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시 찬조 연설에서 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민주주의'와 '국민 통합'을 들었다. 차기 정권은 1987년 '민주화' 이래로 계속된,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퇴보'시켰던 (절차적) 민주주의를 원상 복구하고 더 발전시켜야 하며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이라는 오랜 정치적 갈등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패했다.
보수 인사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대선 당시 행보도 놀라웠지만, 대선이 끝나고 야권이 지지부진한 요즘 윤 전 장관의 행보는 더 놀랍다. '안티 조선 운동' 등으로 일찌감치 '키보드 워리어'로 이름이 떨친 한윤형(<미디어스> 기자)과 '팟 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가기 :)
윤 전 장관이 안철수와 문재인이라는 두 굵직한 야권 리더를 (발굴하고) 지원했던 것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 그 결과 버림받은 한국 정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둘 다 실패했다. 좀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이는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서 협동조합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정치 소비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정치에 반영해 이제까지 양당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절대 변하지 않았던 정치 생산자를 바꾸는 일이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의 궁극적인 목표다.
다음은 지난 5월 30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윤 전 장관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중 협동조합에 대한 내용이다. <편집자>
▲ 윤여준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치 소비자가 정치 생산자를 바꿔야 한다"
프레시안 : 정치소비자협동조합 '울림'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소개해달라.
윤여준 : 정치 소비자라는 단어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시장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다. 생산자는 늘 소비자의 요구, 취향을 살펴서 물건을 생산해야 한다. 생산자가 불량 물건을 내놓으면 소비자가 불매 운동을 하는 등 생산자를 거부할 수 있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견제하는 것이다.
정치를 시장으로 보면 정치인이 생산자이고, 국민이 소비자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산자가 소비자의 요구와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든 정치권이 그렇다. 그러나 소비자인 국민은 정치라는 상품을 거부하지도 못한다. 국민의 의무인 투표를 안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 여태까지 지속해 왔다. 이것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처럼 소비자가 생산품을 거부해서 생산자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우리도 정치를 욕하고 마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정치를 외면하고 경멸하기만 하면 정치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정치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를 바꿔야 한다. 참여라는 게 말과 행동으로, 민주적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면 정치인들, 즉 생산자들도 더는 정치 소비자를 무시하지 못한다.
준비 과정에서 국민이 주권자인데 어떻게 주권자가 소비자일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내 생각은 국민이 주권자로서는 지배자이지만 국민으로서는 피지배자라고 생각한다. 국가와 권력 관계에 있으니 지배자이자 피지배자다. 그렇기에 피지배자의 시민 의식으로 지배자 역할을 하자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이다. 주권을 올바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궤변일지는 모르겠지만,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쟁했다. 내부에서도 100%는 아니지만 수긍하는 수준에서 수용됐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병폐를 수정 보완하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렇기에 무엇을 생산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상품은 아니지만 정치적 담론도 생산할 수 있고,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한 여러 제도도 생산할 수 있다. 여러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팀이 있는데, 거기에서 국민이 철저하게 정치를 감시할 수 있는 제도, 평가할 수 있는 제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생산 활동이다.
또 조합원을 전국 규모로 가능한 많이 모이게 하려 한다. 조합원 조건은 조합비로 월 1만 원을 내는 것이다. 조합 내 모임도 많이 만들어 보려 한다. 나나 조합 임원이 외부인을 초청해 조합원과 끊임없는 교감을 할 계획이다.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말이다. 나도 전국을 돌면서 지방 조합원을 만나 토론할 계획이다.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토론을 끊임없이 할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조합원이 자기 지역에서 우리의 생각을 또 다른 분에게 전파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게 반복되면 정치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민 정치 교육이라고 하면 마치 우리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방진 태도로 보일 수 있다. 교육이란 말은 쓰지 않으려 한다. 누가 누굴 가르칠 수 있겠나. 같이 고민하고 함께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많이 경험하고 배웠으니 우리 말 들어라, 이런 것은 안 된다.
"정치 생산자, 무엇을 해도 안 바뀐다"
프레시안 : 어떻게 보면 윤 전 장관이 대선 이전부터 쭉 고민했던 '한국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결과인 듯하다. 반대로 말하면 정치 생산자를 바꾸는 것에 한계를 느낀 듯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운동이라는 것은 공감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혼자 하기는 어렵다. 틀이나 그릇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틀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협동조합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수가 다 그게 좋겠다고 하더라. 나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협동조합법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게 돼 있다. 나는 정치를 할 생각도 없다. 정치를 할 사람은 이것을 하면 안 된다.
아직은 조합원 모집을 하지 않고 있다. 실무적인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간단하지가 않다. 풀타임으로 이 일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이 없다.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본업에 바쁜 사람들이다. 남은 시간에 모여 결정을 해야 하는데, 본업이 있으니 쉽지 않다. 그래서 일 진척이 다소 늦어져 6월 초에 발족할 예정이다.
프레시안 :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을 지킨다는 게 쉽지 않을 듯하다. 조합원들 내의 자발적인 흐름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
윤여준 : 정치적 중립은 어느 쪽에 서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립이다. 가치 판단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 가장 중요한 사업은 어떤 것인가.
윤여준 : 조합원을 많이 모셔서 충분한 교감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유권자 운동과 비슷한 듯하다.
윤여준 : 그것과 비슷하다. 국민이 일상이 바쁘니 정치에 관심 갖기도 어렵다. 그들에게 정치적 현상도 설명해드리려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팟 캐스트 윤여준'도 협동조합 사업의 일환이 될 듯하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머리를 짜내고 있다.
"<프레시안>, 매우 소중한 매체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도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윤여준 : <프레시안>에 간간이 <프레시안>답지 않은 기사가 나올 때가 있지만, 경영 측면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보면 <프레시안>만 한 매체가 있나 싶다. 진심이다. 최근 '동아시아를 묻다'를 연재한 이병한 UCLA 한국학센터 연구원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글을 읽으며 동아시아에 대한 눈을 떴다.
프레시안 : 필자에게 그 말씀 꼭 전달하겠다.
윤여준 : 그것만이 아니다. <프레시안>에 게재된 좋은 글들을 출력해서 가지고 있다. 한번 보면 잊어버린다. 자꾸자꾸 봐야 하기 때문이다.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매체라서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캠페인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뜻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이것을 자기 일로 생각하고 참여해야 한다. 내 진심이다. <프레시안>은 사명감으로 해야 한다. 다른 매체와 인터뷰할 때는 현안에 대해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니 별 부담 없이 이야기하지만, <프레시안>은 인터뷰하면 늘 부담이 된다. <프레시안> 독자에 대한 예의도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덕담을 부탁하려 했는데 최고의 덕담을 들었다.
윤여준 : <프레시안>은 스스로 소중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힘들겠지만 힘내시라. 아마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국 사회에서 온당한 평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좋은 말씀 감사하다.
('박근혜 정부 100일 평가'를 주제로 한 윤 전 장관 인터뷰는 4일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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