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이미 연재 중인 '문화, 우주를 만나다'에 이어 '별, 시를 만나다'를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50인이 별, 우주를 소재로 한 신작시 50편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선보인다. 매번 첨부될 시인의 '시작 노트'와 천문학자 이명현 교수(IYA2009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연세대 천문대)의 감상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
화분의 둘레
이 작은 화분 한 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상할 수 있습니다. 꽃을? 꽃과 잎을? 꽃과 잎과 벌레를? 나는 화분의 세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습니까.
플러그를 뽑듯이 나는 화초를 뽑아 던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물이 끓지 않고, 이제부터 조용해져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전화선을 자르듯 너의 줄기를 자르고, 이전과 이후가 각각인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나는 가장 가난한 삶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라고 생각했습니다.
발자국이 없고, 물이 없고, 짹짹짹 새소리가 없고, 엄마가 없고 엄마가 없는. 엄마 없이 떠 있는 별의 지표면에서. 한 명의 아기도 울지 않는 별에서 살아가는 어떤 삶, 열렬하고 고독하고 게으른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가장 넓은 화분의 둘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몇 개를 내내 만지작거렸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내일도, 라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화성이 생각이 났습니다. 태양계를 통틀어서 가장 큰 협곡을 갖고 있는 천체가 화성입니다. 그 큰 물줄기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흔적만 남았을까요. 화분 속의 화초와 벌레는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혹시 물도 벌레도 미생물도 모두 다 흙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요. 먼 옛날 지구로 날아온 것은 아닐까요.
그래도 아직 뽑을 풀포기라도 있는 지구가 우리들의 내일입니다. 화분의 물이 마르면 우리는 모레 또 어디로 가야할까요. 어떤 화분을 찾아가야할까요. 그런 화분이 남아 있기나 할까요. 그래도 아직 울 수 있는 물이 화분의 가장 넓은 둘레만큼 남아 있는 지구가 우리들의 현재입니다.
검은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화분들. 화분들이 회전한다. 지구의 흙과 물과 사람들이 쏟아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했다. 지구의 흙과 물과 물고기와 네발짐승들과 사람들이 지구 바깥으로 쏟아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참 이상했다.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는 이유는 끝내 설명할 수 없었는데도, 울고 있을 때 나는 그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언젠가 지구도 속이 텅텅 빌 때까지 울어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생각도 역시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김행숙은… 1970년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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