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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을 보며 '신애'와 '가우스'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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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을 보며 '신애'와 '가우스'를 떠올리다 [문화, 우주를 만나다] 별빛 속에
새벽 1

2009년 이른 봄날 새벽, 여느 때처럼 밤을 낮 삼아 원고를 쓰며 일을 하고 있었다. 왜 나는 모든 일이 미리미리 안 되는 걸까? 라는 자책을 한참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 새벽에 전화하는 인간은 십중팔구 취중 넋두리용 전화이다. 그러나 휴대전화에 뜬 이름은 취중 넋두리 멤버가 아니다. 잦아드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새벽하곤 어울리지 않는 활기찬 목소리가 전해진다.

"으하하하, 인간아, 이 시간에 안잘 줄 알았지!" "뭐하고 있어? 또 안 써지는 원고 붙들고 있나?"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애써 마음을 고른다. 나도 함께 활기찬 모드로 아무렇지 않은 듯 응대했다.

"아니, 이 시간에 어인 일로 전화하셨수?" "술자리구나?"

이렇게 약간의 만담놀이를 하다가 상대방이 슬슬 용건을 말하기 시작한다. 과학자들 몇몇과 지방에 가서 워크숍 끝에 얼큰한 뒷풀이를 하는 중이란다. 올해가 '세계 천문의 해'인데,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천문학과 문화의 결합을 통해 사업을 꾸리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 일환으로 만화 쪽에서 같이 할 수 있는 사업이 뭐 없겠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한 사업을 대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새벽 전화 한통화로 천문과 엮이게(?) 되었다. 그 다음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당연히 사람을 소개해 주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하고, 이러면서 함께 할 사람을 엮게 되고, 이 가운데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판짜기를 넓히면 어떻게 해서든 일이 만들어진다.

그동안 만화를 활용한 사업으로 제안 받은 수많은 것은 주로 만화를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단지 만화 그리는 작가를 소개해 달라거나, 아니면 캐릭터를 활용하게 해달라거나, 캐리커처를 그려달라거나, 이름만 빌리거나 등등 만화를 소모품으로 활용하는 방법들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만화 작품이 남거나 작가들에게 좋은 충전이 되는 일이 아니면 안 하리라 마음먹었다. '천문의 해 조직위원회'의 사업 마인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문화적이었다. 만화뿐 아니라 시, 소설,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와 과학의 유기적 접합을 사업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이게 웬 횡재냐 하며 마음을 열게 되었다.

새벽 2

그렇게 시작된 천문과 만화의 만남은 따스한 5월 중순에 이뤄졌다. 10여 명의 작가들과 천문학자들이 보현산 천문대에 올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2박 3일 일정이었지만 거의 무박 3일에 걸쳐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만화가들이 집단적으로 국내에서 3일 동안 함께 있을 수 있는 일은 거의 드물다. 왜냐하면 현재 연재중인 작가들의 마감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들의 별과 우주에 대한 무궁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렇게 마련된 '보현산 천문대 만화가 워크숍'은 관찰, 견학, 관측, 토론, 그리고 다음날 이른 아침까지 강행된 토론을 빙자한 술자리까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했다.

만화가들은 혼자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라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서먹해 한다. 그러나 이 워크숍 일정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주저함이 없이 호기심어린 질문과 각자 여기저기서 알게 된 천문 지식들, 개인 이야기까지 얘기꺼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와 끝날 줄을 몰랐다.

특히 첫날 공식 일정이 끝난 새벽은 잊을 수가 없다. 산속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런데 작가들은 수시로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천문대 건물 밖의 하늘을 수시로 구경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도 들락날락하면서 밤하늘 구경하길 즐겼는데, 새벽 4시가 지나면서 하늘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어둠이 아직은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하늘의 색은 오래된 컬러 사진의 빛바랜 색깔처럼 푸르스름한 허연색이 되었을 무렵, 달은 하얗게 변해가고 두 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노란빛을 띠는 붉은 별이었고 또 하나는 하얗게 빛나는 별이었다. 전날 깊은 밤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넓은 하늘에 꽉 차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하나의 달과 두 개의 별만 광활한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다.

굉장히 낯설고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무언가 쑤욱 밀려 올라오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하고 애잔함까지 느꼈다. 그날은 5월 20일 이었다. 그 새벽하늘은 나에게 '5·20 하늘'로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서 계속 남을 것이다.

새벽 3

5·20 하늘의 하얀 별은 아마도 금성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 금성을 본 적이 있다. 살면서 금성을 본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겠지만 나에게 기억나는 금성은 한 번이었다. 매일 새벽마다 북한산을 오르시던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 다닐 무렵 주말이 되면 종종 동행을 하곤 했다.

새벽 3시에 집을 나와 걸어서 북한산까지 가는 것은 가로등이 있으니 상관없지만 아무리 아버지와 함께 간다고 해도 산으로 들어서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산길로 접어들면 캄캄한 어둠에 무덤도 있어서 온갖 상상력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든다. 한발자국 옮기는 걸 두려워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는 앞에 서기도 하고 뒤에 서기도 하면서 조금만 있으면 어둠에 익숙해져서 바위가 다 보일 테니 걱정하지 말고 걸으라며 독려하셨다.

아버지 말에 용기를 얻어 심호흡을 하고 걷다보니 어느새 내 시야의 사물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 여유가 생겨서 하늘도 한번 쳐다보니 나무 숲 사이로 별이 하나 보였다. 무슨 별이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샛별이란다. 서울에서만 자란 나에게 샛별은 책이나 노래에서만 익숙한 것이어서 굉장히 신기했다. 내가 신기해 하니까 아버지가 이야기하길 시작했다.

새벽의 방향을 잡아준다던 샛별은 내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장날만 되면 보던 별이란다. 함경도 안변의 산골짜기에 살던 아버지는 장날이 되면 할머니가 집에서 만든 짚신이며 광주리 등을 바리바리 챙겨서 할머니와 함께 등짐을 지고 장터로 향했단다. 장터가 멀기 때문에 새벽 3시경에 집을 나서서 산을 넘어 멀고 먼 장터를 가야했다.

새벽 산길을 전등도 없이 하늘의 달빛과 별빛으로 어둠을 뚫으며 길을 찾아 나설 때 샛별을 보면서 방향을 잡으며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다녔노라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항상 새벽에 산을 오를 때 샛별을 보면 가난해서 고생을 많이 하신 할머니 생각이 나신다고 하셨다.

홀로 월남하신 아버지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한 나이라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충격이었다.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이었고, 당시의 내 나이 보다 어렸을 아버지가 생업을 위해 새벽이슬 맞으며 추우나 더우나 어두운 산길을 다녔다는 게 굉장히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마도 나는 그날 산길을 오르는 그 어둠속에서 할머니 이야기며 할아버지 이야기 등등 많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던 아버지를 새로 마음속에 만들었던 때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걸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굉장히 말수가 적은 분이다. 그날 이전에 아버지는 그저 나의 아버지였었다.

새벽 4

내가 샛별을 5·20 하늘로 인해서 금성으로 바꾸고 그 다음날에도 보현산에서 만화가들은 천문학자들과 우주를 논하고 있었다. 다양한 지식들이 오가면서 작가들의 상상력이 보태져서 이야기는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작가들의 다양한 지식에 놀랐다.

아니, 그것은 상대적으로 천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내 모습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저 작가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작품으로 만들어지면 새로운 만화가 나오지 않을까? 저 이야기를 조금 더 발전시키면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에 자꾸만 이른다는 것이다. 소행성 이야기가 나와도 국가 간의 권력 다툼으로 그려지고, 외계인 이야기가 나와도 인간의 탐욕스런 치부를 다룬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왜 이럴까? 수많은 SF 관련 작품들이 있다. 나도 그중 상당 부분은 봐왔다. 영화, 소설, 만화 등 매체를 달리해도 대부분의 작품들은 인간의 탐욕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나의 일천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주 자체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들은 그리 생각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만화 작품들이 있었다.

▲ <별빛 속에 1>(강경옥 지음). ⓒ백정숙
내가 우주를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만화 가운데 첫 번째는 1987년부터 발표된 강경옥의 <별빛 속에>이다. 천문학자인 아버지와 살고 있는 발랄한 소녀 '신애'라는 고등학생이 초능력자인 '사라'와 그를 지키는 '레디온'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신애'는 평범한 여고생이었지만 '사라'와 '레디온'으로 인해 카피온 별의 첫째 왕녀인 '시이라젠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를 떠나 '시이라젠느'로서 카피온으로 간 후에 정체성의 혼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 그리고 여왕 후보인 '시이라젠느'를 경계하는 카피온의 많은 이들로 인해 고난을 겪는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 있는 카피온을 구하기 위해 신이 내린 여왕이 되어 혼자 블랙홀로 텔레포트 한다. 그리고 슬픈 마음만 남고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로 지구에 돌아오게 된다.

이 작품이 먼저 떠오른 이유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첫 장면은 언덕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는 장면이다.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장면이다. 아마도 별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암흑속의 우주로 텔레포트 하기 위해 블랙홀로 향하는 장면이다. 물론 맨 끝의 장면은 지구로 돌아온 장면이지만 가장 마지막을 향하는 장면은 블랙홀 텔레포트 장면일 것이다.

수많은 정념을 떨치면서 지독히 외로운 한 인간의 존재감이 갖는 먹먹하고 서늘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첫 장면의 따뜻함과 마지막 장면의 차가움은 굉장한 대비를 준다. 그 중간에는 여느 작품들과 비슷하게 인물들 간의 사랑과 미움과 갈등과 화해로 그려진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우주에 대한 막막한 두려움은 종종 하늘을 볼 때마다 되새겨진다.

또 하나의 작품은 1965년 전후로 발표된 박기당의 <유성인 가우수(스)>이다. 1965년 이른 봄 어느 날 밤 삼팔선의 완충 지대에 불꽃에 싸인 접시모양의 비행체가 추락한다. 그 비행접시 속에서 붉은 가면을 쓰고 괴상한 몸차림을 하고 뛰어 나온 것은 유성 '가래오'에서 지구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날아온 유성인 '가우스'라는 사나이였다.

▲ <유성인 가우수>(박기당 지음). ⓒ백정숙
가우스는 북한산 줄기의 땅 속부터 시작해서 바다 속에 어마어마한 과학 기지를 만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인 오상춘 박사와 오 박사의 아들이며 공군 중위인 오상철, 그리고 오 박사의 딸 숙희, 그리고 그의 친구 중삼이를 납치한다. 최고의 과학자가 되고 싶은 국제과학회의장인 로스안공화국의 야코브 박사와 그의 여동생은 가우스의 부하가 되어 우주를 지배하고자 지구를 폭파하는 일에 가담하게 되고 엄청난 과학의 힘을 가진 가우스가 만든 비행접시로 인해 지구는 순식간에 파괴되어 간다. 그러나 오 박사와 그 일행의 힘으로 지구는 구출되고 가우스를 붙잡지만 놓치고 말았다. 상철과 중삼이의 대화에서 우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지구를 파괴하는 악당인 유성인 가우스는 원래 가래오에서 과학을 맡아보는 대신이었다.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가우스는 웅장한 과학연구소를 맡고 있었다. 가래오에서는 과학과 모든 학문은 사람들의 생활을 복되게 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었으며 수 만 년 전부터 어겨본 적이 없는 가래오의 법이었다. 착하고 온순한 사람들만 살고 있던 곳이 바로 유성 가래국이었다.

그것을 파괴한 것은 지구인이었다. 지구에서 쏘아올린 로켓이 유성 '가래오'의 과학연구소에 있던 원자 저장소에 명중하였다. 달의 절반밖에 안 되는 유성 '가래오'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2억5000만 명을 헤아리던 '가래오'인들은 사멸하고 말았다. 유성 '가래오'국에는 생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우스와 300여 명의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목숨은 붙어 있었으나 모두가 형편없는 꼴이 되었다. 팔이 날아가고 만신에 화상을 입고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극락 같은 나라를 잃어버렸다. 따라서 살아남은 300여 명의 가래오 인들은 지구에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하길 결심한다.

<유성인 가우스>는 굉장히 짜임새 있는 구성과 스펙터클한 장면, 그리고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무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악당으로 등장하는 가우스가 지구인에 의한 피해자였다는 점도 설득력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SF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지구를 정복하러 온 침입자였다. 그러나 <유성인 가우스>가 인상적인 것은 지구인이 쏘아올린 로켓으로 인해 하나의 별이 풍비박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을 수도 있으나 수많은 그동안 많은 로켓과 우주선과 인공위성들이 우주에 쏘아졌고, 무언가 활동을 하고 있겠지만 행방을 모르는 것도 꽤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래오 유성에서 있었던 일과 유사한 것이 생길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설정은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들어서 기억에 많이 남는 작품이다. 물론 유성인의 존재가 그저 과학만 앞설 뿐이지 인간과 모습이나 속성이 너무 똑같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듯 지구의 인간들을 정의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 우주인들은 정의롭지 못한 존재로 만들어진다. 지구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악당을 우주인으로 바꾸기만 했지, 자기 영역을 확대하려는 영웅 전쟁물과 흡사한 작품들이 많다. 물론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사유를 하게 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권력 다툼의 구조 속에서 갈등 상황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권력욕을 정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우주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살아가는 방향이 그런 지향점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우주의 어떤 생명이 있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 말고 좀 더 정화되고 정제된 존재면 좋겠다. 이런 존재를 만화 속에서 만들어 내면 얼마나 좋을까?

새벽 5

지금 내 컴퓨터에는 세티앳홈(SETI@home)이 깔려있다. 화면보호기 대신 기능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화면보호기 설정을 아무것도 안 해 놔서 설치했는데, 작업하다가 슬쩍 게을러질 때 어느새 그래프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서 마치 나에게 빨리 일하라고 말하는 듯 같다. 내가 놀 때 컴퓨터에서는 안 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은근히 긴장하게 만든다.

이것을 다운받아 설치한 것은 '보현산 천문대 만화가 워크숍'에 다녀와서이다. 워크숍에서 흥미로운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제일 관심 있었던 것은 외계 지성체 탐사(SETI·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사업이었을 것이다. 직접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작가들에게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일이다.

얼마만큼 일지 모르는 저 우주에 어떤 생명체가 있다면, 얼마나 무한한 생각을 퍼 올릴 수 있는 일인가. 인간과 흡사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SF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디스토피아로 일관되는 미래사회에 대한 설정과 괴물이나 악당인 외계인의 설정에 불만족스러웠다.

현실을 고발하는 설정보다는 현실을 극복한 모습으로의 미래와 새로운 존재로의 외계인이 궁금하다. 그것이 평화를 담아내는 것이든 아니면 또 다른 개념이 만들어 지더라도 이것을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마도 만화가 최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무궁무진한 표현력과 상상력을 담아낼 수 있는 장르가 만화이기 때문이다.

워크숍이 끝난 후 참가했던 작가 가운데 윤태호 작가는 <세티>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소품이긴 하지만 영상과 만화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을 한 작품이다. 다른 작가들도 작품들을 구상 중에 있다. 당장 발표될 작품들은 아닐지라도 작가들의 창작 샘에 천문학이 분명 진하게 한 방울 떨어졌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단 천문과 관련된 기사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띤다. 그리고 사람의 일에 대해 조금 거리두기 하면서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어졌다. 만화가와 천문학자의 지속적인 인연을 만들면 만화가들의 새로운 우주 이야기가 나올 거 같다. 기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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