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부품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신고리 3호기에 연결될 765 킬로볼트 고압 송전망 가설 중지를 위해 밀양 어르신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기까지 한국전력과 맞서고 있다고 한다. 200억 달러 국산 핵발전소 수출과 자신의 고향을 자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몸도 볼보지 않는 어르신의 목숨을 바꾸는 것이 '국격' 있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고압 송전탑으로 고향을 잃어버리게 하고 각종 핵발전소 비리 사건으로 사고 위험과 정전의 위험 앞에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이 자원이 없는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대형 핵발전소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체제라는 정부의 설명과는 거리가 먼 상황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대용량의 핵발전소 한 기만 가동 중단이 되어도 이를 대체하고자 기업에 보상금을 지불하며 공장 가동을 줄여야 하고, 값비싼 가스 발전을 돌려야 하는 등 수급 조절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난 것이다.
핵발전소 노후화가 점차 진행되고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조그만 고장에도 핵발전소 가동 중지가 이어지고 핵발전소 개수가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 예측에 맞춘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또 전력 공급에만 초점을 두어 발전소 건설에만 주력한 정부는 노후화하고 복잡해지는 핵발전소 시스템의 안전을 책임지며 안정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핵발전소 부품 업체 비리와 시험 성적 위조 사건 발생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정부의 핵발전소 안전 관리 체제로는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운영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체제는 부분적 수술로는 건강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관리 대상을 바꾸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현재의 관리 체제 능력을 벗어나는 대형 핵발전소 체제 대신에 지역에서 분산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분산형 전력 생산 공급 체제로의 전환이다. 이 체제에서는 수도권으로 대형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온갖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며 765 킬로볼트의 고압 송전망을 가설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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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력 공급 체제란 어떤 것일까? 이는 현재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핵발전소 에너지 전환 실험들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뮌헨은 현재 시에서 운영하는 시발전소에서 풍력 발전, 태양광 발전, 소수력 발전 설비들을 직접 설치하거나 일반 주택의 소형 햇빛 발전소와 계약을 맺어 뮌헨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12퍼센트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하고 있다.
탈핵발전소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2025년에 뮌헨은 시발전소에서 이들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하는 양을 시에서 소비하는 전력량에 맞춘다는 계획으로 재생 발전 설비들을 확충하고 있다. 시 발전소가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면 생산된 재생 가능 에너지는 시 소속 배전망 회사에서 운영하는 지역의 전력망을 통해 각 가정과 공장들로 보내진다.
이들 전력망은 뮌헨과 인근 8개 읍 단위 자치구들이 연계되어 있다. 풍력 발전, 태양광, 지열, 바이오와 열병합 발전 설비들이 지역 전력망으로 연계되어 바람이 부족하거나 햇빛이 부족하면 바이오와 열병합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 이들 지역 전력망에서 부족한 전력은 다시 이들 전력망에 연계된 다른 전력망으로부터 송전을 받아 부족분을 메우게 된다.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력량과 지역에 설치된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을 일치한다는 의미의 100퍼센트 재생 가능 에너지 지역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는 독일 지방자치단체는 129개에 달한다. 이들 지방자치단체 중에 상대적으로 인구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는 이미 지역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소비하는 전력을 넘어선 경우들도 꽤있다.
인구 2500여 명의 빌트폴리츠 자치구 같은 경우 주민들 소유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발전기, 소수력과 열병합 발전으로 자신들이 소비하는 전력의 3배를 생산해서 한해 500만 유로를 벌어들이고 있다. 여기서 생산한 전력은 빌트폴리츠에 연계된 전력망을 통해 재생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렇게 지역 곳곳에서 전력 생산이 이루어지는 체제로 바뀌어 가며서 대형 송전에 의존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현재 독일에서도 대형 산업체들이 남쪽에 집중해 있어 여기에 필요로 하는 전력을 북쪽의 대형 해상 풍력 단지에서 끌어오기 위해 380 킬로볼트 초고압 직류 송전로 가설 필요성이 제기되고는 있다. 그러나 이 송전로가 가설되더라도 제한적이며 지역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들이 더 늘어나게 되면 줄어들 수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최근 독일 연구소와 지방자치단체들에서는 이런 분산형 전력 생산과 소비 체제를 더 급진적인 형태로 만들어가고자 여러 실험과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 전력 공급 체제의 특성인 지역 생산과 소비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저장 기술들을 개발하고 이 저장 설비 확산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 개발 및 법 개정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재생 가능 에너지법(EEG) 등은 지붕에서 생산한 전기를 거주자가 소비하기보다는 파는 것이 유리한데다가 배터리 등 저장 기술들이 아직은 경제성이 없어 이를 설치하지 않는 상황이다. 연관 제도 개선 및 시장 창출을 통해 이런 전력 생산 소비 체제를 실현하려는 움직임들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이런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둔 분산형 전력망 체제가 전체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오래된 불신을 반박하는 연구도 진행되었다. 고출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핵발전소의 특성이 산업용 전력 수요가 많은 우리 사회에 적합하며 출력이 일정하지 않은 풍력과 태양광 등의 재생 가능 에너지는 전력 공급 및 전력 계통의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독일의 프라우엔호퍼 풍력 연구소는 현재 가동되는 풍력 발전소, 태양광 발전소와 수력, 바이오매스 발전소 총 55메가와트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 설비를 대상으로 이들을 전력망으로 결합하여 이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만으로도 독일 인구 1만분의 1에게 필요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최근에는 독일 전역을 대상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와 저장 설비 결합만으로 전압이 갑자기 떨어지는 불안정성을 유발하지 않은 채로 100퍼센트 재생 가능 에너지 공급 체제 구현이 가능함을 시사한 바 있다.
독일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실험들은 진행 중인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핵발전소의 불안한 체제에 대한 대안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이들 분산형 체제는 밀양 어르신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지역에서 에너지 공급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해주며 지역 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진다.
빌트폴리츠 주민들은 자신들이 세운 풍력 발전기로 전기를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뮌헨 주택 옥상에 세워진 태양광 발전소 주인도 시발전소에 전기를 공급하고 부수입을 올린다. 지역으로 분산된 전력망에 다양한 저장 시설이 연계되면 현재와 같이 핵발전소 가동 중단에 따라 공장을 멈추게 하고 고액의 보상금을 지불할 필요도 없어진다.
첨두 부하 시에 분산된 재생 가능 발전소들이 제때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전력 시장을 잘 디자인하면, 그리고 분산된 발전소들이 모두 연계될 수 있도록 충분한 전력망 인프라가 확충된다면 현재의 핵발전소 시스템보다 훨씬 용이하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이제는 우리도 본격적으로 상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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