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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토론회에서 축구 얘기가 나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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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토론회에서 축구 얘기가 나온 이유는?

[기자의 눈] 정보공개도 연구자료도 없는 탓

"'에이, 우리가 프랑스를 어떻게 이겨?'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어때요? 막상 붙어보니까 경기 할만 했죠?"

무슨 이야기일까? 당연히 축구 이야기다. 그럼 어디서 나온 이야기일까? 이건 조금 의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연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한미 FTA와 한국의 서비스 관련 이슈'에 관한 토론 세션에서 난데없이 월드컵 논쟁이 벌어졌다.

한미 FTA가 히딩크? "글쎄요"

한미 FTA 찬성 측 토론자로 나선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시장이 개방되면 서비스 산업이 붕괴되리라고 보는 것은 과도한 걱정"이라며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선전을 예로 들었다.

월드컵 본선 진출도 힘겨웠던 한국이 지금은 축구강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게 된 것처럼, 서비스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의 경쟁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최 교수는 이어 "히딩크를 감독으로 기용한 것이 한국 축구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이라도 실력만 있다면 감독으로 기용하는 개방적인 정책이 2002년 월드컵 4강신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최신의 화젯거리를 들어 설명한 것은 흥미로왔지만 진지한 주장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반대 측 토론자로 나선 안현효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가 간단히 반박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의 성적이 나쁘면 해임할 수 있었지만, FTA는 한 번 맺고 나면 결과가 나빠도 철회하기 어렵다."

애당초 FTA를 축구에 비유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월드컵 경기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집어넣는 것은 국민 대다수를 즐겁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FTA를 통해 개방된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외국기업을 누르고 미국시장을 장악한다 하여 반드시 국민 대다수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기업이 거둔 성과의 그늘에서 한숨을 쉴 이들도 많을 것이다.

성큼성큼 진행된 한미 FTA 협상, 이제 겨우 원론을 뒤적이는 토론

굳이 비유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날 진행된 토론은 좀 싱겁게 느껴졌다. 대부분 시장개방의 당위와 부작용에 대한 원론적인 논쟁에 그쳤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다양한 비유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날 논의된 내용이 매우 추상적인 것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미 FTA 1차 본협상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이런 논쟁은 어울리지 않는다. 원론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이런 논쟁은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 나서기 전에 진행했어야 했다. 지금은 보다 실증적인 분석과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왜 이제야 이런 논쟁이 벌어진 것일까? 물론 이날 토론회의 성격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다. 워낙 많은 토론자가 참가한 까닭에 심도 있고 구체적인 토론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일까?

정보공개 안 하고 연구보고서도 없으니 '관념적'일 수밖에

이날 토론회에서 송기호 변호사는 "FTA를 둘러싼 각종 토론회에서 계속 관념적인 이야기만 오가는 것은 정부가 FTA 협상을 추진하는 방식과 절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 관한 내용에 대해 철저하게 비공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발언이다.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정부는 한미 FTA에 관한 연구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용역보고서와 국책연구기관 5개의 협동 연구과제 보고서가 오는 12월에야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한미FTA 협상에 나섰다는 얘기다.

모든 게 비공개로 진행되는 상황,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조차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처음으로 한미FTA 반대측 인사들을 초대해 토론회를 열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차단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토론은 별 의미가 없다.

이날 토론회가 비유와 수사를 통한 말의 성찬, 원론적인 입장의 확인으로 끝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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