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 기술의 규제 완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디스크라고 불리는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수술을 않고 약물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OO대 의대 부속 OOO교수 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디스크 내 주사 요법'에 의한 디스크 치료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 '디스크 내 주사 요법'은 삐져나온 추간판에 연골을 녹이는 카이모파파인이란 약물을 주사하는 요법이다. (…) 종래의 수술 치료보다 간단하여 입원 기간이 짧아 환자에게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 치료 시 통증과 후유증을 크게 덜어줘" (<경향신문> 1984년 5월 17일)
"1980년대 초반부터 칼을 대지 않고 디스크를 치료하는 수술-시술법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나온 것이 카이모파파인 효소 주사 요법이다. (…) 한 때 디스크를 정복하는 방법으로 과대 홍보되었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최초로 시행된 '칼 안 대는 수술 방법'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다."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손>(이춘성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2012년), 193쪽)
두 글이 쓰인 시기는 거의 3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앞의 글은 신문 기사이고 뒤의 글은 디스크 수술 전문가가 썼다는 차이도 있다. 참고로 이춘성 교수는 척추와 디스크 수술의 손꼽히는 전문가다.
'환상적'인 치료법이 시간이 흘러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아예 평가할 것도 없이 첫 번째 비수술 치료라는 의미만 있다고 쓰여 있다. 합병증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문가의 설명이 유독 눈에 띈다.
비슷한 예가 어디 카이모파파인과 디스크 수술뿐이겠는가. 수도 없이 많은 신약과 의료 기술, 수술법이 등장했다 사라진다. 아스피린처럼 100년 넘게 버티는 것도 있지만, 나오자 바로 없어지는 것도 숱하다.
의료 기술의 짧은 수명은 드문 일이 아니다. 새로 나왔지만 옛날 방법에 비해 효과가 덜하면 새로운 의료 기술이라 부르지도 못한다. 너무 값이 비싸도 문제다. 효과는 조금 나아졌는데 값이 열 배 스무 배가 되면 그런 기술도 널리 쓰이기 어렵다.
나중에 부작용과 피해가 나타나면 더 어렵고 난감하다. 1960년대 초의 탈리도마이드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입덧을 멎게 한다고 널리 쓰였는데, 나중에 보니 태아에게 기형을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처음에야 누가 알았겠는가. 온 세상이 난리가 난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제대로 평가하자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당연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관절염 치료제 사건도 유명하다. 1999년 '기적의 관절염 치료제'라 하면서 '바이옥스'란 약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다국적 제약사의 혁신 신약이었다. 그러나 이 약은 미국에서만 3만 명 가까운 사람을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만들었다. 2004년 퇴출되었고 회사는 엄청난 배상을 해야 했다.
새로운 치료법과 약, 물질은 두 얼굴을 가졌다. 혜택이나 효과가 있으니 새로 쓸 엄두를 내는 것이지만, 반드시 독과 부작용이 따른다. 사람의 몸에 본래 있던 것도 스스로와 어긋날 수 있는데, 외부 물질이 양면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새로운 의료 기술은 '보수적'으로 쓰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튼튼해 보이는 돌다리도 백 번 천 번을 두드리고 건너는 법이다. 일단 다리를 건너도 뒤돌아봐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약과 기술을 써도 된다고 허가해 놓고도 계속 부작용을 모니터링한다.
과정을 꼼꼼하고 번거롭게 하는 이유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 안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위험이 따르는 것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심하면 죽고 사는 것이 달라지고, 원치 않는 장애와 다른 병으로 끝나는 일도 흔하다.
이 때문에 국가와 정부가 책임지고 여기에 관련된 개인과 집단, 기업을 감독하고 규제한다. 이들 당사자는 본능적으로 부작용보다는 효과를 크게 본다고 생각해보라. 국가가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나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그런 기능을 하는 대표적인 정부 조직이다. 어느 나라건 비슷한 역할을 하는 데가 있다.
감독과 규제를 하면 특히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신의료 기술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이익과 손해가 크게 갈려서다. 많은 사람들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감독한 2006년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를 기억할 것이다. 영화는 제약사의 비윤리적 행위를 줄기로 해서 전개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새로운 약과 재료, 기술이 효과가 있고 안전한가를 하나하나 점검하는 과정을 통틀어 '신의료 기술 평가'라고 부른다. 조금 어려운 말이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관심이 커졌으니 낯이 설다. 게다가 제도적인 틀은 이제야 조금씩 기초를 갖추는 중이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애의 발을 걸고 있다. 구축한 시스템을 스스로 허물겠다고 하는 꼴이다. 지난 11월 24일 보건복지부는 의료 기기에 대한 신의료 기술 평가를 생략하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 요양 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 말썽 많은 4차 무역 투자 활성화 대책의 후속 조치라고 설명한 대목이 알 듯 모를 듯 묘하다.
핵심 내용은 새로운 의료 기기가 임상 시험을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으면 (과거와 달리) 따로 신의료 기술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임상 시험만으로 바로 국민건강보험에 해당되게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대로 결정되면 모든 의료 기기가 신의료 기술 평가를 받지 않고 판매될 수 있다.
임상 시험이니 신의료 기술 평가니 하는 것을 모두 설명할 여유는 없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정책과 설명을 보면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지도 의심스럽다. 혹시 임상 시험만 거치면 안전이나 효과, 효율성(이걸 따지는 것이 신의료 기술 평가다)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보완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미덥지 않다. 국민건강보험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신기술을 관리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강변하는 보완의 의미다. 신의료 기술 평가를 하지 않던 옛날로 후퇴하는 것인데다, 그나마 설득력도 없다.
많은 신의료 기술이 처음에는 국민건강보험의 바깥, 즉 비급여에서 출발한다. 의료 기관들이 운영이 어렵다고 하니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니 들어오지도 않을 신의료 기술을 국민건강보험의 틀을 통해 관리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는 소린가.
기업이 금방은 이익을 볼 수도 있다지만, 실은 진짜 이익이 아니다. 경제적인 것만 따져도 그렇다. 신의료 기술이 높은 '부가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더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느슨한 잣대로 엉터리 평가를 해서는 국내용으로도 얼마 가지 못한다.
정부는 침소봉대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다른 때라면 단순한 규제 완화, 민원 해결, 또는 편의 증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스스로 "신의료 기기에 대해 조기 시장 진입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제4차 무역 투자 활성화 대책('13.12.13 발표) 후속 조치로서 추진된 것"임을 당당하게 밝혀놓았다. (☞관련 자료 : ) 의료 영리화의 큰 흐름에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스스로의 의도와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도 특정 대기업의 청부를 받고 있다는 의심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관련 기사 : )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정부 부처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지는 오래지만 행색마저 초라해질까 걱정이다. 체면과 국격의 문제기도 하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국제 기준으로도, 생명과 건강,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정부가 경제에 '올인'을 한다 치더라도(그나마 헛힘이다), 최소한의 범위는 지키도록 스스로 멈춰야 한다.
글머리의 카이모파파인으로 되돌아간다. 사실 꼭 이런 치료제가 아니라 의료기나 장비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면 합병증과 부작용의 피해를 본 환자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유야무야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의료인이나 기업이 일차 책임을 져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파산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도록 허용해 준 국가도 책임을 나누어야 하고, 배상도 같이 해야 할지 모른다(탈리도마이드 사건의 경우처럼). 그렇다면 신의료 기술 평가는 경제 정책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에도 다시 생명과 건강,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거듭 물어도 답은 같다. 국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이보다 무엇이 더 앞서는가. '투자활성화'라는 스스로 소외된 목표 뒤에 숨지 말고 국가의 '존재 이유(raison d'etre)'를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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