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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의 방송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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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의 방송은 죽었다 [기고] FIFA와 방송사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자본의 상업주의?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앞세운 자본의 저열한 애국마케팅? 포기했다. 말릴 방도가 없다. 하긴 우리를 '돈주머니'로만 대하던 저들이 '대목'을 맞아 뻔뻔스럽게 '국민 여러분~' 하며 우리를 투전판으로 동원하려는 기상천외한 상술에 살짝 열이 오르긴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정을 자제하고 그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자."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켜볼 수만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본분과 책무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방송이다.

극한의 상술 발휘하는 방송…아침에 죄짓고 저녁에 회개하는 신문

사실 방송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매체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게 월드컵에 '올인'하는 매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라고 보면 된다. 이미 지상파뿐 아니라 위성방송, 그리고 멀티미디어 휴대폰과 DMB 등이 오직 월드컵에 매달려 있고 인터넷까지 월드컵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특히 다음과 야후 등의 인터넷 포털업체들은 4분, 10분, 40분, 24시간의 시간차를 둔 준 실시간방송(near live)권을 FIFA로부터 사들이고 방송인력을 스카우트해 이번 월드컵을 기회로 미디어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월드컵이 가져다 준 미디어 변동의 핵심이다. 즉 우리의 거주공간(TV), 업무공간(인터넷), 이동공간(DMB), 그리고 응원공간(전광판) 등 우리의 모든 공간을 분할하고 동시에 실시간중계와 준실시간중계, 하이라이트 편집중계, 그리고 과거 대회의 동영상 등 시간까지 구분하여 각각의 매체에 해당하는 중계권을 모두 별도의 상품으로 진열대에 올려 놓았다.

나아가 이들 중계권을 판매하면서 재판매권까지 따로 설정해 파는 FIFA와 방송사의 상술은 거의 봉이 김선달 수준이다. 오직 하나의 콘텐츠를 시와 공으로 쪼개 파는 극한의 상술이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매체는 월드컵이 점령했다. 우리는 월드컵으로부터 단 한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스타벅스가 싫으면 자판기 커피가 있고 맥도날드가 질리면 용달차 토스트라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이땅에는 월드컵 외에는 어떤 메뉴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 판국에 신문이 보인 행태는 좀 얄밉다. 1면부터 월드컵 기사를 싣고는 저 끝 사설 어디쯤에서 '너무 지나치다'며 훈계조의 한마디를 배치한다. 사설에서 세게 말하기가 좀 부담스러우면 칼럼 하나 받아서 걸어 놓는다. 사실 이것도 지난 4일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나친 월드컵 열풍을 경계하자는 스티커로 월드컵 조형물을 공격(?)하겠다는 기사가 인터넷 포털 뉴스의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화들짝 놀라 '외형적' 균형을 맞춰보려는 면죄부에 다름 아니다. 이런 거다. "우린 비판도 했다. 봤지?" 아침부터 죄 짓고 자기 전 회개하는 식인데 이들의 행태는 다음 날에도 별로 변한 게 없다.

"광고 대박을 향해 뛰어라"…대토고전은 방송사에게도 사활 건 한판 승부

미디어가 이렇게 안면몰수하고 월드컵 정국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군계일학은 바로 방송사다. 대 토고전이 있는 13일 지상파 3사는 24시간 중 SBS 21시간, MBC 18시간 30분, KBS 1TV 14시간 30분, 2TV 11시간의 월드컵 싹쓸이 편성을 감행했다. SBS는 분명 세계기록감이고 공영방송 MBC의 무모함은 경이적이다. 그래도 역시 KBS라고? 아니다. 국정감사 등 눈치 봐야 할 게 많고 전용할 예산의 폭이 여의치 않은 그들이기에 더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이들 3사는 한국팀이 예선 G조에서만 뛸 경우 최대 806억 원의 광고수입이 가능하지만 현재로선 판매가능한 광고 물량의 60%대 수준인 500억 원 정도의 광고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 차액은 방송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16강 진출시 광고 단가는 예선 단가의 200%, 8강은 250%, 4강은 300%로 뛰어 4년 전과 같은 '4강신화'가 만들어진다면 1180억 원의 광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팀은 이제까지의 원정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고 스위스와 프랑스에겐 홈경기나 다름없다. 또 80%를 훌쩍 뛰어넘던 국민들의 16강 진출 예상이 대 가나전 패배 이후 10%대로 폭락한 것에서 보듯 16강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방송사는 '월드컵 특수'를 최대한 일찍 시작해 극한으로 몰고 가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3일 대 토고전은 선수들 못지않게 방송사에게도 사활을 건 한판이다. 지면 이제까지 '오버'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특히 방송사들에겐 물론 돈벌이도 중요하겠지만 그들간 시청률 경쟁에서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기에 잠시(?) 한 달 간의 '안면몰수'는 그들에게 버릴 수 없는 카드가 됐다. 뉴스데스크 쇠락의 여파가 사방으로 번지고 있는 MBC가 공영방송임에도 엉뚱한 데 가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싹쓸이 편성에 저항않는 기자들…그들의 푸념은 대외용일 뿐?

공공성과 사회정의를 눈을 부라리며 외치던 이들의 지금의 모습은 차라리 처량해 보인다. 이러다 한국팀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그 많은 '오버'들을 어떻게 수습하고 마무리 할 건지 궁금하다. 또 새해 벽두부터 호들갑을 떨며 월드컵 열기를 광기로 이끌고, 또 대한민국의 미래가 월드컵 성적에 매달려 있는 듯 온 국민을 부추기던 방송사는 국민적 허탈감과 사회적 공황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월드컵만큼이나 흥미롭다.

방송사들은 노조와 기자들의 문제제기를 눈 딱 감고 무시하고 있다. 기자들도 "위에서 하는 건데 어쩌겠어요" 하며 푸념한다. 그런데 지금의 월드컵을 비판하는 기자들의 푸념도 결국 '대외용'이 아닌지 궁금하다. 수많은 비판에도 꿈쩍 않는 그들의 싹쓸이 편성을 보면 기자도 역시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13일 사회적 공기로서의 방송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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