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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줄로 결론지을 수 없는 4년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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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네줄로 결론지을 수 없는 4년의 세월" [아! 평택] 주민-정부 협상 타결의 의미와 한미군사동맹
지난 13일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해 온 경기도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정부간 '이주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오는 3월 31일까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을을 떠나게 된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땅을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내줄 수 없다며 마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의 4년간 싸움이 사실상 막바지에 접어든 셈이다.

지난 2003년 11월 평택 팽성읍 일대가 미군기지에 수용된다는 방침이 발표되자 평택의 71개 마을 이장들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팽성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이들은 일방적인 정부의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트랙터 전국순례' 등을 통해 언론이 외면하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주민들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 도두리에 모였다. 2005년 2월 전국 1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평택과 서울에서 집회와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각지에서 소식을 접한 개인들도 하나둘 대추리, 도두리로 이사와 '평택지킴이'를 자청하고 주민들의 투쟁을 도왔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끝냈다'며 요지부동이었다. 지난해 5월 행정대집행과 9월 빈집 철거 등 정부는 예정된 계획대로 사업을 착착 진행시켰다. 군 병력과 포크레인 등을 동원한 철거 작업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주민과 '평택지킴이'들이 다치기도 했지만, 정부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유감스러운 일" 정도로 치부했다. 지난 1월 재개된 주민과의 협상을 42일만에 끝낸 정부는 '2월 말부터 공사용 도로를 개설하기로 했다'며 보도자료를 내는 등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기지이전이 빠른 속도로 진척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주민들의 투쟁 4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과제를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서울대책위원회의 기고 세 편을 연재하기로 했다. 이주 합의는 끝나지만 지난 4년간의 투쟁은 민주주의, 한미동맹, 한반도 평화 등 우리사회의 핵심적 이슈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정부가 은폐했던 '평택 투쟁'의 진실

"이주합의"

"2007년 2월 13일.


지난 1월 2일부터 시작된 주민-정부 간의 이주 전격 합의, 총 12차례, 42일 만에 타결.

팽성읍 노와리와 남산리(CPX 훈련장) 2곳에 주민 이주단지가 조성할 예정이며 주민은 3월 31일까지 대추리를 떠나기로 함.

이로써 3년 갈등 종결, 미군기지 확장 사업의 최대 걸림돌 제거됨."

이 단순무지한 내용의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4년의 세월을 단 네 줄로 결론지을 수 있는 기자의 '우매한 시각'에 섬뜩함을 느낀다. 물론 기자는 '객관적 사실관계'를 운운하며 억울함을 호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주합의'라는 타이틀의 행간에 은폐돼 있는 팽성 주민들의 무수한 세월의 설움과 고통, 서슬 퍼런 분노와 한숨을 조용히 독해할 이 나라 국민 대다수의 양심과 지성을 믿는다.

정부는 협상의 그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를 멈추지 않았다. 이주단지가 조성된 뒤에 이주하겠다는 주민의 최소한의 요구는 깡그리 무시됐다. 또 설 연휴 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강제철거에 돌입하겠다는, 그렇게 되면 이전에 약속한 것마저 보장할 수 없다는 강압적 분위기가 '대화'의 마지막 수순이었다.

주민들은 지난 4년 동안 미군기지 확장계획 자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다. 주민들은 언제나 '대화 제의'와 '탄압'을 동시에 받아야 했고, 정부는 이들이 의당 받아야 할 상식적인 요구를 뻔뻔한 수법을 통해 계속 유보해 왔다. 대추 초등학교의 파괴와 군사보호구역, 마을을 둘러싼 두 겹, 세 겹의 검문소와 고립, 감시와 통제, 주민대표의 구속과 실형선고라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들에 대해서 정부는 그 어떤 책임감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기지이전에 관한 재협상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주민대책위의 요구는 애초에 묵살됐다.

주민들의 이주를 눈앞에 두고도 정부는 협상 자리에서조차 '사과'도 아닌 '유감 표명'을 운운하며, 이들이 받았던 고통과 좌절에 대해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유감을 표명하러' 대추리를 방문하기로 한 한명숙 총리가 결국 오지 않았다는 걸 보면 아마 정부는 진정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히 '야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가혹한 폭력과 그 처참한 잔해를 말이다.

한미동맹이 완성한 '평화적 생존권의 말살'
▲ 지난해 1월 주민들은 평택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전국순례를 했었다. ⓒ프레시안

주민-정부 간의 이주합의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을 지속해가는 운동진영에게 매우 중대한 계기가 되고 있지만, 정부의 기지 확장사업 계획에서도 역시 중요한 '결절점' 이 되고 있는 듯하다. 앞선 기사의 표현대로 "기지 확장 사업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의미는 한미군사동맹이 기필코 완성하고자 하는 동북아 최대의 전쟁기지 건설 작업에 일단락이 지어졌다는 의미다. 또 이는 한미군사동맹이 완성한 한국 민중에 대한 '평화적 생존권 말살'의 한 표본이 비로소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시간 동안 협의매수의 '이해 당사자'로서 주민의 이주·보상 문제를 부각시키고, 평택 범대위를 '반미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매도해 평택투쟁의 정치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삭제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반전평화운동의 주체로 "전쟁기지에는 땅 한 평도 못 준다"고 외쳐 온 주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은폐해야 했다. 또 보편적인 평화에 대한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해 온 주민공동체를 철저하게 파괴해야 했다. 평화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투쟁을 '보상을 위한 이해당사자들과의 갈등 문제'로 치부해버리기 위해 정부는 무르익은 곡식의 수확을 금지하는 것으로 주민의 생계를 압박했다. 철조망과 군부대에 의해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 칠십 평생을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먹고살아 온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정부와의 협상 자리에 앉는 것뿐이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이 함축하고 있는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패권전략의 실체는 주민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액수로 잠시 무마됐다. 또 야만적인 국가폭력은 '국책사업의 절차적 과정'으로 완벽하게 합리화됐다.

한미동맹의 정치적 진실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 지난해 5월 정부는 주민 및 평택 범대위가 사용하고 있던 대추분교를 강제적으로 철거했다. ⓒ프레시안

그러나 우습게도 정부가 그토록 집요하게 빨리 결론짓고 싶어 했던 주민 이주 결정이 끝나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기지건설 비용이 공개됐다. 애초의 정부의 주장과 비교하면 2배도 넘는 돈인 10조 원을 고스란히 한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명백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개정 협정 위반이다. 게다가 국회에서 비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방위비 분담금까지 포함된 엄청난 규모의 '국민혈세 퍼주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굴욕적인 협상의 경계가 국회의 결정권까지 무시되면서 막무가내로 진행된다면 갖가지 문제들이 당연히 발생할 것이다.

팽성 주민들의 저항이 기지 확장 사업의 최대 걸림돌이라며 큰소리 뻥뻥 치던 정부는 이 문제를 또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이젠 국회를 상대로 협상이라도 할 것인가? 미국의 전쟁기지에 내가 낸 세금을 내줄 수 없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제기되면, 정부는 또다시 국민전체를 반미외부세력으로 매도할 것인가? 여기서 정부가 협상할 '이해 당사자'는 누구인가?

평택의 싸움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가 철저히 은폐하려 했던 평택미군기지반대운동의 보편적이며 정치적인 의미 말이다. "평택투쟁은 반미폭력세력들의 전유물"이라며 평화를 외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고립시켜 그들의 생존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 기어코 주민을 쫓아내버린 현실을 자축하자마자, 은폐됐던 한미 동맹의 정치적 진실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지 않은가.

졸속협정과 비용문제라는 절차적 문제를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한미전쟁동맹의 야만적인 속성이다. 작년 5월 이후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아니 한국사회 전체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내팽개쳐졌다. 이제 정부는 아예 거리낌없이 천문학적 액수의 국민 혈세를 미국에 갖다 바치려 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이 나라 입법부의 의사결정과정뿐만 아니라, 민중의 눈물과 생명, 그리고 평화와 민주주의 전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과 한미동맹의 현대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 평택투쟁은 이에 맞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민중들의 평화와 생존의 권리가 보편적인 정치적 권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군대와 경찰의 물리적 힘을 쉽게 동원할 수 있었던 한미동맹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땅과 집을 원하는대로 빼앗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편적인 권리로서 평화와 생명의 가치는 전쟁, 그리고 군사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평화를 위한 투쟁은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이 완전히 말살된 지금 이 장소에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한다.

평화를 택하는 길
▲ 대추리 평화동산에 세워져있는 '미군기지 확장반대' 깃발들 ⓒ들사람들

북과의 핵전쟁을 실전처럼 연습하는 RSOI훈련이 3월에 진행될 예정이다. 또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미일간의 공동작전계획이 구체화되고 있으며 한미동맹을 현대화하려는 한국과 미국은 끊임없이 무기와 군비 증강을 촉구하고 있다. 평택의 전쟁기지를 통해 한반도는 동북아 신속 기동군을 양산하며, 동아시아 분쟁에 깊숙이 개입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벌이고 있는 공습준비, 중동 내 확전에서는 이라크 및 레바논 파병 때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소용돌이의 주체가 될 것이다.

팽성 주민의 삶을 통째로 짓밟으며 한미동맹이 들어선 그 길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살육의 전쟁과 야만적 폭력의 세상이 분명하다.

지난해 5월 황새울 들판에서 무장한 군경에 맞서 높이 울려 퍼지던 함성소리들, 전국 곳곳에서 함께 분노하며 외쳤던 수많은 활동가와 시민들의 실천들, 그리고 900여 일 동안 팽성 주민들이 밝혀 온 촛불만이 희망이다. 그것이 전쟁이 아닌 평화를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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