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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성형 미인, 그래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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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성형 미인, 그래서 위험하다 [전태일 통신] <97> 도시,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고, 도시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누리고, 도시가 생산하는 부산물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도시를 살기 좋은 곳이라고 표현하고, 깔끔하고 깨끗한 도시에 살고 싶어 한다. 누구나 그럴싸하고 번듯한 도시에 살기를 원하고, 도시의 서비스에 감동하며, 도시를 동경한다.

도시는 많은 것을 감춘다. 도시는 정돈되고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은 올림픽을 앞두고 누군가의 '지저분한' 집을 철거하고, 노점상을 밀어버린다. 도시는 도시가 품고 있는 빈곤을 감추고, 자본주의가 낳은 비인간적 얼굴을 감춘다. 쭉쭉 뻗은 도로와 으리으리한 빌딩, 계획된 네모난 건물 속에 살면서 우리는 삶의 질도 함께 올라가고 있으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자로 잰 듯한 도시의 네모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반짝임과 자동차가 분주히 오가는 그곳을 '편리'한 공간이라고 믿는다.

도시가 감추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당신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어두운 밤사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당신의 배설물은 작은 손짓 하나로 눈앞에서 사라진다. 음식을 위한 재료는 텃밭이 아니라 아름답게 진열된 마트에서 구매한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위한 전기 생산 시설은 근처에 있지 않다.

도시가 원래부터 그런 공간은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만들어지고 인구가 늘어났지만 당시의 도시는 '쾌적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하수도도 없었고, 거리엔 오물이 넘쳐났다. 하지만 도시는 성공한 자본주의의 모델이어야 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도시를 통해 증명해내야 했다. 인간의 크기를 압도하는 건물과 쾌적한 도시 환경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도시는 깔끔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는 생산으로부터 멀어졌다. 생산과 소비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먹을거리의 위험은 생산과 소비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발생한다. 건강하고 예쁜 과일을 위해 농약을 뿌리고, 먼 도시까지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방부제를 뿌리고, 소비자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발색제를 첨가하고, 그럴싸한 맛으로 유혹하기 위해 화학 첨가물을 넣는다. 오로지 '소비'만을 위해 존재하는 먹을거리는 점점 더 위험해졌다.

ⓒ뉴시스
도시는 우리의 '생산'과 '순환'을 완벽히 감추려는 몸부림을 통해 성장해왔다. 오염을 뿜어내는 공장은 도시민의 건강을 위해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이사해야 했고,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공간은 도시가 아닌 공간이어야 했다. 당신의 배설물은 완벽히 포장되어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감추어졌다. 도시에서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도시는 그래서 위험하다. 완벽히 소비를 위한 공간으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생산해왔는지, 무엇을 순환해야 하는지를 잊었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함께 청춘을 즐길 수는 있어도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으며, 24시간 불을 켜는 마트에 가서 김치를 사올 수는 있어도 배추밭은 떠올리지 않는다. 생태계의 순환의 고리 어디 한구석이 완벽히 제거된 이 도시는 성형 미인이다. 똑같은 소비 패턴과 똑같은 우상을 쫒는 동안 당초 인간이 딛고 있어야 할 한구석을 잊게 했다.

곡선을 직선이게 하고, 이를 아름답다 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먹을거리를 길러내는 위대한 행위와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당연한 사실, 무엇이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진리를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무엇인가 빠져 있는 이 공간에 우리는 왜 이토록 열광하는가. 당신의 도시는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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