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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기술의 완성형, '천하장사' 혹은 '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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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힘과 기술의 완성형, '천하장사' 혹은 '도사' [별을 쏘다·17] 우리가 강호동에 주목하는 이유
1989년 '제44회 전국 체급별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1990년 '제18회 천하장사씨름대회 천하장사', '제47회 전국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1991년 '제21회 천하장사씨름대회 천하장사' ' 54회 전국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1992년 '제24회 천하장사씨름대회 천하장사'. 무시무시한 포효를 하며 모래판을 뒤흔들던 천하장사 강호동이 군림했던 대회들이다.

물론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강호동은 그때의 강호동이 아니라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TV에 등장한 이후다. 모래판에서는 '힘'의 상징이었던 무거운 신체를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만들고, '샅바'대신 '색동저고리'를 입고, '천하장사' 대신 '도사'를 선택한 강호동.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중매체 등장 이래 이렇게 가장 극적인 2개의 정체성을 유려하게 구사하며 인기를 구가하는 것은 강호동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이준희를 제친 이만기, 그를 제쳤던 '천하장사' 강호동
▲ 1991년 제23회 천하장사 결승에서 남동하(현대)를 3대0으로 꺾고 천하장사가 된 강호동(일양약품). ⓒ연합뉴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이미 너무 식상하지만, 전두환의 스포츠 전략은 1982년 프로야구와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외에도 지금은 초라해져버린 '씨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3년 프로로 시작된 '민속씨름 장사대회'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장사'는 다름 아닌 이만기였다. 당시 이만기는 힘으로 제압하는 '인간기중기' 이봉걸과 '모래판의 신사'라 불리던 이준희를 화려한 기술로 물리치며 모래판에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83년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천하장사'로 등극했다. 그리고 10번의 천하장사, 백두장사 18회, 한라장사 7회를 포함해 42회의 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살아있는 전설 이만기를 모래판에 무릎을 꿇게 하고 '천하장사'의 맥을 이은 이가 바로 다름 아닌 '강호동'이었다. 만20세의 강호동은 힘과 기술을 모두 겸비한 완성형의 '천하장사'였다.

가벼운 복장으로 남성적 육체를 극대화하며 가장 자연스런 '힘'을 과시하는 씨름의 타이틀은 '장사'다. 사전 그대로 '몸이 우람하고 힘이 아주 센 사람'. 더더군다나 천하장사라니, '하늘 아래'에서 최고의 좌에 있는 장사라는 칭송이 아닌가.

'천하장사' 강호동의 질주는 놀라웠다. 사실 신체를 부비며 힘을 겨루는 것에 대한 관심은 시공간을 넘어선 불멸의 관심사다. 영화 <록키 발보아>에 등장하는 늙어버린 록키와 전성기를 맞이한 헤비급 챔피언 매이슨 딕슨과의 가상경기는 물론 권투에서 최근 이종격투기까지 실존하는 인물의 힘겨루기 한판, 거기에 마징가Z와 태권V의 가상대결까지. 힘의 구도 안에서의 겨루기는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단언하건데 강호동은 프라이드와 K-1을 상상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최강 중의 최강을 상징하는 '천하장사'였다.

1993년, 우리는 모래판이 아닌 무대 위에서 그를 만났다
▲ 1994년 '개그맨'으로 다시 등장한 강호동 ⓒ연합뉴스

그런 그가 '천하장사'의 호령을 뒤로 하고, '개그맨'이라는 타이틀로 TV에 등장했다. 1993년, MBC <오늘은 좋은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행님아~"를 외치며 뛰어다녔고, 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심한 몸짓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천하장사'가 경상도 말씨를 구사하며 어리광을 부려대는 상황은 순간 균형이 흔들려 움찔하는 신체의 반응에서 기인하는 어색함일 수도 있다. 그리고 천하장사의 포스(force)는 1년 안에 '코미디 부문 우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고, 그의 무게감 있는 등장에 TV 개그 판 역시도 휘청거린 것이 사실이다.

씨름선수, 그것도 맞춤옷을 입듯 '천하장사' 가운에 정확히 들어맞았던 강호동의 TV 진출은 신선함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남성성의 대표적 상징, 즉 힘의 은유인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그가 개그맨으로 전업한 그 사실만으로도 씨름계, 방송계는 물론 시청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TV를 통해 보던 '천하장사' 강호동은 이제 모래판이 아닌 조악한 무대에서 '행님아'를 외치며 뛰어다니는 덩치 큰 개그맨이 되어버렸다.

우람함을 드러내던 육체는 이제 '개그'라는 장르 속에서 한낱 소재에 불과했고, 그 육체는 강호동에게는 '천하장사'라는 타이틀이 희미해지는 그 순간까지 유효했다. 시청자들은 그 힘의 진실 혹은 거짓 속에서 강호동을 인식했고, 위협적인 무게에 때로는 놀라기도 하고, 허구 같은 힘의 개그에 웃기도 했다.

'소(笑)'에서 '미(美)'로…그의 '몸개그'도 주춤하던 시절

그러나 점차 개그, 즉 전통적 의미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고사하며 '행님아'의 강호동 역시 TV 쇼오락프로그램의 트렌드와 시청률, 그리고 대중문화의 급격한 과잉시기에서 주춤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심은하로 대변되는 9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대중문화의 코드는 '소(笑)'보다는 '미(美)'로 전환했고, '개그'보다는 '쇼'에 열광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계속되는 약세는 천하장사 강호동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늪이었고, 90년이 끝나갈 때까지 대표적인 수식어를 붙일만한 유행은 불지 않았다.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젊은 세대들은 힘 좋은 남성성보다는 능력 있고, 세련된 남성/여성을 희망했고, 유행을 주도하는 그/그녀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아름답고 멋진 이미지와 시각적 청각적 감각이 과잉되었던 90년대 중후반, 힘세고 무거운 강호동의 '몸개그'는 촌스럽거나 혹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강호동은 세련된 화법과 유창한 말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전히도 힘이 넘쳐나는 '천하장사'였기 때문이다. '힘센 사람'도 웃길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청자들은 힘의 허구로부터 시작하는 웃음보다는 화려한 이미지를 열망했고,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이'들을 조금씩 더 멀리하기 시작했다. 1996년 즈음 강호동도 주춤하고, 개그도 주춤했던 그 시절, 강호동을 롤모델(role-model)로 삼아 씨름선수 박광덕이 TV에 개그맨의 이미지를 얻고자 데뷔했지만, 그 역시도 쓴잔을 마셔야만 했다. 물론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강호동이 토크쇼에서 '기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그계, 넓게 이야기해 방송연예계에 전통적 의미의 코미디 프로그램보다는 토크쇼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강타하기 시작했다. 말 잘하고, 재치를 겸비한 이들의 주무대가 된 당시 서세원과 신동엽, 남희석 등의 기세 속에서 강호동이 '기술'을 살짝 들이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캠퍼스 영상가요>. <캠퍼스 영상가요>의 진행을 맡았던 강호동은 힘과 말의 균형을 조금씩 맞춰가기 위한 연습을 시도했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대학생들은 강호동이 가진 힘에 도전이라도 하듯 우스꽝스럽고 엽기적인 '힘의 희화'를 시도했다. 온갖 차력과 기괴한 힘자랑이 난무했고, 시청자들은 물론 강호동까지 웃게 만들었다.

'행님아'가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드디어 강호동은 '공포의 쿵쿵따',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라는 코너에서 일약 진행자로서 새로 출발했다. 씨름판에서의 강호동, '천하장사'가 될 수 있었던 '힘'과 '기술'의 완성을 향한 몸짓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세련됨을 갈망했던 90년대 중후반을 지나 강호동은 자신의 세대와는 다른, 보다 젊고 감각적인 세대들과 호흡하기 위해 주변부로의 일탈을 계획한 것이다. 남성성의 선호가 '힘'을 뛰어넘은 그러니까 꽃미남 혹은 훈남에게 빠져드는 시점에서 강호동은 '힘'이라는 남성의 상징이 아닌 '기술'을 가진 진행자로써의 변태과정을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다.

완성형을 향해가는 변태과정. 그는 '강호동의 천생연분',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X맨', '야심만만'으로 이어지는 코너에서 스스로 나서지 않고, 주변에서 이야기했다. 아침식사 때부터 삼겹살을 먹어치우는 우악스러운 힘을 쓰다가도 그를 향해 '형님아~'를 외치는 몸집 작은 캐스트들에게 살짝 당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명언과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서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이미 '미(美)'와 '소(笑)'의 매력을 지닌 이들이 가득하다. 감각적인 세대들에게 호감으로 어필하는 연예인들 사이에서 그는 물리적 의미의 '호감'을 구걸하지 않는다. 윽박지르듯 시청자들에게 그가 가진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모래 위에서 그러했듯 강호동은 그들 곁에서 기술을 걸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힘'과 '기술'의 완성형, 그를 주목하는 이유
▲ 그는 2007년 현재 알록달록한 문양의 옷으로 육체를 모두 가린 채 볼에는 연지곤지 찍어가며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보이면서도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허점을 노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무릎팍 도사'가 됐다.ⓒMBC 캡쳐화면

강호동은 '힘'과 '기술'의 완성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래판에서 천하장사를 거머쥐었던 강호동의 위력이 '무릎팍 도사'라는 타이틀로 재연되고 있다. 모래판 위에서 과감하게 육체를 드러내고, 힘을 과시하며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는 기술로 1992년 '제24회 천하장사씨름대회 천하장사'를 마지막으로 씨름판의 전설이 됐던 강호동, 그는 2007년 현재 알록달록한 문양의 옷으로 육체를 모두 가린 채 볼에는 연지곤지 찍어가며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보이면서도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허점을 노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무릎팍 도사'가 되었다.

방송계 안에서 그의 활약을 두고 시청률에 기댄 상업적인 노림수라고 평하더라도 그는 지금 '무릎팍 도사'로 군림하며 연예계의 거물들에게 훈수를 두고 있다. '힘'과 '기술'의 완성형, 그 과정에 있는 천하장사 강호동을 모래 위가 아닌 미디어에서 주목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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