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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프레임'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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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도덕성 프레임'의 덫

[2007 대선이야기] 의혹은 폭발직전, 그러나…

온 국민의 눈과 귀가 BBK에 쏠린 한 주가 지나갔다. 격화되는 정치공방 속에 의혹은 무성한 채 진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있다. 검찰 수사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 단순한 지연인지, 아니면 유예인지도 불확실한 채 대선후보 등록은 예정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BBK 문제는 김경준 씨 기소가 끝나는 12월 5일까지는 여전히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하면서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지지층, '도덕성'은 묻지마

최근 BBK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가 BBK에 연루되었고, 도덕성 결함도 적잖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차기대통령은 이명박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2일 자 YTN-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후보가 BBK 사건에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52.5%에 이르고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은 15.1%에 불과했다. 김경준 씨 측이 주장하는 BBK관련 이면계약서 공방에 대해서도 이명박 후보 주장 보다는 김경준 씨 측 주장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 질문했을 때도 '대통령 후보로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의견이 47.1%에 이르고 '대통령 후보로서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은 31.6%에 그쳤다.


물론 이명박 후보 지지층만 놓고 보면 다소 다른 의견이 나타난다. BBK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30.5%로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의견 29.7%와 팽팽했고, 이면계약서에 대해서는 김경준 씨 측 주장 보다는 이명박 후보 측 주장을 더 신뢰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모름/무응답층이 40~50%로 매우 높고 이명박 후보 측 주장을 믿는 의견도 과반 이하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모름/무응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명박 지지층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후보의 능력'이 83.1%에 이르는 데 반해, 후보의 도덕성은 1.6%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도덕성 문제는 관심도 없고 염두에도 두지 않겠다는 것이 현재 이명박 지지층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 문제가 대통령 후보로서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는 전체 여론과는 배치된다. 전체 의견은 대통령 후보로서 문제가 있다는 쪽이 우세하다.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 그러나...

물론 이같은 현상이 최근에 부상한 특징은 아니다. 올해 초부터 계속된 현상이다. 도덕성 의혹이 제기되어도 지지도는 절대불변이었다. 단 하나의 예외는 8월 한나라당 경선 직전 검찰이 도곡동 땅 수사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후보 지지도가 30% 초반까지 하락할 때다. 즉 제기된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누적되다가 결정적 계기가 주어질 때 지지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이탈한 지지층을 받아낼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할 때 이도 가능하다. 당시에는 박근혜라는 대안이 버티고 있었다.

반면 여권은 도덕성 의혹에 대한 폭로로 일관했다. 도덕성 의혹을 제기했다가 지지도에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자, 더 강도를 높혀 갔다. 마치 투여한 약이 기대했던 약효가 나타나지 않자 더 센 약을 투여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이 약이 제대로 처방된 약이 아니라 내성만 키우는 항생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확실한 근거에 입각하지 않은 폭로는 눈높이만 키워 자잘한 의혹은 오히려 무시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여권은 'BBK 한방이면 이명박 후보가 무너진다'고 국민들의 눈높이를 높여왔기 때문에 '그 한방'이 아닌 웬만한 것은 하찮은 것이 되었다. 오히려 '그 한방'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여권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도덕성' 프레임을 극복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민주화세력

왜 과거와 달리 도덕성에 관한 한 '묻지마 지지'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이번 대선은 지난 10년 동안 집권했던 민주화세력에 대한 보수진영의 대대적인 반격의 성격을 지닌다. 기본적으로 민주화세력이 수세인 구도 하에서 과거 민주화세력의 주요 무기였던 '도덕성'은 낡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들이 민주화세력도 기득권화되면서 부패했다고 믿고 있는 상황 속에서 상대진영에 대한 도덕성 의혹 제기는 설득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들의 관심은 도덕성이 아니라 경제이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후보의 능력이라는 사실이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은 '이봐 멍청아, 문제는 도덕성이 아니라 경제야'라고 외치고 있는 데 민주화세력은 '그래도 내가 더 깨끗하지?'라며 동문서답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이번 대선의 프레임이 '경제'를 내세운 보수진영의 대대적 반격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세력은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지 못하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자신을 대변할 수 있을 후보로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 등 진보개혁세력이 아닌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를 꼽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명박 후보가 위태로울 경우에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층 중 다수가 강경보수성향의 이회창 후보로 이동하고 있다.

KSOI 11월 13일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 지지도를 질문했을 때, 이회창 후보가 42.7%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이명박 지지층 중 45.4%가 이회창 후보 지지로 전환했으며, 정동영 17.6%, 문국현 7.7%, 권영길 3.4% 순으로 옮겨갔다.

이렇듯 민주화세력이 외면받고 있는 상황은 새로운 프레임을 준비할 안목도, 의지도, 능력도 없는 현실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들은 도덕성 프레임으로 지난 10년, 아니 87년 이후 20년 동안 한국정치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왔지만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또한 국민들이 기득권화된 민주화세력의 처절한 자기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덕성 프레임은 자기 덫에 다름아니다.

이명박 대세론으로는 보수대세론 이어가기 어려울 수도 있어

이 지점에서 2007년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진영의 결집과 대세이지, 이명박 대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보수진영에 다가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명박 후보로 치러야 한다는 점이 보수 진영으로서도 적잖은 부담이다. 이명박 후보가 중도층을 상당부분 흡수하면서 보수진영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고는 하나 보수진영을 확실히 장악하는 데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 결정적 대목이 한계에 이른 도덕성 의혹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명박 후보는 그동안 도덕성 프레임의 수혜자였으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회창 출마로 나타난 보수진영내의 갈등은 '이명박 대세론'으로는 '보수 대세론'을 이어가기 힘들 수도 있다는 회의의 산물이다. 보수진영과 민주화세력의 협공에 대한 이명박 지지층의 대응은 '묻지마 지지'에 가깝다. 문제가 있어도 미심쩍어도 '당신들보다는 낫다'는 대안부재, 다른 모든 소통과 논의를 봉쇄시킨다는 점에서 '자폐적 지지'라 할만하다. 이명박 지지층과 비지지층 간에는 큰 단절이 존재한다.

이명박 지지의 근본적 이유는 '보수대세론'이고 이는 '반노무현 정서'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회고투표'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이것이 이명박 후보의 경제와 능력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지지층이 '전망투표'로 오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력적이다.

하지만 대선이 막바지로 갈수록 이명박 후보 지지층과 비지지층간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괴리가 커지고 있다. 이명박 지지층은 의혹 제기를 포함한 모든 이슈와 문제제기에 귀를 닫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를 제외한 다른 진영과 지지층들은 오직 도덕성 문제에만 목매고 있다. 이는 자력으로 대선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빚어낸 불행한 결과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맞춰진 2007년 대선은 이명박 지지층과 비지지층간의 소통 부재, 그로 인한 대선에 대한 관심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는 평가를 피해가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장집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 어렵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며 최악의 대선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투표율도 역대최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22일자 YTN-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꼭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68.7%로 나타났는데, 통상 투표율이 여론조사상의 '투표참여확실의향' 보다 낮게 나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60%선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의혹은 폭발 일보 직전에 와있으나...

20여 일 남은 대선 기간 동안에도 가장 큰 이슈는 도덕성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여론상으로만 보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의혹이 누적되면서 거의 끓기 직전의 비등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후보 출마 이후에도 40%대를 유지하던 지지도가 BBK 김경준 씨 귀국 이후 30% 중후반대까지 하락하고 있다. 즉 여론상으로는 비등점 직전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의혹이 끓어 넘치느냐, 다시 잦아드느냐는 두 가지 포인트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그 중 하나가 검찰의 수사 발표이고 다른 하나가 다른 대안이 존재하느냐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BBK 연루의혹이 나타날 경우엔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이든 이명박 후보 지지도는 일정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명박 후보가 흔들릴 경우, 지지층을 받아낼 수 있는 대안으로 누가 가능성이 높은가다.

줄기차게 도덕성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화세력도 이미 기득권화되었다고 믿는 유권자들이 과연 민주화세력을 대안으로 떠올릴 수 있을까? 더욱이 민주당과의 합당무산으로 가능성이 더욱 낮아진 상황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철회한 층이 다른 대안을 구하지 못할 경우 다시 소극적 지지층으로 돌아오거나 투표에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 이명박 후보에 대한 도덕성 의혹으로 정국이 급변한다 할지라도 그 수혜자는 민주화세력이 아니라 이회창 후보가 되는 역설적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은 희극과 비극이 뒤섞이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선거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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