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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은 대충 가르쳐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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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등학생은 대충 가르쳐도 되는가?" [기고] 수능시험 '정치 9번' 복수 정답 시비를 보며
보도를 보니, 대학수학능력시험 정치 문항 9번에 관해 논란이 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정답이 둘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평가원은 "대통령제에서 의회는 각료 임명에 대한 동의를 할 수 있다"고 한 ②번만을 정답으로 본 데 반해, "의원내각제에서 의회는 행정부 수반을 탄핵할 수 있다"고 한 ③번도 맞는 말이라고 이의신청이 있었던 모양이다.

평가원은 ②번만이 정답이라고 본 원래의 입장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이유인 즉, "이 문항의 출제 의도는 '전형적인'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별 국가의 구체적 사례가 아닌, 이념형으로서의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특징을 고르라는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정부 형태의 다양한 변형 형태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고려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 보기 ②번에 관해서는 "각료 임명에 대한 의회의 동의권 은 삼권분립에 의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대통령제의 특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보기 ③번에 대해서는 "탄핵'의 개념을 확대 해석해 의원내각제에서 행해지는 '불신임'까지도 탄핵으로 이해하고 이를 근거로 ③번도 옳다고 하는데 탄핵과 불신임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 "행정부 수반에 대한 탄핵은 전형적인 대통령제의 특징이지 의원내각제의 특징이라 볼 수 없다"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한다.

▲ 복수 정답 논란이 제기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정치 과목 9번 문항. ⓒ프레시안

우선 탄핵과 불신임에 관해서부터 살펴본다. 탄핵(impeachment)과 불신임(vote of no confidence)은 당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불신임도 일종의 탄핵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③번을 맞다고 보는 주장은 일단 정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행정부 수반에 대한 탄핵이 "전형적인 대통령제의 특징"이라는 주장 역시 내가 보기에는 정밀하지 못한 것이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탄핵을 단순히 대통령제에서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는 피상적인 감각 자체가 "그렇다면 의원내각제의 불신임이나 대통령제의 탄핵이 말만 다르지 내용은 비슷하지 않느냐"는 항변을 낳은 근본원인으로 보인다.

탄핵과 불신임은 다르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가? 하나는 대통령제의 특성이고 다른 하나는 의원내각제의 특성이라는 의미에서 다른가? 결코 아니다. 탄핵이란 고위 공무원에게 범죄의 혐의가 있는데 일상적인 검찰권이 기소할 가망이 낮을 때, 인민의 이름으로 의회가 주권을 발동해서 기소하는 제도이다. 탄핵의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직책이나 등급에 따라, 각 나라에 제도적 발전 과정에 따라, 소추와 심판을 한 번에 결정할 수도 있고, 따로 결정할 수도 있으며, 따로 하더라도 의회의 같은 원이 담당할 수도 있고, 의회의 다른 원이 담당할 수도 있으며, 소추는 의회에서 심판은 별도의 사법기관에서 담당할 수도 있다. 이것은 크게 보면, 특히 영국과 미국처럼 의회가 소추와 심판을 모두 결정하는 경우, 삼권분립보다는 의회주권주의의 표현이고, 좁게 보면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유보 조항이 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나누는 구분이 아니라, 영국 의회가 오랜 역사를 거쳐서 발전시킨 의회의 사법 기능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제와 영국의 의원내각제가 공유하는 정치 원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평가원에서는 영국 의회의 탄핵 심판이 1806년을 마지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2004년 블레어 수상에 대한 일각의 시도는 무시해도 좋은 예외라고 보면서, 의원내각제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미국 대통령은 얼마나 자주 탄핵을 받아서 어떤 결과를 당했을까? 미국은 하원에서 탄핵소추가 통과되면 상원에서 탄핵심판을 한다. 1789년 워싱턴 취임 이후 지금까지 두 명의 (1868년 앤드류 존슨,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가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서 임기를 마쳤다. 영국의 1806년 탄핵심판은 피트(小) 수상의 각료 던다스가 대상이었는데, 이때도 소추는 되었지만 심판은 무죄를 받았다. 다만 던다스는 해군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그 후 다시는 공직에 취임하지 않았다. 덧붙이면, 1974년 닉슨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가망이 높아지자 그 전에 사임해서 그 이상은 기소당하지 않았고, 2004년 블레어 수상에 대한 탄핵 시도는 기미만 보이다가 끝났다.

던다스는 수상이 아니었지만 미국에서는 실제로 그리고 불과 10년 전에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말다툼으로 들어가자는 태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18세기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수상이 직접 탄핵을 받은 경우가 없다는 사실은 단지, 국왕 찰스 1세의 처형으로 가는 도중에 총신 스트래포드 탄핵 문제가 있었고, 또 명예혁명으로 가는 도중에 실권을 휘두르던 대신 댄비에 대한 탄핵 문제가 있었다는 17세기 의회사의 배경과 무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특히 권력이 강해서 일반 사법기관에서 기소하여 심판하기가 곤란한 상대일수록, 의회가 사법권을 발동한다는 원칙이 탄핵권에는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권력분립보다는 의회주권을 반영하는 제도로, 당연히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구분하는 특징일 수가 없다. 행정부 수반, 즉 국왕 또는 국왕의 대리인 노릇을 한 실권자가 의회의 탄핵 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서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아가 형사 처벌까지 받은 경우는 미국에는 한 번도 없지만 영국에서는 최소한 위에 열거한 두 번이 있었다. 17세기는 너무나 먼 과거라는 반론은 단순히 영국의 헌정사 및 의회사를 모른다는 고백에 불과한 소리이다. 확립된 의회주권 안에 탄핵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발동되면 철저하고 가차없다는 바탕이 깔려있기 때문에, 정치적 야심가일수록 비행의 혐의를 쓰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나아가 혹시 비행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탄핵까지 가기 전에 물러나는 것이다.

탄핵이란 의회가 평소에 유보하고 있다가 유사시에 발동하는 주권적인 특별사법기능이기 때문에, 행정공무원뿐만 아니라 판사들도 주요한 적용의 대상이다. 이는 현재 우리 법체계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해설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점을 지적하는 까닭은 탄핵이라는 제도를 단순히 행정부/의회 사이의 견제 정도로 이해하는 시각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보이기 위함이다. 삼권을 분립해서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가 마냥 견제만 한다고 할 때, "견제와 균형"이라는 상투적인 문구에 도대체 "균형"이 들어가서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평가원에서는 어떻게 설명할지가 나는 매우 궁금하다. 미국의 대통령제가 영국의 의회제를 바탕으로 파생한 제도이며, 공히 로마 공화정의 "견제와 균형" 또는 혼합정의 원리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하고, 의회가 행정부에게 유사시에 앙갚음하는 수단으로 탄핵과 불신임을 대조하면서 어떻게 견제가 균형이 되도록 연결할 수 있을지 나는 논리도 상상력도 미치지 못한다.

탄핵이 단순히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 수단이 아니듯이, 불신임도 역시 단순히 의회가 행정부에게 대항하는 무기인 것은 아니다. 의원내각제는 원래 취지가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 갈등이 없도록 고안된 제도이다. 의회 다수 세력이 행정권을 차지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두 권력이 하나로 융합되어 갈등이 없다. 행정권과 의회가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수상을 정점으로 한 세력이 지난번 선거 때 자기당의 깃발아래 형성된 다수 동맹을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보통은 총선거를 다시 해서 새로운 다수 동맹의 존재를 확인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된다. 수상이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면 불신임의 여지는 없고, 받지 못한다면 선거를 새로 할 뿐이다. 불신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각이 불신임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에는 세 가지가 있다. 나는 영국의 의회제를 전형으로 보기 때문에 세부 사항은 영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살피겠다. 내각에서 추진하는 예산관련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는 경우, 그밖에 내각이 "신임을 건다"는 단서를 붙이면서 추진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의회에서 내각에 대해 불신임안을 상정해서 통과시키는 경우이다. 이중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 비슷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세 번째 경우뿐으로, 그것 역시 속내는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이 아니라 의회 내 여당과 야당의 갈등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는 집권당 내에서 수상의 정책적 정치적 리더십과 관련되는 문제이고, 세 번째 역시도 수상의 당내 리더십에 문제가 없다면 야당이 불신임안을 제출할 여지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요컨대 불신임 제도는 분명히 의원내각제의 특징이지만, 그 때문에 탄핵 제도가 대통령제의 특징이 더 되는 것도 아니고 의원내각제의 특징이 덜 되는 것도 아니다. 두 제도는 약간 겹치는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대립 관계도 대칭 관계도 아닌 서로 다른 차원의 제도이다. 탄핵이란 의회가 유사시 발동하는 특별사법권인데 비해서 불신임이란 정당 사이에 그리고 개별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권을 바라보면서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는 방식의 하나인 것이다. 물론 사법의 문제가 때로 정권의 문제와 겹쳐지는 만큼 두 제도는 서로 겹치기도 한다.

나는 사회 과목에서 객관식 시험은 지성을 기르기보다 억누르는 효과가 더 크다고 믿는다.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을 어떤 식으로든 계량화된 순서로 배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양보할 수밖에 없다면, 사항들 사이의 추상적인 관계를 사고하는 능력을 재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역사, 지리, 인물, 용어에 관한 단순한 기억력을 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현재 수준의 시험보다는 차라리 단순하고 명백한 사항에 관한 기억력 시험이 낫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국사, 세계사, 지리, 정치, 경제, 등에 관해 과목당 2000에서 3000쪽 정도 분량의 두꺼운 교과서를 한권씩 주고 많이 외우면 점수를 잘 받도록 하는 식이다. 단, 평균 80점 이상이면 최고 점수를 줘서, 책만 잠깐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는 사소한 퀴즈 해답을 사회에 관한 지식의 유일한 종류라고 착각하지는 말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정호 대수능연구관리처장이 26일 오전 서울 도렴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복수 정답 논란이 제기된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사회탐구영역 정치 9번을 놓고 "문항 및 정답에 이상없다"는 최종 결론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능시험 정치 9번 문제에서 보기 ③도 정답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이 문제가 순전히 누가 점수를 몇 점 받느냐에 관련되는 문제일 뿐이었다면, 아마 이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문제의 문항들을 보니 출제자들이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탄핵, 불신임 등의 제도적 특성과 바탕에 깔린 이념, 그리고 실제 작동하는 방식 등을 과연 알고서 문제를 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가원에서 이의신청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라는 것 역시 이 주변의 사항들에 관한 충분한 숙고의 결과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고, 단지 입장 변경으로 인한 권위 상실과 행정적 정치적 비용을 피하기 위해서 급조한 변명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내 눈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와 탄핵과 불신임의 특성을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지식과 판단에 입각해서 생각한 결과는 위와 같고, 따라서 나는 평가원의 안목을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약 이러한 내 판단이 맞다면, 문제는 아마 평가원의 차원보다 깊고 넓은 곳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적어도 사회 과목에 관한 한, 고등학생들을 미래의 동량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무지와 게으름을 지식으로 포장해서 전승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 사이에, 정치 지도자라는 인종 사이에, 정치학과 사회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들 사이에, 도대체 언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전형적인" 특징에 관해 합의가 있었는가? 박정희 때는 "한국적 대통령제"를 찬양해서 가르쳤고, 1987년 이후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를 삽입했다가, 이제 다시 "좌편향"이라고 교과서를 고치자는 소리 정도가 우리 기성세대의 수준이 아닌가? 후세의 정신적 양식을 좌우하는 문제를 논의한답시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가운데, 잠시라도 자신이 속한 정파적 이익의 경계를 잊어버리고 진실이나 이치를 뼈저리게 고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혼자 있을 때 설혹 그런 고민을 했더라도, 막상 무리를 지어 패싸움을 벌일 때 그 고민의 흔적 때문에 적군보다 동패를 비판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현실 정치에서 정파를 관통해서 합의된 원리들만이 고등학생들에게 교과서로 가르쳐져야 한다. 우리 사회처럼 그런 원리가 양적으로 적은 사회라면 차라리 가르칠 것이 별로 없다고 고백하고, 따라서 단순한 역사적 지리적 전기적 사실조각들이나 잡다하게 외워두라고 하는 편이 낫다. 그런 것이라도 많이 알고 있으면 적어도 사교 생활에서 풍성한 화제를 제공하여 "많이 안다"는 평판은 얻을 수 있다. 사회전체에 어떤 원리나 가치나 이념이나 "전형적 특징"에 관해 합의가 별로 없는데, 원리나 가치나 이념이나 "전형적 특징"을 가르치려다 보면, 시대와 정권이 억지로 끼워 넣은 내용들이 잡화점처럼 뒤섞여 있는 교과서만이 남게 된다.

영국 헌정의 원리는 영국 내 정파의 균열과 무관할 수 없는 쟁점이고, 미국 헌정의 원리는 미국 내 정파의 균열과 무관할 수 없는 쟁점이다. 영국과 미국은 각자의 현실 정치 안에서 균형추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서 그 균열을 처리해 나간다. 우리도 우리 사회 내부의 순간적 현안들은 우리 나름의 균형추가 움직이는 대로 처리하고 있다. 단, 이 균형추를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려는 상충하는 정치세력들 사이에 공통분모 역할을 할 바탕, 다시 말하면 헌정의 원리라는 것이 기껏 대통령 직선제 정도 앙상한 형해 수준으로밖에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대통령제의 특징을 우리가 구성해서 말하지 못하고, 남의 대통령제의 특징에 대해 실천적 적실성이라는 영혼이 완전히 빠진 상태에서 단순히 말장난으로만 떠들어대는 이야기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아이들은 고급 진리를 습득할 능력이 원천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정 아래, 눈높이를 맞춘다는 편리한 핑계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포장하는 기성세대의 위선이자 자기기만이다. 유치하거나 조잡하다면 이미 그 자체로 진리일 수가 없다. 모든 진리는 다 고급이라는 점에서 동등하고 더 이상 섬세할 수 없도록 섬세하다. 이 섬약하기 짝이 없는 분별의 경지에서 풍기는 지성의 향취를 맛볼 감수성이 막 자라나기 시작하는 십대 초반부터, 향기와 미각은 고사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논리적 탐구를 중지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모범답안 고르기를 지식으로 착각하는 훈련을 시키면서, 우리가 후세의 정신을 앙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른 전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사회과만이라도 고등학생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아는 만큼, 즉 가치와 이념과 원리에 관해 현실 정치에서 합의된 만큼만을 가르쳐야 한다. 현실 정치에서 싸우고 있는 대목들이라면, 어른들이 아직 잘 몰라서 싸우고 있으니까 너희들은 나중에 잘 알아서 싸우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 이 와중에 어른들 자신이 어디서 합의를 해야 하는지 양보와 절제의 미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회와 정치와 역사를 대충 가르치는 것은 지식도 사고력도 아니고, 단지 힘에 굴복하는 노예근성을 가르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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