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가 옮겨갈 평택기지의 지반을 높이는 문제를 놓고 한국과 미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미측은 평택기지가 안성천을 끼고 있어 홍수로 잠길 위험성이 있으니 건물이 들어설 지역은 3.3m, 연병장 지역은 2.6m 가량을 높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미측이 주장하는 근거는 용산기지이전협정. 따라서 성토(盛土)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5000억~6000억에 이르는 추가 소요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토 요구는 과도하며 그런 내용은 합의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반박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극단적인 한미동맹주의자'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지만 할말은 하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국 측의 주장이 맞고 한국 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근거는 미측이 주장하는 대로 용산기지이전협정(UA: Umbrella Agreement)이다.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협상 당시 그토록 소리 높여 외쳤던 불평등 조항의 문제점이 이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성토비용뿐만이 아니다. 이미 C4I관련해서도 드러난 게 있고, 환경 치유비용과 관련해서도 문제는 노정돼 있다. 차마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UA의 전문은 한국은 주한미군의 "삶의 질 및 안전을 증진"시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본문에서 한국은 "토지․시설 및 이사용역을 제공하며, 이전과 직접 관련된 그 밖의 비용을 부담(제2조 4항)"할 것이며, "임무와 기능이 적정한 시설(제2조 9항)"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미 국방부 기준(제4조 2항)"에 따라 시설소요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계약 내용이 이러할진대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미측에 항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런 위험성에 대해서는 지난 2년 동안 필자의 국회 대정부질문이나 시민단체, 일부 언론들, 그리고 심지어는 청와대의 비서관들까지도 소리 높여 지적했던 일이다. 국회의 비준까지 끝낸 협정을 통해 이미 한국 측이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 합의해놓고, 협상이 잘됐다고 그토록 홍보해 놓고는 이제 와서 합의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언론에 이견을 공개하는 것은 한․미간 불신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런 부분들이야말로 한․미간에 신뢰를 깨뜨리고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는 잘못된 행태인 것이다.
물론 평택기지는 용산기지 이전협정에 따른 용산기지 이전 부분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Land Partnership Plan)에 따른 미2사단 등의 이전부지가 포함된 기지다. 그런데 용산기지 이전과 건설비용은 한국 측이 부담키로 했고, 미2사단 이전 비용 가운데 부지는 한국이, 건설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하기로 양국간 협정이 돼 있다. 정부도 이러한 점을 근거로 미국에 항변한 모양이다.
이 또한 뒤늦은 항변에 불과하다. 당시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구별 기준이 없음을 들어 한미 군사 외교 담당자들에게 수 차례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 점은 당시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사이트만 확인해 보더라도 금방 판명될 일이다. 필자도 외교부와 국방부 담당자들에게 비공개로 수 차례 이야기한 바 있었다. 그랬던 당국이 이제 와서 무슨 때늦은 항변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외국인들의 계약관념은 그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다만 정부 관계자의 때늦은 항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 측이 제출할 시설종합계획(MP: Master Plan)에서 비로소 용산 몫의 땅과 미2사단 몫의 땅을 구별하여 결정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굳이 위안 삼자면 MP를 둘러싼 협상 여하에 따라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일부라도 절감할 수 있는 계기는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MP 작성은 미국 몫이고, "미국방성 기준"에 따라 주한미군의 "기능과 임무"를 그대로 유지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과연 우리 의도대로 항변이 받아들여질지는 회의적이다.
역시 근본 문제는 용산기지 이전이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 Global Posture Review)의 일환임에도 불구, 정부가 이를 협상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용산기지 이전협정을 위헌적인 조항으로 가득 채운 데에 있다. GPR 전략은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로의 임무 확대와 직결돼 국가 안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부는 GPR 전략 및 기지이전 비용증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감안해 GPR과 기지이전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협상 과정상의 한․미 간 논의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이제 그 잘못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표되는 각종 군사안보관련 논문들은 한반도와 일본에서의 미군 재배치가 전적으로 GPR의 일환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미국 측 협상대표인 롤리스도 최종 협상 당시 한국과 미국이 각기 다른 목적과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우리만 여전히 우리가 원해서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가는 것이라고 홍보해 왔다.
성토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용산기지 이전협정, 특히 비용 증대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이미 서너 가지의 문제가 드러나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 문제를 두고 수 차례 대책회의를 하고 있어 잘 알고 있다. 아직 언론이 모르고 있어 국민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한․미간 이견을 밝히기 이전에 용산기지 이전협상 과정상의 문제점과 정부가 과대홍보한 부분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협상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국민적 합의를 구하여 검증을 받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미국측이 원하는 대로 줄 것 다 주고도, 뒤돌아 서서는 딴소리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한미 동맹을 저해하는 나쁜 버릇이다.
NSC 관계자를 비롯한 당시 용산기지 이전협정의 협상 담당자들이 이제는 말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