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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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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 될 수 있나" [인터뷰] 유종일 KDI 교수 "자본 통제, 재벌 개혁…둘 다 하면 된다"
"의미 있는 토론이긴 한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프레시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을 두고 나오는 말 중 하나다. 이런 기대 섞인 우려를 여러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20일 만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에게서도 같은 진단을 들었다. "생산적인 논쟁이 돼야 할 텐데 아쉽다." 유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이종태 <시사IN> 기자 쪽으로부터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은 경제 민주화론자 중 한 사람이다. 인터뷰는 KDI의 유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유 교수는 "필요한 논쟁이긴 한데 굉장히 감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비슷하게 하고 재벌들이 횡포를 부려 불균형과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시장과 재벌을 규제하고 조정해서 바꿔야겠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 형성된 합의다. 상황이 이러한데, '경제 민주화론자는 신자유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건 경제 민주화를 고민하는 사람들로서는 좀 황당한 일이다."

유 교수는 "장하준 교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왜 재벌과 타협해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건가?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된다. 세금을 걷고 그 세금으로 복지 정책을 실시한다, 이렇게 하면 된다. 왜 (삼성) 이씨 가문과 타협해야 복지국가가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재벌과 대타협' 문제와 관련해 유 교수는 "법 위에서 놀고 있는 재벌들이 뭣 때문에 타협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타협하지 않으면 나도 손해를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타협하는 것이다. 그 힘을 만들자는 것이 재벌 개혁 운동이다."

▲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생산적인 논쟁으로 바꿔가야"

유 교수는 "생산적인 논쟁이 돼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그걸 고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개혁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무엇인지, 구더기(부작용) 무서워 장을 안 담그는 게 맞는 건지, 그게 아니라 장을 담그려면 어떤 보완 대책이 필요한 건지, 이런 식으로 가야 생산적인 논쟁이 된다.

(…) 장하준 교수 쪽도 '재벌이 다 잘하고 있다'는 건 아니고 이러저러한 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것 아닌가. (…) 어떻게 재벌을 개혁하고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장 교수가 이야기하는 국제 투기성 금융 자본의 폐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논의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서로 접점을 찾으며,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방식의) 생산적인 논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유 교수는 "자본 통제가 우선이냐, 재벌 개혁이 우선이냐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이라고 말했다.

"둘 다 하면 되는 것이다. 재벌 개혁을 하면 자본 통제를 못한다? 자본 통제를 하면 재벌 개혁을 못한다? 전혀 그런 게 아니다. (…) 자본 자유화에 가장 앞장선 세력이 누군가? 재벌이다. 또한 재벌은 최고의 수혜자다. 재벌들이 금리 싼 자본을 열심히 들여오고 했던 것 아닌가."

유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재벌 개혁과 자본 통제를 대립적인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 '(변화한 한국에 대한) 감을 잡을 때까지 몇 년간은 대중적인 글쓰기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걸 딱 2번 어겼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쓴 것 중 하나가 외환 자유화 2단계를 할 때 반대한 것이다. 그밖에도 학술회의,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자본 통제를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경제 민주화는 역사적 과제…국민이 원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에 반대하는 힘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있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사례로 들었다.

"우리의 주된 전선은 거기다. (…) 전경련부터 해체해야 한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119조 2항은 국민경제의 균형 발전,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 등을 위해 정부가 규제 및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경제 민주화의 근거 조항으로 여겨진다. 또한 "국민이 경제 민주화를 절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 수수료 문제 갖고 음식점 주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년들은 최저임금이나 아르바이트생 권리 문제 등을 놓고 싸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여기저기서 싸우고 있다. 희망버스도 많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형 슈퍼마켓 때문에 동네 가게 주인들은 다 죽을 맛이다. '우리도 먹고살게 해달라. 왜 대기업만 잘나가냐', 이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이 원하니까, 정치권도 표를 얻으려고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 과제로 꼽히는 재벌 개혁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기회가 왔다"고 진단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때 재벌이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재벌 개혁이 사회의 중심 과제로 등장했다. 많은 개혁 조치가 이뤄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벌의 힘이) 부활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폐해가 더 심해졌다. (…) (요즘 재벌 위주 경제의 폐해를) 국민들이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재벌 개혁 기회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유 교수는 재벌 개혁의 핵심이 "총수 지배 체제를 바꾸고 소유 지배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유 교수는 이를 위해 순환 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계열 분리 명령제, 노동자 경영 참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경제 민주화는 역사적 과제"라며 "꼭 단기에 승부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이뤄질 일이고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유 교수에게 물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과 재벌 개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일까.

"예를 들면, 법인세 비과세 감면 액수가 굉장히 많다. 그걸 전면적으로 없애고, 딱 하나 세제 혜택을 주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물론 고용 문제는 한두 가지로 풀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 뭐 좀 달라지겠구나', 이런 느낌이 확 올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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