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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처럼 밀어붙이고 이제 와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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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처럼 밀어붙이고 이제 와서 '위로'? [기자의 눈] 대추리 '이주 합의' 이후의 풍경들
"못 믿겠다는 분들도 있어."

지난 4년여 간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하며 싸워 온 경기도 평택 대추리 주민들이 정부와 이주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13일 전해졌다. 대추리 신종원 이장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날 저녁 열린 주민 촛불문화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충분히 대화하자니까 이미 충분히 했다고 하더라"

그는 "갑갑하다"며 여러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대추리 인근 군 부대의 전파 방해로 자주 끊기는 짧은 전화통화 속에서도 그의 '갑갑함'은 어렵지 않게 전달됐다.

"대화가 좀 주민들이 원하는대로 못됐어. 사실 당연한거야. 주민들은 이제 싸움 안하고 대화로써 풀겠다고 한 거야. 그런데 지금까지 싸움만 해 오다 보니 대화를 할 준비가 안 됐던거지. 주민들끼리도 이견이 있었어. 한번에 다 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래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상하자고 했는데, 정부는 지금까지 충분히 했다는 거야. 시간이 없다고. 이제 정리 단계라고 본 거지. 정부 측에서 봤을 땐 주민 중 4분의 1밖에 안 남은 상황이니까. 주민들이 대화로 문제 풀려고 충분한 시간 달라고 하는 걸 정부는 '시간 끌기 작전' 아니냐고 의심하더라고."


지난달 1일, 새해가 밝자 마자 주민들은 정부에 대화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6월 구속된 주민대표 김지태 팽성대책위원장의 석방이 결정적 계기였다. 정부는 당일 기자회견을 열고 "협상 제안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끝까지 다할 것이라고 다짐도 했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에서 앉은 정부는 지난해 5월 행정대집행과 9월 빈집 철거에서 등장했던 포크레인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다. 시간을 두고 대화를 해보자는 요구도, 한평생 농사만 지어 온 이들에게 상가 분양권을 주는 것은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는 설명도, 미군의 기지이전에 대한 재협상 여지를 열어놓아야 하지 않겠냐는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시간이 없다'며 합의를 재촉할 뿐이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지난번 빈집철거 때처럼 강제철거를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주민들의 대화 제안을 일종의 '항복'으로 받아들여 무서운 속도로 밀어붙이기만 했다.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이런 속내를 주민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로 한 주민들은 협상을 계속 진행시켰다. 한 뼘 논이 없어도 살 수 있던, 서로 돕고 사는 인심좋은 마을 공동체를 더 이상 깨트릴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결론이었다. 투쟁이 계속될 경우 생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4년의 투쟁은 이미 정부와 협상을 시작하던 순간 그렇게 마무리됐던 것이다.

결국 지난달 2일 대화가 재개된 지 42일 만에, 12차례의 협상 끝에 합의는 완료됐다. 20개 조항의 합의문에는 '3월 31일까지 주민 자진이주 완료'라는 항목이 포함됐다. 지난 1월 주민들이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전하지도 않던 보수 언론들이 이번엔 "미군기지 이전을 가로막던 물리적 장애물이 완전히 제거됐다"며 크게 환영했다.

'갈등 해결 능력' 바닥 드러낸 정부

합의가 발표되자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주민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정현 신부는 지난달 <프레시안>에 보내온 기고문에서 "나는 더 이상 주민들에게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생계 문제가 걸린 이주 협상에서 범대위가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 대추리 마을 입구 ⓒ황새우울

이번 사태를 통해 범대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더 큰 고민을 떠안게 됐다. '평택 문제'는 사회 갈등 해결에 있어 정부의 무능력을 고스란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식적인 대화'를 원하는 이들을 '한번 정해진 정책은 물릴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몰아붙이기만 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주민들의 투쟁 3년여 만에 처음 주민과의 대화를 열었다. 그러나 2차 협상을 앞두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및 '공무 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수배중이던 김지태 위원장이 경찰에 자진출두하자 구속해 버렸다. 김 위원장을 전격 구속한 것은 주민들이 정부의 대화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대화 중단을 초래했다. 범대위의 문정현 신부는 김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며 21일간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진행했지만 만사휴의. 김 위원장에게는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정부의 '비상식적인 갈등 해결 방식'은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4시간 마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검문하기 위해 대추리와 도두리에 설치된 전경 부대의 경비초소는 10여 개가 넘었다. 전라도에서까지 동원된 전경들은 '문화제'를 하는 날에도 달려와 마을을 지켰다. 국방부는 헬기를 동원해 수십 ㎞에 달하는 철조망을 황새울 들판에 둘렀다. 지난 7일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평택기지 반대 시위에 7만4210명이 참여했으며 이를 막는데 18만7800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됐다.

정부의 이같은 '꽉 막힌' 태도는 평택 문제뿐 아니라 한미 FTA, KTX 여승무원 문제 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명숙 총리는 대추리에 와서 무엇을 느낄까?

한명숙 국무총리는 오는 16일 대추리를 위로차 방문한다고 한다. 신종원 이장은 "왜 오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온다고 한들 주민들이 반기는 것도 아니고, 이 마을이 보전될 거라는 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내용이 없잖아. 그렇게 한번 와보라고 할 땐 오지도 않더니…."

재야운동 출신이며 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내던 시절 새만금 공사 반대 삼보일배에 참여하는 등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한 총리에게 주민들은 일말의 기대를 걸었었다. 하지만 한 총리가 지난 5월 "일정상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행정대집행을 지시함에 따라 주민들에게 한 총리는 '안타까운 얼굴'로 기지 이전을 위한 행정집행을 촉구했던 사람으로 남았다. 당시 그는 "경찰과 주민.반대단체 회원들의 부상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적극적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또 9월 빈집 철거 당시에도 그는 "주한미군 재배치 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일인 만큼 법 절차에 따라 진행하라"면서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지난해에 비해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마을 어귀에 주둔하고 있는 전경들은 그날도 경비를 설 것이다. 마을 주민이 아닌 외부인은 드나들 수 없다며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 온 '평택 지킴이'들을 차에서 끌어내리던 그들이 한명숙 총리 일행을 어떻게 맞을지 궁금하다.

담벼락마다 그려져 있는 시화, 저녁마다 촛불문화제를 하는 마을창고 안에 걸려 있는 주민들의 초상화, 부숴진 대추분교 터를 메운 조각작품들, 그리고 평화동산과 파랑새…. 이 아름다운 마을을 뒤늦게 찾은 한 총리는 무엇을 느낄까?
▲ 대추리 역사관 <대추리 사람들>의 저녁 풍경(왼쪽), <대추리 사람들>의 내부(오른쪽). ⓒ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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