 선거도 신경 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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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에 '중독'된 야심가 박원순, 선거도 신경 쓸 때! [이렇게 읽었다] 박원순·오연호의 <정치의 즐거움>
'일 중독자'의 비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박원순 시장은 '일 중독자'다. 박 시장과 함께 에밀리아 로마냐(주도 볼로냐)에 협동조합을 견학하러 갔을 때 나는 그를 "착한 불도저"라 칭하고 "착하다 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는데 훗날 기자들에게 들어 보니 박 시장이 그 별명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한단다. 과연 일 중독은 일 중독이다.

그는 어떻게 일 중독이 되었을까? 대충 책장을 넘겨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에서 여러 번 반복된 주장들이 있다.

"우리에게 진정한 꿈이 있다면,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 보려는 꿈이 있다면, 결코 지치거나 좌절할 수 없다."(31쪽)

서울시장인 지금은 이렇다.

"제대로 해서 정말 번듯한 지방정부, 세계의 모범으로 우뚝 서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죠."(296쪽)

그러므로 그는 일이 즐겁다. "신이 납니다. (…) 시민참여 향정 실험, 마을 공동체 만들기, 역사도시 보존과 활용, 시민의 삶의 질 확보, 협동조합 지원, 원전 하나 줄이기 같은 일은 시대의 요구이자 화두이면서 제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도 맞으니까요. 정말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290쪽)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하는 사람을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최선을 다해 실천하다 보면 그 과실을 지금 내가 따 먹지 못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우리의 것이 된다고 믿습니다. 5초 후에 사라질지라도 강물에 돌팔매를 던져 봅시다. 내일은 옵니다."(304쪽)

그의 끝없는 일욕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소신이 바로 이것이다.

지속가능하면서도 정교한 대안

▲ <정치의 즐거움>(박원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물론 그저 일만 한다고 해서 성과가 나는 건 아니다. 일정한 성취를 이뤄야 계속 노력을 기울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그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섬세하게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저는 어떤 과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일에 집중해서 물고 늘어져요. 그래야 답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때(참여연대 회원 모집-필자 주)도 시민의 눈높이에서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습니다."(274쪽)

그의 이런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난 사업은 보도블록 사업이다. 그는 "보도블록 10계명"을 만들어 서울시의 전체 보도블록을 다 점검했고(2012년 705개의 보도블록 공사장에서 4342건의 크고 작은 하자 사항을 시정했단다, 117쪽) 나아가서 보도블록 혁신 엑스포까지 열었다. 하나라도 집중해서 제대로 해내고 세계의 모범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무작정 밀어붙이는 불도저는 아니다.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라고나 할까? 참여정부 시절 국공립 보육원을 늘리려다 좌절한 적이 있다. 보육 예산을 국공립 보육원 신축에 주로 쓰게 되면(서울에서 보육원 하나를 만드는 데 40억 원에서 80억 원이 든다) 기존의 민간 보육원 지원이 줄어들 터, 보육원장들이 여성부 장관실을 점거해 버렸다. 박 시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교회나 사찰이 소유하고 있는 땅에 국공립 보육원을 지어서 해결했다. 이들 종교단체가 원한다면 운영을 맡겼을 테니 그들도 원하는 바였을 터, 집중하면 답이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반값 등록금'으로 갑론을박, 나라가 시끄러웠을 때도 그는 서울시립대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립대의 입학 기준에서 이른바 스펙을 평가하는 항목을 싹 빼버렸으니 이는 입시제도의 개혁이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불거진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문제도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맥쿼리가 제2의 투자자였으므로 "투자자 국가제소권"까지 들고 나왔을 법 한데 그는 법률가로서 그들의 주장을 깨끗하게 물리쳤다.

정책을 20년 넘게 다루고 있는 내가 보기에 서울시가 약속한 일자리 21만개 창출은 좀처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2년 나라 전체의 취업자 수가 45만 1000명 증가(임금 근로자 31만 9000명, 주로 자영업인 비임금 근로자 13만 2000명)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아마도 서울시는 "순 증가"(=증가-감소)가 아니라 서울시가 관여해서 만든 일자리만 계산에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희망을 걸고 있는 곳은 협동조합이나 마을 만들기 등 사회적 경제이다. 공공 근로도 청년들이 전문성을 쌓아서 사회적 기업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 에너지 지킴이", "보육 코디네이터", "청년 혁신가", "청년문화지리학자" 같은 공공 일자리가 그런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도 서울시는 앞장서고 있다. 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차근차근 이뤄내고 있다. 2012년 5월 1일 청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임금은 16퍼센트 올랐지만(…) 용역회사에 주는 이윤과 관리비 등 경비가 39퍼센트나 줄었기 때문에 연간 53억 원의 예산절감 효과"를 보았다. 물론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해서 효율성도 올랐을 것이다. 나아가 서울 복지 기준선을 제정한 것도 그의 굵직한 업적이다.

반대파에 대한 태도와 정치

그에게 정치란 대화와 설득이다. 해서 그는 지난 대선의 실패에 대해서도 담담하다.

"어떤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면서 우리를 선택해 달라고 했는지, 그런 자격이 있는지, 그런 능력이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합니다. (…) 안타깝게도 대안적인 논리와 비전이 충분하지 못했어요." (275쪽)

특히 민주당과 진보 쪽에 표를 던지지 않은 51.6퍼센트의 시민들이 중요하다. "그 동안 우리가 마치 권력에게 대들듯이 보수적인 시민을 대하지 않았는지"(278쪽) 반성해야 한다. 그것은 초심으로 돌아가고 "인간에게 가장 숭고하고 필요한 덕성[인] 겸손"을 실천할 때 가능하다.

"선거는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지자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죠. 저 역시 오만을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279쪽)

실로 우리는 보수 쪽의 덕성을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있다. 그는 서울시장으로서 보수단체에도 열심히 찾아다니려 한다. 실제 정책으로 참전 유공자에게 매월 3만원이던 명예수당을 5만원으로 인상하고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근처에 공공임대주택 755가구를 지어 보훈가족에게 특별 분양했다.

심리학자 하이트(Haidt, J, 뉴욕대 교수)가 말했듯이 흔히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충성심, 애국심, 순결과 같은 가치들을 진보주의자들은 비웃기 일쑤다. 이런 태도로는 선거에서 백전백패하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원순은 진보진영에서 보기 드문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주 결정적인 사안을 빼놓고는 그다지 반대파와 대립하는 유형이 아니다.

노무현과 박원순의 비교 : 반반씩 섞인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말 비서실에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지금까지 입안하고 시행한 정책들 간의 관계, 즉 정책체계의 큰 그림을 그려 오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거대한 청사진 속에 부분들이 정교하게 맞아 들어가는 그림이 없으면 불안한 "시스템 매니아"였다. 하지만 박원순은 시대의 화두에 맞으면 바로 몰두해서 구체적인 정책을 세우고 실행한다. 기실 지금 전 세계를 조망하면서 모든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할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 시장이라면, 그리고 장차 더 큰 정책을 펼치려 한다면 거칠더라도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박원순의 비법은 이렇다. 어떤 일이 시대의 화두에 맞아 떨어지면 자신이 이미 오랜 동안 고민해 온 외국의 사례를 떠올린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현실에 맞는 정교한 계획을 세운다. 이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민, 이해당사자의 참여다. 계획의 현실성은 물론 실행의 효과성을 담보해 주는 것이 바로 참여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일한다. 아주 구체적인 일들이기 때문에 바로 성과가 나고 더 큰 일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시대의 화두란 그가 인권변호사로서, 또 시민운동가로서 활동하는 동안에 이미 터득한 바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괜찮은 일자리, 그리고 녹색혁명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세계시장협의회(WMCCC)' 의장을 맡은 그라면 작고 알찬 실천 사례를 넘어서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세계적 정책 틀을 제시할 의무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의무는 그가 비전을 가진 정치인으로 인정한 김대중이나 노무현만의 과제가 아닐 것이다.

또 하나, 그가 재선을 원한다면 선거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주위에서 이러 저러한 조언을 할 때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서울 시민을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미진한 것은 미진한 대로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는 꾸준히 제 일을 하겠습니다."(294쪽)

하지만 시민들이 지금까지 그가 해온 일들을 얼마나 알고, 제대로 평가하고 있을까?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비타협적으로 몰두해온 그의 천성에 비춰 볼 때, 1년도 남지 않은 선거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TV 토론에 관해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저도 제가 그렇게까지 못할 줄은 몰랐거든요. (…) 적대적 토론이나 논쟁에 대해서는 준비가 전혀 안 된 거죠." (263쪽) 이런 일은 다른 곳에서도 터져 나올지 모른다.

그의 말대로 "기본적으로 선거는 시민들에게 비전을 설명하고 안심을 시키고 신뢰를 얻는 과정"(286쪽)이다.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또 뒤집어 버릴 수도 있다, 264쪽)"는 지당한 말이겠지만 배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수가재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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