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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 있는데 룸살롱은 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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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 있는데 룸살롱은 왜 가요?" [정희준의 어퍼컷·21] 행동보다 무서운 그들의 생각
작년 여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여성 운동 선수 성폭력과 관련한 간담회가 있었다. 소속 선수를 성폭행한 우리은행 여자농구팀 박명수 전 감독 사건을 계기로 열린 것이다. 당시 관련하여 '어퍼컷'에 몇 개의 글을 기고했던 내게도 연락이 와 먼 길 마다 않고 가기로 했다.

인권위에서 스포츠계 성폭력에 관심을 가져줘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간담회에서 제시할 사례들을 머리 속에 차곡차곡 챙겨 넣었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아마 그분들 뒤로 나자빠지겠지' 하며 말이다. 최대한 '충격적'이고 '파렴치'한 것으로만 골라서 서울로 갔다. 그런데 예상과는 좀 달리 일이 진행됐다.

내가 그 충격적이고 파렴치한 사례들을 침을 튀겨가며 쏟아낸 후 간담회를 주재하는 인권위의 여성 임원은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게요. 저도 이쪽이 이렇게 심한 줄 몰랐었는데 성폭력상담소에 있을 때 전화가 왔는데…, 글쎄 초등학생을 임신을 시켜서…, 부모가 왔더라구요…."

충격을 주려고 서울까지 올라갔던 내가 되레 충격을 받고 먹먹한 상태에서 부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작년 가을

역시 인권위에서 학생선수의 인권과 관련된 토론회가 열렸다. 거기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한 국회의원이 여성선수 성폭력과 관련해 "(…) 심지어 어느 학교는 감독이 여자 선수들을 모조리 건드린 경우까지도 있다"고 고발한다.

역시 이 동네는 나의 상상계를 초월한다. 그런데 대한체육회가 체육계 폭력과 비리를 시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소위 자정운동본부의 장이라는 분이 이런 식으로 화답한다.

"젊은 사람들 모아 놓으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왜 직장 내 성폭력 같은 것도 항상 있는 일 아닙니까…."

그들의 행위보다 사고가 더 무섭다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 (여자 중등학교 운동부 감독, 회식 자리에서)
"전 룸살롱 안 가요."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 신문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 지난 11일 방영된 <쌈>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는 스포츠계의 성문제를 정확하게, 그리고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KBS

11일 방영된 한국방송(KBS) 시사기획 프로그램 <쌈>은 스포츠계의 성문제를 정확하게, 그리고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이들이 저지르는 행위보다 이들의 사고방식, 즉 뇌의 구조가 더 무섭다.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팩트(fact)보다 그 공간에 횡행하는 멘탈리티(mentality)가 더 무시무시하다는 이야기다.

선수를 두고 '자기가 부려야 할 종'이라니. '종인데 육체적인 종도 될 수 있다'니. 그리고 합숙소에서 자기 방으로 여자 선수들을 하나씩 '당번'을 정해 불러들여 안마를 시키고 성폭행을 했던 자가 한다는 소리가 '아이들과 저와의 스킨십'이라니.

그런데도 '덮고 가자'는 이들이 있다. 덮고 가자니. 그게 가해자의 논리인 걸 모르는 걸까. 그러다 이꼴 된 걸 모르는 걸까. 우리 스포츠계는 사실 이렇게 은폐·엄폐하는 데만 골몰하다보니 이렇게 뿌리까지 썩게 됐다.

문제해결 #1. 이제 제발 합숙 좀 없애자

<쌈>에서도 잘 밝혀진 것이지만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첫 단추는 '합숙소 폐지'다. 그놈의 합숙소 때문에 몇 년 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여덟 명이 그 어린 생을 마감했다. '그놈의 합숙소'에서 지금도 숱한 여성 선수들이 감독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고 있다.

갓 열 살이 넘은 여자 아이들이 밤에 자는 사이 감독에게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손을 묶고 잤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여고팀에서는 3학년 진학할 때 모두 살기 위해 합숙이나 전지 훈련 때 1년 동안 감독님을 '모실' 한 명을 정했단다. 주장이 스스로 나서기도 했단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 아닌가.

합숙소 없으면 안 된다고? 현실을 모르는 말이라고? 웃기지 마라. 현실 잘 안다. 그게 다 감독과 협회 편하라고, 편하게 통제하고 쉽게 성적 올리려고 안 없애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스포츠계 폭력 문제의 절반 이상이 합숙에서 비롯된다. 그곳에서 감독이 선수를 구타하고 성폭행하고 그곳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고 때리고 돈 뜯고 공부 못하게 한다.

문제해결 #2. 검투사 기르나, 공부 좀 시켜라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교육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 성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교육 수준은 있는 법이다. 이는 양보하거나 타협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독들은 선수들이 수업 들어가고 자꾸 '뭔가 배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기가 가르치는 것만 받아들이게 한다. 당연히 수업 들어가도 안 되고 집에 가도 안 되고 운동부 외 다른 친구들을 만나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을 알게 되니까.

사실 어린 아이들은 온종일 패면서 운동 시키는 것은 '수준'이 안 되는 지도자들에겐 성적을 올리는 데 가장 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다. 그 쉬운 걸 왜 포기하겠는가. '공부 안 하는 게 기본'이라는 논리는 감독은 물론 학부모, 그리고 경기단체까지 당연시 한다. 대한체육회 자정운동본부장이 학생선수들에 대한 수업권 보장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주장했다.

"애들은 운동만 하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공부를 하라고 시킨다면 이거야말로 인권 침해입니다."

문제해결 #3. 당당한 가해자, 고개 숙인 피해자?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인기 종목 중 'OO신고센터' 운영하지 않는 협회는 없다. 개인 종목은 대한체육회로 하면 된다. 자정운동본부라는 것도 만들지 않았나. 그러나 제대로 운영되는 데 있으면 손 한 번 들어 보시라.

그러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제도를 왜 자꾸 만드는가. 면피용, 생색내기용, 무마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지면 납득이 가도록 일관성있게, 공평하게 징계하면 된다. 그러나 체육단체 중에 그런 곳은 매우 드물다. 왜? 그 밥에 그 나물이니까. 결국엔 '우리가 남인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협회가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단호하게 시행하면 될 일이지 괜히 여기저기 신고하라고 떠들 일이 아니다.

한 학교의 여자 선수들을 하나둘 빼고 모조리 유린해서 협회로부터 영구제명된 자가 다시 여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성폭행 감독이 본래 팀으로 복귀하고, 다른 팀 감독으로, 협회 임원으로 버젓이 경기장에 나타나는 게 우리의 수준인가. '가해자는 아니꼽게 보고 피해자는 고개 숙이는 법'이 우리 스포츠의 수준인가.

문제해결 #4. 여성스포츠는 여성이 접수케 하라

우리나라엔 세계적 선수들이 많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 어느 쪽이 많을까? 여자 쪽이다. 양궁이나 쇼트트랙도 그렇고 농구, 배구, 핸드볼, 필드하키, 탁구 등도 그러하다. 올림픽 메달 수 따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국가대표팀이고 프로팀이고 실업팀이고 감독, 코치는 죄다 남자들이다.

여자프로농구의 경우 작년 말 총 23명의 지도자 중 여성은 코치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어떠한가. 한국 남자농구는 여자농구 따라가지 못한다. 여자농구는 올림픽 은메달까지 땄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이 감독 자리를 독식하는가.

사회가 그렇지만 특히 스포츠는 완전무결한 남성들의 세계다. 남자농구에서 지도자 되겠다는 이들이 넘쳐나니 서로 피나게 싸우다가 그쪽에 자리를 못 잡으면 여자농구로 흘러 들어간다. 사실 여자농구를 맡은 감독들을 보면 남자 쪽에 비해 선수시절 '이름값'에서 한참 뒤떨어진다. 어쨌든 직업, 즉 생계를 위해 자리가 나면 여자팀으로 가는 것이다.

여자팀은 여자들이 맡으면 된다. 능력면에서 하등 뒤질 것 없다. 필기시험 한 번 볼까? 구술면접 해볼까? 남자들보다 쳐지는 게 있다면 술 실력과 로비 능력 뿐이다.

진정 이런 스포츠를 원하는가

10년 전 쯤, 애 하나 운동 시켜서 대학 보내려면 1억 원 든다는 얘기가 있었다. 지금은 더 들 것이다. 자식 운동 시키려고 집 팔고, 저당 잡힌 부모들 부지기수다. 그렇게 보낸 아들이 툭하면 맞아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딸은 감독에게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까지 운동을 계속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를 진작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운동에 비전이 없거나 감독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으면 뛰쳐나와야 하는데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운동 그만둬 봐야 전교 1등을 밑에서 다툴 것은 뻔하고 이미 선생님들도 포기했으니 어느 대학이라도 보내기 위해선 맘에 안 들더라도 감독에게 계속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들도 이러한 현실을 잘 깨닫고 있다. 그러기에 힘없는 선수들을 밤에 괴롭히고 낮엔 부모들 앞에서도 애들을 마음대로 팰 수 있는 것이다.

공부시켜야 한다. 합숙소 없애야 한다. 대회 수도 줄이고 열 살 갓 넘은 아이들 전지훈련도 없애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운동부 밖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운동이 맞지 않으면 다른 꿈을 품고 훨훨 날아갈 수 있어야 한다.

체육계와 지도자들은 선수들을 자신의 '종'으로, 성공의 도구로,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존속을 위한 방편으로 여기는 못된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협회나 학교 운동부 다 없애도 된다. 이런 야만적, 비상식적 스포츠가 도대체 이 시대에 어울리는가.

그냥 나가서 신나게 공차고 친구들과 재밌게 달리면 된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프레시안>은 '정희준의 어퍼컷' 등을 통해 여성 스포츠계의 성폭력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다음은 그간 <프레시안>에서 낸 관련 기사들.

감독 성추행, '한 남자의 범죄'가 아닌 이유

스포츠계 성폭력,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박찬숙 "스포츠계 성차별로 감독면접 탈락"

"존경할만한 체육 지도자를 찾습니다"

성추행 그 이후…이쯤되면 '조직폭력''

"여자 운동 선수는 내가 부리는 성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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