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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치공학인가? 민주주의를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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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정치공학인가? 민주주의를 살려야 [기고] 87년 체제의 진단과 극복이 요구된다
'중도개혁 세력의 위기'에 관한 릴레이 논쟁의 바통을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받았다. 최 의원은 "김영춘, 민병두 의원의 진단과 처방이 모두 틀렸다"며 정면으로 공박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핵심 병인(病因)이지, '중도개혁 세력의 통합'(김영춘)이나 '네트워크 형성'(민병두) 같은 제안은 공허하다"고 일축했다.

최 의원은 "그런 층위에서는 기껏해야 고건 및 민주당 진영과의 기계적 통합, 정치공학적 통합의 논의만 제기될 수 있다"며 "이는 도리어 새로운 갈등을 잉태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심지어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행했던 우리당의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났다"며 "(정당은) '정치기계'들 간의 논쟁장소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최 의원이 논쟁의 출발선을 '민주주의의 위기'로 규정함에 따라 그에 따른 처방도 앞선 두 의원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는 "87년 체제에 대한 진단과 극복이 필요하다"며 "시민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함께 하는 '강화된 민주주의'의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의원 스스로 "논쟁을 위한 화두라 조금 거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듯이, 그의 글은 '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 당장 혹은 중장기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성을 결여한 감이 없지 않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의 내용(최 의원은 '국민주권의 실현'을 강조했다)을 채우자는 '87년 체제 논쟁'의 반복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편집자>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먼저다.

김영춘 의원의 '릴레이 대논쟁' 제안과 민병두 의원의 '화답'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 우리당은 위기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독선이 초래한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변명은 필요 없다. 다만 처절한 반성을 통해 새롭게 일어서자는 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렇다. 논쟁을 하자. 이 나라와 주권자인 시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논쟁인들 마다할 수 있겠는가? 논쟁을 시작하자는 김영춘 의원과 민병두 의원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필자의 문제의식은 두 사람이 제기한 문제의식과는 별개의 차원임을 선언해 둔다.

그 이유는 이렇다. 김 의원과 민 의원의 문제의식은 별반 차이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제 이런 수준의 문제제기와 이런 정도의 대안을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런 식의 반성문과 '정치공학'에 시민들은 지쳤다. 입만 열면 책임 없다는 청와대, 입만 열만 잘못했다는 열리우리당. 이런 정치공학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두 의원의 논지는 이렇다.

먼저 원인에 대한 진단이다. 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안겨 준 두 가지 과제, 즉 경제체질의 변화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했고, 정치사회 개혁의 과잉으로 국민과 분리되거나 국민을 분리시켰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안이다. 여기에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 김 의원은 중도개혁 세력의 통합에 찬성한다. 미국 민주당 식 중도개혁 세력의 이념을 정당이념으로 하되, 사회원리로는 '우리만의 국가발전 및 사회통합 전략'을 갖는 정당을 주장한다. 이에 비해 민 의원은 '기존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연장선에서 민주세력의 연대를 복원하는 것'에 반대하며, 먼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진 집단이 준결사체가 될 중심을 세운 후 광범위한 지적, 문화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새로운 연대를 꾀할 것을 주장한다.

현실정치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그 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그런 점에서는 한편 수긍이 가는 논지들이다.

하지만 이런 표피적 진단과 오로지 현실정치와 정치인들 자신들만을 위한 대안 제시로 현재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재의 위기가 그렇게도 간단한 것인가? 고작 정치 지도자나 정당의 무능과 무기력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면 집권세력의 교체만으로도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차라리 무능을 이유로 깨끗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해법 아니겠는가?

문제의 근원, 문제의 뿌리,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층위다. 우리 사회는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에 처해 있다. 아니 민주주의의 만성적 위기상황이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얼핏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 차원의 민주주의, 국민주권의 실현으로서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없다. 나치즘의 헌법이론적 토대가 됐던 통치권자의 결단, '결단주의적 헌법관'이 시대를 지배한다. 강력한 지배자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박정희 시대가 미화된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대망한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유사신앙적 사회분위기를 조성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구체적 현상으로 다가온다. '갈등 조정의 제도화 실패', '의회의 형해기관화', '관료 엘리트와 사법기관에 의한 정치담론 지배'가 그것이다. 그 모든 것의 결과는 '책임정치의 실종'이다.

그래서 필자는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핵심 병인으로 놓고 이에 대한 치유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중도개혁 세력의 통합'이나 '네트워크의 형성'과 같은 제안은 공허해진다. 그런 층위의 논의구조 하에서는 기껏해야 고건 진영, 민주당 진영, 열린우리당 진영 간의 기계적 통합, 지역적 통합, 반 한나라당 연대, 반 영남 연대 수준의 '정치공학적 통합논의'만 제기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의 분당 책임론 수준에서 논의가 맴돌고 말 수도 있다.

오로지 재집권만을 위한 '기계적 통합', 과거로의 회귀, 지역주의로의 회귀, 이런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면 이는 도리어 '새로운 갈등'을 잉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당의 위기만을 강조하고, 우리당의 재집권만을 목표로 한 단기처방은 다시 한번 '우리만의 리그'가 되고 만다.

국민정당, 국민을 위한 정당,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런 층위의 논의구조 아래에서는 그저 공염불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양극화 해소 정책을 내놓는다고 시민들이 우리를 지지해 줄까? 절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훌륭한 정책을 내놓아도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상황은 뻔하다. 특정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증폭되고, '혼란' 자체를 싫어하는 시민들은 갈등 조정에 무기력한 정부와 여당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문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환경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합의와 정책을 밀고 나갈 힘의 벡터가 분산되는 것이 문제다. 이런 현상은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집권세력의 교체만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천박한 민주주의의 현실이 현재 위기의 주범이다.

사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에서도 현재의 국면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파악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실종 혹은 '정치의 왜소화'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시장의 확대와 공공부문의 축소라는 환경에서 이는 어쩌면 필연적 결과일 수도 있겠다. 정치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무관심은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기능을 마비시켰고, 정치인들의 '자기들만의 리그'는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이 위기 속에서 행했던 우리당의 '정치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참여를 추구했던 정치실험은 도리어 주권자인 시민을 소외시켰다. 정치개혁에 시민은 없었다. 정당은 정치개혁 근본주의자들의 논쟁의 장에 불과했다. 극단적으로 '정치기계'들 간의 논쟁장소였다고나 할까?

당정분리는 투표를 통해 선택한 정부의 책임소재를 불명확하게 함으로써 책임정치의 실종을 더욱 빠르게 진행시켰다. 정치 바깥의 정치, 그것은 냉소였으며, 파편화된 의견이자 사회 내에 응축된 폭탄이었다. 지난 지방선거 기간 중 박근혜 전 대표의 피습은 그간 증폭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 희대의 사건이었다. 한 주권자의 불만이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지 못했고, 극단적 방식을 통해 표현됐으며, 사건이 언론과 한나라당에 의해 철저히 '진흙탕 정치화'가 되고 말았다. 칼부림의 원인은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정략적으로 해석되고 정략적으로 이용됐다. 이 점은 피해자 자신에 의해서도 마찬가지였고, 노사모 대표에 의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는 공범이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고 더욱 더 나락으로 빠뜨리는 공범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사회경제적 정책과 개혁진영의 통합이라는 두 가지 진단과 대안만으로는 안 된다. 그 정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틀렸다.

한국 민주주의의 산 증인인 우리당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정치한 진단부터 시작해야 한다. 87년 체제에 대한 진단과 극복이 필요하다. 국민주권을 능동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함께하는 '강화된 민주주의'의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

논쟁을 위한 화두라 조금 거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결론은 이렇다. 현재의 위기는 '정치세력의 위기'가 아니다. 범 세계적인 차원의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심각한 위기국면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원인과 진단과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최소한 50년 후의 한반도의 미래, 주권자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다만 그 중심에 열린우리당이 있을 수는 있다. 열린우리당은 일관되게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주장해왔다. 열린우리당은 일관되게 반독재 민주화와 국민주권의 실현을 주장해 왔다. 열린우리당은 일관되게 지역주의 타파와 정경유착 철폐를 주장해 왔다. 턱없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그래도 민주주의의 착근을 위해 열린우리당이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징표들이 아니겠는가?

우리당의 희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논쟁을 시작하자. 단 두 의원의 문제제기와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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