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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언론은 북극성과 같은 존재입니다"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생태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서라
프레시안이 어느덧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고생하신 박인규 사장과 기자들, 그리고 수많은 필자들이 흘린 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한강만큼은 안 되도 청계천만큼은 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의 목표
온라인의 흥분과 오프라인의 비루함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프레시안의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한국 정치는 두 달 앞을 알 수 없다는 얘기가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도 그 알 수 없는 두 달의 범주에 딱 들어맞는다. 오세훈 시장의 헛발질, 안철수 원장의 깜짝 등장과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양보, 이후 박근혜 전 대표와 어금버금한 지지율. 이번 추석에도 친척들이 모이면 한 번쯤은 나눴을 얘기들이다. 이렇게 정치의 호흡이 빨라진 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
황우석·김용철…'손가락' 아니라 '달'만 쳐다본 지난 10년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프레시안>과 공익제보자들
10년 전 프레시안이 막 창간하였을 때 당시 충정로에 있던 신문사로 찾아가 인터뷰를 하였던 기억이 난다. 내부고발운동을 하는 필자가 볼 때 다른 어떠한 매체보다 내부고발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 관심을 갖고 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꾸준히 기사화한 곳이 바로 프레시안이기 때문에 또한 친근감을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황우석 사건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악의적인 제
'프레시안'이라는 커다란 나무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9>완성을 의미하는 '10'을 앞두고
프레시안이 창간 10주년을 맞는다고? 깜짝 놀랐다. 벌써 10년이란 말인가.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함께 프레시안도 시작되었다 생각하니 그간의 세월이 새로이 스쳐간다. '대안언론을 만드는 신문쟁이들'을 표방하며 지었다는 이름, '관점이 있는 기사'를 지
'중립'의 가면 뒤에 숨은 '편향'을 넘어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8>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유령이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시소에 대한 묵인입니다. 삶의 끝으로, 죽음의 시작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서민들의 고통을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쳐다만 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조하는 것
진실을 無化시키지 않는 힘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7>엄경철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프레시안 10년을 이렇게 글로써 축하할 만큼의 애정이 있다고, 애독해왔다고 자신 못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 프레시안을 꾸준하게 찾았고 축하 글까지 쓰게 됐습니다. 퍼뜩 그 이유를, 제가 기자임을 오래전부터 괴롭혀온 황지우 시인의 글에서 찾습니다. "매스컴
"<프레시안>, 독자에게 훈계하지는 않는가?"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6>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관점이 있는 뉴스'라는 문구는 <프레시안>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뉴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라는 보편적 상식에서 보면 '뉴스에 관점이 있다'는 말은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프레시안, 보수와 진보의 가교 역할을 하라"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5>
<프레시안>이 걸어온 지난 10년을 복기해보면 프레시안이 단지 진보적 인터넷매체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황우석에게서 불어온 맹목적 애국주의의 광풍이 한국사회를 휩쓸어 누구도 황우석의 정체에 관심이 없거나 설혹 관심이 있어도 이를 파
비판적 지성으로 쓰인 글의 아름다움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4>
나는 '프레시안'의 애독자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인터넷 매체 중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온전한 의미에서의 정론(正論)을 프레시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좀 더 분석적으로 말하자면, 프레시안은 진보적 매체가 갖는 구조적 한계(?)에
프레시안에 바란다
[프레시안 10년을 말하다] <3>
<프레시안>은 필자에게 매우 특별한 매체이다. 무척 이기적인 이유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주제로, 쓰고 싶은 양만큼 언제나 쓸 수 있는 매체가 프레시안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필자의 글 중에서 <프레시안>에 쓴 글이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