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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차에 실려간 영정사진들이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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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쓰레기차에 실려간 영정사진들이 남긴 숙제" [길 잃은 '노동정치', 좌표는?·②] "공장 안에 갇힌 노동정치, 문 열고 나와야"
- 길 잃은 '노동정치', 좌표는?
☞<1>"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서울 중구 대한문 앞 분향소. 22명의 쌍용자동차 사망자 영정 옆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된 푯말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있었던 쌍용자동차 사태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을 보러 온 외국인 몇 명이 푯말을 보며 지나갔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22명이 죽을 때까지 정치인들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22일 만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먹고 잔 지도 48일째다. 쌍용자동차 범국민추모위원회 회원 30여 명은 4월 5일부터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이곳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평택에 있던 쌍용차 농성장, 왜 서울 한복판으로 옮겼나

애초 농성장은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공장 앞에 설치돼 있었다. 농성장을 서울로 옮긴 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쌍용차 문제를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서울 한복판에 분향소가 설치된 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이후 처음이다.

김정우 지부장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로 지금까지 22명이 죽었다"며 "하지만 어느 누구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쌍용자동차 문제는 단순히 해고자가 복직하는 걸로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22명이 목숨을 잃게끔 한 구조 자체는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을 가진 제조업체를 헐값에 팔아넘긴 정부와 금융당국의 무능,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능력이 없는 정치권, 직장에서 잘리는 순간 벼랑끝에 내몰리게 만드는 열악한 사회안전망 등이 총체적으로 바뀌어야만 문제가 해결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의제를 만들어내서 해법을 찾는 과정 전체가 정치의 역할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게 없다. 기존 정치세력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구조에 관심이 없다. 노동자에 기반을 둔 '진보정치'를 구현하려는 세력이 등장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이유가 뭘까.

▲ 대한문 앞에 설치된 분향소. ⓒ프레시안(허환주)
노동조합의 정치력, 공장 밖에선 무용지물

노동자가 정치를 아예 몰라서? 그건 아니다. 비록 일부 대기업에 국한돼 있기는 하나, 일부 노동자들은 상당한 수준의 '정치'를 경험했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가 들어선 일부 사업장의 이야기다. 이들 사업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는 여러 개의 정파가 있고, 이들 정파는 노조 위원장 선거 등을 중심으로 치열한 '정치'를 하고 있다. 실제로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하곤 한다.

문제는 이런 정치력이 '공장' 안에만 갇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동운동 진영의 정치력은 사측의 구조조정이나 임금 삭감 등에 저항하는 과정에선 종종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 이런 정치력이 확 사그라든다. 쌍용차 사태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회사의 구조조정안에 반대하며 2009년 77일간 평택 공장에서 옥쇄파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1년 무급휴직 뒤 복직'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원유철 의원(새누리당·평택갑)과 정장선 의원(민주통합당·평택을), 권영길 의원(통합진보장·경남 창원), 송명호 평택시장 등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권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평택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이다. 쌍용차 평택 공장 노동자들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었다. 공장 자체가 지닌 무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조가 지닌 정치력도 변수가 됐다고 봐야 한다. 쌍용차 노조에 나쁘게 찍힌 정치인이라면, 선거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테니.

냉랭한 시민들, 그들에게 쌍용차 사건은 영원히 '남의 일'일까?

그리고 3년이 지났다. 합의문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 파업 당시 관심을 보였던 정치인들도 이제는 무관심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농성장을 차린 건 그래서다.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회사원 김민수(37) 씨는 "쌍용자동차 문제는 이미 알고 있다"면서 "회사가 어려워 노동자를 구조조정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회사원 이영민(가명·34) 씨는 "사람이 죽은 거야 안타깝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인과 기자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던 공장 안의 정치력은,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 힘을 잃었다. 그 사이, 대한문 앞 분향소는 서울 중구청에 의해 두 차례나 철거됐다. 24일에는 아예 쓰레기차가 와서 천막과 영정사진을 싣고 가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보는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해외자본에 대한 규제, 사회안전망 강화…쌍용차 사태의 숨은 쟁점들

헐값 매각, 정리해고, 해고자들의 잇따른 자살 등 쌍용차를 둘러싸고 일련의 사건들이 대부분의 시민에겐 관심을 둘만한 가치가 없는 일들이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정치인들의 무관심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컨대 헐값 매각의 경우, 쌍용차만의 일이 아니다.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해외 매각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단기이익만 노린 국제 투기 자본의 폐해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지금, 쌍용차 헐값 매각 사건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

해고자들의 잇따른 자살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해고는 곧 살인'이다. 이게 그저 구호가 아니라는 점은 22명의 영정사진이 확인시켜 준다. 한국에선 자녀 교육, 질병 등 복지 수요를 대부분 회사가 메워준다. 젊은이들이 아등바등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이유인 동시에, 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무릅쓰고 회사에 충성하는 이유다. 회사에서 쫓겨나는 순간, 복지 수요를 감당할 길이 사라지기 때문. 게다가 재취업 역시 오로지 개인의 인맥으로 해결해야 한다. 해고당한 쌍용차 노동자들처럼 평생 공장 안에서 지내느라 공장 밖에 변변한 인맥을 만들지 못한 이들은 답을 찾기 어렵다. 이 문제 역시 상당히 공론화가 돼 있다. 최근까지 정치권에서 달아올랐던 보편적 복지 논쟁이 그 사례다. 사실상 없다시피 한 사회안전망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안정된 직장을 얻는 데만 골몰하게 한다. 그만큼 사회의 활력도 사라진다. 보수 정치인들 역시 공감하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쌍용차 해고자들의 잇따른 자살은 정치권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공장 밖에서도 힘 발휘하는 노동정치 구현해야

이런 사정은 '공장 안에 갇힌 노동정치'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구조조정, 임금인상 등 공장 안 쟁점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하지만, 공장 밖 쟁점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정치가 해외자본에 대한 규제, 사회안전망 강화 등의 쟁점을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하는 이유다. 공장 안에서만 통하는 정치력으로는 쌍용차 정리해고의 발단이 됐던 해외자본에 대한 헐값 매각, 해고자들의 잇따른 자살을 낳았던 사회안전망 부재 등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났다.

물론, 정치권이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최근 쌍용자동차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 당선자들 가운데도 이 문제에 의욕을 보이는 이들이 일부 있다. 이들은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쌍용자동차 관련 공청회와 진상조사도 한다는 계획이다.

민주통합당, '제 얼굴에 침 뱉는' 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직은 기대를 걸기 이르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자에 기반한 정치세력이 아니고서야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근본적인 차원의 지적만이 아니다. 애초 쌍용차 헐값 매각 사건 자체가 노무현 정부 시절 생긴 일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통합당에게도 사태의 책임이 있다. 이 점을 잘 아는 민주통합당이 자칫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될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냐는 것이다.

쌍용차 해고자인 이창근 씨는 "특위를 구성하는 건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그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주통합당이 자신들의 (노동자보다 기업주에 더 가까운)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쌍용자동차 문제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민주통합당 전체 입장이 아닌 소속 의원 몇명의 목소리가 가진 한계에 대한 지적도 곁들였다.

이런 지적에는 나름의 근거 있다. 지난 4.11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은 쌍용차 문제의 핵심인 정리해고에 대해 뚜렷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해고자들의 잇따른 자살을 낳은 사회안전망 부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민생 쟁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현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감에 편승하려 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국회 등원 이후라고 해서 바뀔 리 있겠냐는 게 쌍용차 해고자들의 정서다.

"진보정당, '무상급식' 성공에서 교훈 얻어야"

그렇다면, 통합진보당과 재창당을 준비 중인 구 진보신당을 보는 시각은 어떨까. 기자가 만난 해고자들의 경우, 이들 정당에 대해 완전히 기대를 거두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다.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에도 말이다. 진보정당이 지금까지 잘해 왔기 때문은 아니다. 보수 정당은 구조적으로 할 수 없는, 진보정당만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이창근 씨는 지난해 서울시장 교체를 낳았던 무상급식 논쟁을 예로 들었다. "진보진영에서 무상급식을 처음 주장했을 때만 해도 '빨갱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것. 무상급식 쟁점을 통해 '보편적 복지'라는 문제의식을 공론화했듯, 노동현장의 구체적인 쟁점들을 통해 사회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개혁 의제들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고는 곧 살인'일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쌍용차 22명의 죽음은 머지 않아 내 이웃의,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난 8년 간, 쌍용차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나

쌍용자동차 문제는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4년 쌍용차 대주주였던 정부와 산업은행이 해외자본 유치라는 명목으로 헐값에 상하이기차에 매각하면서 시작했다. 정부는 신규 투자를 확대한다는 조건으로 매각했지만 상하이기차는 투자나 운영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핵심 기술만 이전해갔다.

2009년 1월 금융위기 등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경영권을 포기하고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51%에 이르는 보유 주식은 그대로 살아 있는 상태였다. 전형적인 '먹튀 자본'의 수법이었다. 상황은 이때부터 심각해졌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통한 구조조정 후 신규 투자자를 물색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노동자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구책도 만들었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무급 순환 휴직, 복지 기금 삭감을 통한 1000억 기금 조성 등으로 고통분담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와 법정관리 기관들은 구조조정 후 해외자본에 재매각하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급기야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77일간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벌였다.

그 결과, 1년 뒤 복직을 약속받았으나 아직도 이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22명의 해고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자살하거나 돌연사했다.
▲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지나가는 시민들. ⓒ프레시안(허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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