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이번에 나타난 촛불 민심은 단지 대통령 탄핵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6차 집회를 통해 시민의 정치적 각성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새누리당 해체', '검찰 개혁', '재벌도 공범'이라는 슬로건에서 나타나듯이, 시민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박힌 정경유착과 부패,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강도 높은 해결을 요구할 것이다. 그것이 내년 대선에 핵심 아젠다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혁명적 상황, 대선 때까지 갈 것" vs. "촛불 동력, 소강 상태로 갈 것"
촛불 민심의 일차적인 요구인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과 '탄핵'이 해결됐다면, 촛불 동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닐까? 유승찬 대표는 "촛불은 당분간 소강 상태에 접어들 수도 있지만, 다른 계기로 얼마든지 다시 폭발할 수 있다"며 "시민 혁명 정신이 쉽게 사그라들 것이라고 보는 것은 굉장한 오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특히 이번 촛불 집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와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앞의 두 집회가 '진보'의 의제였고 단일한 사안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 집회는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공감대가 있고,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개혁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유승찬 대표는 "재벌이나 검찰, 새누리당을 포함한 정당들이 모두 혁명적인 수준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민심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며 "혁명적 상황이 대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혁의 의제로는 정치 개혁, 경제 구조 개혁, 사법 정의에 대한 개혁(검찰 개혁) 등을 꼽았다.
촛불 집회가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을 '왼쪽'으로 옮겨놓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승찬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트럼프 현상'으로 대변되는 보수 포퓰리즘이 강세를 보이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는 그에 대한 역진적 현상이 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촛불 집회에서 드러난 시민의 공론화 과정, 정치적 각성 과정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이번 촛불 집회가 보수와 진보의 지지를 모두 받았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촛불 동력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 것이라고 봤다. 박상훈 대표는 "입법부에서 탄핵안을 가결하면 촛불 집회의 일차적 목표가 이뤄진 것"이라며 "다만, 정당들이 사태를 마무리할 능력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대규모는 어렵겠지만, 여전히 정당들을 압박하는 촛불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이후의 광장이 제기하는 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박상훈 대표는 "전 국민적인 합의로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 실망한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참여는 탄핵 가결을 계기로 줄어들 것이고, 보수 진영도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이다. 광장에 남아서 뭔가를 해보자는 사람들은 노동 문제, 신자유주의 비판 등의 개혁 의제를 들고 나오겠지만, 그러한 방향에 동의하지 못하는 시민이 빠져서 동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 민심, 새로운 정치 모형 실험할 수도"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광장 민심'을 정치적 의사 결정에 반영하려는 "새로운 정치 모형에 대한 실험"이 나올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벌써 이미 여러 군데에서 탄핵이나 퇴진 이후를 준비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광장 민심이 대한민국을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8일에는 '촛불 민심'을 대변할 시민 대표단을 선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시민 1141명이 '온라인 시민의회'를 만들어 국가적 의사 결정 과정에 국민의 뜻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동 제안자에는 소설가 김훈 씨, 방송인 김제동 씨, 소설가 황석영 씨,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교수,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장 등을 비롯해 목수, 바리스타와 같은 각계각층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처벌, 국민의 생명과 주권이 존중받는 포괄적 국가 개혁 방안을 토론하고 수렴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바로 가기 : )
김윤철 교수는 "시민 단위가 대선 주자나 정치권과 협력적인 관계를 가지고, 전반적힌 한국 사회를 재설계하는 것이 촛불 민심 이후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이 재설계 관련 의제에 대한 답을 내놓으면서 대선 경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게 대선 주자 간 경쟁 과열이나 야권 분열로 나가면 민심이 분노하고, 야권이 힘을 합치면 민심에 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박상훈 대표는 '촛불 민심'의 기저에 있는 사회 전반적인 의제들을 정치권이 받아안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야, 진보와 보수, 각 정당이 갈등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정책 갈등이야말로 긍정적인 것이다. 여야가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개혁 의제들을 다뤄야지, 오히려 '반(反)박근혜 연대의 연장으로 선거를 치러서는 국민에게 실망만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개헌' 논의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는 전문가들 모두 부정적이었다. 김윤철 교수는 "정치권 일부의 '권력 구조 중심의 개헌 논의'는 촛불이 응하지도 않을 것이고, 동력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개헌을 논의하면 전체적으로 '국가 시스템 재설계'를 위한 여러 의제들이 진입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시간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상훈 대표는 "지금도 개헌에 대한 당론이 있는 정당이 없다"며 "민주적인 개헌 논의를 하려면 각 당이 당론을 정하고, 그에 맞게 선거 공약을 제시하고, 그 다음 국회나 다음 정부에서 서서히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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