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의료 민영화 종합 계획은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이라는 문서에 담겨 있다. 그 뼈대는 '영리 자회사'와 '병원 인수 합병'이다. 첫 번째 영리 자회사는 병원을 사실상 투자, 배당이 가능한 영리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2014년 200만 반대 서명 등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용되어 버렸다. 두 번째 병원 인수 합병은 병원 간 체인을 허용해 거대 독점 병원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두 가지가 동시에 허용되어야 미국식 영리 체인 병원이 완성된다.
그런데 병원 인수 합병은 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하다. 영리 체인 병원을 바라는 병원장의 모임인 대한병원협회가 지난 10년간 로비를 벌였음에도 국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의료 민영화 반대'를 내걸었던 야당이 20대 총선 승리 직후 갑자기 이 법을 통과시켜주었다. 박근혜 정부와 병원장들의 숙원 사업인 영리 체인 병원 의료 민영화에 마침표를 찍어준 것이다.
의료 민영화의 천국으로 잘 알려진 미국에서 의료비 상승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병원들을 흡수하며 거대 기업이 된 대형 영리 체인 병원들이다. 지난해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의료비 상위 50개 병원은 미국 공공 의료 보험 '메디케어' 허용 기준 의료비의 무려 9.2~12.6배를 청구했는데, 이 병원 가운데 46개(92%)가 대형 영리 체인 병원 소속 병원이었다.
46개 중 25개가 CHS체인병원, 14개가 HCA체인병원, 4개가 Tenet체인병원으로, 이런 몇몇 체인이 의료비를 폭등시키는 것이 미국 의료 민영화의 모습이다. 같은 치료를 받아도 공공 의료 보험 환자 의료비가 10만 원일 때, 영리 체인 병원에 가면 126만 원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최대 영리 체인 치과 병원인 '아스펜 덴탈'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이 병원은 발치 2개를 하러 간 환자에게 종합 검진을 실시해 7835달러(930만 원)를 청구했다. 선물이라며 건넸던 전동 칫솔에도 149달러(17만 원)를 매겼다. 아스펜 덴탈은 사모펀드 소유의 회사가 관리하는 치과 체인으로 22개주에 350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이 병원은 '치료비를 대폭 할인 한다'고 광고해 환자들을 유인하여 수천 달러에 달하는 치료비를 떠안기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에게는 '특별 신용카드'를 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신용카드는 최대 2년 무이자로 발급되지만, 이후 상환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30퍼센트의 이자를 갚게 한다.
2012년 기준 미국 매출 규모 3위 체인 병원 '헬스 메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는 응급실로 온 정상 체온 아기에게 '열병' 진단을 내려 입원시키고, 목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은 노인에게 가슴 통증 검사를 시키고 결과가 정상인데도 입원시킨 사례가 내부 고발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 병원 응급실 게시판엔 날마다 의사들의 등급을 매기는데 '응급실 환자를 최대한 입원시키라'는 병원 지침을 달성하는 의사에겐 녹색, 근접한 의사에겐 노랑, 실패한 의사에겐 빨강 평가가 붙는다. 지침을 어긴 의사는 가차 없이 해고당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체인 병원이 불법인데도, 이미 불법 편법으로 횡행하고 있다. 한국의 무릎, 어깨, 치질 수술은 외국의 몇 배에 달한다. 척추 수술은 일본의 3배이고 국내에서 10년 사이에 6배가 늘었다. 이런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것이 불법으로 체인을 형성한 전문 병원이다. 연예인과 운동선수를 내세운 광고로 환자들을 끌어 모아 불필요한 무릎, 허리 수술을 시켜 그 병원 주변에 재활의학과 병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모 치과 네트워크 병원은 '스케일링을 무료로 해주겠다'는 광고로 환자를 유인해 불필요한 값비싼 시술을 권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들 네트워크 병원들은 체인 병원을 금지하는 현행 의료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고 있거나 지분을 정리 중이다.
그런데 병원 인수 합병이 허용되면 체인 병원들이 어엿한 합법이 되고, '의료법인' 지위까지 얻어 세금 감면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전국에 과잉 진료 체인 병원이 확산되는 것이다. 게다가 영리 자회사로 투자와 배당을 받는 '영리 기업'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식 영리 체인 병원과 같을 형태를 갖게 된다.
영리 체인 병원은 국민건강보험도 무너뜨린다. 앞서 언급한 '헬스 매니지먼트 어소시에이츠' 병원도 매출의 40%를 공공 의료 보험에서 얻기 때문에, 이들 병원의 과잉 진료와 부당 청구는 미국에 그나마 존재하는 공보험 제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당국에서 관심을 갖고 수사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국에도 과잉 진료를 하는 일부 불법 체인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런 병원이 확산되어 의료비 폭등을 낳으면 국민건강보험이 버텨내기 어려워진다.
그 간 '의료 민영화'만은 안 된다는 국민들의 반대 여론 때문에, 일부 규제가 완화되긴 했어도 심각한 민영화로 치닫지는 못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추진되는 병원 인수 합병은 한국 의료 체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심각한 조치다. 국회가 막바지에 이르고, 다음 총선까지 진행되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 때 날치기하듯 의료 민영화를 통과시킨다면 그 정당이 어디든 국민들의 강한 비판과 저항에 맞닥뜨릴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소리 없이 죽음으로 몰아갈 의료 민영화에 19대 국회의원들은 도장을 찍어선 안 된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 의료 민영화 핵심에 야합하려는 시도를 지금이라도 멈추고 이 법을 폐기해야 한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부장은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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