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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제의 민주주의' 이룰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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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제의 민주주의' 이룰 차례다" [기고] <시사저널> 사태가 '우리의 문제'인 까닭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사회 각계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우리당이 진상조사단을 꾸린 데 이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 정치인들도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쟁점화하겠다며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지난달 25일 성명을 발표했으며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세 단체는 지난 2일 공동성명을 통해 <시사저널> 경영진이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 중에서도 지난달 24일 발표된 아주대 교수 33명의 성명은 특정 단체가 아닌 교수 개개인의 연명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성명 작성을 주도했던 김철환 교수(경제학)는 "언론을 통해 <시사저널> 사태를 알게 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방학 중인데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30명이 넘는 동료들이 연명 의사를 보내왔다"며 "이번 사태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은 지표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한 명의 지식인으로서 사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는 '우리의 문제'다

우리는 드디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다. 우리의 의식도 이에 걸맞게 변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명색이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국가인데도 우리 사회 도처에서 전근대적인 전제국가나 후진적인 '바나나 공화국'(나라의 주요 생산품이 몇 가지에 한정돼 있어 국가경제가 위태로운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기형적인 의식구조가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에서부터 "내 금반지 팔아서 만든 학교이니 내 자식에게 대물림 하겠다"는 대학의 사유화 의식에 이르기까지 부끄러운 사고가 판을 치고 있다. 최근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의 인식이 여기에 하나를 더하고 있다.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라는 논리는 아마도 사장(편집인)이 주인이니 주인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의식에 근거한 것 같다. 그렇다면 대학의 주인은 이사장이고, 이사장 마음대로 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단 말인가? 병원의 주인은 병원장이고, 환자의 입퇴원을 결정하는 것은 병원장인가?

언론의 편집권은 독자들의 알 권리를 염두에 두고 상식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될 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편집인으로서의 권한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우선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독자, 더 나아가 독자의 추상적인 실체인 시민을 가벼이 여기는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금창태 사장이 "편집권은 편집인의 것"이기 때문에 직장을 폐쇄해야 된다고 믿고 있다면 지난달 31일에 선포한 <한겨레>의 '취재보도 준칙' 41항인 "(진실보도우선) 신문사나 기자 개인의 이익보다 진실을 앞세운다. 독자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신문사나 기자의 불이익도 감수할 수 있다"는 부분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단순한 노사분규? 기자들을 두 번 죽이는 말

<시사저널> 사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시사저널> 사태는 기자 노동조합과 경영진 사이의 단순한 노사분쟁인가? 금창태 사장은 그렇다고 확신에 차서 대답한다. 또한 <시사저널> 사태를 조류독감처럼 철저하게 차단하고 방역하려는 '족벌언론'들도 이런 시각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함구하고 이를 합리화하고 있다.

언론학자들도 <시사저널> 문제에 개입을 꺼리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정치인들도 이런 시각에 안주하고 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시사저널>의 사태는 결코 기자들이 월급 더 받자고 단행한 파업이 아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회사의 경영이 어려울 때 1년 6개월 이상 월급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취재하고 기사를 만들어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발행한 사람들이다.

제발이지 <시사저널> 사태를 노조원들의 처우나 후생 증진을 요구하며 벌린 노사문제로 매도하지 말자. <시사저널>의 기자들은 그 동안 올곧은 '기자정신'으로 '권력·금력·종교' 등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사실과 진실을 밝혀 왔었다. <시사저널>이 오늘의 정론지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현장에서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불굴의 탐사정신과 온갖 상처와 모욕을 견디며 자립경영과 편집권 보장을 지켜 온 기자들의 노력과 용기에 기인한 것이다. 단순한 노사분규로 <시사저널> 사태를 호도하는 것은 기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사태의 본질은 거대 자본권력에 대항하는 언론의 '몸부림'

<시사저널>의 본질은 거대 자본권력의 언론 장악에 대항하는 언론 스스로의 몸부림이다. 거대 자본권력에 대해서 언론이 스스로 굴복하는 것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언론의 직무유기이자 타락이다. 이번 파업은 현실에 이미 만연되기 시작한 이런 풍토에 순치되기를 거부한 <시사저널> 기자들의 몸부림이다. 잘못된 현실과 관행에 적당히 타협하기 보다는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용기의 발로다.

이제 정치권력이 물러간 자리에 자본권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거대한 자본권력인 삼성은 이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과거 일부 권력지향적인 언론 종사자들이 청와대 비서실이나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면, 요즘은 삼성으로 가고 있다. 검찰이나 정부 등의 소위 힘 쓰는 부서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무원을 끝내고 삼성으로 향하고 있다. 국회의원도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이건회 삼성 회장을 소환할 수 있느냐"며 알아서 고개를 숙인다.

이제 삼성은 우리 사회의 '공룡'이다. 정부도, 사법부도, 입법부도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역량을 잃고 있다. 지나친 힘의 집중은 건전한 민주사회로의 이행을 저해하는 걸림돌이다. 우리는 과거 정치권력의 집중으로 인한 폐해를 겪어 왔다. 무고하게 죽어간 인혁당 사건의 비극이나 술에 취해 독재하는 대통령을 향해 독재한다고 말했다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했던 일들이 바로 이런 역사다. 만약 당시의 사법부가 비대해진 정부권력을 적절히 견제해 주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정녕 역사는 반복되나

우리 사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되고 각 개인의 능력이 조화롭게 발휘될 수 있는 민주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권력 집중을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제 겨우 정치적인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경제의 민주주의'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외적 성장에만 집착하게 되면 비대해진 자본권력은 더욱 비대해질 것이다. 비대해진 권력의 부작용과 폐해가 어떤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더 나아가 자본권력의 횡포에 스스로 알아서 기는 '마름'들이 도처에서 창궐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부당한 정치권력에 온 몸으로 추파를 던지고 부역했던 수많은 '마름'들과 '돌쇠'들을 보아 오지 않았는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심히 우려되는 사태다.

자본권력을 견제해 우리사회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시사저널>의 기자들은 이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기존의 '사주언론'이나 광고에 볼모 잡힌 대다수의 언론에서 이제 성역화 되어가고 있는 삼성의 문제를 <시사저널>은 독자들의 알 권리라는 점에서 가감 없이 기사화했고, 이를 부당하게 삭제한 사장의 폭거에 기자들이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월급 인상도 아니고, 하루 더 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주장은 "언론이 언론답고, 기자가 기자답고, 뉴스가 뉴스다워야겠다"는 것이다.

이제 <시사저널>의 문제는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사저널>의 문제는 민주사회의 근간이 되는 언론의 독립성이 침해되는 가공스러운 일이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언론이 자본권력에 예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가장 우려스러운 사태인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우리 시민사회가 방관하고 침묵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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