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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유럽 쇠고기마저 수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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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유럽 쇠고기마저 수입하는가" [송기호 칼럼] 축산 농가에 바란다
아일랜드는 2006년 12월 11일, 한국에 쇠고기 수입 허용 요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그래서 '수입 허용 가능성 검토' 단계가 시작했다. <수입 위험 분석> 8단계 중 1단계 절차에 해당한다.

아일랜드는 올해 벌써 5건의 광우병이 발생하였고, 작년에만 23건, 재작년에는 25건의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이다. 한국이 아일랜드 광우병 사태를 이유로 아일랜드 쇠고기 수입 심사 절차를 더 진행하지 않으려 했다면, 아일랜드에 절차 중단을 통지해야 했다. (<지정 검역물의 수입에 관한 수입 위험 분석 요령> 제4조 제2항) 그러나 나의 부족한 지식이지만, 정부가 아일랜드에게 절차 중단을 통지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겨레>의 지난 22일자 보도를 인용한다면,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의 검역 조항에 "한 국가가 상대편 국가에 부가적인 수입 요건을 요구할 경우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에 맞게(in accordance with)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한-유럽 협정은 유럽 쇠고기 수입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한-유럽 협정문의 검역 조항 원문이 공개되어야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겠지만, <한겨레>가 알린 조항은 한국의 검역 주권 핵심을 침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가 보장하는 검역주권을 가지고 있다. (WTO 검역 주권의 개념마저 부인하는 분들만을 위해, 전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수젼 슈와브가 작년 5월 12일에 한국민의 촛불에 직면해 발표한 성명서 둘째 단락의 첫 문장을 번역 없이 인용한다. "The GATT and the WTO SPS Agreement preserve each country's sovereignty so that every government can ensure the safety of its citizens, and that includes food safety".)

WTO 검역 주권은 한국에게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대한 세 가지 선택권을 부여한다. 첫째는 그 기준을 그대로 받는 것("confirm to")이요, 둘째는 그 기준을 토대로 하는 것("base on")이요, 셋째는 그 기준을 토대로 한 것보다도 더 높은 기준을 정하는 것("a higher level than would be achieved by measures based on OIE")이다. (WTO 위생검역 협정 3.1 - 3.3조)

검역 주권의 핵심은 당연히 세 번째 선택 사항이다. 여기서는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을 토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과학을 근거로 독자적으로 정할 수 있다. 미국이 아일랜드 쇠고기 수입을 아예 법으로 금지한 것도(9 CFR Part 94.18(a)(1)), 캐나다가 영국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이 세 번째의 영역이다.

그런데 <한겨레>에 보도된 조항은 한국이 이 세 번째의 검역 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신 유럽의 개별 국가들에게 검역 조건을 정할 때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맞게 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다. 만약 이럴 경우 한국은 결국 아일랜드 쇠고기를 수입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일랜드는 수역사무국 기준으로 광우병 관리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어제(28일) <PD수첩>에서 국제수역사무국 기준보다 더 엄격한 유럽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의미이다.

물론 원문이 공개되지 않는 이상 정확히 해석할 수는 없다. 외교통상부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해명을 하면서, "WTO SPS 협정상의 권리와 의무를 재확인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어 검역 기준과 관련,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는 것은 없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통상법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이 해명 부분만큼은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저 WTO 협정 내용을 재확인하기 위해 자유무역협정을 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한-유럽 협정문의 당사국인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이다. (아일랜드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의 어엿한 상대 당사국이다. 유럽연합만이 협정문의 상대 당사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외교통상부의 해명과 달리 유럽산 쇠고기 검역에 적용될 조항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물론 나의 생각이다. 이 문제는 한-유럽 협정문 중 검역 조건 관련 부분 원문을 공개하면 해결될 것이다.

▲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아일랜드산을 비롯한 유럽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산 쇠고기 역시 수입을 막기가 쉽지 않다. 국내 축산 농가의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자주 글을 쓰기 어려우므로, 국내 축산 농가들에 드리는 글을 덧붙이고 싶다. 소비자들은 지난 1년 동안 검역 주권을 지키고자 몸부림쳤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갇혔다. 지금 이 시간에도 <PD수첩>의 PD, 작가들은 포승줄에 묶여 있다. 그런데 그 땀과 눈물의 1년 동안 국내 축산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오히려 미국은 마침내 지난 17일부터 주저앉는 소(다우너) 도축을 일체 금지하고, 올 10월 26일부터는 미약하나마 동물성 사료 조치를 개선하기로 하였다. 이 결실에는 우리의 촛불이 이바지한 점이 크다. 이런 흐름 앞에 국내 축산 농가들은 지금보다는 100배 더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보다 더 열심히 광우병 대책을 실행하는 캐나다와 유럽의 축산 농가들을 맞이하려면, 이들보다 더 성실히 쇠고기의 안전을 보장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의 축산은 미국과는 매우 다르다.

한-유럽 자유무역협정에는 "동물 복지" 조항이 들어 있을 것이다. 만일 한미, 한-유럽, 한-호주,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 축산의 토대가 무너진다면, 절반 이상의 책임이 지금의 한국 축산업 지도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국내산에 충성하기 위해 태어나는 소비자는 없다. 새로운 축산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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