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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외교 고립?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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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외교 고립?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달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미국 의존 탈피, 남북관계 개선 나서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 이후 미국과 일본이 '신(新) 밀월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양국은 특히 '대(對)중국 견제'와 '군사대국화'라는, 각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을 만들어 동북아에서의 협력을 강화했다.

이에 대해 한국이 외교적 고립에 처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한층 가까워지면서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 같은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로 규정하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비판의 지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애초부터 한미동맹은 미·일 동맹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면서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을 비슷한, 혹은 동급으로 취급하려고 한다면 그건 국제정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미국과 일본 관계가 우리와 미국 관계보다 가까워졌다는 측면이 아니라, 이대로 간다면 중·미 간, 중·일 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고립이라고 규정할 만한 정확한 징조도 없는데, 한국이 일본에 비해 미국으로부터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해서 고립이라고 판단하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면서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한미 동맹만을 중시해 온 것을 반성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미·일 대 중국의 대립으로 한국 외교가 위기에 처해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동북아의 갈등을 해소하고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정 전 장관은 "남북관계 개선"을 주문했다.

그는 "우리 외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전단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단 문제를 해결해서 남북 당국 간 고위급 접촉을 열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지적이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근 미국과 일본이 신(新)밀월시대를 열었다고 할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리 외교가 고립되고 있다는 질타가 나오고 있는데요.

정세현 : 요즘 한창 제기되고 있는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들을 보면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보다 더 가까워지고 강화되는 것 같으니까 여기에 안달이 나서 우리가 고립되고 소외됐다고 이야기하는데 비판의 지점이 잘못됐습니다. 애초부터 한미동맹은 미·일 동맹과 같은 수준이 아닙니다. 만일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을 비슷한, 혹은 동급으로 취급하려고 한다면 그건 국제정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겁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일본은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추진해나가기 위한 조력자 이상의 힘과 위상을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은 국력의 수준이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절대 일본과 같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것을 시샘해서 한미동맹 강화하자구요?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미·일 동맹만큼 한미동맹을 강화하려고 애쓰다 보면,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단 일본과 우리의 국력 차이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경제력만 보더라도, 일본이 비록 중국에 밀려 G2에서 G3로 떨어지긴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2014년 기준으로 평가한 국내총생산(GDP)은 4조 7600억 달러 정도입니다. 우리가 약 1조 4500억 달러인 것에 비하면 3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일본과 우리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해양 국가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전 세계를 누비며 군사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면서 군사력을 키우던 와중에 일본은 1905년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합니다. 이를 통해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통치한다고 상호 승인합니다. 그때 이미 미국과 일본은 동등한 자격으로 태평양을 갈라 먹은 겁니다. 결국 이 밀약이 을사조약까지 이어지는 국제정치적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구요.

20세기 초부터 일본은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국가였고 1940년대 초반에는 미국과 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리고 70년 만에 양국은 다시 갈라 먹는 게임을 시작합니다. 1905년부터 계산해보면 110년 만에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을 나눠 가지려는 장난질을 또 다시 시작한 셈이죠. 미국은 한때 자국과 어깨를 겨루기도 했고, 적대관계이기도 했던 일본을 기회가 있으면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미국이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키워주는, 즉 '이이제이'식으로 일본을 활용하려고 하겠지만, 이것이 오히려 일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양호후환'(養虎後患, 호랑이를 키워 화를 당한다는 뜻)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에 비해 한국이 왜소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적이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일본과 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역사적·정치적 배경은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공고합니다.

이런데도 한국 내의 동맹 지상주의자들은 한미동맹을 미·일 동맹과 비교하면서 초라해졌다고 한탄합니다. 뭘 제대로 알고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이 한국을 일본과 같은 상대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배경이나 알고 동맹 강화든 현상유지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지난해 한미일 3국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하면서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행동도 같이해야 하는 틀 속에 들어가 있긴 합니다만, 이것 역시 미·일 동맹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정상 회담을 가진 뒤 기자 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 전쟁 이후 계속 미국에 의존하다 보니 한미동맹이 마치 우리 운명인 것처럼 생각하고, 미국과 관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만 밀리면 나라가 망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한미동맹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은, 달리 보면 더 이상 한미동맹을 격상시킬 수 없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최대치라는 겁니다.

물론 지금보다 한미동맹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미국과 동맹을 강화한다는 것은 곧 미국의 무기를 많이 사주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에 돈을 많이 쓰면 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가서 골프 카트 운전까지 하면서 역대 한국 대통령 중에 최초였느니, 최상의 대접을 받았느니 했는데 그때 돈 엄청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extended & extended deterrence'(더욱 확장된 억제)를 보장받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확히 이야기하면 미국의 무기를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높여준 겁니다. 즉 미국 무기를 더 많이 살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은 것입니다.

2015년 올해 국방 예산이 37조 5000억 원 정도입니다. 전체 예산의 15%를 밑도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미 동맹을 더 강화하려면, 대체 국방비로 얼마를 더 써야 할까요?

프레시안 : 외교 고립에 대한 질타를 넘어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윤병세 장관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문제 제기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정세현 : 한미동맹이 미·일 동맹을 왜 따라가지 못하느냐, 이렇게 될 동안 외교부 장관 뭐했느냐 사퇴하라, 뭐 이런 논리인 것 같은데 국회의원들도 한미동맹이 끝이 없이 강화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제 정치는 속된 말로 돈 놓고 돈 먹기입니다. 예를 들어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이 있지 않습니까? (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미국은 자국 군대가 나가 있는 지역의 국가들과 전부 소파를 맺고 있는데 독일과 맺고 있는 협정이 상대국의 위신을 가장 높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파의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가 주둔군 범죄에 관한 영사재판권 문제인데 우리는 이 권한이 없습니다. 독일에 비해서 상당히 뒤떨어진 협정을 맺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결국 돈 문제입니다. 미군 주둔비를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측면이 있는 겁니다.

우리는 미군 주둔비의 50% 정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80% 정도 부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독일처럼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안달을 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 있습니다. 이게 외교·안보 관료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까? 이건 외교부 장관 능력 밖의 이야기입니다.

프레시안 : 미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면서 한국이 고립된다고 하는데 실제 눈여겨봐야 할 문제는 이게 아니라, 미·일 동맹 강화가 한반도 평화나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 아닐까요?

관련해서 베이징대학교 진징이(金景一) 교수가 최근 칼럼을 통해 19세기 이래 동북아의 모든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는데, 정치권과 언론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인사들에게는 이런 정도의 고민이나 성찰도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맞는 말씀입니다. 실제 청일전쟁, 러일 전쟁, 한국 전쟁 모두 한반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도 한반도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새로운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군사 협력 관계를 세계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는데, 그 목표는 일단 중국 견제입니다. 중국 대 미·일 구도로 전선이 형성됐는데, 한반도가 바로 이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 뉴욕에서 열린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기자회견장에서 손을 맞잡은 양국 외교·국방 장관. 왼쪽부터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 ⓒAP=연합뉴스

물론 한반도 외에 양측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지점이 있긴 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입니다. 미국은 이번 지침 개정을 통해 센카쿠에서 충돌이 벌어질 경우 일본을 도와주겠다고 대놓고 공언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충돌이 국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센카쿠와 한반도는 다릅니다. 만약 서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할 때 미군의 후방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이 참여하게 되면 한국의 외교는 정말 어려워집니다. 만일 한미동맹을 미·일 동맹처럼 격상시키면 우리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하고, 센카쿠 열도 문제 생겼을 때 같이 움직여서 일본 편을 들어야 하는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가 실제 이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미국과 일본 관계가 우리와 미국 관계보다 가까워졌다는 측면이 아닙니다. 이대로 간다면 중·미 간, 중·일 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윤 장관이 "역사적으로 미·일 동맹이 강화되는 경우에 한반도 주변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극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한반도에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외교적 전략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외교부든 청와대 외교·안보 책임자들이든 큰 틀에서 우리 외교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느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분석했다면 외교적 고립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외교적 고립'이라는 규정은 현 상황과 맞지 않고, 우리에게 제기되고 있는 외교적 난제는 무엇이며, 어떤 복잡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 예상되니까 거기에 대해 대비책을 세워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 겁니다.

국회에서도 답변해야 하는 장관에게 너무 윽박지르면 곤란하지만, 장관이 자기 업무에 관해서는 이론적으로 앞뒤가 맞게 설명하고. 어떻게 문제에 대처해 나갈 것인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장관이 본인이 맡은 문제에 대해 통찰력과 분석력을 겸비해서 완전히 부처를 장악하고 일을 추진하면서 국회에서도 소신껏 발언하면 그 장관에 대해 어느 국회의원이 함부로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부도 그렇지만 언론이나 국회의원들의 대정부 질문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미·일 동맹이 그야말로 '욱일승천'하듯이 밀려들고 있는데 그 이후에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물어봤어야 합니다. 그러면 외교적 고립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게 왜 외교적 고립입니까?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단교를 당했습니까? 한국에 있는 외국 대사들이 한국을 떠나겠다고 합니까? 고립이라고 규정할 만한 정확한 징조도 없는데 한국이 일본에 비해 미국으로부터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다고 해서 고립이라고 판단하는 시각 자체가 문제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한미 동맹만을 중시해 온 것을 반성해야 할 타이밍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 입각해서 언론이나 국회의원들은 한미 안보 동맹과 한중 경제 동맹 사이에서 균형을 잡거나 양립시킬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이냐고 외교부 장관에게 물어봤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당장 이달 말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일본이 우리 측에 한일 상호 간 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요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국방부는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데요. 아베 총리가 방미 이후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북아 내에서 군사적 팽창을 가속화하고 있는 일본이 주도적으로 협정 체결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군수물자를 공유하고 공급하는 협조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하면 우리가 거절할 명분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상당히 많이 끌려 들어온 겁니다. 미·일 동맹에 대한 견제 심리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한일, 한미일 간 군사적 협력까지 격상되면 앞으로 우리가 대(對)중국 외교를 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미 한미일 군사 동맹에 깊이 들어왔는데 여기서 미국의 요구대로 더 들어가자고 하면 한국 외교부는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판단 없이 그냥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면 주한미국대사관의 지침대로만 움직이면 됩니다.

군사적 협력 부분만큼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에 잘 쓰는 방식을 여기에 적용해야 합니다. 시간을 끌면서 상대방에게 진정성을 요구하는 한편,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겁니다.

수렁에 빠진 한국, 해답은 남북관계에 있다

프레시안 : 동북아의 긴장과 갈등이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가 외교적 입지를 다지고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결국 남북관계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남북관계 개선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외교적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니까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겁니다. 이런데도 일부에서 남북관계 개선하자고 하면 "또 퍼주자고?"라고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남북 관계개선은 '퍼주기'고 미·일이 한통속으로 중국을 견제해 가는 것에 우리가 끼지 못하면 '고립'이라는 근시안적인 안목으로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어렵습니다.

우리 외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전단 문제 해결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대남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5일 전단 문제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5.24조치 해제 등을 먼저 실시해야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북한에 '천륜을 어겼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나온 메시지입니다.

물론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당장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관둘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 의지를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적정한 수준의 훈련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훈련을 아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상황이 더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전단 문제는 다릅니다. 의지가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표현의 자유'라고 언급한 그 한마디에 얽매여서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 일을 방치하고 있는데, 계속 이대로 전단 문제에 수수방관하는 것은 대통령부터 통일부 장관까지 직무유기 아닙니까?

그리고 일단 생존을 해야 자유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표현의 자유보다 덜 중요한 것입니까? 북쪽에서 날아오는 총알 맞고 연천군 주민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람한테 표현의 자유와 목숨을 바꾼 거라고 설명할 겁니까?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오기 전에 얼른 결단을 내려서 남북 당국 간 고위급 접촉을 시작해야 합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막 집권했던 2013년, 그해 봄에 미국은 필요 이상으로 고강도의 무기를 훈련에 투입했습니다. B-2, B-52 등 핵 폭격기가 서해에 진출한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럼 북한은 어땠을까요?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인 데다가 군사력도 한참 뒤쳐진 북한은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14년의 훈련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연합 훈련에 반발하게 된 겁니다. 결국 이 문제가 남북관계 개선의 조건처럼 돼버렸는데, 당국 간 협상을 통해 북한에 훈련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그 이전에 미국과도 협의를 해야 합니다. 북한에 적당히 겁주는 수준으로 하자, 기절초풍할 정도로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축소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센카쿠 열도로 미·일과 중국이 대립할 때 한국이 자신들의 편에 서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북한이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합 훈련을 강화해서 북한이 여기에 반발하고, 우리가 이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으면, 한국이 결국 미·일 동맹의 한 날개로 들어올 것이라는 구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우리의 외교적 입지는 상당히 좁아집니다. 그래서 이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과 직·간접적인 의사소통을 해서 상황을 설명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두 개의 한국> 저자인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위원이 <글로벌 아시아>에 군사 훈련과 관련한 글을 한 편 기고했는데요. 북한이 지난 1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북한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자며 미국에 대화를 제안한 것과 관련한 내용의 기고입니다. 북한은 나름대로 복안을 가지고 제안했고, 이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여서 협상을 했다면 북핵과 관련한 모종의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당시에 미국은 이 제안을 '암묵적인 위협'이라며 일축했습니다.

정세현 : 우리나라의 많은 전문가, 학자, 언론인들도 북한은 거짓말만 한다고 치부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도 계속 미국과 힘겨루기하는 것 자체가 피곤할 겁니다. '빅딜'이든 거래든 어떻게 해서든 군사적·적대적 관계를 끝내고 편하게 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북한이 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이면 되느냐" 정도는 타진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현실적으로 이쪽에서 세게 나가면 저쪽은 세게 대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없는 살림에, 훈련만 지나면 아무런 경제적 효과도 없는 무기에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겁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을 찾는 것이 바로 외교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이제 와서 대북 패러다임을 바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야당도 대북정책과 외교적 측면에 대해서는 별다른 혜안이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야당이 제대로 된 정책적 방향을 내놓는다고 해도 박근혜 정부가 이를 온전히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야당이 국민들에게 설득력있는 담론을 보여주면 다음 총선과 대선을 대비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런 담론을 야당한테서 기대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윤병세 장관이 물러나는 것이 능사인 줄 아는데, 그런 정도의 외교적 분석력과 문제를 보는 식견을 가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국내 정치에서도 전패하는 것 아닙니까? 큰 틀에서 국내·국제 정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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