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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은 내용을, 북한은 실리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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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은 내용을, 북한은 실리를 챙겼다 [진단] 박근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첫단추 끼웠다
남북 양측이 7차례의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가진 끝에 14일 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넉 달 동안 가동이 중단되며 존폐위기에 몰렸던 개성공단이 정상화의 불씨를 살릴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남측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북측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각자의 입장을 관철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통행 제한과 근로자 철수 등의 문제에서 재발방지의 주체를 '남과 북'이라고 했지만 내용적으로 북한의 실질적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며 "간접적으로 북한이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합의가 남북이 공히 원칙과 유연성을 발휘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남측은 공단 가동 중단과 재발 방지에 있어 북측의 일방적인 통행 제한이나 근로자 철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적인 원칙을 지키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재발방지의 주체를 '남과 북'이라고 명시하면서 유연성을 보였다"고 분석한 뒤 "반대로 북측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재발방지 주체를 같이 명시하면서 나름의 실리를 챙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 남북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7차례의 실무회담을 가진 끝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김기웅(왼쪽) 남측 수석대표와 박철수 북측 수석대표가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 역시 '북측의 일방적인 책임'을 합의문에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북측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북측이 결단을 내린 것이고 남측도 유연한 결정을 내렸다"면서 "어느 한 쪽도 패배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실리를 챙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합의가 남북 양측이 현실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서로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상대를 파악하는 과정을 거친 셈"이라며 "비용이 좀 많이 들긴 했지만 앞으로 개성공단 중단과 같은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선에서 정리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개성공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 디딤돌로 삼아야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 단추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근식 교수는 "남북의 새로운 지도부인 박근혜정부와 김정은 정권이 첫 상견례를 한 것"이라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남북관계의 발전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번 개성공단 합의는 그 첫 단추를 끼움으로써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김 교수는 이번처럼 남북이 서로 의견이 다르고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회담이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 온 것 자체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 간단한 합의를 만드는 데 7번의 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내와 끈기의 남북관계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것이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남북이 이 상황을 파탄내지 않고 하나의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양측 정부가 개성공단을 남북관계의 시금석이라고 규정해왔다"며 "앞으로 이 정상화를 계기로 남북관계 발전의 기회가 열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성공단이 해결됐으니 양측이 협력해서 5~6년 동안 막혀있던 남북관계를 풀고 이를 치유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언제쯤?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이제 관심은 언제쯤 공단이 재가동될 수 있을 것인지로 모아지고 있다. 양측은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를 마련해 협의를 거쳐 재가동 시점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남측 수석대표인 김기웅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은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공동위원회 가동해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또 한편으로 기업들이 기반 시설 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밝혀 조속한 재가동은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남측이 이번 합의에서 보여준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공단의 재가동도 머지않은 시일 내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일단 합의를 했기 때문에 북측이 남측 기업인들에게 공단으로 들어와서 재가동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며 "이건 정치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막을 수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용석 선임연구원 역시 합의에서의 유연성을 발휘한 것을 이어간다면 재가동도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북측은 조속한 재가동을 이야기할 것이고 남측은 이보다는 안정적인 공단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며 양측의 이견이 부딪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산가족 상봉·금강산 관광 재개되나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개성공단이 정상화 수순을 밟으면서 또 다른 남북 간 현안인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수 있을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처럼 정치적인 결단만 내린다면 현안 해결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금강산 관광 재개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이산가족, 금강산 관광은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며 "정치적인 결정을 하게 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현안이 하나의 몸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번 회담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결정을 한 것처럼 나머지 현안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근식 교수 역시 정치적 결단을 통해 큰 틀에서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금강산 관광 재개도 남측이 남북관계를 개선해야겠다는 원칙적인 접근을 한다면 가능하다"며 "큰 틀에서 재발방지와 신변보장을 위한 협의를 진행시키면 된다"고 주장했다.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이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중요한 토대를 남겼다며 "이를 바탕으로 본다면 (나머지 현안들도) 협의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금강산 관광 문제는 재산권. 사업권을 비롯해 중단될 때와는 달리 다소 변동이 있었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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