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책임은 빠진 '국민기금'
국민기금이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던 이유는 이 기금에 국가의 책임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은 올해 2월 발표한 논문 '위안부 문제 해결책으로서의 『국민기금』의 문제'에서 국민기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피해자에 대한 도의적 책임 외에 법적 책임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었고, 국제인도법 위반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설령 국제법상 책임이 있다 해도 그 책임은 보상·청구권의 처리를 다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그 밖의 양국 간 평화조약·국제협정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일본 정부는 '국가의 책임'은 1965년 한일 양국이 체결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협정)에서 이미 종료됐다고 주장하며, 위안부 문제가 중대한 인권 침해라는 점을 감안해 '도의적'인 입장에서 금전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협정을 체결했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국가 차원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국민기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기금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낸 '지원금'을 사무적 용도로만 사용한다는 당초 방침을 변경해 피해자의 의료·복지를 위해서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기금 사업에 정부가 그만큼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 범위가 달라졌다고 해서 국가의 책임이 아닌, '도의적'책임을 지겠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는 않았다. 또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에 대해 사과하는 '총리의 편지'를 기금 지급 시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총리의 편지는 기금을 수령한 피해자만 받을 수 있었다. 즉, 일본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 전체에게 사과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기금 사업을 받아들인 피해자에게만 '선택적'인 사과를 한 셈이다. 일본의 기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과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총리의 편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총리의 편지는 위안부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일본의 뜻을 다시 한 번 명시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일본 총리는 편지에서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깊게 손상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에게 무수한 고통을 경험케 해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준 데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하고 반성한다"면서도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만 언급했다. 물론 일본 정부의 이른바 '양심 세력'들이 위안부 피해를 사과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서 만들어낸 결과가 국민기금 사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는 그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당시는 사회당수이기도 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수상이 내각을 이끌던 때였는데, 무라야마 내각은 그때까지 자민당이 다루지 않았던 역사문제에 대한 대응을 중요시한 내각"이었으나 "의원직 숫자로는 자민당이 사회당의 세 배를 차지하고 있었던" 관계로 "참의원이었던 시미즈 스미코가 고노 담화 발표 이후부터 입법을 위해 활동하고 있기는 했지만 의원 입법이 성립될 가능성은 낮았다"고 밝혔다. 박 교수가 이야기하는 입법이란,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위안부들에게 '국가 차원의 배상'을 하는 문제를 일컫는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자민당 의원의 숫자가 세 배나 되는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국회'를 제치고 '정부'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기금'이었다. 다시 말해, '기금'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회당을 비롯해 일본의 이른바 '양심 세력'들이 당시 상황을 고려해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의 책임과 사과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사회당의 당수였던 무라야마 총리가 자민당과 정치적 타협으로 국민기금을 만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명숙 전임연구원은 위 논문에서 "사회당이 그간의 소신을 버리고 자민당과 정치적 타협으로 국민기금을 탄생시켰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해결안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임연구원은 여기서 문제의식을 좀 더 확장시켰다. 그는 논문에서 일본의 보수세력이 "전후보상 실현을 주장하던 사회당을 앞세우며 '헌법 수정과 자위대 등 안보'를 양보받고, 도의적 책임 정도의 전후 청산을 양보받은 사회당이 만들어낸 것이 국민기금이 아닐까"라고 언급했다. 보통국가로 나아가고 싶은 일본이 9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여론의 흐름에 떠밀리듯 내놓은 대책이 국민기금이라는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국가의 책임 등은 애초에 이들에게 논의대상도 아니었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최악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위안부 문제 해결 쉽지 않아
한일 양국은 지난 4월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장급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20일 일본이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의 작성 과정을 재검증하며 사실상 담화의 무력화를 시도했고, 예정된 회의가 취소되기도 했다. 양국은 이달 내로 협의를 재개한다는 방침이지만 과거사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합의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게다가 만약 이번 협의에서 이전의 국민기금과 같은 해결책이 나온다면 이는 협의를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다. 양국이 협의까지 했는데도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 법적 책임에 따른 배상을 하지 않는 해결책에 한국 정부가 동의한다면 식민 지배 역사 청산은 고사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더 이상의 명예회복 기회는 찾아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아베 정부의 행보로 볼 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국가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베 총리는 전범 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 1일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유례없는 방식을 통해, 일본이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평화헌법 9조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식민 지배의 책임을 청산하지도 않고 전범 국가의 꼬리표를 떼겠다는 심산이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독으로 아베 총리와 만난 적이 없다. 그나마 지난 3월 헤이그에서 미국의 중재로 한미일 3국 정상들이 함께 모인 것이 전부다. 또 시민사회나 국민 정서 등 민간의 흐름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상대 국가를 향한 양국 국민의 적대감은 과거사 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으로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셈이다.아베 정부, 한일 관계 개선 위한 출구전략 쓰나?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베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출구전략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한혜인 연구원은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 작성을 검증하는 보고서를 낸 것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국내 정치를 한 것"이라며 "집단적 자위권의 각의 결정도 끝났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빠진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도 아베 총리는 관계 개선을 위한 출구전략을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추진하면서 발생하게 될 국내의 반발 여론을 막고, 동시에 지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고노 담화 작성 경위를 재검증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집단적 자위권 각의 결정을 통과시키며 일단 첫 목표를 이룬 아베 정부가 이제는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집단적 자위권과 같은 안보 사안이 아닌, 과거사 문제에서 풀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런 흐름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전략이다. 아베 총리가 정치적인 방식이 아닌 학술적인 차원으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연구원은 "아베 총리가 내년 아베 담화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서 위안부에 대한 한일 또는 한중일의 공동 연구를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일본 입장에서는 관계를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격을 줄이면서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이 공동 연구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이 참여해서 역사적으로 위안부의 국가책임을 밝힌다면 그것이 국가책임과 배상문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1965년 협정 뛰어넘어 새로운 해결책 찾아야
악화된 한일관계와 과거사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해 단시간 내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기금을 기억하고 있는 피해자들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이에 대한 법적 배상을 받아내는 것을 진정한 해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창록 교수는 크게 세 가지 방안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법원을 통해 위안부 동원이 불법이었다는 판결을 받고 이에 따른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효 문제가 존재한다는 점, 일본이라는 주권 국가를 상대로 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권면제’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쉬운 해결책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일본 국권의 최고기관인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배상법'을 통과시키는 방안이다. 그러나 자민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 일본 국회 상황을 고려했을 때 배상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1990년대 초 이미 배상과 관련한 입법을 반대했던 자민당이 당시보다 더욱 강경한 우경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배상법이 통과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외교적 채널을 통한 방법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일 국장급 협의를 통해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인데,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법원이나 국회를 통한 방법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역시 아베 정부를 상대로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법적으로 합의했던 기존 틀인 1965년 협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창록 교수는 이미 1965년 체제는 한국과 일본에 의해 사실상 붕괴됐다고 진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 지배와 과거 청산, 개인의 청구권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합의하지 못한 1965년의 협정을 위안부 문제 해결의 기본으로 삼으면 법원이든 국회든 외교채널이든 어떤 방식을 쓰더라도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혜인 연구원은 아예 1965년 협정을 대체할 수 있는 한일 간 새로운 협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 피해에 관련해서 공동으로 조사하고 금전적 보상이 아닌, 사죄와 기억의 방향으로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역사적 평화협정'과 같은 새로운 협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한 연구원은 국제법적인 틀을 만들어 식민 지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국가와는 달리 한국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쟁과 제국이라는 두 가지 폭력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제국의 폭력을 해결하는 것은 한일 양국이 아닌 국제법적인 틀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연구원은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책임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그 국제법 속에서 '일본제국'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방안이 곧 "식민 지배를 청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식민 지배와 과거 청산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라는 지적이다.<일본군 위안부 논쟁 기획>
■ 일본군 위안부' 논쟁·① 박유하 교수 인터뷰 : "투사 소녀? 위안부 할머니도 욕망 가진 인간"
■ 일본군 위안부' 논쟁·② 충남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 윤명숙 전임연구원 인터뷰 : "위안부 아니라 위안소 문제, 명백한 국가 범죄"
■ 일본군 위안부' 논쟁·③ 일본 식민지배 청산하지 못한 한일협정의 한계 : 1992년 인정한 '위안부' 피해, 1965년 배상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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