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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중 담합 모르고 줄서기만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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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중 담합 모르고 줄서기만 강요? [박홍서의 중미관계 돋보기] '안보'와 미중 간의 담합체제

지난 10월 19일, 27명으로 구성된 미해군 고위 간부들이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조용히' 견학했다. 이번 방문은 미중 군사교류의 일환으로 인민해방군 고위 간부들이 지난 2월 미 함대를 방문한 것에 대한 답방이었다.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거행된 이번 행사는 미중 협조체제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남중국해 문제의 본질이 전쟁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상호간의 갈등적 문제와 여타 국제 현안들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데 큰 공감대를 이루었다. 효율적인 '글로벌 거버넌스'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에 관한 중국 국무원 판공실의 보도문은 중미 간의 협조가 원활한 '전구치리(全球治理: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국식 표현)'의 필수조건임을 밝히기도 했다.

'안보'와 미중 간의 담합체제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미중 간의 지대한 관심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현 국제질서의 주창자인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중국으로서도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편승해 막대한 수혜를 입은 이상 미국주도의 현 국제질서가 급속히 변화되는 것을 반길 수만은 없다. 중국이 표출하는 다소간의 불만은 판을 깨자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 규칙을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미중간 협력은 권력의 통치전략 변화라는 보다 근원적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권력은 어떻게 통치(지배)하는가? 미셸 푸코의 설명은 여전히 설득력이 높다. 보편적으로 권력은 칼, 규율, 그리고 빵이라는 수단을 통해 통치한다. 칼은 피통치자들을 '죽임'으로써, 규율은 '내면화'함으로써, 빵은 '양육'함으로써 통치한다. 칼에 의한 통치가 원초적이라면, 빵에 의한 통치는 보다 세련화된 것이다.

푸코는 후자를 ‘생명정치(bio-politics)’라고 규정내린다.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에 따라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이 필요하게 되면서 권력은 인간의 생명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전의 권력이 폭력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인간을 통제하였다면, 생명정치는 인간을 ‘풀어놓고’ 양육․관리한다. 생명정치의 목표는 개개 인간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그들의 ‘개체수’ 증진인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인간들에게 ‘윤리’나 ‘이념’을 강요하지 않는다. 핵심은 ‘리스크’ 관리이다. 통치의 사회생물학, 통치의 경제화이다.

이것은 왜 현대정치에서 ‘안보(security)’란 개념이 유행하는지 설명해 준다. 전통적 의미의 국가안보와 더불어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사이버안보, 심지어 인간안보까지 모든 통치대상을 안보화한다. 통치대상들을 방목하고 개체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을 외부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양떼를 울타리밖 이리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동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미중 양국의 공감대는 바로 이러한 생명정치적 권력의지의 소산이다. 특히, 효율적인 글로벌 거버넌스의 수립은 ‘전지구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더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미중정상회담에서 항상 등장하는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라는 개념은 그러한 의지를 명료히 드러낸다. 위기관리에 실패하면 국제질서는 붕괴되며 미중 양국은 공히 사활적 타격을 입는다. 중요한 것은 ‘질서’다.

글로벌 거버넌스 역시 국제문제를 윤리적 혹은 이념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것들이 가지는 ‘리스크’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은 북한 문제를 더 이상 혈맹이네 깡패국가니 하는 선악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정치적 수사로만 사용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라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미국이 ‘전략적 인내’를 외치고 중국이 이를 묵인하는 행태 속에는 북한을 ‘게토’로 몰아넣고 국제질서의 교란을 차단하려는 의중이 보인다.


담합구조 은폐하는 강대국 의도 모르고 줄서기 강요당하는 우리 외교

미국이야 진작부터 통치의 경제화를 추구해 왔다지만, 최근 안보를 유별나게 강조하는 중국의 모습은 특히 눈에 띈다. 중국은 2014년 기존의 외사영도소조, 공안부, 그리고 국가안전부를 포괄하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했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국가, 인민, 경제, 군사, 문화, 그리고 국제안보를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는 시진핑의 발언에는 모든 것의 안보화, 또 그에 따른 리스크 예방 및 관리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분석이 타당하다면,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종국에는 충돌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들은 성립되기 어렵다. 오히려 그러한 논리들은 국제정치에 대한 미중 간의 담합구조를 '은폐'하고 영속화하는데 봉사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강대국간 담합구조의 은폐는 결국 그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약소국들은 끊임없이 '줄서기'를 강요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정치권력이 상호간의 담합구조를 은폐함으로써 각기 체제결속을 강화해 왔다는 사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농장의 지배자 나폴레옹은 끊임없이 외부 위협을 떠들어댄다. 주인이었던 존스 씨가, 라이벌이었던 스노볼이 농장을 언제고 침탈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집토끼 관리다. 미중 간 패권경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담론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결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느 편에 서겠는가?"라는 질문은 한국과 같은 처지에서는 유익한 질문이 될 수 없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미중간 담합구조를 은폐함으로써 한국의 미국에 대한, 또한 중국에 대한 활동반경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은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너희들은 싸울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왜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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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서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군사개입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 연구교수 및 상하이 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강원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관계 이론, 중국의 대외관계 및 한반도 문제이다. 연구 논문으로 <푸코가 중국적 세계를 바라볼 때: 중국적 세계질서의 통치성>, <북핵 위기시 중국의 대북 동맹 딜레마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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