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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후의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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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후의 미장센 [별, 시를 만나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이미 연재 중인 '문화, 우주를 만나다'에 이어 '별, 시를 만나다'를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50인이 별, 우주를 소재로 한 신작시 50편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선보인다. 매번 첨부될 시인의 '시작 노트'와 천문학자 이명현 교수(IYA2009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연세대 천문대)의 감상은 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다.

8분 후의 미장센

8분 후, 태양은 돌이킬 수 없는 어둠으로 돌변하고, 복지원 앞에 버려진 아기는 동파한 수도관처럼 얼어붙어, 당신의 배관 속 검은 머리 비단뱀, 8분 후면 모든 것이 암흑 속으로 사라지겠지 순식간에, 저격수의 렌즈는 떨어져 나간 각막처럼 깜깜해지고 사냥꾼은 멧돼지를 쫓다 올무에 걸려 그림자 활극처럼 펄쩍 뛰겠지 그 모든 것들이 하늘을 보는 순간, 무수한 시간에 걸친 파괴적인 노력들이 고개를 쳐들고, 빌딩에서 투신한 넥타이는 비명에 목이 졸린 채 암전, 그리하여 8분 후 배우가 배역을 빠져나와 마스크를 쓰고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고심하는 동안, 사막에서 화석을 찾는 사람들은 돌덩이 속에서 인류의 오래된 식인 습관을 발굴하지 황량한 바람이 불고,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해 안부를 묻는 목소리들은 외로운 얼룩으로 별들의 식민지를 떠돌다 멀어지겠지 8분 후, 시청 앞 시계는 12시, 알제리에서 기차를 타고 마르세유로 가던 물병자리 소녀는 화장실에서 혼자 아기를 낳지 유괴당한 아이는 앵벌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왼팔이 잘리고, 8분 후 도달할 태양 빛이 돌이킬 수 없는 어둠으로 돌변하자, 그 모든 시간차의 토타카와 푸가, 음역이 풍부한 암흑 속 먼지처럼 우리는 잠시 퍼덕이다 페이드아웃.



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거리는 1억5000만 킬로미터 정도 된다. 빛의 속도가 1초당 약 30만 킬로미터이니 태양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8분 20초 정도 걸린다. 태양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빛보다 빨리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그 사건이 우리 지구에까지 알려지는데는 최소한 8분 20초가 걸린다는 이야기다. 즉, 8분 20초 동안 정보의 지연이 생기는 셈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태양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자. 그럴 수도 없겠지만, 우리들도 물리적으로 그 상황을 버터내면서 모든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하자. 태양이 사라진 후 8분 20초가 지나서야 그 정보가 지구에 도달한다. 만약 그 때가 낮이라면, 우리들은 태양이 하늘에서 갑자기 없어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마치 일식 때처럼 별들이 갑자기 나타나 보이고 스크린을 친 듯 아스라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느낄 여유가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태양에 의해서 생겼던 중력장이 사라지면서, 즉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태양에 의해서 휘어졌던 시공간이 원래대로 편평하게 펴지면서, 지구는 태양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태양계 내 행성을 비롯한 천체들은 일대 혼란을 겪으면서 제멋대로 좌충우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수많은 스침과 충돌 속에 운좋게 안정된 궤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에너지원을 잃어버린 지구는 이미 꽁꽁 얼어붙어버렸을 것이다. 빛 보다 전파 속도가 한참 늦은 태양의 마지막 방출입자들은 태양이 사라진 것도 모르는 채 옛 태양계 공간을 떠돌 것이다. 어느 시공의 교차로에서 태양의 유산인 입자들이 무심코 지구에 충돌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현실적으로 태연하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우리가 결코 인지할 수 없는 첫 8분 20초라고 할 수 있다.



태양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8분, 태양이 사라진다면 8분 후의 우리는?

문혜진은…

1976년생.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질 나쁜 연애>, <검은 표범 여인>. 김수영 문학상(2007)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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