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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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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와 삼성그룹도 구별 못하나 [한국 경제 성격 논쟁]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1>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통해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 원장, 이병천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집중 비판을 받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펴냄)의 저자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가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약 10회에 걸친 답변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도 할 예정입니다.

애초 이 글은 영국에 있는 관계로 한국의 논쟁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장하준 교수의 제안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장 교수가 주도한 수차례에 걸친 장시간의 화상 회의를 통해서 답변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었고, 각자 나눠 쓴 초고를 역시 수차례의 첨삭을 통해서 조율해 최종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편집자>

우리가 이렇게 늦게 글을 쓰게 된 이유

우리 세 명이 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새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로 그 책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프레시안>의 지면을 통해 지난 한 달 동안 정태인 새사연 원장과 이병천 강원대 교수(이하 존칭 생략), 이 두 분이 5차례가 넘는 글을 연재하면서 우리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정태인이 5월 초 '장하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을 통해 우리를 비판한 직후 우리는 그에 응답하는 글을 실으려 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도 그 직후 이병천 교수가 유사한 논지로 우리 책을 비판하는 서평을 계속해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분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종합해서 응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우리는 내렸다. 그로 인해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 이렇게 늦어지게 되었다. 두 분과 독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앞으로 8~10회 정도에 걸쳐 우리의 두 책에 제기된 비판점 중에 재벌개혁과 주주자본주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박정희 체제와 경제민주화, 노동통제와 비정규직 문제, 산업정책과 추격·탈추격, FTA 등의 주제에 관하여 연속적으로 글을 실을 계획이다.

우리의 책이 왜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을까?

우리의 새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후 <선택>)는 2005년 발간된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마찬가지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책의 배경에 있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즉 그런 신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을 '경제민주화'로, '진보적 자유주의'로 묘사하며 찬양했던 개혁진보파 인사들 역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부키
우리는 두 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진보 정부 또는 좌파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모두에 만연한 - 거대한 착각이라고 썼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일부 진보 인사들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시장개혁을 2013년 체제 하에서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재추진해야 한다고 하는 것 역시 강하게 비판하였다. 하물며 우리는 <선택>의 맨 앞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기본적으로 모두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진해 온 게 사실이에요. 시민들이 이런 측면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안티 이명박'이 노무현 시대로 회귀함을 의미한다면 정말 허무한 일 아닐까요? (...) 우파 신자유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좌파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이를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젠 정말 불판을 갈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닥치고 반MB, 닥치고 반새누리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 우리처럼 '불판을 갈자'고 외치는 것은 무모함에 가깝다. 우리들에게 "박정희주의자", "재벌옹호론자"라는 욕설이 사방에서 빗발친다. "반MB 경제민주화 전선을 교란시킨다"는 비난도 쇄도한다.

물론 이렇듯 격렬한 욕설과 비난을 동반한 논쟁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개혁진보파를 자임하는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에조차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이 깊이 침투해 있는 경우, 치열하고 격렬한 논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논쟁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정태인, 이병천처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 그것도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들마저 우리 책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곡해와 왜곡, 중상비방을 펼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럽다. 예컨대 정태인은 <시사인>(5월 4일자) 인터뷰에서, 우리가 새 책에서 재벌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 말고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재벌 합리화론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것은 명백한 왜곡이요 중상비방인데, 그밖에도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는 유사한 왜곡과 중상비방이 수없이 많다. 앞으로 우리는 그러한 왜곡과 중상비방에 대해 지적할 것이며, 또한 앞서 예로 든 '재벌 합리화론'과 같이 너무나 명백한 의도적 왜곡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구할 작정이다.

개인·인물과 제도·정책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정태인과 이병천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 있다. 바로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한국은행 독립성 문제에 대한 논란을 보자. 우리는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독립성을 - 그리고 이를 통한 물가통제에 집중하는 통화정책을 - 옹호하면서 그에 반대해온 기획재정부(또는 재정경제부)를 비판해온 데 대하여 우리의 새 책에서 비판하였다.

그런데 정태인은 공개편지에서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는데 반하여 한국은행 근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를 반박하였다. 정태인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관료들을 경험해보니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태인은 따라서 한국은행 독립성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즉 경제민주화에 부합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정태인의 이러한 논법은 개인(인간)과 제도·정책을 구별하여 관찰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정태인 식의 논법대로라면 신자유주의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는 기획재정부는 해체 또는 약화시키는 것이 해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니면, 비신자유주의자들이 많은 한국은행 또는 (정태인이 말하는 방식의) 재벌규제 실무를 담당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다른 정부조직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기획재정부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 해법이 될 것이다. 실제 정태인이 "100%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하는 김상조는 위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피아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태인은 신자유주의에 뿌리 깊이 감화된 관료들(개인들)이 유별나게 기획재정부에만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관료들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한미FTA 추진)에도, 교육과학부(교육 시장화 추진)에도 철철 넘쳐난다. 공정거래위원회(각종 규제완화 추진)와 노동부(노동권 약화 추진), 보건복지부(사회복지 축소 추진)에도 그런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은 넘쳐난다.

그렇다면 이런 부처들도 해체 내지 약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런 논법대로라면, 현재의 국회와 청와대(따라서 우리나라의 모든 국가기관)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인물들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그 권한과 위상을 해체 또는 약화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한다면,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주장해온 밀턴 프리드먼과 하이에크 류의 신자유주의와 똑같은 정책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적 '인물'과 신자유주의적 '제도'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인물과 제도를 구별하지 않는 똑같은 문제점은 이병천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이병천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개발 독재 유산 위에 서 있다"는 글에서, 한국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신자유주의를 추진해온 인물들은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재벌계 인물들과 경제 관료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과 금융자산가들이 선두에 섰던 서구와는 달리 박정희 체제의 유산인 모피아 관료와 재벌계 인사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잡종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훌륭하면서도 올바른 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점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의 권력자들(모피아와 재벌)이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동일한 인물·개인들이라는 이병천식 논법을 따라가자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즉 시장주의적 제도·정책)와 박정희 체제(즉 반시장주의적 제도·정책) 사이에는 별다른 '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이병천은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셈인데, 제도·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병천은 우리가 <쾌도난마 한국경제>와 <선택>에서 재벌을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양 엉터리로 묘사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비판인데, 이 역시 이병천이 개인(재벌가족과 그 가신들)과 제도(법인기업으로서의 대기업과 대기업집단)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심각한 곡해요 중상비방이다.

이병천은 이건희와 정몽구와 같은 재벌가문(인간·개인)과 그룹 체제(제도·정책)를 구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재벌그룹(즉 대기업집단 체제)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하여,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 회장과 같은 재벌 가문과 그 가신 그룹의 이해관계와 행위들(각종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고 있는 양 착각한다.

요컨대, 정태인과 이병천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반신자유주의적 제도·정책)와 그에 관련된 인물들(신자유주의적 모피아 경제관료들)을 구별하지 않고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또한 대기업집단(주주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이라는 경제 제도를 재벌 가족들(주주자본주의에 적극 호응하여 사리사욕을 취하는)이라는 인물·개인들로부터 구별하지 않으며, 인물의 문제를 제도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또한 한국은행 독립성 여부에 관한 제도적·정책적 문제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개인-인물들이 한국은행에 많으냐, 기획재정부에 많으냐의 문제로 바꿔버린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영국에 사는 장하준은 한국의 구체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말라?

정태인은 자신이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구체적 상황을 경험해보니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는 신자유주의자가 많은데 반해 한국은행에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고 말한 뒤, 외국(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한국의 이런 구체적 현실을 잘 모르니 신중하게 발언하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한국을 더 잘 이해하는가? 한미FTA를 밀어붙인 정치인들과 관료들 대다수 역시 한국 땅에서 평생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 아니던가? 게다가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식으로 논지를 펼친다면, 역사가들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과거 시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발언할 수 있는 건가? 또한 그런 식으로 남을 비판한다면, 과거 청와대 비서관 시절 정태인이 자주 재벌들로부터 듣던 '기업경영 안 해본 사람은 기업 비판하지 말라'는 류의 비판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정태인은 미국인 스티글리츠의 한국 경제 관련 발언을 금과옥조처럼 칭찬하곤 했는데, 설마 스티글리츠는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즉 구체적인 현실을 경험하고) 발언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정태인은 한국의 구체적 현실을 경험하지 못한 외국인일지라도 자신과 견해가 일치하면 한국을 잘 이해한 것이고, 외국에 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고 평생 한국경제를 연구해 온 장하준이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하면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격하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영국에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정승일과 이종태는 뭔가? 그들이 한국 땅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구체적 현실이 정태인의 그것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정태인의 그런 태도는 스티글리츠나 장하준처럼 외국 명문대학 교수의 말에는 경청하면서 그렇지 않은 정승일과 이종태는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기와 견해가 일치하는 스티글리츠는 뭘 좀 아는 사람이고 장하준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마지막으로, 영국에 살고 있는 장하준은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 대해서만 발언해야 하는가? 장하준이 남미와 아프리카의 가난과 저발전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구체적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헛소리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쁜 사마리안>이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내용 역시 모두 장하준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신중치 못한 발언이라는 건가? 정태인이야말로 이런 유의 발언을 할 때는 더 신중하게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장하준·정승일·이종태가 함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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