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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그림' 드럼통 뚜껑 열린채로…부평 '캠프마켓'에 반출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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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 그림' 드럼통 뚜껑 열린채로…부평 '캠프마켓'에 반출 유력" 실체 드러나는 美軍 '환경 범죄', 불평등한 SOFA가 '화근'
"1978년 어느 날, 도시 한 블록 규모의 땅을 파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냥 처리할 게 있다면서 도랑을 파라고 했다. 그러나 파묻은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 퇴역 주한미군의 증언으로 경북 일대가 '독성물질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19일 퇴역 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경북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매립했다고 폭로한 물질은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바로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고엽제다.

그의 폭로 이후, 유사한 증언도 속속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군이 기지 내 화학물질 매립을 시인하고 민관공동조사단이 캠프 캐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급기야 24일에는 부천의 미군기지에서도 대량의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밖에도 미국 회계 감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부평 '캠프 마켓'에선 수은, 석면, 배터리 산 등 유독 물질이 처리된 것으로 나오지만 처리 결과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의혹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미군기지 내 환경 사고가 점차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왜관 캠프 캐럴 외에도 언제, 어디에, 얼마나 묻었는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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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미국 <KPHO-TV>가 지난 지난 13일(현지시간) 퇴역 주한미군들의 고엽제 매립 증언을 폭로하며 인용한 사진. 그러나 이 사진이 1978년 매립 당시 캠프 캐럴의 사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KPHO-TV
                    캠프 캐럴에 묻혔던 '화학 물질', 고엽제인가

                    23일 주한미군이 대량의 살충제·제초제 등 화학물질을 1978년 캠프 캐럴에 묻었다 다시 파내 외부로 반출했다고 확인함에 따라 미군의 '고엽제 매립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 기사 : 주한미군 "78년 묻은 '드럼통', 주변 흙까지 모두 처리")

                    미 8군 사령부는 파묻은 '화학물질'이 고엽제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스티브 하우스 등 퇴역 병사들이 제기한 매립 년도가 1978년으로 동일한데다 미군이 매립지라고 밝힌 캠프 캐럴 내 'D구역' 역시 이들이 지목한 헬기장 옆이기 때문에 고엽제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또 고엽제는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밀림 제거용 제초제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미 8군이 시인한 보고서의 '제초제' 항목에 고엽제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높다.

                    계속되는 증언…"해골 그림 드럼통, '베트남서 왔다'고 들었다"

                    이밖에도 캠프 캐럴 헬기장에 묻힌 것이 고엽제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1970년대 캠프 캐럴에서 공병대 장비 수리 책임을 맡았던 한국인 이모(78·칠곡군 왜관읍)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 초·중반 헬기장 주변에 중장비로 2m 깊이의 구덩이 5곳을 파고, 이 가운데 한 곳에 고엽제로 추정되는 드럼통 50개를 묻었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현재 위암 말기로 투병 중이다.

                    퇴역 미군들이 증언했던 1978년 외에 1972~1973년에도 캠프 캐럴에 고엽제로 추정되는 독극물을 매립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캠프 캐럴에서 지게차를 운전했던 군무원 박모(71·대구시 동구) 씨는 "1972년 말부터 1973년 6월 사이 3차례에 걸쳐 미군기지 내 헬기장 끝부분에 성분을 알 수 없는 독극물을 매립했다"고 증언했다. 박 씨 역시 현재 캠프 캐럴 정문에서 500여m 진입해 우측에 있는 헬기장을 매립 장소로 지목했다.

                    박 씨는 "당시 지게차로 해골 그림이 그려진 20~40ℓ 드럼통 수십여 개를 공사 중인 헬기장과 인접한 야산 사이의 골짜기에 묻었다"며 "당시 매립한 드럼통은 찌그러지고, 일부는 뚜껑이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가 매립했다는 드럼통은 스티브 하우스가 주장한 55갤런(208ℓ)과 달리 소형이다. 박 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당시 주한미군은 1960~70년대에 걸쳐 수차례 독성 물질을 기지 내 매립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박 씨는 "당시 매립을 관리·감독했던 미군조차 이것이 어떤 성분의 물질이 담긴 드럼통인지 몰랐으며, 마스크 등 최소한의 안전 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면서 "당시 감독을 하던 미군에게 '어디에서 가져온 것이냐'고 묻자 '베트남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그가 매립한 독극물이 'agent orange', 즉 고엽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당시 부대에 근무했던 미군은 "트레일러 차량까지 묻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매립된 '화학 물질', 어디로 갔나…환경단체, 부평 '캠프 마켓' 지목

                    미군은 고엽제로 추정되는 화학물질이 캠프 캐럴에 묻혀 있다가 기지 외부로 반출됐다고 밝혔지만, 언제 어디로 반출됐는지 기록이 없어 화학물질의 행방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 8군 사령부는 1992년 미 육군 공병단 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1979~1980년 사이 화학물질과 오염토양 40~60t을 이 지역에서 제거해 다른 지역에서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 잔여분을 해양에 투기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반도 연근해에 버렸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칠곡 인근이나 또 다른 미군기지에 다시 묻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데이비드 폭스 미8군기지관리사령관은 23일 민관합동조사단 브리핑에서 "기지 내에서 반출되는 오염 물질은 통상 미국으로 가져가지만, 당시 기록이 없어 반출이 언제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캠프 캐럴에 묻혔던 화학 물질이 다른 곳으로 반출됐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고엽제는 다이옥신계의 맹독성 물질로 암과 신경계 장애를 유발하는 등 노출될 경우 후유증이 심각한데, 운반 경로와 운반 과정에 동원된 인력이 규명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 캠프 캐럴 내 고엽제 매립 장소로 추정되는 헬기장. 사진 위쪽으로 보이는 낙동강 본류와 불과 1km 거리다. ⓒ녹색연합

                    환경단체는 화학 물질이 부평의 미군기지인 '캠프 마켓'으로 반출됐을 가능성을 유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녹색연합은 24일 논평을 통해 "드럼통의 이후 행적으로 가장 유력한 곳은 캠프 마켓으로의 이동 매립 혹은 처리"라며 "반환예정지인 캠프 마켓은 군수지원 창고의 기능을 하며 폐차장, 가구 폐기물 매립장 등을 갖추고 있어 이 매립장에 함께 묻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캠프 마켓은 이미 지난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친 토양과 지하수 오염 조사에서 심각한 오염이 드러난 곳이다. 당시 환경관리공단과 부평구가 발표한 환경기초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5개 구역 중 3개 구역의 토양에서 석유계총탄화수소(TPH)와 벤젠·구리·납·니켈 등의 중금속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인근 주거지역에서도 기준치의 32배에 이르는 TPH가 검출됐고, 중금속도 최대 12배까지 높게 나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현재 인천지역 시민·환경단체는 캠프마켓 내부에 대한 환경오염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989년에는 독성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PCBs) 448드럼을 한국 처리업자를 통해 처리했으나 관련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다가 미 회계감사원(GAO)에 의해 지적되기도 했다.

                    기름 유출부터 포르말린 방류까지…미군 환경 사고, '드러난' 것만 매년 2건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캠프 캐럴에 이어 부천 오정동에 있던 미군기지 '캠프 머서'에도 화학물질 수백 갤런이 묻혔다는 퇴역 미군의 증언이 24일 뒤늦게 알려졌다.

                    1963년부터 62년까지 캠프 머서에서 근무했다는 퇴역 군인 레이 바우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화학 물질(every imaginable chemical) 수백 갤런을 묻었다"며 "1964년 3월 또는 4월께 캠프 머서에 있던 미군화학물질저장소(US Army Chemical Depot Korea)를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부천 미군기지에도 화학물질 대량 파묻었다")

                    그가 저장소의 이전 지역으로 지목한 것은 다름 아닌 경북 왜관의 '캠프 캐럴'. 19일 제기된 퇴역 미군들의 증언이 신빙성을 얻게 되는 대목이다.

                    ▲2000년 2월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에서 시체 방부처리용 포르말린 470병을 하수구에 그대로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영화 <괴물>의 소재가 되기도 한 '한강 포르말린 방류 사건'이다. ⓒ녹색연합
                    한편, 왜관에 이은 부천 캠프 머서의 화학물질 매립 증언으로 미군의 불법 매립이 단순히 캠프 캐럴 한 곳의 '우발적인'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미군기지의 환경 오염 사고는 총 47건에 달했다. 유형별로 따져보면 기름 유출이 30건, 폐수 무단 방류가 6건, 고엽제 등 불법 매립이 5건, 토양 오염이 3건, 기타 석면 오염이나 야생동물 폐사가 3건으로 매년 2건 이상의 환경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우리 정부에 의해 확인된 것으로, 공개되지 않은 사고까지 더하면 그 수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평등한 SOFA…폭로 일주일 지나도록 토양조사조차 못했다

                    문제는 이런 환경 사고가 우리 땅에서 발생하는 일임에도 우리 정부에 독자적인 조사권이 없어 빠른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미군이 배타적으로 기지를 사용·통제할 권한을 갖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캠프 머서의 화학물질 매립 주장이 나온 당일 국방부와 부천시가 지하수 오염 조사에 착수한 반면, 캠프 캐럴의 경우 증언이 나온 지 일주일이 되도록 간단한 토양 샘플 채취도 못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캠프 캐럴은 현재도 미군기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캠프 머서의 경우 1991년 우리 군에 반환됐다.

                    ▲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23일 주한 미국대사관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군의 고엽제 매립 의혹과 관련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까스로 한·미 공동조사가 진행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한국과 미군이 맺은 '환경보호에 대한 특별양해각서'가 환경법의 기본인 '오염자 부담 원칙(오염 발생자가 환경 피해를 복구해야한다는 원칙)'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각서는 '건강에 대해 널리 알려진 실질적이고 급박한 위협'을 주는 오염에만 책임을 지겠다는 미군의 주장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있어, 책임 소재와 보상에 있어서도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19일 미군기지의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과거 기록만 검토하고 있다는 미군의 주장만 맥없이 바라보는 상황이다. 고엽제가 어디에, 얼마나 묻혔는지 국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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