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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서태지도 사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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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서태지도 사람이었지" [프덕프덕] 연예인 사담 홍수 시대…서태지의 의미는?
1.
1992년 고등학생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이전에도 댄스가수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차원이 달랐다. 아마 그 시절 '눈으로 즐기는 음악'이 무엇인지 알게 됐던 것 같다. 소풍이든 점심시간이든 남자 아이 셋만 모이면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어 놓고 <난 알아요>에 맞춰 겅중겅중 뛰면서 팔뚝을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걸음만 앞서가라"고 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딱 그랬다.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다. 2집에서는 록 비트가 조금 더 강해졌고, <하여가>에서는 태평소가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3집에서는 <교실이데아>를 통해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을 다그쳤다.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당시 '고3'이었던 나에게는 혁명과도 같았다. 서태지가 4집 <컴백홈>을 내놨을 때 나는 재수생이었다.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는'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그는 그렇게 방황하는 한 젊은이에게 우상과도 같았다.

ⓒ연합뉴스
2.
1996년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 후문 바로 앞에는 서태지의 집이 있었다. 그는 그 해 1월 돌연 은퇴 선언을 한 뒤였다. 그의 집 담장에는 팬들이 남긴 낙서가 가득했다. 간혹 담장 앞에서 울고 있는 여자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서태지의 집'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서태지도 '사람'이구나."

서태지와 그의 음악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마치 지상에 추락한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내가 좋아한 것은 '서태지'가 아니라 그의 음악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의 CD를 1~4집까지 사서 몇 날 며칠을 들었었다. 사생활을 전혀 노출하지 않는 그의 '신비주의'덕에 그의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만 그는 은퇴했고, 나는 군대에 가면서 서태지의 음악과는 점점 멀어졌다. 가끔 군대에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고 웅얼거리다 피식 웃은 적은 몇 번 있다.

3.
서태지가 배우 이지아와 결혼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온 사회가 떠들썩하다. '문화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였던 그의 영향력과 대중의 관심도를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이 소동을 보면서 '사생활을 잘 감춰 와줘서 고마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인 팬들도 여럿 보였다.

더불어 최근의 연예계 풍토와 비교가 됐다. 연예 기사는 연예인 결혼식 중계로 가득하다. 물론 비밀리에 제한된 하객들만 초대해 결혼을 하는 연예인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신랑·신부의 드레스는 물론이고 이른바 '하객 패션'이라고 해서 결혼식 자체가 협찬 경연장으로 변질돼 가면서 상업적 시공간이 되고 있다.

지금의 연예인들에게는 사생활이 있나? 진솔하게 인생을 털어놓는 토크쇼도 있지만 대부분의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사담(私談)이 홍수를 이룬다. 가상 사생활을 설정해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그리고 '사생활 보호'는 보통 '신비주의'로 뒤틀려진다. <중앙일보>는 그에게 걸려 있는 소송 액수를 빗대 "문화대통령 신비주의 비용은 55억"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의 실력'을 보여주고자 한 <나는 가수다>가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씁쓸하다. 서태지를 새로운 음반이 아니라 사생활 소식으로 다시 접하게 된 점이. 그가 수많은 파파라치들의 표적이 될 것이.

부디 그가 이번 일을 잘 마무리 짓고 다시 팬들의 영혼을 뒤흔들 곡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 저녁엔 <필승>을 들어야겠다.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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