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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집회 이끈 퇴진행동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시민정치시평] 시대와 함께 빛난 촛불 시민혁명을 기리며
1987년 6월 항쟁 30년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항쟁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91학번이다. 사람이 참 많이 죽었던 해. 아침이면 누가 또 꽃처럼 떨어지지 않았을까 두려움에 떨던 때. 짙은 립스틱을 바르거나 지하철 손잡이만큼 커다란 링 귀걸이 걸고 다니는 것이 입시에서 해방된 자들의 권리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루가 멀게 최루탄이 터지고 화염병이 날
"미안한 사람들, 10일 안산에서 약속을 만들자"
[기고] 생명과 존엄에 관한 선언을 제안하며
오늘도 단원고에는 운구차가 들어온다. 학생들이 다니던 교정을 한 바퀴 돈다. 영정은 그들이 웃고 싸우고 때로는 졸음에 지겨워하던 수업시간, 치마 길이로 혼나고 벌점 때문에 속상했던 일상의 교실에서 멈춘다. 볼펜, 지우개, 교과서, 인형… 어느 아이에게는 살아서 모질기만 했을지 모를 추억조차 영정과 함께 담긴다. 자신의 자리였던 책상 위에 놓인 국화꽃을 남기
화성 연쇄살인 범인 누명에 자살한 남편, 악몽은 아직도…
[그때 그사람을 찾습니다·①] "우리에게 사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제작 노트에 써 있는 글이다. 영화는 경찰들의 눈으로 만났던 살인범에 대한 추억을 되짚고 있다. 정부가 시국사건에 경찰들을 떼로 몰고 다니던 그때 시골마을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힘없는 여성들의 비극을 보여주었던 영
"사실은 내가 빙벽에 갇힌 고래였습니다"
[사람꽃을 만나다·②] "그들을 도와야하는 건 우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파카한일유압, 시그네틱스, 삼성전자, 한국3M, 포레시아, 동서공업…. 경기지역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 넘게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다. 사 측의 부당한 해고에 맞선 싸움이다. 이들은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오는 사업장들의 이야기 속에 애써
"삼성에게 '빅엿'을 선사한다"
['공공의 눈'과 삼성·④] "공공의 눈 시상식에 삼성을 추천하는 이유"
우리는 전문용어로 이것을 출동이라고 한다. "도와주세요. 경찰들이 천막을 뜯어갑니다." 나홀로 시위를 벌이는 그에게 번개처럼 달려간다. 그러나 도착할 때 쯤 상황은 종료다. 마무리를 하던 경찰과 구청직원들은 우리들의 등장과 함께 날래게 도망간다. 뒷꽁무니를 보고
"민주 시민 여러분, '훅' 가는 책이 나왔어요!"
[화제의 책] <쫄지마, 형사 절차!>
고맙게도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혀주신 분은 각하셨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똑같은 물대포에 똑같은 경찰의 곤봉과 방패질, 지금처럼 똑같이 맨바닥에 질질 끌려 다니며 범죄자가 되고 외롭게 부르짖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외로웠다. 그랬던 외로운 거리의 정치를 민주
어느 '상습 시위꾼'을 위한 변명
[기고] 법의 저울이 공정하고 정의롭길 바랍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촛불 집회는 최대 인원 1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사건이 됐다. 미국산 쇠고기가 표면적 이유였지만, 현장에서는 민주적 의사 결정과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이 외쳐졌다. 촛불 집회를 막기 위한 경찰의
"삼성반도체의 주인은 반도체 칩인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끝> "오직 반도체만을 위한 '클린 공정'"
애정 씨를 처음 만난 날이었습니다. 민웅 씨를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어려움 없이 살았던 고운사람.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핏덩어리 둘째가 태어나고 바로 그 사람이 떠났습니다. 그런데 장례식 내내 울지도 못했습니다.
돌아온 백골단과 골목길의 기억
[인권오름] "아, 다시 민주주의"
90년대 초반, 선배들은 유인물을 집집마다 나눠 넣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골목에 들어설 때는 절대 골목 첫 집부터가 아니라 끝 집부터 유인물을 넣어야 한다. 혹시라도 수상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어 도망치게 되면 골목을 등지고 있어야 하거든." 그때 내가
"죽음의 거리에서, 그대 잘 살고 있는가"
[기고]하중근 씨의 죽음과 이랜드 비정규노동자들의 절규
안녕 일 년 전 오늘, 한 사내가 포항 형산강 로터리 인근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중근. 팔순 노모의 아들이었으며 건설 노가다 '제관공 하씨'라 불리던 사람. 영일만이 내다보이는 호미곶 어민의 아들로 태어나 참치 잡이 원양어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