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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집행유예…'배임죄' 선고하고도 처벌은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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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 집행유예…'배임죄' 선고하고도 처벌은 안해 모호한 양형사유 "227억 원 배임이 '사회적 비난 가능성' 낮다니…"
"죄는 추가됐다. 하지만, 처벌을 추가할 수는 없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등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및 고위 임원들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 내용을 두 문장으로 간추린 것이다. 파기환송심을 진행한 서울고등법원 형사4부(김창국 부장판사)는 14일 판결문에서 이 전 회장 등이 배임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분명히 못 박았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날 배임액이 50억 원보다 적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없다는 1심 판결도 뒤집었다. 1심 판결 당시 배임액 산정과정에서 저질러진 계산 오류를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정정한 결과였다. (☞관련 기사: 경제개혁연대 "SDS BW 사건, 기업회계기준 따르면 이건희 '유죄'")

이건희 배임죄 추가됐지만, 처벌 내용은 그대로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과거 재판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배임죄가 추가됐지만, 선고 내용은 그대로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날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했다. 삼성SDS BW 헐값 발행 혐의에 대해 면소 판결을 내렸던 1심 재판부와 똑같은 선고 내용이다. 1심 재판부는 조세 포탈 등 혐의를 인정해 이렇게 선고했었다.

결국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배임죄를 인정한다면서도 이에 대한 처벌은 포기하는 입장을 취한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존 혐의에 죄가 추가됐으므로 처벌 수위 역시 높아져야 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등 삼성 비리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전문가들이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그래서였다.

1심 배임액 산정 오류는 정정…특경가법상 배임 혐의 적용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이 전 회장 등이 저지른 배임 규모를 227억 원으로 산정했다. 삼성SDS BW의 적정 행사가격을 1만4230원으로 본 결과다. 이 전 회장을 기소한 조준웅 특별검사 측이 산정한 배임액 1539억 원보다는 훨씬 적다. 하지만 배임액이 50억 원을 넘게 돼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다.

배임액을 44억 원으로 산정해서 이 사건이 공소시효를 지났다고 판결한 1심 재판부는 '유가증권인수업무규정'에 따른 방법을 사용해 삼성SDS 주식 가치를 산정했다면서 기업회계기준상의 주당 순이익을 적용하지 않고 세무상의 주당 순이익을 적용했다. 하지만, '유가증권인수업무규정'에는 기업회계기준상의 주당 순이익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배임 규모를 227억 원으로 산정해 1심 면소 판결을 뒤집은 것은 이런 오류를 정정한 결과다.

227억 원 배임이 '사회적 비난 가능성' 낮다?

이로써 배임액 산정과정은 기본적인 형식논리는 갖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양형(量刑,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재판부가 객관성을 잃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 등에 대한 처벌 수위를 정하면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 '죄는 있지만, 처벌 수위를 더 높일 만큼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

하지만, '사회적 비난 가능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상조 소장은 이날 "재판부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배임액 전체보다 BW 적정가격과 실제 행사가격 사이의 차액을 우선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27억 원 배임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비난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김 소장은 "특경가법에 따르면 50억 원 이상 배임에 대해서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며 "여기서 기준이 되는 것은 배임액 합계"라고 말했다. 개별 주식의 적정가격과 실제가격의 차이가 얼마건, 배임액 합계가 50억 원을 넘는 경우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게 특경가법의 취지라는 설명이다.

"이건희가 배임액 돌려줬다는 증거는 없는데…"

그리고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배임액을 회사 측에 돌려줬다는 점을 중요한 양형 기준으로 삼았다. 실제로 이 전 회장 측 변호인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11일에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에 각각 969억 9423만 5000원과 1539억2307만 6922원을 지급한 것으로 돼 있다. 조준웅 특별검사가 산정한 배임액과 일치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 돈이 실제로 회사에 지급됐다는 증거는 없다. 이들 회사 감사보고서 등 회계 자료에 이 돈이 들어온 기록이 없기 때문. 김상조 소장은 "이 전 회장이 배임액을 돌려줬는지 여부를 재판부가 실제로 확인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이건희 형량 줄이기 위해 쓴 돈 9139억 원, 정체는?)

법적 정당성 잃은 이재용 승계, 범죄자 된 이건희

한편, 이날 재판 결과로 이재용 후계 구도는 법적 정당성을 잃게 됐다.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대표적인 법률 쟁점이 '유죄'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 전 회장 역시 '범죄자' 낙인이 찍히게 됐다. 후계 체제가 법적 정당성을 잃었지만, 이 전 회장이 경영 퇴진 선언을 뒤집고 경영에 복귀하기도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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