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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의 양진호 봐주기, 한 여자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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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의 양진호 봐주기, 한 여자가 무너졌다 [프레시안-셜록 공동보도] 양진호의 도청, 경찰은 진짜 몰랐을까

(관련기사 바로가기 ☞ : [프레시안-셜록 공동보도] 양진호 회장 마약 구매 정황 통화내용 입수)

2013년 12월 2일, 분당의 사무실 안쪽 유리방.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이 유리방 안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한 남자를 '피떡'이 되도록 때리고 있었다. 2시간 30여분 폭행이 끝나자 마치 조폭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해 무리 중 우두머리 남자가 꿇어앉은 남자의 주머니에 지폐 수십 장을 쑤셔 넣었다. 이 남자는 영화 대사 같은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모든 전화 내역을 도청, 감청했고 모든 내용을 다 볼 수 있어."


자신의 불법 행각을 서슴없이 밝히는, 오히려 당당하게 자랑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그는 부인 ㄱ씨의 불륜 상대로 의심한 대학교수 A씨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내 이 같은 일을 벌였다.

그날 밤, 귀가한 양 회장은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이번엔 ㄱ씨에게 폭언을퍼붓고 폭력을 행사했다.

"넌 XX년이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위치추적과 회사 법무팀 사람을 시켜 몇 시간 이내에 찾아낼 수 있다."

양 회장은 아이를 재우다가 잠든 ㄱ씨 뺨을 휘갈겼다. 안방으로 끌고 가 ㄱ씨 얼굴을 수차례 내리쳤다. ㄱ씨가 "아이들이 보니 얼굴은 때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자, 이번엔 발로 등을 찼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아내와 불륜관계라고 의심한 대학교수 A에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

아내 휴대폰 제 것처럼 들여다봤는데 "도청 흔적 없다"는 경찰


양 회장이 불륜을 의심한 근거는 ㄱ씨와 A씨가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신저였다. 양 회장은 마치 대화 당사자처럼 둘의 대화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ㄱ씨는 양 회장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도청한다고 판단했다. 과천경찰서에 양 회장을 폭행죄로 고소하면서 도청 여부도 조사해달라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ㄱ씨에 따르면, 이 휴대전화는 폭행 사건이 있기 2주 전인 2013년 11월 20일 양 회장이 ㄱ씨에게 준 폰이다. 양 회장은 "네 폰이 오래됐으니 내 것을 쓰라"며 흰색 갤럭시폰을 건넸고, ㄱ씨는 아무 의심 없이 받아 사용했다. 그 후 2주 만에 불륜을 의심받고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ㄱ씨가 휴대전화 관련, 경찰의 회신만을 기다린 이유다.

하지만 과천경찰서에서는 "도청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며 한 달여 만에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ㄱ씨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수사기관의 공신력을 감히 의심하지 않았다.

ㄱ씨는 그해 2월 이혼소송을 냈다. 폭행 혐의는 명확했다. 폭행으로 코가 주저앉고, 손가락이 골절된 상해를 사진으로 입증했다. 그러나 도청은 입증할 근거가 없었다. 경찰이 '증거 없음'으로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양 회장은 도청 혐의에 대해 업무상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단순 실수'라고 항변했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그는 "아내에게 준 법인폰이 '아이지기' 앱 베타테스트용 폰 중의 하나였는데 이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아이지기'는 양 회장이 직원들을 실시간 도·감청하는 데 쓰인 것으로 알려진 앱이다. 즉, ㄱ씨 폰에 '아이지기'가 설치된 지 몰랐고, 나중에 아이지기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ㄱ씨와 대학교수 A씨 간 불륜으로 의심되는 카톡 내용 등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다.

아이지기 베타테스트 모니터링을 담당했던 직원 B씨도 "검토 후 사업타당성을 논의하던 중 (아이지기 프로그램에서) ㄱ씨 이름이 나와 소동이 있었다"는 진술서를 이혼소송에 제출해 양 회장 주장에 힘을 실었다.

▲양 회장의 아내 ㄱ씨가 도청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에 제출했다가 다시 돌려받은 휴대전화.

양 회장은 오히려 ㄱ씨가 부정한 관계를 만들어 가정을 파탄 냈다며 반소장(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 피고가 원고에게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을 냈다. 이 소송은 그 유명한 최유정 변호사가 맡았다.

법원은 양 회장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1000억대 자산가라는 양 회장과 이혼하면서 ㄱ씨는 재산 분할도 거의 받지 못했다. 되레 위자료를 양 회장에게 지급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세 아이에 대한 양육권도 빼앗겼다. ㄱ씨는 양 회장에게 매달 양육비를 지급해야만 했다.

반면, 양 회장이 받은 벌은 폭행에 대한 벌금 300만 원이 고작이었다.

5년 뒤 포렌식 결과가 알려준 것, '해킹'

도청이 아닌 단순 착오였다던 양 회장, 그리고 ㄱ씨 휴대전화에 도청 흔적이 없다던 경찰. 이 둘의 이야기는 진실일까.

<프레시안>과 <셜록> 공동취재팀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ㄱ씨 휴대전화를 입수, 디지털포렌식 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는 양 회장의 주장 그리고 경찰이 밝힌 내용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 회장의 아내ㄱ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 분석한 결과. 'supersu'는 해킹 툴이다.

"아이지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도청이 됐다"는 양 회장 주장과 달리 ㄱ씨 휴대전화에는 '아이지기' 앱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해당 앱을 깔았던 흔적도, 지웠던 흔적도 없었다. 대신 다른 해킹의 흔적이 있었다.

양 회장이 ㄱ씨에게 휴대전화를 주기 직전인 2013년 11월 18일, 해당 폰에는 ‘supersu'라는 해킹툴이 깔렸다.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이 보안상 문제로 설치가 허용되지 않는 앱 등을 사용하기 위해 슈퍼 유저 권한을 가져오도록 하는 이른바 '루팅' 기법이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흔히 말하는 '탈옥'과 같은 개념이다. ㄱ씨가 양 회장으로부터 받아 사용한 휴대전화는 ㄱ씨 모르게 루팅돼 있었던 것이다.

20년 경력의 보안 전문가는 "타인의 서버의 접근 권한을 가져간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루팅한 후 바로 건넸다면 도청 의도가 있다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했다.

ㄱ씨가 사용할 휴대전화에 해킹툴을 심은 이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지시한 이는 누구였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양 회장 사건의 참고인이자 위디스크 당시 직원인 C씨 진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4일 C씨는 진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2013년 11월 경으로 기억합니다. 양진호가 판교 사무실의 고○○ 자리로 찾아와서 ‘카카오톡 화면을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고○○이 ‘그건 루팅으로만 할 수 있다’고 대답하니까 양진호가 ‘빨리 좀 부탁한다’고 말하며 휴대폰 하나를 주고 갔습니다. (중략) 양진호가 고○○에게 준 휴대폰은 삼성 갤럭시 S 시리즈 모델이었고 색상은 흰색이었습니다."

정확히 '루팅'이라는 용어를 언급한다. 포렌식 분석 결과에서 드러난 대로다. 해킹을 시도한 시기, 휴대폰 기종과 색상 등은 ㄱ씨 진술과 맞아떨어진다.

그런가 하면, '아이지기 모니터링 중 ㄱ씨 이름이 나왔다'던 직원 B씨도 진술 내용을 뒤늦게 번복했다. 진술서는 위디스크 임원이었던 임모 씨 지시로 도장을 찍어준 것뿐이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양 회장은 회사 개발자 고모 씨를 통해 ㄱ씨에게 줄 휴대전화를 루팅했고, 이를 토대로 ㄱ씨 메신저 대화, 통화 등을 불법 도청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이지기'는 양 회장이 불법 도청 혐의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구멍'이었단 점도 분명해진다.

▲양진호 회장.


능력 부족일까, 봐주기일까

결론적으로 양 회장은 거짓말을 했다. 피의자로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짜낸 상책이었을 터. 그렇다면 '도청 흔적이 없다'던 경찰의 답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포렌식, 보안 전문가들은 경찰이 실제 조사를 했음에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능력 부족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경찰은 부실 수사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ㄱ씨는 이혼소송에서 진 뒤, 양육권을 빼앗기고 혼자 생활하고 있다. '청부폭행'을 당한 대학교수 A씨 또한 양 회장을 상대로 정보통신망 침입죄, 협박, 감금 혐의를 들어 소송에 나섰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경찰이 면밀히 조사해서 도청 흔적을 발견했더라면, 이들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부실 수사가 사법 피해로 이어진 셈이다.

그런데 만일 단순 능력 부족이 아니었다면? 즉, 경찰이 고의적으로 증거를 누락시킨 것이라면 어떨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공동취재진이 입수한 양 회장과 회사 법무 담당인 임모 씨의 통화 내용은 이러한 의혹에 무게를 실어준다.

임00 : (ㄱ씨) 가족이 와서 △△ 조사관한테 그랬대요. ‘(양진호 회장이) 돈이 많아서 당신들이 뇌물을 먹은 거냐’. 이런 형식으로 수사를 더 미루기는 어렵겠다. 대신에 휴대폰 관련해서는 조사하지 않기로 했고, 잘만 되면 무혐의 처리를 하겠다고 했고. 일단 조사는 형식적인 조사는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넘기지는 않겠다고 이야기가 되어서. 가능하면 4일 날...
양진호 : 그러면 뭐 하죠 뭐. 폭행 건만 (조사)한다고요?
임00 : 예. 휴대폰 관련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기로 했고요. 한 변호사를 선임을 해놨거든요. 그러한 것들이 있고 그러면 같이 이렇게 받으셔도 되고요. 혼자 가도 되고요.
양진호 : 어차피 조사관이 삐졌을 거 아니에요.
임00 : 아녜요. 다 저희 편입니다.
양진호 : 그니까요. 애엄마(ㄱ씨)한테 삐졌을 거 아니에요.
임00 : 그렇죠.

이 대화에 따르면, 경찰이 임모 씨에게 '양 회장을 불러 조사를 하는 대신 휴대폰 도청 관련 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 통화 시기는 2014년 2월 1일로 ㄱ씨가 과천경찰서에 전화기를 맡긴 지 사나흘밖에 안 됐을 때였다.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찰은 증거를 고의적으로 은폐한 것이나 다름없다. 직무 유기를 넘어서 직권 남용을 한 셈이다.

앞서 밝혀진 대로, 양 회장은 검경에 숱하게 로비를 시도해왔다. 경찰이 ㄱ씨에게 '도청 흔적이 없다'고 말하며 접수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가 양 회장의 로비 때문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상황. (관련 기사 : "검사 먹일 돈 5천"...양진호 '검경 로비' 정황 나와, 양진호 회사 임원 집단 증언 "양진호는 여전히 로비 중")

ⓒ연합뉴스

"세팅 다 해놨다", "용돈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취재진은 최근 양 회장의 로비를 의심케 하는 또 다른 단서들을 찾았다.

취재진이 입수한 통화 내역에 따르면, 양 회장은 이혼 소송 당시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경찰서로 사건을 이관하려 했다. 2014년 1월 14일 자 통화 내용이다.

양진호 : 전입신고 마쳤습니다.
임00 : 어디로요? 도곡동으로요? 일단은 이전만 되면, 그쪽에서 도곡이나 수서쪽이니까. 분당이든 어느쪽으로 그건 다 세팅을 제가 해놨어요.

사건 이관을 위해 양 회장이 강남구로 전입신고를 하고, 양 회장의 뜻대로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게끔 강남구 관할 경찰서는 임 씨가 손을 써놓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취재진이 '등본 주소 변동'을 확인해본 결과, 세대주 양진호는 실제 2014년 1월 14일에 강남구 타워팰리스로 전입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임 씨는 경찰 로비 창구로 앞서 언급된 △△ 경사를 지목했다. 그는 "일단은 △△ 경사한테 해서 이전을 하려고, 이리저리 만나고 있다"면서 "이 친구는 조사관이기 때문에 누가 위에서 압력을 해도 안 통한다. 과장이랑 서장이랑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걸 지금 한 번은 이제 해줬다"고 말한다.

경찰 로비가 단순히 △△ 경사에서 그친 것이 아닌, 그 윗선인 과장과 서장까지도 연관되어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양 회장은 이어 "용돈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이관을) 해야 할 것 같다"라며 경찰에 금품로비를 해서라도 수사를 무마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수서·분당·서초·강남 경찰서에 10억은 갖다 부었다"


양 회장이 과천서에서 강남구 관할 경찰서로 사건 이관을 시도한 건 경찰들을 상시 '관리'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양 회장이 평소 멘토로 여기던 한 목사와 나눈 2014년 1월 16일 자 통화에서는 수서·분당·서초·강남 경찰서에 금품을 제공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한다.

"오늘(2014년 1월 16일) 조서 쓰는 날이었는데, 다른 경찰서로 이관시켜버렸어요. 수서니, 분당이니, 서초니, 강남 경찰서 다 제 영향권에 있어서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거든요. 저희가 경찰에 돈 많이 갖다 부었잖아요. 벌써 10억 원은 갖다 부은 거 같은데…그걸 엉뚱한 데 써먹은 것 같아서…."

이에 대해 과천서 △△ 경사는 지난 4일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혔다.

"사건 서류를 살펴보니 양 회장이 (사건) 이송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양 회장한테) 출석 요구를 해서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고, 이후 (안양지청으로) 송치했다. 담당 형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된다고 보이지 않는다. (양 회장) 로비는 나와 아무 연관이 없다."

결과적으로 5년 전 양 회장의 도청 혐의는 경찰 단계에서 묻혀버렸다. 경찰은 과연 능력 부족으로 부실 수사한 것일까, 아니면 양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아 고의 은폐한 것일까.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공익신고자로부터 '양진호-경찰 유착 의혹' 제보를 받아 의결을 거쳐 지난 2일 대검찰청으로 제보 내용을 이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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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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