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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단일화는 '그들만의 담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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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단일화는 '그들만의 담론'일 뿐 [2007 대선이야기]왜,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가?
140여석의 원내 1당이자 정신적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끝나기도 전에 정가의 관심은 후보단일화에 모였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이 파행 직전까지 가면서 차마 관심과 애정을 보내기가 민망해진 탓도 있지만 그래도 5년의 준비 끝에 힘겹게 원내 1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보 앞에서 '후보단일화'를 논의한다는 것은 사실 '예의가' 아니다.

신당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후보도 자신에게 올 관심과 후광이 '후보단일화' 논의로 분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11월 중순까지는 '후보단일화' 정국으로 불러도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언론과 정치권의 이해관계의 산물

후보단일화 논의의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대선구도는 너무도 단조롭기에 흥미유발을 위해 어떻게든 경쟁구도를 만들어보려는 언론의 이해관계가 있다. 둘째, 극적인 범여권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여 'Again 2002'를 만들려는 범여권의 이해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후보단일화를 통해 국민들이 얻는 이해는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국민들도 후보단일화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라며 응수할 수 있다. 그동안 실시됐던 여론조사에서 후보단일화에 대해 필요하다는 여론이 과반을 훌쩍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담론' 아닌 '여의도 담론'

한겨레-리서치플러스의 10월 10일자 조사에 의하면 범여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0.4%는 '매우 그렇다', 31.4%는 '그런 편이다'라고 답해 61.8%가 '후보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범여권 정치세력이 후보를 단일화해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후보와 양자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KSOI 10월 3일자 여론조사를 보면 다소 상이한 결과가 나타난다. 범여권 단일화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 각각을 놓고 후보단일화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했다. 그 결과 문국현 후보에 대해서는 '단일화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30.1%, '단일화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46.2%로 나타나 후보단일화 대상으로 포함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우세했다.

이인제 후보로 대해서는 평가가 더 혹독했다. '단일화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29.4%에 그쳤으며 '단일화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5.9%에 이르렀다. 당시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조순형 후보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주요 대상으로 거론되는 세 주자 모두 단일화대상으로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은 후보단일화에 대한 여론이 다분히 비판적임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대상도 없는 후보단일화 논의는 허상에 가깝다. 후보단일화 논의가 국민들의, 아래로부터 분출되어 나오는 절박한 요구가 아니라 정치권의, 언론의 프레임에 의해 부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61.8%의 여론도 실은 관여도와 절박성이 낮은 여론으로 힘을 받기 어려운 여론이다. 즉 후보단일화는 '여의도 담론'이자 '그들만의 담론'이지 국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 범여권 후보단일화 대상ⓒKSOI

명분과 진정성 없는 후보단일화 논의

2002년 노무현-정몽준간 후보단일화 논의에는 이대로 가면 민주화세력이 '수구냉전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배어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절박함이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냈다. 절차상의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동기의 진정성만은 무시하기 힘든 진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후보단일화 논의는 그 어떤 설득력도 지니지 못한다. 후보단일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최소한의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단일화 대상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이 비슷하거나, 둘째 2002년 대선과 같이 후보들간 가치와 지향이 다를지라도 지지층이 중첩되거나, 셋째 단일화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은 그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후보단일화의 명분으로 거론되고 있는 '반한나라당 전선', '민주평화개혁세력의 재집권'은 그 어떤 울림도 없는 그들만의 명분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반한나라당' 전선이 아니라 무능하고 기득권화된 '반민주개혁세력 전선'에 더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후보단일화 논의는 그 속에 숨어있는 '반동성'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정치를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에너지가 아닌 정치엘리트들간의 협상의 산물로 왜소화해버린다는 점에서 그렇고, 현실정치권에서 진보세력과 소수세력의 입지를 형해화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후보단일화 논의는 정치세력에 대한 관심을 미래로 유예하면서 현재의 정치활동에 대해 몰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후보단일화 논의와 뒤섞인 신당 경선이 국민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왜'에 대한, '무엇을 위한'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는 후보단일화는 결국 앞서가는 사람을 선택하게 만드는 순응주의, 그리고 퇴행적 결정으로 귀착되기 십상이다.

후보단일화, 서로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

'후보단일화'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의 진정성을 최소한이라도 담아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그 프레임은 '왜 단일화인가',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과 이에 대한 해답을 담아야 한다. 이 과정은 후보단일화 대상들이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상호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정책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 상황들을 보면 이러한 조건이 일정부분 무르익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후보는 개발과 성장담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으며 최근 발표된 교육정책에서도 자율성, 선택의 다양성 기조가 담겨있다. 물론 이명박 후보의 정책 골간이 성장담론을 취하고 있다는 것 외에 더 깊이 들어가면 아직은 모호하고 모순투성이다. 여론상의 절대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측면에서는 구체적이지 못하며 여전히 취약하다. 정책이 실효성을 담보하도록 벼려지기 위해서는 논쟁과정, 즉 정책에 대한 비판과 이에 응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나 지금까지의 독주체제하에서는 사실상 이 과정이 부재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비한나라당 진영으로 시야를 돌리면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신당 후보로 선출된 직후 제 일성이 '차별없는 성장'이고 '정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문국현 후보도 '5%만이 행복한 사회'를 비판하며 양극화해소를 최우선 해결과제로 내세웠고, 권영길 후보의 민주노동당은 복지와 양극화해소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정책에 담겨있는 정치 수사와 실천의지라는 측면을 제외한다면 현 시점에서 비한나라당 진영 후보들간의 최소 공통분모는 존재하는 듯하다.

후보단일화 논의는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 부분을 검증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후보들이 과거의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실천 의지를 반성하고 극복의지를 보이는 데서부터 불발해야 한다.

정동영 후보는 그동안 실용주의라는 이름하에 모호한 행보를 보여 왔던 점을, 문국현 후보는 CEO가 아닌 국가지도자로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점을, 권영길 후보는 진보정책에 대해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후보단일화에 대한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가 분출된다면 그 때야 말로 '후보단일화'가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대선후보들 간 논쟁이 활발해지고, 각자의 정책적 차이가 분명해지며 정책이 구체화될 것이다. 건강한 후보단일화 과정은 자연스럽게 논쟁을 수반하게 되며, 서로의 유사성과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비한나라당 진영(범여권) 뿐만 아니라 이명박 후보에게도 체급이 맞는, 그럴듯한 경쟁상대가 출현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무관심속의 독주 보다 낫다.

정치적 거래가 아닌 '가치와 정책 연합'을 위해

현재 범여권의 후보단일화 논의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상층부의 정치적 협상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적 요구라는 긴장이 결여된 후보단일화 논의는 정치적 거래로 전락하기 십상이고 이 과정은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와 지분이 교환되는 추악한 거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대상으로 이인제 후보가 중요한 축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신당 경선 이상으로 국민적 무관심과 냉소가 고조될 수 있다. '호남과 충청표의 결집을 위해서'라는 정치공학적 설명이 아니라 이인제 의원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의 어떤 부분이 함께 할 수 있는지를 서로 공유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후보단일화 과정은 반노무현, 반민주개혁세력이라는 무의식적 증오감만 남아있는 현재의 상황을 걷어내고 대선을 대선답게 만드는 최후의 남은 카드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범여권의 선거가 정치공학과 선거기술 외에 보여준 게 없는 반면, 건강한 후보단일화 과정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며, 아래로부터의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를 끌어내고 집결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 결과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후보단일화일수도, 가치의 대연정일 수도 있다. 이제 후보단일화라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래로부터의 '가치와 정책 연합'으로 전환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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