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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민주주의 '적'은 '이명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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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민주주의 '적'은 '이명박'이 아니다! [프레시안 books] 드워킨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미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의 책, <민주주의는 가능한가>(홍한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최근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조지 W.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직후인 2005년 봄 학기 동안 저자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한 강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다루는 이슈나 쟁점은 주로 한 해 전 대선에서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대립했던 문제들이다.

선거는 보수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여기서 드러난 것은 보수적 가치의 우월함이 아니라 미국 정치가 드러낸 극단적 분열 양상이다. 선거 과정에서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인 토론과 논쟁은 자취를 감췄다. 미국이란 나라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붉은 문화'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파란 문화'로 확연히 분열되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며, 드워킨은 미국 정치가 '끔찍한 상태'에 빠졌다고 한탄한다. 과연 극단적으로 분열된 정치 문화는 단지 2004년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과정에서든 다른 중요한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든 구체적인 정책을 둘러싼 이성적 토론이나 논쟁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 자리엔 늘 어김없이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 그리고 진보파 내부의 NL(민족 해방)과 PD(민중 민주)로 나뉜 사람들 간의 극단적 대결과 상호 비방만이 난무한다. 불길한 예감이지만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이런 양상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이명박은 무조건 나쁘니 진보가 집권해야 한다, 진보에게 나라를 맡기면 안보가 위험하다, 누구의 이성 관계가 복잡하다, 저들은 민주주의를 억압했으니까, 우리는 민주화를 이룬 주역이니, 누구의 딸이니까, 의식 있는 기업가였으니까. 이성적인 원칙에 입각해 구체적인 정책을 말하는 대신 스캔들이나 감정적 수사, 혹은 잘 포장된 이미지만을 부각시키며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인들은 여기에도 있다.

▲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로널드 드워킨 지음, 홍한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정치 상황은 드워킨이 말한 절망적인 미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은 2012년 대선 정국에서 각 후보자들과 선거 캠페인이 제시하는 중요한 쟁점들과 정책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 수준을 판가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드워킨에 의하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그 역시 공화당 지지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지리적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서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난만 일삼고 있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드워킨의 책에서 주목해보아야 할 것은, 극단적으로 갈라진 두 문화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두 문화의 분열과 이성적 토론의 부재가 만들어낸 정치에 대한 환멸 속에 미국 민주주의가 절망 혹은 '정치가 아닌 전쟁 상태'에 빠졌다고 말하면서도, 드워킨은 민주주의가 여전히 최선의 정치 체제라는 믿음과 이를 복원하려는 희망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절망적인 것처럼 보이는 미국 정치의 분열적 상황을 극복하고 건강한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드는 희망의 수단으로 '논쟁'을 제안한다.

그에게 '논쟁'이란 "아주 기본적인 정치 원칙에 대해 공통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이 공통의 원칙을 더 잘 반영하는 구체적 정책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논쟁에 필수적인 공통의 기반으로 존엄의 원칙을 제시한다. 정책적인 수준에서 구체적인 각 분야의 쟁점에 대해 의견 일치를 이룰 수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거의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존중, 존엄성에 대한 원칙을 구성하는 두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인간의 삶은 특별한 객관적 가치"를 지닌다. 둘째, "누구나 자기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인 모든 인간의 삶에 객관적인 가치가 있다는 명제로부터 도출되는 중요한 결론은 이런 것이다. 모든 사람의 삶에 객관적 가치가 있다면, 삶의 가치와 객관적 중요성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자기 존중이 분리될 수는 없다. 바꿔 말해, 다른 사람의 삶을 부인하는 일은 곧 나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과 동일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드워킨은 자신의 행동 나아가 정치 공동체의 규제가 다른 사람 혹은 어떤 특정 집단의 가치에 대한 무시 혹은 경멸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 국가가 한 인간 혹은 어떤 특정 집단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나 인권을 무시하는 일은 결국 그 국가가 그 국가 자체를, 그리고 인권이라는 보편 개념을 경멸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 "종교, 결혼, 직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책임", "어떤 삶이 좋은 삶이냐에 대해 궁극적 결정을 내리고 실행해야 할 책임", 그러니까 "자기 삶의 통제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원칙은 자신의 삶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영역들이 타인이나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 그리고 국가로부터 공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원칙들에 대해 드워킨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정부가 통치권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자기 삶을 위한 개인적 책임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권리를 보호하지 않을 경우 정당성을 잃게 된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막중한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원칙에 근거하여 드워킨은 2장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단지 위험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나 사법적 보호 장치 없이 사람을 감금하는 것, 양심이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애국법, 고문, 사형 제도, 내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해 흥미진진한 논의들을 전개한다. 3장에서는 관용적 종교 국가와 관용적 세속 국가를 구별하고 국가 안에서 종교가 가진 권위,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 믿음에 대한 책임과 이에 대한 공적인 보호를 다룬다. 공립학교에서의 기도 문제, 지적 설계론, 낙태와 동성 결혼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논의의 대상이 된다. 4장에서는 '보험 은유'를 통해 조세 제도의 공정성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드워킨이 제시하는 주장과 논거들은 흥미로우면서도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드워킨은 "내 주장이 옳지 않다고 그냥 우기기만 할 게 아니라 논박할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정치의 공간에서 인식 공격이나 우격다짐,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 공적 논쟁이 촉발하기를 원한다. 상호 관심과 존중을 기반으로 공동체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민주주의에서 정치 논쟁의 부재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드워킨이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는 미국 사회에 한정된 것으로 우리 사회의 주된 문제와 동떨어진 것들도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공립학교에 강요해도 되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한국의 독자에게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드워킨이 제기한 기본 주장들이 우리 사회와 완전히 관련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도 비전향 양심수, 양심적 병역 거부,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 성매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국가보안법 등 첨예하게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 깊은 논쟁과 토론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들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원칙에 입각한 토론은 현재 한국에 과연 존재하는가.

드워킨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붉은 문화'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파란 문화'의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깊은 분열과 간극, 대결로만 미국 정치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두 문화 명제는 '미국의 정치 현실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산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붉은 문화'와 '파란 문화'의 분열과 대립을 재확인하고, 조장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세력은 누구일까.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모두 일정 정도 이러한 분열적 양상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다는 것인데, 마치 정책 논쟁처럼 보이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 그리고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영호남 지역 갈등, 민주-반(反) 민주 대립 역시 이런 분열을 통해 정치에서 논쟁을 억압하고 이로써 협소한 정파적 이익을 달성하고자 했던 한국 정치의 산물은 아닌지 묻고 싶다.

현재의 미국과 같은 우울한 정치 상황 속에서도 "논쟁하는 상대에 대한 믿음 없는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논쟁을 통해 정치의 회복을 갈망하는 드워킨의 태도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건대, 2012년 한국 대선에서도 선거 과정이 정치에 대한 환멸이나 절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한 많은 토론과 논쟁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드워킨의 말마따나 민주주의란 인간적 삶의 가치에 대한 존중 위에서, '좋은 삶'을 위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다양한 방식들을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 결정하는 정치 체제이고, 논쟁은 이 방식들에 대해 합의하고 결정하는 핵심 기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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