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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 "더 싸게, 론스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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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환은행 매각, "더 싸게, 론스타에게"

매각 당사자들 '왜 그랬나'…공은 검찰로

제법 규모가 큰 마트가 있었다. 그런데 자금 흐름이 나빠져 빚이 늘어갔고 경영사정이 악화됐다. 활로를 찾던 도중 사장은 빚을 더 끌어오느니 마트를 팔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마트를 팔려면 어떻게든 좋은 값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안 되지만 실적이 좋은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살만한 사람에게 의사를 타진하기도 하고 부동산에 내놓아 경쟁을 붙이는 것이 파는 사람에게는 유리한 법. 그러나 2003년 외환은행은 정반대였다.

시장의 논리와 정 반대로 간 외환은행 매각 방식

19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외환은행 매각 과정은 납득하기 힘든 의문투성이다.

이강원 행장 등 당시 외환은행 경영진은 론스타와의 협상을 성사시킬 목적으로 매도자의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외환은행의 부실을 최대한 반영해 자산 및 부채실사 결과를 제출하도록 회계법인에 부당한 요구를 했을 뿐 아니라 회계법인이 제출한 실사결과에 부실을 추가해 이를 기준으로 매각 기준가격을 산출하도록 매각주간사에 제시했다.

이뿐만 아니다. 정부가 보증하거나 담보가 설정된 채권과 현대자동차 등 정상기업에 대한 여신 등 회수가능한 채권 1조5394억 원의 97%가 회수불가능하다는 비현실적인 가정까지 세워 외환은행의 기업가치를 낮게 산정했다. 한푼이라도 비싸게 받기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자기 기업 가격을 한 푼이라도 더 낮게 하기 위해 모든 자료를 '재해석' 했다.
▲ 19일 오후 감사원의 외환은행 매각 감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감사원 앞에서 외환은행 매각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매각 과정도 비정상적이다. 매각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공개입찰 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시장경제 논리다. 공개입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여러 군데에 투자의향을 물어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강원 당시 행장은 2002년 10월 론스타 측에서 먼저 경영권 인수를 전제로 한 투자의사를 표명하자 다른 투자자를 물색하지 않고 론스타와 비밀리에 수의계약 방식으로 협상을 추진했다. 게다가 론스타는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가(사모펀드)로 은행법상 은행의 인수자격에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이 전 행장은 당국에 '다수의 투자자를 접촉했으나 론스타 외에는 투자의향을 표시하는 데가 없는 것'처럼 보고했고, 2004년 국정감사에서도 13~14개의 투자자를 접촉했다고 주장했으나, 감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 구해보지도 않고 론스타와 덜컥 수의계약

감사원에 따르면 외환은행 측은 직접 투자자를 접촉한 사실이 없고,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에서도 2003년 3월경 에이치에스비시(HSBC), 스탠다드 차타드(Standard Chartered), 뉴브리지(New Bridge) 등 3개 기관에 전화로 간단하게 투자의향만 문의한 것이 전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제한적 경쟁방식을 통해 론스타와 뉴브리지를 예비후보로 선정하고 론스타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는 외환은행과 모건스탠리 측의 주장도 확인 결과 거짓말이었다. 뉴브리지 측은 당시 투자를 제안하지도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한 적도 없다고 밝혀왔다.

2003년 6월 중동의 두바이 은행 대주주가 외환은행의 미주지점을 통해 6000억 원 규모의 투자의사를 표명했는데도 외환은행은 '론스타와의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는 이유로 협상 필요성 검토도 하지 않고 재경부에 보고하지도 않은 것도 석연치 않다.

재경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03년 4월 삼성증권에 자문을 구한 결과 '공개입찰 경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았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같은 해 7월 론스타와의 수의계약에 따른 비난을 우려해 뒤늦게 공개입찰 경쟁을 검토했으나, 외환은행과 모건스탠리가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입찰 추진을 포기했다.

재경부, 론스타 인수자격 문제 확인·검토 없이 협상하게 놔둬

론스타의 인수자격도 문제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은행법상 10%이상 지분을 보유할 수 없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없다. 여기에서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등장한다.

2002년 11월 외환은행에서 론스타의 투자의사를 보고했을 때, 변 전 국장은 론스타가 사모펀드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협상하도록 놔뒀고, '론스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BN Amro(네덜란드계 은행)나 Tokyo Star 은행(론스타가 대주주)과 합작투자를 통해 자격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외환은행의 보고를 검토하거나 확인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감사결과, ABN Amro는 론스타로부터 합작투자 제안을 받은 바가 전혀 없었고, Tokyo Star 은행은 BIS 비율이나 은행 규모가 인수자격에 미달하는 은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2003년 7월초에서야 론스타가 합작투자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고 은행법 시행령 제8조 제2항에 의한 '예외승인'이 이뤄지게 됐다.

해당 은행법 시행령은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의 규정에 의한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5조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승인을 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 대목에서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팔리기 위해 부실은행이 됐다'고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별로 일도 안 한' 매각자문사에 '퍼주기'? 자문사 선정과정서 뇌물거래 혐의도

매각자문사인 모건스탠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승인도 받지 않았고, 모건스탠리는 투자자도 제대로 구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외환은행 측은 모건스탠리가 제시한 자문수수료 최고한도 500만 달러보다 많은 545만 달러를 자문료로 지급했다.
▲ 감사원의 감사결과,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매각되는 과정이 부적절했던 것으로 결론내려졌다. 이제 이목이 검찰의 수사에 집중되고 있다.ⓒ연합뉴스

또한 별로 자문할 일도 없는데 매각협상이 거의 다 끝난 2003년 5월 난데없이 '엘리어트 홀딩스'를 매각자문사로 추가 선정해 8월에야 선정사실을 보고했으며, 자문료는 보고시점이 아닌 선정시점인 5월로 소급해 무려 12억9500만 원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매각TF팀 실무를 맡았던 전용준 부장이 엘리어트 홀딩스 박순풍 사장으로부터 2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감사원이 밝힌 이상의 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당시 외환은행 경영진과 재경부 일부 관계자들은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기 위해 총력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 매각대금을 싸게 산정한 것도, 다른 투자자를 찾는 것을 게을리하고 론스타와 수의계약을 한 것도, 인수자격 문제도 외환은행의 BIS비율을 저평가해 부실은행으로 만들며 '예외승인'으로 피해간 것도 모두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그들이 론스타에 '올인'한 동기 밝히는 것이 관건. 공은 검찰로

그렇다면 당시 그들은 왜 그랬을까? 당시 외환은행 측이 공개입찰경쟁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당시 외환은행이 '팔리지 않는 은행(unsaleable goods)'으로 인식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지만, 감사원은 "당시 ABN Amro의 아시아 투자전문가들은 '당시 한국 내 은행에 관심있는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공개입찰 경쟁을 벌이면 외국계 은행들도 외환은행에 전략적으로 투자를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다만 "감사원도 나름대로 당시 정황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지만, 강제조사권이 없어 당시 관계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동기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왜?'에 관한 부분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낼 부분"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결국 감사원은 당시 외환은행 매각과정이 '부적절했음'을 밝히는 데만 그쳤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론스타의 합작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이유, 다른 투자자들을 찾는 데 게을리했던 이유 등부터 시작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정한 금품거래 의혹까지 모두 검찰이 밝혀야 할 몫이 됐다. 검찰이 과연 당시 매각 관계자들이 '왜 그랬는지'를 밝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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