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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컵라면 소비가 늘어나길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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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컵라면 소비가 늘어나길 바라나?" [기고] 구의역 사고의 진짜 원인과 대안
열아홉 꽃처럼 불타는 청춘이 사라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5월 28일 오후 5시 50분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구의역 승강장의 스크린 도어에 도착했다. 고장 신고 접수 후 1시간 이내 출동이라는 데드라인을 몇 분 남겨놓은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청년은 얼른 수리를 마치고 공구 가방 안의 컵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5시 54분 스크린 도어 안쪽으로 들어간 청년은 전동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구 가방을 열었다. 작업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갑자기 나타난 열차의 기적소리에 어찌 할 도리가 없던 청춘은 준공무원 정규직의 꿈과 함께 사라져갔다.

구의역 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고 조사 기법 중에는 사고의 인과 관계를 따지는 로직 트리 그리기 방식이 있다. 사고 관련 사실의 수집과 배열을 통해 단계별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지점을 찾게 된다. 구의역 사고의 경우 열차 진입은 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하고 접촉 사망의 전 단계에 있었던 문제를 살피게 된다.

첫 번째 만나게 되는 문제는 스크린 도어 안쪽에서의 작업이다. 열차 운행 시간에 스크린 도어 안쪽 작업은 규정 위반이 된다. 두 번째는 2인 1조 작업 원칙이다. 열차 감시자가 없는 작업도 규정 위반이다. 세 번째는 역에 보고 없이 작업했는데 이 역시 규정 위반이다. 그런데 이 규정 위반이 업체의 교육 훈련 미비나 1회성 위반인가 평소 일상적으로 행해진 위반인가에 따라 로직 트리의 하위 단계에서 내려지는 결론이 달라진다.

구의역 사고는 하청 업체의 노동자가 안전 매뉴얼을 지킬 수 없는 조건에서 일어났다. 구의역에서 작업한 청년 노동자가 그날따라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니다. 이 업체에 소속된 대부분의 현장 출동 노동자가 상시적으로 규정을 위반하고 위험을 무릎 쓴 채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스크린 도어 고장 빈도와 하청 업체의 인력 구조를 봤을 때 안전 규정은 책임 회피용 알리바이에 불과했다.

결국 사고의 원인을 찾으려면 현장에서의 부주의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는 후진국형 산업 재해이면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렸던 외주화의 문제, 노동의 유연화에 따른 문제이고, 서울메트로 고위직 퇴직자의 파렴치한 기득권 챙기기 등 한국 사회가 사회적 과제로 설정하고 달려온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된 실체이다.

▲ 구의역 스크린 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모 씨의 고교 친구 박모 씨가 5월 31일 서울 광진구 구의역 인근에서 한국청년연대 등 청년단체 회원들과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원청 회사에서 재직하다가 퇴직 후 자회사나 하청 업체의 임직원으로 가는 것은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유지해 안정적 노후를 보장받는 일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신의 직장으로까지 불리는 공기업에서 수십 년을 근무 했으면 은퇴 후에는 젊은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양보하고 봉사해야 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노동자에게는 밥 먹을 기회까지 빼앗으며 월144만 원이라는 박봉을 얹어주면서 관리자 노릇하며 고임금을 가져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지옥이 아니면 어디가 지옥인가. 최소한의 양심과 부끄러움조차 없어진 사회의 살풍경이다. 우리는 안전 불감증의 사회가 아니라 도덕 불감증의 사회에 살고 있다.

외주화의 문제는 단순히 원청 업체가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외주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 지는 게 심각한 문제다. 원청 회사는 하청 업체에, 하청 업체는 말단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결국 피해는 무고한 시민들이나 힘없는 노동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청 회사가 유발하는 심각한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 회사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은 경제 단체의 반대와 보수 정당의 회피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사고에 대한 방지 대책으로 스크린 도어 관련 업무에 대한 운영 기관의 직영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대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하철 운행 과정의 중요한 요소이면서 이용 시민들이 늘 마주하게 되는 핵심 장비인 스크린 도어에 대한 운영 기관의 직접 관리가 이상향으로 간주되는 현실이 정상적인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19대 국회에서 노동 4법만큼은 통과시키려고 사력을 다했고 새로 개원된 20대 국회에서도 중요한 국정 추진 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4개 법안 중 파견법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고용 안정, 경제 활성화에 꼭 필요한 법이라고 역설했다.

파견법은 전형적인 간접 고용 방식이다. 구의역 사고에서 비롯된 원청-하청 구조보다 더 심각한 책임 전가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와 사용하는 사업주가 다르다. 정부가 주요 과제로 삼고 있는 노동 유연화를 대폭 확장 시킬 수 있는 법이다.

정부의 경제 살리기 국책 과제가 달성되면 파견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이 가장 일반적인 일자리가 되는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기업들의 비용이 줄어든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방에 담길 컵라면 소비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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