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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風'과 '李風'…같지만 다른 '변화의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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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盧風'과 '李風'…같지만 다른 '변화의 갈망' [2007 대선이야기]민주화 세력, '좌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라
국제교류재단과 조지워싱턴대학이 주관하는 학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워싱턴에 와 있다. 이곳에서도 으뜸 화제는 내년 미국 대선이다. 내년 11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적잖이 남아 있지만, 민주당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카터, 레이건, 클린턴, 그리고 부시 정부로 이어진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권교체가 이번에도 이뤄질지 적잖이 궁금하다. 과연 정치란 무엇이고, 선거란 무엇인가. 또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02년의 '노무현 바람'
  
  서울을 떠나오기 전 2002년 대선 당시에 썼던 칼럼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때 선거를 이끌어갔던 것은 '노무현 바람'이었다. 이른 봄에 불기 시작한 노풍(盧風)은 민주당 경선 막바지에 거세게 몰아쳤지만, 여름을 경과하면서 하락을 거듭했다. 그러나 10월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다시 불기 시작하더니 11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로 두 번째 절정에 도달했다.
  
  노풍의 배경으로 놓인 것은 6월 월드컵 거리응원과 11월 촛불시위였다. 거리응원이 외환위기로 움츠러들었던 국민적 자존심을 일깨웠다면, 촛불시위는 이제는 대등한 한미관계를 요구한 이른바 '인정의 정치'였다. 노풍의 핵심에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답답한 현실과 역사에 대한 거부이자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 압축돼 있었다.
  
  또 하나의 배경은 민주화 시대였다. 2002년 당시 민주화는 여전히 우리사회 전체를 관통하고 움직이는 시대정신이었다. 시대정신은 제도로 구현되지만 집합행위로서의 사회운동을 촉발하기도 한다. 당시 시민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생활정치를 위한 다양한 사회운동들은 민주화를 향한 유토피아적 에너지를 분출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새만금에서 서울로 이어진 '삼보일배'는 자신의 몸을 내던져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민주화 시대의 가장 상징적 사건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2007년의 '이명박 바람'
  
  5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과 비교해 지난여름 이후 내내 50%를 상회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이명박 바람'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다. 누구는 이명박 후보 지지가 2002년 이회창 후보 지지보다 허약하다고 한다. 이명박 후보가 보여준 일련의 특성들을 보면 일견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변화된 정치 구도를 보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와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변화된 정치 구도란 세계화의 충격이 가져온 구도다. 2002년 당시 이회창 후보 대 노무현 후보의 구도가 기본적으로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의 구도였다면, 이번 대선 구도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구도를 드러내고 있다. 기존의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의 구도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대 반(反)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구도가 새롭게 결합돼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의 '차별 없는 성장'과 창조한국당(가칭) 문국현 후보의 '사람 중심, 진짜 경제'는 반(反)신자유주의적 또는 비(非)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세계화를 수용하되 그 폐해를 극소화하겠다는 전략이 그 핵심을 이룬다. 보수, 중도, 진보라는 이념적 구분이 여전히 의미를 갖고 있지만, 구체적인 수준에서는 '어떤 성장, 어떤 경제'를 이룰 것인가에 국민 다수의 관심이 이동해 있다.
  
  좌파 신자유주의의 양면성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모델이라면 그 대안 모색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있다. 노무현 후보 역시 2002년 당시 새로운 정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할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 5년을 돌이켜 보면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명명했던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로부터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고 그 폐해를 복지국가 정책으로 치유하겠다는 것이 좌파 신자유주의의 핵심일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의 원조는 물론 김대중 정부다.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시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포함한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이런 노선을 대체적으로 이어 왔으며, 여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더한 셈이었다.
  
  좌파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복지국가 사회정책 사이의 내적 긴장이다. 태생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강화시킴으로써 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지만, 바로 그 경쟁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문제를 노정한다.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련의 사회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노무현 정부는 세계화가 가져다주는 충격을 고려할 때 하고픈 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시각과 국민 다수의 시각은 적잖이 다르다. 국가는 구조적 조건을 주목하는 반면 국민은 원인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게 된다. 바로 이점에서 양극화를 체험해 온 국민 다수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더 많은 성장,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분배'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신발전 세력의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
  
  2002년과 동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낡은 정치, 낡은 기득권, 낡은 시대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2002년을 관통한 변화의 코드라면, 올해의 그것은 우리 사회를 감도는 정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 저류를 이뤄온 변화의 코드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변화의 담론에서 주도권을 먼저 잡은 주체는 민주화 세력이 아니라 이명박 후보로 상징되는 '신(新)발전 세력' 또는 '신(新)산업화 세력'일지도 모른다.
  
  신발전 세력은 기존의 보수 세력과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 복사본은 아니다. 여기에는 이명박 후보 자신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세력, 민주화 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전환한 (넓은 의미에서의) 뉴라이트 그룹, 그리고 성장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젊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산업화 세력의 후예이되, 신자유주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neo-liberal developmentalism)를 새로운 이념 또는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기업, 정부, 대학 등 주요 사회조직에서 신자유주의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지고, 사회 전체를 냉혹한 경쟁사회로 재편시키고 있다. 그것이 세계화 시대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바로 그 선택이 민주화 세력에 대한 지지의 철회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산업·소득·생활양식의 양극화, 8백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우리 삶을 황량하게 만드는 경쟁문화의 확산 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에 기대를 품게 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치밀한 정책적 청사진이 요구돼
  
  범여권 후보들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 선거에는 물론 세대, 지역, 계급 변수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 변수들은 그대로 작동한다기보다는 이념 및 가치와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힘을 발휘한다. 신발전 세력은 신자유주의와 발전주의를 결합한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를 새로운 무기로 선택했지만, 민주화 세력은 좌파 신자유주의에서 전통 진보주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며 미래 가치가 불투명하다.
  
  정치 세력의 정체성과 가치가 불확실하다면, 유권자는 자연 미래의 가능성보다는 과거에 대한 평가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점에서 이번 대선은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전망투표보다는 회고투표가 더 두드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앞으로 남은 50여일이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짧은 시간도 아니다. 과거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 치밀한 정책적 청사진을 민주화 세력은 발휘하고 또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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